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lantern RAW novel - Chapter 17
17
“어디서 저런 보물을 숨겨놓고 있었대?”
매니저가 눈웃음을 칠 때마다 허리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골반이 요염하게 흔들렸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윤희의 어린 나이와 좋은 학벌도 눈길을 끌기엔 충분했겠지만, 전례 없이 석우가 직접 데리고 왔다는 점에서 더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대강 매출이나 돌아가는 사정 정도만 이야기하고 끝냈을 것을 굳이 따로 룸을 잡아 양주를 대접하는 걸 보면. 석우도 일러둘 것이 있는지라 사양 않고 매니저가 직접 말아주는 폭탄주를 말없이 들이켰다.
“쟤, 흰둥이 맞죠?”
“…….”
이곳에서 뼈가 굵은 매니저답게 석우가 잔을 비우자마자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정곡을 찔렀다. 그러고 보면 몇 년을 품에 안고 밤과 아침을 함께 맞다시피 했는데 정말 오야와 윤희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었을까. 그런 쪽으론 또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라, 곰곰이 어땠을까 헤아려보다가, 한참 피 끓는 젊은 남자와 곱기만 한 계집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참 독하기도 하다는 생각에 석우의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몰라 나도.”
“맞을 거야. 척하면 딱이죠. 경험 없는 애들은 벌써 눈빛부터 다르거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두 번째 잔을 채우며 매니저가 호들갑을 떨었다.
“잘만하면 몇억은 우습게 받겠어. JQ알죠? 왜, 얼마 전에 원유 개발 사업 독점권 따낸 기업 있잖아요. 응, 맞아 거기. 그 회장님 손자가 그렇게 여길 드나든다니까? 찾는 애들마다 딱 쟤 같은 분위기에요. 분명 윤희 보면 엄청 좋아할걸. 얼마 전에도 서령이 아파트 하나 사줬잖아. 서령이는 땡잡았지.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보내다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윤희를 떠올리자마자 어떤 결심이 섰다.
“강윤희, 룸에 들여보내지 마.”
잠자코 수다를 들어주던 석우가 무겁게 입을 열자, 매니저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럴 거면 여긴 왜 데려온 거예요?”
“시늉만 해, 시늉만.”
“그러다 지명이라도 들어오면 어떡해요.”
“적당히 넘겨. 왜, 여자들 핑계 대기 좋은 거 있잖아.”
“어머, 전 그런 것 몰라요.”
새침하게 눈을 흘기면서도 잔을 채우는 손길이 분주한 것을 보니 딱히 석우의 말을 거스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장난 아니고, 진짜로 2차라도 나가는 날엔 곤란해.”
“너무 진지하면 저 무서워요, 강 실장니임! 그나저나 요즘 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피곤하신가 보다.”
다시 한 번 주의 주는 석우의 모습에 뭔가 낌새를 챈 모양인지 매니저는 더는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겠다는 듯 말을 돌렸다. 이럴 때는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잔을 쓰게 털어 넣었다. 오야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독단으로 윤희를 룸에 넣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함부로 굴리는 거야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 *“그렇게 우리 말 안 듣더니.”
“…….”
“결국 여기야?”
“…….”
“너, 그 자식이랑 아무 일 없었나 보네.”
“…….”
승수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내 알아채곤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얀 원피스. 순결의 상징. 공교롭게도 첫날 이곳에 왔을 때 윤희는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정후의 마음에 들고 싶어 심사숙고 끝에 골랐던 옷을 보고 매니저는 반색했었다.
‘너 흰둥이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저열한 의미를 파악했다. 눈처럼 깨끗하고 천사의 날개처럼 순수한 흰색은 저들에겐 그저 짓밟아 더럽히고 무참히 꺾어 버리고 싶은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곧 흰색은 윤희에게 가장 저주스러운 색, 그리고 검정색은 가장 두려운 색으로 자리 잡았다.
“할 일 있어서 온 거 아냐? 상관하지 말고 가.”
미동도 않고 저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승수에게 뱉은 말은 결국 밀어내기였다. 사실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무섭다고. 제가 지나갈 때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내는 번들번들한 눈빛을 견디는 게 힘들어 죽겠다고.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꺼내 달라고, 소리 높여 애원하고 싶다.
‘그러면 승수 네가 위험해지겠지.’
가끔 얼굴을 비추는 석우나, 본가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들을 보면 이곳은 완벽히 그의 손아귀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설령 도망친다 한들 가진 것이라곤 맨몸 뿐인 자신이 갈 곳은 없다. 잠시 최환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털어 지워낸다.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준 환에게 등 돌렸으면서, 그것만은 못 할 짓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윤희 자신은 아직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빼 줄까.”
“네가 이해할 수 없겠지만,”
“…….”
“난 아직도 그 사람이 좋아.”
“야, 강윤희.”
기가 차서 승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 자식은 애초에 너 따위!”
“알아.”
처음부터 이럴 목적이었던 것을. 석우가 돌아가고 난 뒤 매니저가 꽤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넌 여기서 최고가 될 거라고. 아니 이미 최고라고. 수많은 룸, 그 안에서 남들에게 안겨 웃음을 파는 여자들, 그리고 취기 오른 붉은 얼굴들과 최고라는 단어가 만났을 때, 거짓말처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림동의 홍등가가 또렷이 떠올라버렸다. 그와의 첫 만남, 첫 대화까지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 넌 꿈이 뭐야?
– 꿈이요?
– 앞으로 커서 되고 싶은 것.
– 어…… 은하 이모요.
– 은하 이모?
– 네, 이모는 여기서 제일 예뻐요! 천사 같아요!
– 그래?
그때 이정후는 눈을 똑바로 맞추고 말했었다. 아주 분명하게.
‘내가 널, 최고로 키워줄게.’
그는 자신이 말한 걸 정확히 지켜냈다. 예전, 나림동의 홍등가처럼 여성이 상품인 이곳에서 윤희는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으니.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은하 이모처럼 웃지 않는다는 것뿐.
“그러니까 권승수, 그냥 모른 척해줘. 최환에게도 말하지 말아 줄래. 혹시 묻거든 잘 지내고 있다고, 너도 잘 지내라고만 전해줘.”
담담히 말을 잇는 윤희에게 승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말 안 할게, 안 하는데.”
“…….”
“이거 하나는 알아둬, 강윤희.”
“…….”
“걘 너 아니었음 이 진흙탕에 발들일 일도 없었어.”
“…….”
“넌 걔한테 잘 지내라고 할 자격 없어.”
할 말을 마친 승수가 냉랭하게 윤희를 지나쳤다. 거대한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듯 가슴 한복판이 아려왔다. 그래도 차라리 잘 된 거라고,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쳤어야 했는데 이걸로 된 거라고, 온통 쓰라려 괴로운 와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며 속을 달랬다.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이곳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견고한 방패막이가 되었다.
‘여기에 있으면 적어도 최환하고 마주칠 일은 없겠지. 그거면 돼. 어차피 세상에 날 기억해 줄 사람은 이제 없으니.’
순진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곧 세상 그 누구보다도 피하고 싶던 그 얼굴과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 *“이거 봐.”
저마다 거울 하나씩을 끼고 화장을 수정하는데 뒤늦게 출근한 민솔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달랑거리는 다이아 귀걸이를 자랑했다.
“그거 진짜야?”
“당연하지. 어제 받았어. 여기 그만두고 아파트 줄 테니까 거기서 지내래.”
못해도 콩알 하나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알 굵은 다이아가 그녀가 말할 때마다 달랑이며 영롱한 빛을 반사했다.
“그럼 이제 너 보기 힘들겠네.”
며칠 전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든 거라며 선물 받은 백을 자랑했던 나리가 부러운 표정 반, 아쉬운 표정 반으로 샐쭉하니 입을 내밀며 묻자, 민솔이 귀걸이를 요란하게 흔들며 얼른 응수했다.
“미쳤어?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모르는데.”
아파트쯤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면봉을 꺼내 미세하게 번진 마스카라를 찍어낸 민솔이 덧붙였다.
“당분간 애 좀 태워 보려고.”
남자들이 이곳 Ange noir의 손님이 되기 위해 몸이 달아오른 것처럼, 여자들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안달인 건 마찬가지였다. 손님을 잘 물어 평생 먹고 살 만큼 재산을 뜯어내도 민솔처럼 떠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차고 넘쳐도 그네들은 목말라했다. 선물과 돈에 취하는 건 잠깐뿐, 깨고 난 후엔 또 다른 욕망이 숙취처럼 그녀들을 따라붙었다. 그러니만큼 저들이 윤희를 질시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몸값 때문이었다.
“쟤는 아직도 저거 입고 있네.”
민솔이 나리에게 윤희의 하얀 색 홀복을 흘긋 눈짓해 보였다.
“어린 것이 처음부터 얼마나 받아내려고 벌써부터.”
“그래 봤자지, 뭐. 시간 지나면 저도 별 수 있나.”
나리가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딱히 조심도 하지 않는 둘의 대화에 윤희의 어깨가 점점 움츠러들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텐데 아직도 지명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저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막연히 다행이라고 여기고만 있었다. 화장실 가는 척하며 자리를 벗어날까 궁리하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매니저가 윤희를 향해 손짓했다.
“……저요?”
“VIP 룸.”
워낙 고가인지라 여간해선 손님이 잘 찾지 않는 VIP룸이란 말에 나리와 민솔의 눈이 뾰족하게 세모를 그렸다. 부담스런 네 개의 눈을 뒤로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 당도한 복도 끝, 매니저가 긴장한 윤희의 어깨를 잡고 화장을 살피며 당부했다.
“룸은 처음이지?”
“……네.”
“들어가자마자 인사부터 해. 그럼 누구든 널 옆에 앉힐 거야. 그 다음 부턴 홀이랑 비슷해. 잔 비울 때마다 신경 써서 잘 채우는 것 말곤 별거 없어.”
“네.”
“너무 굳었다.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긴장 풀라며 어깨를 토닥인 매니저가 이윽고 문을 활짝 열었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안으로 한 발짝 내딛자 바로 닫히는 문을 무심코 돌아봤다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허리를 간신히 굽혀 얌전히 인사했다.
‘누구 옆에 앉아야 하지.’
지명을 받기 위해 시선을 든 윤희의 숨이 그대로 멈췄다. 가장 먼저 석우의 굳은 입매가 눈에 들어오고, 이어서 최환의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윤희를 맞이했기 때문에.
‘네가 왜.’
믿을 수 없는 건 윤희도 마찬가지였다. 창백하게 질려선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귀에 나직한 부름이 들렸다.
“이리 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찬찬히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제 옆자리를 가리키는 이정후가 눈에 띄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고 그 옆에 앉아 기계적으로 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맞은편에서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최환의 눈빛에 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파트너가 맘에 안 들면 그쪽이랑 바꿔줄까?”
그런 환을 바라보며 조롱하는 듯 웃는 이정후가 낯설다.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나.
“옷차림을 보아하니 아직 손님 받은 적 없나 보네.”
군침이 도는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새로운 인물들이 보였다. 다소 비굴해 보이는 백발의 중년 남성과, 눈가의 칼자국이 인상적인 또 다른 남자가. 저마다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웃음을 흘리는 여자를 끼고 있지만, 최환은 옆은 거들떠도 안 보고 윤희만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여차하면 제 계집과 윤희를 바꾸고 싶은 눈치인 백발을 무시하고 이정후가 턱짓으로 잔을 비우라고 까닥였다. 거만한 언행에 백발의 이맛살이 잠시 구겨지다 이내 다시 억지웃음을 되찾았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기한을 좀 더 미뤄 주십사 하고요. 이번에 사업을 확장해서 캐피탈 자금을 끌어 쓰느라 당장은 여유가 없습니다. 동종 업계에 있으니 아시겠지만, 요즘 또 수금이 원활치 않은지라, 왜, 사정 다 아시잖습니까.”
초로의 백발 남성이 한참 어린 그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붙여가며 구구절절 어려움을 토로하는 동안 이정후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양주를 홀짝였다. 언제 잔이 비워질까 싶어 뚫어지게 탁자만 보고 있는데 문득 치마 아래로 그의 손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보시다시피 아직 건사해야 할 아들놈도…….”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잠시 말이 끊겼다. 태연한 건 이정후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아, 그래서, 아무튼 모쪼록 사정을 봐주시면 해서 말입니다.”
다시 시작된 대화와 함께 치마 속을 파고든 손가락이 속옷을 젖히고 거리낌 없이 은밀한 부위를 헤집었다. 뻔히 최환이 보고 있는 데서 진득하게 제 몸을 타는 이정후의 손길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감히 제지하는 건 꿈도 못 꾼 채 자꾸만 드러나는 허벅지가 민망해 더는 말려 올라가지 않도록 치마 옆단이나 잡고 있을 뿐. 그러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아…….”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손끝이 닿았던 곳이 이런 상황에서도 축축해져서인지, 젖다 못해 고인 액이 주르륵 흘러 손을 적시자 그의 입가에 설핏 떠오른 만족감 때문인지. 뭐가 됐든 수치스러움에 그만 눈물이 고였다.
“……그 손 떼.”
잔뜩 화를 억누른 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철썩,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룸 안이 고요해졌다. 아들의 뺨을 후려친 후 얼른 이쪽을 살피는 백발의 모습에 이정후가 피식 웃었다.
“석우, 오늘은 이만하지.”
그만하자는 말에 한껏 웃고 있던 여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르르 빠져나갔다. 동시에 검은 양복을 입은 무리들이 들어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했다.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백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칼자국이 있는 남자의 눈도 잔뜩 치켜 올라가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얌전히 이곳을 나가는 것뿐이라는 걸 잘 아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갔다.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진 최환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윤희에게 고함을 질렀다.
“강윤희, 얘기 좀 해.”
“…….”
“너 왜 여기 있는데.”
“…….”
“이거 놔! 강윤희!”
“…….”
“이거 안 놔? 이 개자식들! 윤희야! 강윤희! 대답해!”
“…….”
그마저도 제지당하고 끌려나간 후, 자리엔 석우와 윤희 그리고 그, 이렇게 셋만 남았다. 허벅지 안쪽 여린 살점을 탐하던 손은 이미 거둬진 지 오래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깬 건 석우였다.
“……자리를 비워 드릴까요, 아니면…….”
“본가로.”
이정후가 야멸차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온몸으로 윤희를 부정하는 듯 등지고 선 뒷모습을. 보기만 해도 설레었던, 이제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단단한 어깨를. 이대로 떠나면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본다 한들, 그때도 제가 이 옷을, 이 하얀색 옷을 입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심이 섰다.
이제는 문을 나서는 그를 향해 한걸음에 다가가 허리를 꼭 안자, 우뚝 멈춘 걸음과 동시에 이정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앞장섰던 석우도 오야가 움직이지 않자 의아한 듯 뒤를 살폈다. 지금은 석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가득 고인 눈물을 꾹 눌러 삼키며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제 첫 손님이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