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110)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10화(110/224)
추운 겨울 (5)
스피놀라 가문의 3남, 안토니우는 보고 있던 서류를 아래로 내리면서 눈덩이를 양손으로 문질렀다.
“개 같은 것들. 진심으로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군.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죄다 수장시켜버리겠다는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분노가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해왕 토벌 실패.
해왕의 광분으로 용오름이 더욱더 거세져서 부유군도를 떠받치고 있던 상승기류에 추가적인 이상변화가 감지되어…….
이대로는 정말 군도가 추락하거나 수장될 위험성이 다분하므로…… 따라서 해왕을 대응할만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나, 쉽지 않은…….
하나 같이 좋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에서 그가 가장 많이 화가 나는 대목은 바로 마지막 부분이었다.
트로이반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성에 대해 재고해볼 가치가 존재…….
개 같은 트로이반!
아니, 놈들에게는 ‘개’라는 표현도 아쉽다.
개는 최소한 충성과 신뢰라는 단어는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스피놀라를 포함하여 해운 3가가 똬리를 틀고 있는 베노타와 부유군도는 사실 제국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찾기 힘든 이상 지형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몇 안 되는 <신비> 중 하나.
해저에 흐르는 거대 해류가 심해 평야에 위치한 해저화산의 마력풍과 만나 광역적인 상승기류를 일으키고, 이에 따라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허공으로 떠오른 곳.
대륙과도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부유군도는 고대부터 독특한 생태계와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런 기질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대륙에서 쫓겨난 망명자나 범죄자들이 모이는 무법지대이면서도 거대한 이권지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위치상 세계 각지의 물류를 유통할 수 있는 중간 허브 항구의 기능도 가능해서 은행업이 크게 발달하기도 했다.
해운연맹.
바다를 기반으로 한 모든 무역로를 통제한다는 절대 강자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특히 그들은 오늘날 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는데 필요한 선거권을 가졌다는 선제후(選帝侯)로 분류되기도 했으니.
그만큼 그들이 이 제국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유군도는 뜻하지 않은 재해를 만나고 말았다.
대륙과 부유군도를 이어주던 해류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섬들을 떠받쳐주던 마력풍 상승기류에도 이상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실제로 부유섬 몇 개가 유독 지진이 심했고, 어떤 곳은 천천히 수면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섬사람들에게 해저화산의 활동으로 인한 가벼운 지진일 뿐이라 해둔 상태이지만.
이 사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해운 3가는 이런 이상 변화의 원인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트로이반.
안정적인 해류와 마력풍 상승기류의 균형을 깨버린 원흉.
문제는,
‘그놈들을 압박할 만한 힘이 당장 우리에게 없다는 거지.’
스피놀라가 아무리 암흑가에서 알아주는 세력이라지만, 대가문인 트로이반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해운연맹이 힘을 합쳐서 트로이반으로 향하는 물류를 압박하려 해도 놈들의 위치가 동부이기 때문에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가장 쓸만한 패가 바로 은행업이긴 했지만…….
‘그건 그리말 놈들이 딱히 협조적이질 못하니.’
암흑가의 스피놀라.
은행업의 그리말.
해운 선박의 로멜린.
이들 세 가문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지금의 위기를 겨우 타개할 수 있을까 말까 하건만.
그리말은 딱히 이번 사건에 협조적이진 않았다.
‘지역 기반의 사업을 펼치고 있는 다른 두 가문과 다르게 자신들은 언제든 본거지를 옮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지.’
이미 그리말과 트로이반 간에는 물밑으로 어떤 교섭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있는 게 분명했다.
까드득!
안토니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역시 암흑가에 몸을 담고 있으니 그리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순 없어도,
고향에 대한 애착만큼은 진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일을 절대 쉽게 묵과할 수 없었다.
‘해저…… 부유군도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해왕, 그것만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생겨도.’
툭!
툭!
안토니우는 검지로 탁상을 두들기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외세의 힘이라도 따로 빌려야 하는 걸까?
‘황실은 이미 개판 난 지 오래이니 그쪽에는 말도 못 꺼낼 테고…… 북방. 북방의 라그나르가 최근 트로이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던데. 거기에 손을 뻗는다면?’
하지만 이 역시 내심 저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자칫 라그나르에 손을 뻗었다가 트로이반 쪽에서 눈치채고 곧바로 해왕에게 손을 썼다간 모든 게 끝장이었으므로.
결국 가장 좋은 건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인데.
“으으으……!”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안토니우가 주먹을 부르르 떨던 그때였다.
똑똑.
“안토니우 님. 저 파올로입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노집사가 들어왔다.
오랫동안 안토니우를 옆에서 보좌한 비서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지?”
“그것이.”
파올로의 말에 안토니우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집사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좋다. 세 분 다 이곳으로 모셔 오도록.”
* * *
「이번 일은 전부 다 너한테 일임할 테니까 한번 알아서 잘해봐. 단, 우리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신호 주고.」
노집사의 안내에 따라 새로운 저택으로 이동하는 길.
셀퍼드와 아린은 테오에게 넌지시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했다.
테오는 내심 고마웠다.
사수로 참여한 만큼 신입이 주도하는 작전에 걱정도 많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신뢰를 주고 있으니.
덕분에,
테오는 어느 이름 모를 무가의 영식, 셀퍼드와 아린은 그를 호종하는 호위 검사라는 설정이 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쯤 이 시기라면 부유군도가 해수면으로 가라앉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로 꽤 떠들썩했었지. 그러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뚝 사라졌었고. 혹시 그 배경에 해운연맹과 트로이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닐까?’
테오가 해운연맹과 트로이반의 결탁 원인에 이리저리 고민하던 동안, 마차는 어느새 저택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수많은 돈을 만지고 있다는 해운 3가 중 한 곳답게, 스피놀라의 저택은 아주 화려한 외양을 자랑했다.
‘겉보기에 화려하기만 하고 볼품은 없는 것 같지만.’
그동안 세실리아에게 배운 심미안 덕분인지, 테오는 별다른 테마나 통일성 없이 화려하기만 한 저택 내부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셀퍼드와 아린도 거기엔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고.
다만, 노집사에겐 그런 반응이 ‘촌놈들이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하려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의기양양한 발걸음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들어가십시오. 안에서 안토니우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가니, 양복 차림에 말끔한 인상을 한 30대 남자가 격하게 환영 인사를 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스피놀라의 3남인 안토니우라고 합니다.”
안쪽에는 다과와 시가가 마련된 탁상이 있었다.
테오는 그쪽을 슬쩍 보다가 당장 들어가지 않고 차가운 태도로 물었다.
“뭐 때문에 자꾸 오라 가라 한 거지? 스피놀라의 공자가 얼굴 보고 싶다고 하니 오긴 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얼굴이나 보자고 오라고 한 거라면 재미없을 줄 알아.”
건방지면서도 오만한 태도.
만약 일반 용병 나부랭이 따위가 이딴 모습을 보였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뒷산에다 묻어버렸겠지만,
‘지부 하나를 혼자서 통째로 박살 냈단 말이지?’
안토니우는 오히려 테오 일행의 그런 태도를 실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거친 말투와 다르게 웬만한 미녀들도 견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테오는 누가 봐도 귀한 집안의 영식이었다.
입고 있는 옷차림도 한낱 장사치와 졸부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귀한 안목이 숨겨져 있었고.
어느 거대 무가의 자식과 호위기사들이 분명했다.
‘곧 해운 3가의 회동이 벌어진다. 거기에 이만한 실력자들이 있다면.’
안토니우의 두 눈이 여러 계산으로 빛났지만, 금세 아래로 숨기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런 것으로 귀한 분들의 시간을 빼앗았겠습니까? 수하들의 멍청한 짓에 사과도 드릴 겸, 좋은 제안도 드리고 싶어 이런 누추한 곳으로 왕림하십사 부탁드린 것이지요. 일단 앉으시겠습니까?”
큰 가문의 아들치고 고분고분한 자세였다.
역시 귀족보다 장사꾼이라고 해야 할까.
늘 오만한 라그나르의 사람들만 상대하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인간상을 만나니 재미있었다.
“그러지.”
“하하. 역시 겉으로 보이시는 것처럼 화통하십니다.”
안토니우는 테오 일행의 맞은편에 앉으면서도 빠르게 그들을 살폈다.
어린 테오가 상석, 다른 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하석에 앉았다.
테오가 일행의 리더란 뜻.
오만한 태도도 너무 잘 어울렸다.
“남부 지역의 레드니트 평야는 일조량과 온도가 적절해서 커피가 항상 독특한 향을 품고 있죠. 귀하신 분이라 꺼내긴 했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레드니트 산이라고? 레몬 향이 나는 걸 봐서는 파라오 고지대 산인 줄 알았는데?”
“아, 그렇습니까? 이런. 제가 실수했나 봅니다. 집사에게 다시 가져오라고 해야겠습니다.”
“되었다. 커피나 즐기자고 온 건 아니니까.”
테오는 탁상에 놓인 시가를 들더니 자연스럽게 커터 칼로 위쪽을 자르고 입에 물면서 성냥에다 불을 붙였다.
치이익!
후우-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냐?」
셀퍼드도 살짝 놀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들.
테오는 전생을 떠올리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에리카한테는 술도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하더니. 이거 알면 꽤 난리 치겠는걸?」
“그래도 이건 맘에 드는군. 바오얀 사막지대에서 생산한 시가인가? 카카오 향이 늘 맘에 들었지.”
“역시 듣던 대로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나는 여기에 우프만 쪽에서 쿠바나 나무 열매 가루를 솔솔 뿌리는 것도 좋아해. 그럼 향이 아주 독특해지거든.”
“오, 그건 저도 몰랐던 방법인데. 한번 구매해서 즐겨봐야겠습니다.”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안토니우는 테오가 대가문의 영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치품과 취향이었으니.
“그럼 이제 본론이나 듣지. 사업 제안이라도 하려는 건가?”
“세 분은 현재 검사 수행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출입 기록이라도 들여다봤나?”
테오가 불쾌하다는 듯이 두 눈을 가늘게 좁히자, 안토니우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만, 저희 역시 확신을 기해야 했기 때문에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되었다. 하여간, 그래서?”
“최근에 베노타로 향하는 해류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해수종(海獸種)도 많이 출몰하고 있구요.”
해수종.
바다에서 살아가는 마물들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우리더러 그쪽의 호위 병력이 되어 달라?”
“설마 그런 무례한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란트 님(테오의 가명)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나, 저희 역시 호위 병력을 따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만약의 사태가 있을 수 있으니…….”
“동행하자?”
“예. 대신에 저희 측에서 1등석은 물론, 베노타에서의 필요하신 경비를 모두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테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거기서 뭘 할 줄이나 알고?”
“이래 봬도 사람 보는 안목은 꽤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베노타에 해가 되실 일은 하지 않으실 테죠.”
“하하. 말만으로도 기분 좋군. 그래도 꽤 오래 머물 수도 있는데?”
“스피놀라는 돈 빼면 시체라는 말도 있지요.”
“자신만만하군. 좋다. 그 외에 또 부탁하고 싶은 건? 그게 본 목적인 것 같은데?”
어려 보이는 것치고 정치적 술수나 대화에도 능하군.
안토니우의 마음속에서 테오에 대한 평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제가 부탁드릴 때 딱 한 번만 힘을 빌려주십시오.”
“그게 뭔지 알고?”
“부탁을 들어보시고 응하실지 마실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란트 님께도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절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해 드릴 수 있습니다.”
“흥. 일개 천박한 장사치의 이름 따위에 무슨 명예가 있다고.”
노골적인 멸시에도 안토니우의 웃는 낯은 흔들리지 않았다.
“좋다. 이렇게까지 대우해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출발은 언제지?”
* * *
베노타로 향하는 선박은 확실히 그 모양이 다른 선박과 달랐다.
선체의 좌우로 돌출된 부분이 상승기류를 탈 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호위 병력이 꽤 많아. 실력자도 더러 보이고. 해류가 많이 흔들린다더니 사정이 많이 여의지 않나?’
테오 일행은 안토니우 일행에 섞여 편하게 승선하면서도, 그들의 무장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몇몇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별도로 안토니우가 초빙한 인사들이었는지, 노골적으로 테오 일행을 견제할 정도였다.
아마 막바지에 참여해서는 자신들보다 더 우대받는 꼴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쟤네 기 좀 꺾어둘까? 안 그러면 닷새 내내 귀찮게 할 것 같은데.」
셀퍼드도 비슷하게 느꼈던 지 테오의 의견을 묻던 그때였다.
둥……!
둥……!
갑자기 미약하게나마 감지되는 파동.
테오의 낯이 살짝 굳으면서 시선이 배 바깥쪽으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 쪽.
무언가가 울려대고 있었다.
「왜 그래?」
「저쪽에 뭐라도 있어?」
셀퍼드와 아린도 테오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읽고 황급히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은 저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테오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금세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미약한 파동 속에 익숙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용력(龍力).
용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반려여…….』
치직, 치지직-
혼란스러운 노이즈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테오는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쿵쿵쿵쿵쿵!
미약한 파동과 심장의 박자가 얼추 맞아가는 순간, 주파수의 동조가 이뤄졌다.
지이이잉!
그가 가진 유물들도 모두 공명을 일으킨 가운데,
좀 더 선명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
‘역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들린다면…… 당근을 흔들어 보아라…….』
실없는 농담까지.
로드브로크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