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ed Genius hacker RAW novel - chapter (150)
150 Re: 에필로그
“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응?”
자판기 커피를 입에 문 채로 졸린 눈을 하고 있는 희도를 바라보고 있는 이는 그와 닮았지만 정장 차림이 더욱 잘 어울리는 진호였다.
“다 끝나긴 무슨, 아직 해야 할 일 좀 남았어.”
“보스라는 이는 이미 잡았잖아?”
정진호는 평검사로 데뷔했지만 카오스에게 때린 구형과 57명의 유명 인사들의 더럽고 비열한 짓을 낱낱이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스타 검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차기 부장검사 자리는 이미 따놓은 것이라고 주변에서 떠들 정도니 그때가 얼마나 화려했는진 누구나 알 수 있을 터였다.
“음, 그렇긴 한데. 아직 남았어, 해야 할 일이.”
카오스는 무너졌고, 다크 웹은 붕괴되었다.
‘하지만 쥐새끼가 남았지.’
보스가 다크 웹을 붕괴시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비트코인들을 현금으로 전환시켜 빼돌려 달아난 데이비스와 잔당들. CIA와 국가정보원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들을 잡기 위해 노력할 터였다.
스위스의 어느 외딴 섬에 카오스의 잔당이 몰래 숨어 있다는 누군가의 제보를 받았다. 그 제보 속에는 데이비스로 추정되는 이의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희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트라우마처럼 존재하던 자신의 사고 장면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지울 수 있었다. 다만 전생의 자신을, 대형 트럭으로 자신을 들이받아 죽인 이가 바로 데이비스라는 사실을. 그 위치에 새겨진 문신을 어떻게 잊으랴.
하지만 잡는 건 시간문제였고, 전 세계의 정보망을 통해서 다시금 추적해 갈 것이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는 희도를 바라보던 진호가 한마디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넌 무슨 말을 한 거야?”
“응? 뭘?”
그의 물음에 희도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자꾸 나 볼 때마다 너한테 약속 지키라고 카오스 놈들이 말을 꺼내는데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진호가 말하는 약속이라는 단어에,
“아아, 그거?”
희도는 피식 웃으며 자판기 커피를 홀짝 마셨다.
* * *
그는 보스의 범행을 입증시키기 위해 카오스의 일원들에게 증언을 해 달라고 했다. 그 대신 그들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으라는 거 몰라? 너희들이 보스를 잡았을 때 범행에 대한 증언을 확실하게 해 주는 놈들에 한해서 한 가지씩 기회를 줄 거야.”
그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범행 입증을 위해 한마디씩 해서 보스가 완전히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지면, 증언을 해 준 녀석들에겐 나와 한판 붙을 기회를 주지.”
“뭐? 너와 붙을 기회?”
“어, 나와 붙을 기회를 주지. 물론 이기는 사람에겐 그에 따른 보상도 있겠지.”
“그게 뭐지?”
“너희가 제일 원하는 거겠지. 특별사면.”
특별사면, 광복절이나 삼일절에나 가끔 대통령의 뜻에 따라 모범수 혹은 범죄자들의 죄를 면해 주는 방식이었다. 파격적인 제안에 카오스는 당연히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그 말 사실이야?”
대표로 표태훈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내 화이트해커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렇게 표태훈과 브라이언 리를 필두로 한 옛 수하들의 증언으로 인해 완벽하게 보스의 범행이 드러났고, 그는 대한민국이 아닌 CIA와 전 세계적인 기구에서도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약속을 잘 지켜 주었기에 희도 역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기회의 장은,
「코드라이엇 해킹 방어 대회가 개최됩니다! 주니어부, 대학생부, 일반부로 나눠 4박 5일 기준으로 실시될 예정입니다. 참가자들은 각 데스크에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해 주세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화이트해커의 대축제의 일환인 코드라이엇에서 시작될 것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스터 정! 역대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는 화이트해커인 대한민국의 정희도 님께서 이벤트 경기도 진행한다고 하니 한번 지켜봐 주세요!」
비록 카오스이며, 그들이 블랙해커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실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거기다 코드라이엇에서는 어택과 디펜스, 혹은 문제 풀이를 통한 IT적 지식을 사용하는 방식을 써야 한다. 블랙해커의 어두운 면이 아닌 IT의 엘리트급의 지식을 갖고 있는 카오스의 일원들은, 주니어부 혹은 IT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터였다.
그리고 팀 단위로도 참여하지만 개인으로 참석도 가능하도록 희도는 주최 측과 함께 이야길 나눴다. 이벤트성 경기에 희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이트해커들을 다수 포섭했다.
마치 해외 축구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누비던 축구 선수들이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갔지만 올스타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경력을 쌓고 실전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했던 김진우와 송우진.
사이버 수사대의 염상섭 경위.
CIA의 팀 베럴.
암호학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제이든 등 수많은 인사들이 대거 참석을 하였고 이벤트의 규모는 졸지에 역대 최다의 관중을 자랑할 정도로 커졌다.
카오스의 일원들은 따로 대회장을 만들어 참석하게 하였으며, 일반 관중들은 그들 모습을 못 볼 테지만 참석하여 함께 자웅을 겨루는 장을 구성했다.
“반드시 약속한다. 여기에서 나를 꺾거나, 1등을 한다면 모두 특별사면시켜 주지. 그러니까 전력을 다해 봐.”
희도의 말은 카오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말이 되었고, 그들은 그간의 악감정을 잠시 미뤄 두고 순수하게 정희도라는 화이트해커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정희도는 누가 뭐래도 전 세계를 통틀어도 최고의 화이트해커임은 확실하니까.
그를 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블랙해커 짓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욕심에 눈멀지 않았다. 그저 그를 넘기 위해 순수하게 열의를 다하기 위해 마음을 잡았다.
“그 약속, 반드시 지키길 바란다.”
카오스 중 누군가의 말에,
“물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희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시발점이 되었으며, 대회 시작의 알림이 울렸다.
「코드라이엇 해킹 방어 대회,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 *
시간은 꽤 흘렀고 희도에게는 안정의 시기가 찾아왔다. 아니, 안정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저 귀엽고 이쁘장하다고 생각했고, 20대가 되어서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근데 30대가 되니.
“오늘따라 더 이쁘네.”
“윽, 느끼해.”
느끼하다며 고개를 획 돌리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싱그러웠다.
“여전히 이쁘네. 아름답고.”
“내가 한 미모 하기는 하는데 오늘따라 유독 유난이네. 무슨 일 있어?”
희도와 나란히 걷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은 이유나였다. 걸즈시대의 독보적인 센터였던 그녀는 20대 후반에 걸그룹 생활을 청산하고 배우로 전향했다. 9등신에 가깝다 할 정도로 늘씬한 몸매에 청순한 꽃사슴을 연상케 하는 외모는 배우 생활에도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녀는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했다.
세간은 그런 그녀가 도대체 어떤 남자를 만날지, 누가 그녀를 낚아챌지 늘 탁상공론에 빠지기도 했다.
“무슨 일 있긴. 내 여자 친구가 이뻐서 그렇지.”
“치이, 난 또 뭐라고.”
하지만 그녀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배우로 전향하고 하는 일은 날마다 잘되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인 희도가 매일같이 바쁘기 짝이 없으니 만날 시간도, 스케줄이 빗나가서 함께하는 시간은 더 길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입으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그동안 얼마나 자신이 먼저 대시하고, 많이 기다렸는데 그 말까지 자신이 해야 하는가 싶어서 말이다.
억울해서라도 이 말만큼은 꼭 희도 자의에 의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도 아닌가 보다.
“……뭐 먹을까?”
그러다 보니 희도의 평범한 질문에도 괜스레 심술이 일어났다.
“움, 몰라.”
“그럼, 파스타 먹을까?”
“글쎄?”
“자기가 좋아하는 소주에 닭발?”
“오늘은 안 당기네.”
이렇게 대꾸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모른다거나 심술 어린 반응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희도는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미소를 지었는데, 그런 미소에 괜스레 더 짜증 나는 건 유나였다.
“왜 웃어!”
“응? 그냥 웃었지, 귀여워서.”
“흥이다! 메롱!”
“하하하! 오늘따라 우리 여친님께서 많이 속상한 일이 있나 보네?”
“치이.”
무엇 때문에 속상한지는 말하지 못한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기에 그녀는 죽어도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나랑 결혼하자. 유나야.”
그가 먼저 유나의 손을 살포시 내려놓더니 한 걸음 걸어가 빙글 돌아 유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어……?”
“나랑 결혼해 줄래? 이유나.”
희도는 자연스레 한쪽 무릎을 꿇으며 품속에 있던 반지함을 꺼냈다. 열린 반지함에는 한 쌍의 반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유나는 반지와 희도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흘렸다.
“뭐야…… 갑자기 이렇게 프러포즈하는 게 어디 있어. 나 오늘 별로 이쁘게 입지도 않고 나왔단 말이야.”
연예인이고 공인이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띄면 조용한 데이트가 망쳐질까,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온 그녀였다.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쁜 모습으로 프러포즈받고 싶었는데…….
“네가 무얼 입든, 네가 무얼 하든, 내 눈엔 다 이뻐. 너무 이뻐서 빨리 프러포즈하지 않으면 누가 낚아채 갈까 싶어 가지구.”
“뭐어……?”
“나 오늘도 네 기사에 댓글 달고 왔어. 누가 댓글에다가 이유나 누가 데려가냐고 썼길래 나도 모르게, 내가 데리고 간다고 해 버렸지 뭐야.”
“핏, 그게 뭐야아……! 하하하. 어떻게 프러포즈를 이렇게 멋없이 하냐.”
눈물이 또르르 흐르면서도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희도의 행동에 감동과 재치를 동시에 느끼면서 그가 이렇게 자신을 신경 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몸을 숙여 희고 긴 손을 뻗으며 그의 몸을 안는 순간.
펑―! 퍼벙! 펑펑펑!
희도와 유나가 서 있는 곳 위로 터져 나오는 폭죽과 불꽃은 두 사람을 축복을 알렸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희도야.”
둘은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눈을 바라봤고, 숨결이 닿을 듯 가까워질 때쯤 입술을 맞췄다.
퍼엉―! 퍼엉, 펑펑!
인생의 동반자이자, 남은 긴 세월을 함께하고자 마음먹은 두 사람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