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625
상남자 625화
그 시각.
자리에 앉은 나도연 팀장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스마트폰 점유율 2위라.’
말이 2위지, 현재 매출의 최소 5배 이상을 올려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미션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에 모든 게 달려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의 손에 한성 차기 회장이 결정될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 몹시 성가신 사람이 끼어들었다.
바로 가전전략팀 신정근 팀장이었다.
-제가 나 팀장을 본 지가 얼만데, 실력이야 당연히 알죠.그런데 팀원들 보니까 이번에도 휴대폰은 힘들겠던데요? 뭐, 망해도 팀원 탓하면 되니까 그건 괜찮겠네요.하하!
그녀는 담당 회의 때 봤던 간사한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빠득.
“그 늙은이가 감히 우리 팀을 무시했다, 이거지?”
당장 가서 따지고 싶지만, 가전전략팀과 정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스마트 가전에 휴대폰 기술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이는 여태식 전무가 처음으로 두 팀에 던진 협업 미션이었다.
사이드 업무인 데다 갑작스럽기까지 하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원 배정이다.
팀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
업무 경중을 고려할 때, 멤버는 신낙균 과장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손발이 될 인원을 누구로 해야 할까?
회의 특성상 정리할 사람이 추가로 필요했다.
‘어중이떠중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그녀가 전화기를 들었다.
나도연 팀장의 전화를 받은 유현은 그녀와 독대했다.
예상했던 내용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유현은 준비했던 답을 줬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유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돗자리라도 깔아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안재경 과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의 예측대로 정확히 나도연 팀장은 유현의 동료들 중 1명을 붙이려고 했다.
그녀의 자존심을 고려해 볼 때, 나름 반전 있는 결과였다.
게다가 신낙균 과장이 주 멤버가 될 거라는 예상도 적중했다.
단지 타 팀과의 미팅이란 키워드로 이걸 풀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이런 직관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우연일지라도 대단한 부분이었다.
신기한 마음도 잠시, 유현은 정현우 대리를 불렀다.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선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멀뚱히 다가온 동기이자 학교 후배에게 유현이 의견을 전했다.
“현우야, 너 전에 준비했던 스마트 가전 관련 자료를…….”
“네? 그걸 신 과장님이랑요?”
정현우 대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편, 미션을 받은 신낙균 과장은 살짝 짜증이 났다.
“미치겠네.”
메인 업무가 아닌 사이드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보조로 붙은 정현우 대리였다.
듣자 하니 녀석은 기획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그런 인물이 혁신전략실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였다.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녀석은 계속 뭘 준비했다며 들고 왔다.
날카롭게 쳐 내도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게 영 꼴불견이다.
해 봤자 쓸모도 없는 걸 왜 조사해 오는 걸까?
절레절레.
정현우 대리의 자료를 본 신낙균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며칠 뒤.
가전전략팀과의 회의에서 신낙균 과장은 또 고개를 저었다.
회의 내내 시비를 걸어 대는 마주 앉은 남자 때문이다.
그는 잠시 쉬는 틈을 타 또 비아냥댔다.
“그러고 보니 신 과장도 참 애를 먹겠어.”
“뭘 말입니까?”
“그 옆의 대리가 계열사 관리팀 출신이잖아.아는 것도 없는 친구를 데리고 바닥부터 가르쳐야 하니 얼마나 귀찮겠어.”
공격하려면 자신을 직접 공격하지, 남자는 괜히 정현우 대리를 걸고 넘어졌다.
이럴 땐 들이받는 게 상책인데, 정현우 대리는 주눅이 들었는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아무리 짜증나는 녀석이라도 같은 팀이다.
별 볼 일 없는 남자에게 이런 얘기를 듣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신낙균 과장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김 차장님, 본인 팀원이나 신경 쓰시죠.이렇게 부실하게 자료 준비해 놓고, 협의한다고 부르지 마시고요.”
“뭐, 뭐라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가전전략팀 김명종 차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더 놀라 눈을 껌뻑인 건 바로 정현우 대리였다.
회의가 끝난 후였다.
신낙균 과장은 쌩하니 나가 버렸지만, 정현우 대리는 할 말이 한가득이었다.
재빨리 자리로 돌아온 정현우 대리는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장소는 휴게실로, 디스플레이 동료들이 마주앉아 있었다.
“글쎄, 신낙균 과장이 가전전략팀을 어찌나 터는지…….”
듣고 있던 권세중 대리가 감탄했다.
“그 성격 더러운 사람을 어디다 쓸지 몰랐는데, 이런 식으로 사용 가능하구나.”
“맞습니다.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준식도 엉뚱한 말 한마디를 보탰다.
그 소리를 들은 유현이 어이없어 했다.
“준식아,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제, 제가 실수한 겁니까?”
“아니다.그냥 웃겨서 그래.잘했어.”
장준식의 어깨를 토닥여 준 유현이 정현우 대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회의 결과는 어떻게 됐어?”
“잘됐어요.”
“신 과장이 준비도 안 한 거 같다며?”
“아니었어요.보니까 제 자료까지 완전히 꿰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를 찍어 누르더라고요.”
이것도 의외인지 권세중 대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정현우 대리가 뭘 준비했는지는, 혁신전략실로 이동하기 전 준비 기간 동안 함께했던 터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스마트 가전 방향성 정리했던 거 말이지? 스마트폰에 개발 중인 자체 OS를 저전력으로 특화해서 가전에 쓰자는 내용이었던가?”
“맞아요.그때 개발팀에 가서 확인했던 거요.”
“만만치 않은 양이었을 텐데?”
“다 파악한 거 같더라고요.안 그래도 가전전략팀 김 차장님이 엄청 파고들었는데, 제 자료를 이용해서 그걸 다 방어해 냈어요.”
“이미 감정 상했는데, 방어 잘한다고 되는 거야? 어떻게 회의 결과가 좋을 수 있는 거지?”
권세중 대리는 의아한 눈치였지만, 유현은 알 것 같았다.
신낙균 과장과 오래 일을 해서인지 다음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현우 대리가 답하기 전에 유현이 먼저 말했다.
“아마 함정을 파고 몰아갔을 거야.”
“맞아요.신 과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영악하시더라고요.”
어느새 정현우의 말에서 신낙균 과장 뒤에 ‘님’ 자가 붙었다.
정현우는 그걸 모른 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외통수에 걸리게 상대를 몰아간 뒤에 결정타를 때리는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어요.”
“그래도 상대가 수틀리면 소용없지 않나?”
“가전전략팀 제안과 달리 저희는 OS도 쓰면서 단가와 전력도 잡았잖아요.구체적인 결과로 보여 주니 상대도 입을 싹 다물던데요?”
“그분이 그래도 능력이 있긴 한가 보네.”
권세중 대리는 무척 의외인 눈치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현이 피식 웃었다.
“말했잖아.성격이 좀 그래도 능력 있다고.”
“그 성격에 일 잘하는 게 매칭이 안 돼서 그렇지.이렇게 편드는 건 더 이해가 안 가고.”
“좀 그렇긴 하지.”
유현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짝.
박수를 친 정현우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 회의 끝에 어땠는지 아세요?”
“어땠는데?”
“제 서류철을 이렇게 휙 던져 버리더라고요.”
정현우 대리가 손으로 던지는 시늉을 하자, 모두 놀라 눈을 껌뻑였다.
“뭐? 던져?”
“네.그러면서 뭐라 했는지 아세요?”
“뭐라 했는데?”
“차장이나 돼서 관리팀 출신 일개 대리보다 못하다고요.”
“뭐? 진짜 막장이네.푸하하하!”
권세중 대리가 크게 웃었고, 장준식 대리도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였다.
유현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상대를 계열사 취급하는 신낙균 과장의 무례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모두 예측한 안재경 과장의 말 때문이다.
-신낙균 과장 스타일이라면, 타 팀과 크게 마찰이 있을 겁니다.그래도 제가 말한 조건이 갖춰졌다면 큰 문제는 안 될 거예요.오히려 결집 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참 웃던 권세중 대리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아, 진짜.인정이다, 인정.나 이제 신 과장님에게 잘하려고.”
“저도 그러려고요.”
“저도 호감입니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유현은 확 달라진 세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날 이후, 팀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여전히 파벌 갈등은 있었지만, 신낙균 과장과 디스플레이 대리들의 신경전은 확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위 불협화음에 예민한 안재경 과장이 이런 변화를 놓칠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자리에 앉은 그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상하겠지.’
안재경 과장은 아직 자신이 말했던 계획이 실행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얼핏 들어서 타 팀과 미팅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배경에 여태식 전무가 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할 터였다.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안재경 과장도 알아야 한다.
방향만 옳다면, 그가 생각한 모든 것은 이뤄질 수 있다.
유현이 그렇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안재경 과장이 아니라 모두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안재경 과장이 알게 될 시간이 다가왔다.
회의실 안에 휴대폰전략팀 10명이 자리했다.
인원수가 적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 한 명, 한 명이 혁신전략실의 대표였다.
계열사를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런 인원들 앞에서 나도연 팀장이 신낙균 과장에게 한마디 했다.
“신 과장, 가전전략팀과 방향성 정리하느라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아, 그쪽 팀장이 뭐라 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내가 커버할 테니까.”
“네.알겠습니다.”
나도연 팀장은 곧이어 정현우 대리와도 눈을 마주쳤다.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긍정적인 눈빛이었다.
유현은 그 모습을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미팅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니고, 고작 방향성을 제시했을 뿐이다.
앞으로 판이 엎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런데도 회의 시작부터 칭찬한다?
이건 칭찬에 인색한 나도연 팀장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라이벌 팀을 하나 붙여 둔 것만으로 그녀의 성격까지 변화시킨 셈이다.
유현은 새삼 안재경 과장의 감각이 놀라웠다.
한편, 안재경 과장은 전혀 다른 이유로 놀랐다.
‘설마.’
팀장 말을 들어 보니, 가전전략팀과 미팅이 있었던 듯했다.
게다가 멤버는 신낙균 과장과 정현우 대리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갈등이 제법 해소된 모양이다.
-신낙균 과장은 외부에 큰 적이 나타나면 내부의 적을 같은 편으로 삼을 겁니다.라이벌 팀과 미팅 자리를 주선하면 확인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는 얼마 전 자신이 유현에게 말했던 방법과 꼭 같았다.
여기에 전제 조건이 있었다.
정현우 대리가 신낙균 과장에게 먼저 신뢰를 보여 줘야 한다.
그건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단기간에 이뤄졌다.
이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는 건, 이어지는 나도연 팀장의 말을 들어 봐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