Real Man RAW novel - Chapter 241
상남자 241화
딱 원했던 반응이었지만 유현은 살짝 오리발을 내밀었다.
떠벌리는 말보다 조심스럽게 뱉는 말에 더 신뢰가 가는 법이다.
“제가 직원이다 보니 좀 조심스럽네요.”
“푸하하하! 유현 씨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거 알아요.”
피식 웃은 유현이 한마디 툭 던졌다.
“이번에 한성에서 공장 좌초된 거 아시죠?”
“네.들었어요.사업부장 비리가 얽혀 있다던데.”
“그것도 있긴 한데, 실은…….”
유현이 말을 끝내자 오은비 기자가 화들짝 놀랐다.
“헐! 한성은 지금 OLED 할 생각이 없는 거네요?”
“아무래도, LCD를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일성이 치고 나가면 곤란하잖아요.벌어진 격차는 따라잡기 힘들고요.”
“그렇긴 하죠.”
오은비 기자는 제법 디스플레이 업계의 생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OLED가 언제 터질지는 몰라도, 미래에 꼭 필요하단 건 그녀도 알았다.
그건 둘째 치고, 일성과 한성의 전략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그 사실만으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오은비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거 기사로 써도 돼요?”
“물론이죠.대신 출처는 비밀로.”
유현이 눈을 찡긋하자, 오은비 기자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럼요.저도 기자예요.이런 건 여러 군데에서 크로스 체크하고 올려요.”
“좋네요.업체 사람들 만나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예를 들어…….”
유현은 은근슬쩍 발을 빼면서도 미끼를 던져 주었다.
설명을 듣던 오은비 기자가 즉각 물었다.
“역시.유현 씨가 최고네요.좋은 기사로 보답할게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이 빚 꼭 갚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유현이 미소 지었다.
그렇게 유현이 목적을 달성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차 문을 열려던 오은비 기자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유현 씨는 차 안 사세요?”
“아직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하긴, 아직 초년생이니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도 하죠.”
유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타이밍 좋게 고급 리무진이 다가왔다.
서울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차라서 그런지 오은비 기자의 눈이 대번에 돌아갔다.
유현은 리무진을 보자마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놈 또 왔네.”
“헉! 아시는 분이에요?”
“아, 그냥요.가시죠.”
유현이 무시하며 오은비 기자의 차에 타려던 순간, 리무진 문이 열렸다.
철컥.
정장 입은 남자들이 양옆에서 튀어나오더니 뒷자리 상석의 문을 열었다.
허리 숙인 남자들을 배경으로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순간 오은비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울리지 않는 올백 머리에, 넙대대한 얼굴과 커다란 복 코를 가진 남자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몸에 처바른 옷과 장신구 때문이다.
‘저게 다 얼마야?’
짧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명품을 접해 본 그녀였다.
딱 봐도 견적이 나왔다.
루이비통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티셔츠 100만 원.
프라다 로고로 도배된 카디건 200만 원.
손에 찬 금통 롤렉스 시계 3천만 원.
구찌 로고가 바둑판처럼 박힌 바지 250만 원.
슬리퍼처럼 끌고 있는 채널 한정판 운동화 300만 원.
완전 제멋대로에 명품 티를 팍팍 내는 조합이었다.
딱 봐도 졸부, 그것도 엄청 돈 많은 졸부가 분명했다.
기자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놀란 그녀에게 유현이 말했다.
“기자님, 잠시 차에 타 계세요.”
“네? 그래도…….”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오은비 기자가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왜 계속 연락을 안 받아!”
졸부가 유현 앞에서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의 눈엔 분명 그렇게 보였다.
“이 자식은 진짜 매너도 없네.사람 만나고 있는 거 안 보여?”
“하도 연락이 없으니까 그렇지.”
유현이 윽박지르자 남종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속이 답답할 정도로 궁금한 게 있다 보니 지금만큼은 유현이 갑이었다.
유현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남종부의 기를 팍 눌렀다.
“이딴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을 줄 알아.”
“알았어.언제 만날지만 알려 줘.”
“내가 저녁에 콜 할 테니까 차 한 대 보내.”
“언제쯤?”
유현은 어울리지 않게 친한 척하는 남종부를 보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들이대도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 녀석이었다.
“약속은 내가 잡아.그리고 쪽팔리니까 리무진은 보내지 마라.”
“그래.그럴게.꼭 와야 한다.알았지?”
“마음 변하기 전에 사라져.”
유현이 손을 휘휘 젓자 남종부가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곤 리무진을 타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오은비 기자는 얼떨떨했다.
졸부가 꼬리를 내린다?
그런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상대가 졸부보다 훨씬 많이 가진 경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금 전 유현에게 뱉은 말을 떠올린 오은비 기자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생각만 해도 쪽팔려서였다.
유현이 고개를 돌리자 오은비 기자의 미간이 좁아져 있었다.
남종부 앞이다 보니 너무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버렸다.
그게 마음이 걸려 유현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기자님, 어서 가시죠.”
“유현 씨, 제가 너무 멋모르고 말했어요.미안해요.”
“네?”
“고작 차 따위로 부담이 될 리 없는데…….”
그런데 오은비 기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당당했던 말투도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 아니에요.제가 모시겠습니다.”
“…….”
유현이 묻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극존칭까지 써 댔다.
뭔가 깊은 오해를 산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오은비 기자를 보낸 유현은 남종부가 보낸 차에 올라탔다.
리무진 보내지 말랬더니 이번엔 기름 더 먹는 스포츠카를 보냈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비싼 차라 그런지 눈에 확 띄었다.
그런데 심지어 오픈카였다.
조수석에 앉은 유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그러자 전에 유현에게 된통 당했던 덩치 큰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남종부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았는지 남자의 태도는 무척 공손했다.
“죄송합니다.울산에 가져온 사장님 차 중 리무진 아닌 게 이거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리무진을 보내지 그랬어요.”
“리무진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고.”
“…….”
유현은 할 말을 잃었다.
잠시 남종부를 정상인 범주에 넣어 버린 자신의 잘못이다.
그때 차가 신호등 앞에 멈췄다.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필 그 시점에 덩치가 유현에게 허리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수군댔다.
“어머! 차 엄청 멋있다.”
“야, 말조심해.조폭들 같아.”
“헐! 대박.조폭들이 스포츠카를 다 타네.”
쑥덕거리던 여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유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됐어요.신호 바뀌었으니까 일단 가요.”
“네! 알겠습니다.”
과아아아아앙!
“하…….”
스포츠카의 커다란 배기음과 함께 유현의 한숨이 섞였다.
잠시 후.
유현은 남종부의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남종부가 어울리지 않게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지?”
“앞으로 스포츠카도 보내지 마라.”
“그럼?”
“그냥 보내지 마.이제 네 얼굴 볼 일도 없으니까.”
유현의 칼 같은 답에 남종부가 조급함을 바로 드러냈다.
“야, 알려 줄 건 알려 줘야지.”
“뭘?”
“내가 구속된단 거 말이야.”
“아, 그거?”
“진짜냐? 확실해?”
유현은 달려드는 남종부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 이 녀석은 제대로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다.
믿었다면 진즉에 행동에 옮겼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간을 보고 있다.
확실히 믿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를 애달프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야! 빨리 말해, 인마!”
“몰라, 짜식.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어.”
“이 자식이!”
“어쭈? 한 대 치겠다?”
유현이 빈정대자 그가 씩씩대며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남종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내심이었다.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아래에 있던 자양강장제를 꺼내 들었다.
“아냐, 아냐.그럼 이거 좀 마셔.”
“난 네가 주는 거 안 마셔.”
너무 티 나는 행동에 유현이 바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남종부가 발끈했다.
“야! 이번엔 진짜라니까.봐 봐! 새 거야.”
“알았으니까 너나 마셔.”
틱.
유현은 친절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양강장제 뚜껑을 따서 그에게 건넸다.
그러자 남종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이게 자백제인 것도 미래를 보고 안 거냐?”
“뭐래? 이딴 건 볼 필요도 없어.”
유현은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었다.
남종부가 뒤통수치는 모습을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근본부터 썩은 놈이 쉽게 바뀔 리 없었다.
“그, 그럼?”
“됐어.덩치들이나 구석으로 치워.거슬리니까.”
유현이 귀찮은 듯 말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남종부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야, 구석으로 꺼져.”
“네! 사장님!”
그러자 10명의 남자들이 구석에 따닥따닥 붙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유치한 광경이었다.
힘 꽤나 쓴단 덩치 10명이 한 공간에 있지만, 긴장감이라곤 제로였다.
이 좁은 공간에서 맞붙어도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자신감이 고스란히 말투에 배어 나왔다.
“이딴 식으로 나올 거면 나 그냥 가고.”
“아냐, 아냐.그냥 병풍이라고 생각해.”
“장난하냐?”
“…….”
“남종부, 주제 파악 좀 하라고.”
턱을 치켜 든 유현이 남종부를 내려다보며 뇌까렸다.
그러자 남종부의 이마에 팬 주름이 움찔거렸다.
평생 갑질만 해 왔지, 당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속에서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을 인내심 바닥인 그가 버텨 낼 수 없었다.
유현이 바라는 대로 그는 곧바로 이빨을 드러냈다.
“씨팔!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봐.안 닳으니까.”
“야! 한성에 내가 손가락 까딱하면 머리 박을 놈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지랄하고 있네.”
유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남종부가 발끈했다.
“이게 진짜 내가 호군 줄 아나.너, 진짜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그 순간 유현이 그의 속내를 정확히 읽어 냈다.
“이태룡한테 전화하게?”
“헉!”
“어디 전화해서 잘라 봐.회사에 별 미련 없으니까.”
“너, 그, 그걸 어떻게 알았냐?”
과거, 같이 얽히기도 했던 사이라 유현이 그 이름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현이 남종부와 함께 만난 상사 중에 지금 울산에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 말이다.
반면, 남종부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벌벌 떨었다.
조금 전 기세등등했던 태도가 180도 변했다.
주도권을 확실히 잡은 유현이 그를 몰아붙였다.
이참에 녀석의 심리를 확실히 틀어잡을 참이었다.
“넌 내 말을 대체 뭘로 들었냐?”
“그럼 회사는 왜 다니는 건데?”
“너는 왜 나를 지금 불렀는데?”
“헉! 그럼 설마…….”
유현이 툭 하고 되묻자 남종부가 경악했다.
멍청한 머리가 애써 돌아가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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