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341
상남자 341화
조기정이 반장에게 코웃음 치며 반박했다.
“오늘 감사가 왜 나옵니까?”
“목포 사업장 애들이 언제는 정해 놓고 나왔어?”
박철홍 반장의 말에 강종호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안 그래도 그 부분 생각해 봤는데, 신입 말이 일리가 있더라고요.”
“뭔데?”
“저희가 목포 사업장에서 물건 받아 온 다음 날, 감사 나온 적 있습니까?”
“뭐?”
“대부분 한창 일 없을 때 감사 나왔잖아요.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같아요.걔네들이 1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그냥 진 빼려고 오진 않을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박철홍 반장은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담담한 유현을 힐끔 보며 생각했다.
이제 첫 출근 한 놈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공장 돌아가는 사정도 모를 텐데 말이다.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유현이 손을 들었다.
“반장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결국 감사만 아니면 저희가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요?”
“흠, 흠.”
유현이 정곡을 찌르자, 박철홍 반장은 헛기침을 했다.
신입에게 내보이기엔 부끄러운 내용이었지만, 연태 사업장은 정말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불시 감사 때문이었다.
감사에서 태도 불량이라고 찍히는 날엔 최소 감봉의 징계였다.
실제로 잘린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박철홍 반장에게 유현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 생각엔…….”
듣고 있던 세 사람 눈이 또 잔뜩 커졌다.
“뭐라고?”
“CCTV?”
“입구에?”
유현은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러면 감사 나온다고 떨 필요 없잖아요.”
“카메라는 어떻게 하고? 케이블도 있어야 할 텐데?”
박철홍 반장이 묻자 유현이 바로 답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대충이지만 공장을 둘러보고 내뱉은 말이었다.
“여기 가전제품 재조립 공장 아닙니까? 카메라 같은 건 있지 않나요?”
“허.”
입사 첫날부터 내뱉는 꼼수에 박철홍 반장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강종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메라랑 케이블 있으면 되는 거야?”
“TV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잖아.안 될 게 없지.”
답은 조기정이 대신 했다.
“정말요? 그럼…….”
“맞아.내 생각엔…….”
이내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했다.
거기엔 유현에 대한 경계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딱 봐도 놀고먹을 수 있는 묘수인데, 그걸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유현이 바라는 목적도 이들과 같았다.
유현은 이곳에서 잘해서 인정받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연태 사업장이 성과 낮기로 유명해서가 아니었다.
이 정도로 작은 규모의 사업장의 문제점은, 아침에 공장 안을 쓱 훑는 것만으로 읽어 냈다.
마음먹고 움직이면 이곳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유현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유현은 그저 편하게 있고 싶었다.
반면.
유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박철홍 반장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번에 들어갈 신입 녀석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서 연태 사업소에서 빠져나가려 할 겁니다.반장님이 그걸 막아 주시면, 사례를 톡톡히 하겠습니다.
얼마 전, 그룹전략실에서 연락해 온 부장이라는 사람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연태 사업장엔 재조립 성공률을 2배로 올리면, 성과를 인정받아 다른 사업장으로 전출 갈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없었던 일이지만, 박철홍 반장은 혹시나 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룹전략실 부장 놈이 헛다리 짚은 게 분명했다.
박철홍 반장은 늘어지게 앉아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어디서 성과를 탐하는 모습이야? 그냥 놀고먹겠단 거지.”
그럼에도 그냥 두는 이유?
여러모로 자신도 바라는 바였다.
그만큼 감사 스트레스가 컸다.
지이잉.
그때, 박철홍 반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본 그의 얼굴이 감사 나온단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구겨졌다.
잠시 후.
유현은 강종호를 따라 공장 내에 위치한 자재 창고에 갔다.
공장에 붙어 있는 창고는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꽤나 규모가 컸다.
그 안에는 가전제품 재조립 공장답게 각종 부품과 기기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유현의 눈에 의아한 점이 띄었다.
“이걸 누가 다 정리한 겁니까?”
“정리? 주로 내가 하지.감사에서 태클을 받으면 안 되니까.”
“와.꽤 정리가 잘되어 있네요.”
카테고리별로 물품들이 나뉘어 있는 건 물론, 선반 앞에는 꼼꼼하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창고 안에 어떤 부품들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문서까지 만들어 놨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수준급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유현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거 잘하면 뭐하냐.하등 쓸모없어.”
손을 휘적거린 강종호가 구석에 있는 선반 문을 열었다.
선반 앞에 깔끔하게 주기되어 있는 대로, 그 안엔 동축 케이블이 꽤나 많이 담겨 있었다.
유현이 다른 선반을 뒤지는 동안, 강종호는 구석으로 기어들어 가 CCTV용 카메라를 찾았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오, 진짜네요.대박입니다.”
입꼬리를 올리는 강종호를 보여 유현은 엄지를 내밀어 줬다.
그러자 강종호가 어이없단 듯 유현을 바라봤다.
“내가 너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게 아냐.”
“동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서로 편하면 되는 거죠.”
유현이 빙긋 웃자, 강종호는 고개를 홱 돌린 후 발걸음을 이었다.
어제부터 저 녀석만 보면 말리는 기분이다.
드르르르르.
그때 등 뒤에서 바퀴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케이블을 들고 오는데 카트를 끌어 대고 있다.
“하여간 사무직 놈들은 잔머리 굴려서 안 돼.”
강종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게실 안에 들어서자 조기정이 뒷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채 앉아 있었다.
평소 멍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지어 눈빛을 번쩍이기까지 했다.
고개를 갸우뚱한 유현이 그에게 들고 온 동축 케이블부터 건넸다.
“여기, 케이블 있습니다.”
“오케이.카메라는?”
“여기요.”
강동식에게 카메라를 받은 조기정은 니퍼로 동축 케이블 표면부터 깠다.
그런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히 이곳에서 재조립을 많이 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현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휴게실 내 TV와 카메라를 연결했다.
그러곤 12V 어댑터를 카메라 전원부에 끼웠다.
틱.
동시에 화면에 꽤 괜찮은 화질의 화면이 떠올랐다.
조기정은 들고 있는 카메라를 강종호의 얼굴에 들이밀며 이죽댔다.
TV엔 강종호의 얼굴이 훤하게 나왔다.
“잘 돌아가네.그나저나 참 성격 더럽게 생겼다.”
“에이, 주임님, 쓸데없는 말 하지 마세요.근데 이거면 됩니까?”
이곳에서 반장 외 직급 호칭은 다 주임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편하라고 생산직 사원 다음 직급인 주임으로 통일했다.
좌천된 마당에 호칭이고 나발이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동작은 충분하지.거리가 문젠데…….”
조기정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 순간, 유현이 끼어들었다.
“기왕이면 산 초입부로 갔으면 좋겠는데요.”
“나도 신입 말에 동의해.근데 동축으로는 거리가 안 돼.”
“전화선은 안 됩니까?”
“전화선?”
고개를 갸우뚱하던 조기정에게, 유현이 카트 위에 실린 박스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엔 전화선이 가득했다.
순간 조기정과 강종호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게 있었어?”
“이건 또 언제 가져왔어?”
유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정도는 있어야 거리가 될 거 같아서요.그래서 이걸로 돼요?”
“잠깐만 있어 봐.”
잠시 멍하게 있던 조기정이 유현이 건넨 케이블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똑같은 방법으로 케이블을 대체하자, TV 화면에 카메라 영상이 떠올랐다.
화질은 떨어지지만 동작은 확실했다.
“가능성 있겠는데?”
헛웃음을 지은 조기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종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벅저벅.
조기정은 전화선과 동축 케이블이 가득 담긴 배낭을 앞으로 멘 채 걸었다.
그냥 걷기만 한 게 아니라 전화선을 땅바닥에 뿌렸다.
유현은 그 뒤를 따르며 전화선을 대충 정리했다.
탁.
조기정이 공장 뒤편의 우거진 나무를 지나 가파른 계단 아래로 발을 디뎠다.
“헛.”
“괜찮으세요?”
“그럼.당연하지.”
유현의 물음에 그가 손을 휘적거렸다.
족히 1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는 터라, 딱 봐도 불안한 자세였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걸으며 허세 섞인 말을 뱉었다.
“내가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있을 땐, 이거보다 무거운 야전선 통을 들쳐 메고 말이야…….”
“아, 그렇군요.”
유현은 적절히 추임새를 넣어 주며 뒷짐을 지고 걸어갔다.
조기정이 혼자 계단 옆으로 전화선을 까는 터라 딱히 할 게 없었다.
조기정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쉴 새 없이 말을 이었다.
“이 전화선이 구리 함유량이 적어서 화질이 떨어지는데, 이때 동축 케이블을 이어 주면 저항이 낮아져서…….”
어느 정도 거리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니퍼로 전화선 피복을 벗긴 후 동축 케이블과 연결했다.
그러곤 그때부터 동축 케이블을 깔았다.
물 흐르듯 유현한 동작에 유현은 감탄하듯 맞장구를 쳐 줬다.
“대단하시네요.”
“뭘, 이런 건 별거 아냐.내가 예전 사업장에 있을 때는…….”
그러자 조기정은 땀을 훔치며 또 열변을 토해 냈다.
평소엔 한없이 게을러 보이더니, 관심 있는 일 앞에서는 무척 열정적이었다.
거기다 조금만 맞춰 주면 금세 들뜨는 타입이었다.
편하게 생활하려는 유현에게 있어서 최적의 인물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먼저 나설 테니 말이다.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유현이 또 칭찬했다.
“주임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허.그 정도까진 아니지.그래도 내가 대학교 때 로봇 동아리를…….”
유현은 조기정의 말을 배경음 삼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멀찍이 보이는 저수지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꽤나 근사한 풍경을 만들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어제 저수지 앞에 쳐 놓은 텐트가 보였다.
인적이 드문 데다, 확실히 영역표시를 해 놓아서인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오늘은 저기서 고기를 구워 먹어야겠네.”
유현의 콧노래와 함께 혼잣말이 흩날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연태 사업장 안내판이 붙어 있는 산 초입구였다.
공장에서 걸어온 거리만 약 400미터로, 그 길이만큼의 선이 바닥에 깔렸다.
거의 직선거리라 짧아 보이지만, 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아가면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다.
여기에 CCTV를 설치하면 약 10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불시 감사에 대비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발로 전선을 파묻고 있는 유현을 조기정이 안내판 뒤쪽을 가리켰다.
“어이, 신입, 저쪽에 설치하면 돼.”
“괜찮네요.”
그곳엔 1평 남짓한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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