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572
상남자 572화
저벅저벅.
버스에서 내린 유현은 걸음을 옮기며 나도하와 함께했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나도하는 늘 뭔가 달랐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고, 자유분방했다.
팀장인 유현 입장에선 관리 영역 밖인 이 천재가 골칫덩이였다.
그건 지금 박영훈도 마찬가지였다.
-천재는 원래 다 그러냐? 도하 녀석은 도무지 관리가 안 돼.어디로 튈지도 모르겠고, 뭐 하는지도 모르겠어.
온몸에 가시가 돋친 나도하는 사람을 못 믿었고, 관계에 선을 그었다.
까칠한 성격인 데다, 제멋대로이기까지 하니 관리하는 입장에선 힘들 수밖에 없었다.
박영훈이 혀를 내두를 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격이 뭐가 중요해.도하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지원하면 되는 거지.’
처음엔 힘들어도 결과를 보면 박영훈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고개를 주억거린 유현은 멀찍이 보이는 3층 건물 쪽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이었다.
손에는 나도하에게 줄 초콜릿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룰루.
반가운 만남을 떠올리며 콧노래를 부르던 유현의 눈에 의아한 물체가 들어왔다.
뭐지?
3층 건물로 이어진 보도블록 위에 찢어진 티셔츠가 널브러져 있었다.
군데군데 단추나 천 쪼가리, 부서진 몽둥이도 보였다.
의아한 마음도 잠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기 안 서!”
동시에 덩치 큰 남자가 좁은 샛길에서 튀어나왔다.
옷이 찢긴 채 죽어라 뛰는 모습이 한 마리의 코뿔소 같았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현에게 한마디가 더 들려왔다.
“유현아! 저 자식 잡아!”
강동식의 목소리를 확인한 유현은 본능적으로 발을 뻗었다.
툭.
발목을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 남자가 바닥을 굴렸다.
쿠당탕탕!
“으윽!”
강동식이 번개같이 달려와 널브러진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땀을 뻘뻘 흘린 걸 보니 꽤 몸을 푼 모양이다.
“이 자식이 어딜 도망가!”
유현은 그사이 샛길 안쪽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쪼르르 무릎 꿇은 채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못 도망가게 감시하고 박영훈 때문도 아니었다.
앞에서 겁에 질린 채 서 있는 나도하를 본 유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대답은 마지막 남자까지 무릎 꿇려 손 들게 한 강동식이 직접 했다.
“건방진 녀석들에게 참 교육을 실행 중인 거지.”
“갑자기 사무실에 쳐들어왔더라고.”
박영훈이 부연설명을 하자, 가장 끝에서 손 들고 있던 남자가 우는 소리를 했다.
간신배처럼 콧수염이 길게 난 게 인상적인 남자였다.
“쳐들어간 게 아니라, 도하 녀석에게 볼일이 있었던 거라고요.도하야, 말 좀 해 봐.”
“그게…….”
나도하가 겁에 질린 채 우물쭈물할 때였다.
팍.
강동식이 남자의 머리를 치며 눈을 번뜩 떴다.
“감히 연장까지 챙겨 온 주제에 우리 막내를 협박해?”
“마, 막내…….”
“만약에 막내 얼굴에 손끝이라도 댔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알아?”
“히익!”
콧수염 남자가 겁을 집어먹을 만큼 강동식의 목소리는 살벌했다.
괜히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은 게 아니었다.
유현이 내심 감탄하며 나도하의 손을 잡아 주었다.
꼬옥.
손끝으로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녀석.많이 힘들었구나.’
유현을 바라본 나도하가 울먹이듯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괜히 저 때문에…….”
“걱정 마.우린 가족이잖아.”
“…….”
막내, 그리고 가족.
어릴 적 버려졌다가, 뒤늦게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도하에겐 너무나 그리운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가 나도하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도하야, 앞으로 누구도 널 못 건드릴 거야.형들 믿어도 돼.”
“…….”
유현이 나도하와 마주하며 마음을 전할 때였다.
살벌한 얼굴을 들이민 강동식이 마무리 작업을 했다.
쿵.
바닥에 이마를 박은 콧수염 남자가 맹세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옆에 있던 덩치 큰 남자들도 같이 고개 숙였다.
툭툭.
콧수염 남자의 뒤통수를 두드린 강동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래야지.아니면 영원히 햇빛을 못 보게 될 테니까.”
“…….”
“진심인지 아닌지 테스트하고 싶으면 와서 강동식을 찾아.언제든지 받아 줄게.알았냐?”
“아, 아닙니다, 형님.”
“이 자식이 누굴 보고 형님이래?”
팍.
“악!”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강동식이 손바닥을 폈다.
“자, 5초 줄 테니까 당장 꺼진다.5, 4, 3…….”
후다다닥!
숫자를 더 셀 필요도 없었다.
무릎 꿇고 있던 남자들은 번개 같은 속도로 도망을 갔다.
탁탁.
손바닥을 턴 강동식이 나도하에게 다가갔다.
“어이, 막내,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너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
강동식이 어깨를 툭툭 친 순간이었다.
“흑, 흑, 흑…….”
나도하가 온몸을 들썩였다.
옆에 다가온 박영훈이 강동식에게 삿대질했다.
“형님, 왜 애를 울려요?”
“인마, 내가 언제.야, 막내, 말해 봐.내가 했어?”
“흐어어어엉!”
크게 울어 버린 나도하를 유현이 안아 줬다.
“괜찮아.괜찮아.”
어떤 마음인지 유현이 다 알진 못한다.
하지만 지금이 속에 쌓여 있는 울분을 토해 낼 시간이라는 건 알았다.
무척 진지한 유현을 뒤로하고, 강동식은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조금 전까지 폭력배들에게 살벌하기만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야, 왜 그래? 나 아니라니까.”
“진짜, 관장님께 다 이를 거예요.”
박영훈이 그 모습을 보며 짓궂게 놀리자, 강동식은 더 당황했다.
“아니라니까.나 안 했어.그, 그렇지, 막내야? 응? 제발 말 좀 해 봐.”
“흐어어어어어엉!”
그 후로도 나도하의 울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강동식이 받은 오해는 나도하가 울음을 다 그치고 나서야 풀렸다.
몇 차례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강동식이 민망한 나머지 체육관으로 올라갔다.
2층 대표실엔 먼저 들어간 박영훈이 이미 판을 깔았다.
“자, 오늘 같은 날 한잔해야지”
소주병을 내민 그를 보며 유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럴 만한 게 테이블에는 고기 불판이 올려져 있었다.
“불판은 웬 거야?”
“나의 대표실 로망이야.환풍기 짱짱하게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지.”
“언제는 담배 피우는 손님 접대 때문이라며.”
“그건 후순위고.도하야, 어서 앉아.”
“네? 아, 네.”
나도하는 무릎을 다소곳이 붙여 앉았다.
가시 돋친 말을 거침없이 뱉던 면접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쪼르르.
유현에 이어 나도하에게 술을 건넨 박영훈이 한마디 했다.
“얼떨결에 첫 회식을 하네.”
“타이밍이 참 좋아.아, 케이크도 사 왔는데.”
“제, 제가 뜯겠습니다.”
유현과 박영훈은 말도 하기 전에 움직이는 나도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변화엔 늘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란 말에 눈물을 펑펑 쏟았던 나도하는, 소주 앞에서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셨다.
어느새 호칭은 사장님, 이사님에서 형이 되었다.
“형, 죄송해요.흑, 흑.”
“하! 이 자식.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박영훈은 답답한지 가슴을 쳤고, 유현은 손수건을 건넸다.
“자, 마음껏 울어.”
“흑흑.”
유현의 배려가 그를 또 눈물짓게 만들었다.
“도하가 눈물이 많았구나.”
“죄, 죄송합니다.”
나도하가 또 사과하자, 박영훈이 마음의 문을 열고 나섰다.
“넌 무슨 억울한 일들이 그렇게 많냐? 말해 봐.다 들어 줄게.”
“싫으면 안 해도 돼.”
유현이 한마디 덧붙이자, 나도하가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형들에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눈물을 잔뜩 쏟아내서인지 가시 돋친 느낌의 표정은 전혀 없었다.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고 꽁꽁 싸맸던 비밀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가 어릴 적엔…….”
부모에게 버려졌던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던 시기까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천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듣고 있던 박영훈이 코를 풀었다.
팽!
“에이, 연기가 맵네.”
불판 불이 꺼진 지가 언젠데, 그는 애먼 핑계를 대고 있었다.
눈시울을 붉힌 박영훈이 먼 곳을 바라봤다.
유현도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가족이란 말에 가슴이 미어졌구나.’
꼬옥.
나도하의 손을 잡은 유현이 말했다.
“도하야, 이제 네 곁에 늘 우리가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내가 더 고맙다.이렇게 함께해 줘서.”
유현이 나도하와 함께하려 했던 큰 이유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도하가 어떤 선택을 하든, 유현은 그의 옆에서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었다.
정말 든든한 형처럼 그에게 울타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박영훈도 마찬가지인지, 두 팔을 벌려 나도하를 반겼다.
“자, 우린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하는 거 알지? 도하야,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
“…….”
움찔하는 나도하를 뒤로하고, 유현이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가족 같은 회사랍시고 마음껏 부려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도하 의견이라면 난 이제 전폭 지지야.도하야, 뭐든 다 해도 돼.대표실도 네가 쓸래?”
“도하야, 쓴다고 해.이런 기회 잘 없어.”
유현이 부추기자 나도하가 난색을 표했다.
“아, 아닙니다.제가 감히.”
“아니긴.도하야, 까짓것 네 방도 하나 만들어 줄게.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박영훈은 기분에 취했는지 시원하게 질렀다.
그제야 나도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 그럼 컴퓨터 더 사도 되나요? CPU 사양을 좀 올린 걸 추가로…….”
“얼마든지 사.마음껏 다 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도하는 어찌나 좋은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인사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박영훈이 대표답게 잔을 들며 말했다.
“자, 이제 더블와이에 웃는 일만 있도록 하자고.”
“네.알겠습니다.”
나도하 또한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피식 웃은 유현도 잔을 내밀었다.
챙.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더블와이가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날 유현은 나도하의 숨겨진 과거사만 들은 게 아니었다.
응어리를 풀어낸 나도하는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춘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거기엔 최근 박영훈과 말을 별로 섞지 않은 이유도 들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유현은, 나도하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꺼낸 고해성사를 떠올렸다.
-사실 제안한 내용들을 해내려고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제대로 구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습니다.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말 앞에서 유현이 실소했다.
“반년은 걸릴 일을 하루아침에 하려고 하니 될 턱이 있나.”
따지고 보면 나도하가 못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벌써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렸고, 모바일 어플도 형태를 만들었다.
마지막 10퍼센트의 디테일이 어려워 헤매고 있는 셈이다.
애초에 90퍼센트를 해내는 것조차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