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833
상남자 833화
유현으로부터 시작된 일인 이상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 일성반도체를 설득 못하기도 했고.’
현진건이 서버 칩 생산 문제를 해결해 준답시고 나섰지만,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대규모 통신 칩 생산 의뢰를 검토 중이라는 핑계로 최민용 사장이 직접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하필 그 의뢰 고객이 화웨이였다.
이대로 두면?
일성반도체는 화웨이 통신 칩 생산의 거점이 되어, 미중 무역 전쟁에 휘말리고 만다.
이를 막고, 서버 칩 생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화웨이의 실태를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유현이 고민을 끝냈다.
한결 가벼운 표정인 유현에게 우중철 부사장이 새 찻잔을 건넸다.
탁.
“특별한 손님에게만 드리는 차입니다.커피보다 나을 거예요.”
“잘 마시겠습니다.”
보이차의 향이 꽤나 진했다.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건가?
국내에서 맛봤던 것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우중철 부사장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제 어떤 경험이 대표님에게 도움이 될까요?”
“사실 저희의 신축 데이터센터에는 화웨이 장비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도요?”
알면서 모른 척하긴.
실소를 감춘 유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네.미국 내부에선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 하게 한다더라고요.저희도 세계를 목표로 하다 보니 미리 신경 썼습니다.”
“저런.그건 명백한 오해입니다.”
“그런가요?”
유현이 묻자 우중철 부사장이 입에 침을 튀겼다.
“당연하죠.만약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화웨이가 전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경쟁 기업인 에릭슨이 있는 유럽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가장 많이 쓰는데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한때 제가 화웨이와 꽤 많은 거래를 했던 사람입니다.그들의 실력과 신뢰성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죠.”
이 자식 봐라?
이젠 대놓고 화웨이 편을 들고 있다.
유현은 참을 인 자를 속으로 새기며 적절히 응해 줬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요.”
“말이 30퍼센트지, 그 정도면 엄청난 차이입니다.근데 왜 이렇게 싼지 아십니까?”
“왜죠?”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이미 엄청나게 많은 장비를 공급한 후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때문입니다.검증이 다 됐다 보니 추가 비용이 없는 거죠.그리고…….”
우중철 부사장은 화웨이의 대변인이라도 된 양 참 열심히 떠벌렸다.
슬슬 분위기가 잡혔다고 생각한 유현이 미끼를 툭 하고 던졌다.
“혹시 JK통신에 대해 아십니까?”
“알다마다요.유니크 신화의 실질적인 주인공 아닙니까.특히 이번에 나온, AP와 모뎀을 합한 칩은 초대박이었습니다.퀄컴을 짓누를 정도였으니까요.”
“네.그 회사가 최근 서버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아하! 서버.”
“네.근데 그 서버가 워낙 고사양인 데다, 성능을 발휘하려면 초고속 네트워크가 필요해서요.”
굳이 낚으려고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어느새 상체를 잔뜩 기울인 그가 알아서 미끼를 덥석 물어 왔다.
“안 그래도 화웨이에서 새로 나온 초고속 통신 장비가 있습니다.베이스 스테이션부터 코어 장비까지 맞추면 속도가 일반 장비 대비 3배 이상 나오죠.”
“근데 그걸 믿을 수가 있어야죠.검증이 필요한데…….”
“수검을 하면 되죠.필요하시다면 제가 화웨이 본사와 연결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중국 배터리 업체로 이직하신다고 들었는데.”
유현이 떠보자 우중철 부사장이 바로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데이터센터는 국가의 미래 아닙니까.그런 일을 하시는데, 어디 저 편하자고 쉴 수가 있나요.”
“괜히 신경 쓰게 해 드린 건 아닌지.”
“전혀요, 전혀.제가 조금이라도 리비버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뱉은 우중철 부사장이 슬쩍 유현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만 봐도 넘어간 게 분명했다.
우중철 부사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웬 떡이냐!
화웨이 본사에서 리비버의 동태를 살피라는 지령이 내려온 시점이었다.
경계심이 강해 보여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웬걸?
이대로라면 장비 계약은 물론이고, 화웨이가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JK통신까지 엮을 수도 있다.
화웨이 본사로부터 인정받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 우중철 부사장이 딱 바라는 말을 유현이 정중하게 꺼냈다.
“그럼 번거로우시겠지만 선배님의 지원을 요청드리겠습니다.”
“그럼요.얼마든지요.”
사실 항공료도 나오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중철 부사장은 흔쾌히 응했다.
눈가에 진한 주름이 진 그를 보며 유현이 코웃음 쳤다.
넌 나중에 두고 보자.
꼭 케케묵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 줘야 회사와 나라를 팔아먹는 산업 스파이를 처리할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거린 유현이 우중철 부사장과 눈을 마주쳤다.
씨익.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두 사람의 미소가 선명하게 교차했다.
밖으로 나온 유현은 권세중 과장과 함께 근처 바에 들렀다.
어둑한 공간에서 마주 앉으니 함께했던 옛 기억이 솔솔 떠올랐다.
참 재밌었는데.
유현의 시선을 느낀 권세중 과장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뭘 그렇게 봐?”
“그냥.너도 참 많이 컸다 싶어서.”
“웃긴 놈.왜? 네가 업어 키웠다고 말하려고?”
“꼭 그런 건 아니고.”
피식 웃은 유현에게 권세중 과장이 잔을 내밀었다.
챙.
“아니긴.너한테 업혀 간 거 맞지, 뭘.”
“웬일이냐? 네 입으로 그런 말을 다 하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발전하는 법이야.요즘 네 공백을 많이 느낀다.”
“잘하고 있으면서 왜 그래.”
“그냥.급변하는 상황을 따라가는 게 영 버거워서 그래.특히 중국 쪽이.”
술잔을 비운 권세중 과장이 고민을 넌지시 꺼냈다.
유현이 부탁했을 때, 그는 사정을 깊게 묻지 않았다.
통신 담당으로서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더 깊이 파고든 것뿐이다.
우중철 부사장과 나눴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알려고 하기보단 유현이 괜찮은지 먼저 걱정해 줬다.
그게 동기를 위한 배려임을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쪼르르.
술잔을 채워 준 유현이 슬쩍 물었다.
“뭐가 그렇게 버거워?”
“아냐.그냥 조금 답답해서 그런 거야.”
“또 속으로만 꿍하려고?”
“무슨.내가 언제 그랬다고.”
“이렇게 딱 둘이 술 마실 때 그랬지, 아마?”
휴대폰전략팀에서의 일이다.
-그래도 내가 널 따라다닌 시간이 얼만데, 이젠 나도 알 자격 있는 거 아냐? 언제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지낼 수는 없는 거잖아.
꽁꽁 숨겨 온 속마음을 드러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권세중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그건 술 취해서 그런 거고.”
“어쨌든.그때도 그렇지만 내가 너무 말 안 해 줬나 싶어.”
“같은 회사도 아닌데 뭘 그래.”
“남 일은 아니라서.”
비단 이번 화웨이 건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만큼, 유현은 이 부분에 관해 신경욱 회장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유현의 말에 공감해서일까?
신경욱 회장은 중국 진출이 예정된 한성 공장들의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했다.
전략적 시야를 갖춘 권세중 과장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혁신전략실이 흔들릴 정도니, 계열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쯤에서 중심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성은 앞으로도 쭉 같이 갈 동반자니 말이다.
유현이 미래에 한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줄 권세중 과장에게 물었다.
“세중아,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될 것 같아?”
“뜬금없이 웬 동북아?”
권세중이 눈을 크게 뜨자 유현이 담담하게 설명에 나섰다.
“전략은 회사 사내 정치에만 쓰는 게 아니야.경쟁사를 넘어 국가를 봐야지.”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봐.”
“너 전략총괄 부서로 이동했다며.막대한 권한이 주어졌으면 그만큼 시야도 넓혀야지.”
권한이 커진 만큼 부담감을 느끼던 권세중 과장이 중얼거렸다.
“그렇긴 한데.”
살짝 주춤거린 권세중에게 유현이 반문했다.
“더 멀리 봐.그렇게 해서 한성의 정점에 서는 게 네 목표 아니었어?”
“내가 그런 말도 했냐?”
“척 보면 척이지.어서 말해 봐.너 시야 좋잖아.”
“…….”
유현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한 번에 답을 알려 주지 않고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했다.
시야가 좋다느니, 감이 좋다느니 칭찬하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회사에서 잘나갈 수 있었던 배경엔 그런 유현의 가르침이 있었다.
피식.
문득 옛 생각이 떠오른 권세중 과장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중국의 힘이 커지면 문제가 생길까?”
“어떤 문제?”
“인건비를 확 올려 버린다든지, 갑질을 한다든지.”
“그럴 수도 있지.반은 맞아.”
“나머지 반은…….”
이쯤이면 알려 줘야 하나?
유현이 고민하고 있을 때, 권세중 과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미국이 견제하는 거 아냐? 그럼 중간에 낀 우리 입장에 문제가 생길 거 같은데.”
“더 해 봐.”
“음, 문제가 예상되는 곳에 굳이 공장을 지을 필요는 없지.빼도 박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1년 후쯤 사드 배치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게 시작이다.
그 후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특히 화웨이 문제가 터지고 나서 무역 전쟁이 시작되면, 중국 진출 기업들이 치명타를 입는다.
유현이야 이런 미래를 알고 있다지만, 권세중 과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았다.
“역시…….”
“맞아?”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확률은 있지.”
“그렇군.그럼 네가 이번에 중국에 가는 것도 같은 이유야?”
추측도 제법이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다 보니 이것만은 말하기 어려웠다.
“약간은.”
“말해 주기 어려운 사정이 있나 보구나.쉽지 않은 일인가 보네.”
“맞아.부딪쳐 봐야지.”
챙.
술잔을 부딪친 권세중 과장이 피식 웃었다.
“뭐 도와줄 건 없고? 우 부사장을 이대로 두진 않을 거 같은데.”
“소름.”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말해 봐.어떻게 하면 돼?”
어째 동기 덕분에 본보기를 보여 줄 시기가 확 당겨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 우 부사장이 중국으로 뜨기 전에 확인 좀 해 줘.어떤 거냐 하면…….”
유현이 준비하고 있던 바를 술술 읊었다.
절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한성과 나라를 위해서.
유현의 선택으로 중국행이 결정됐다.
이 소식을 에이원 회의실에서 들은 현진건이 반색했다.
“하하! 아주 탁월한 선택이야.이렇게 같이 가면 얼마나 좋냐?”
현진건이 이렇게 잘 웃는 성격이었나?
일에 파묻혀 여행이고 뭐고 다 싫다던 놈이?
“그렇고말고요.이야, 중국 간다.신난다, 신나.”
나도하는 한술 더 떠 쾌재를 불렀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화웨이 본사에 통신 장비를 수검하러 가는 일이다.
자칫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두 천재는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동산 가듯 신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