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128)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28화(128/224)
드래곤 블러드 (3)
해운 3가의 로멜린 가문은 오래 전부터 스피놀라와 그리말의 정쟁에서 중립을 표방했다.
몇몇은 그런 로멜린의 행태를 두고 박쥐 같은 처사라고 비난했지만.
가주 비토리오는 항상 자신의 선택에 떳떳했다.
어느 한 곳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것.
그것이 가문과 부유군도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 여겼으므로.
하지만,
이제는 무거운 엉덩이를 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전부 밤새 일어난 일이었다니. 혼란이 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비토리오가 코끝에 걸린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면서 손에 쥔 서류를 꼼꼼하게 살폈다.
중앙 신전의 붕괴.
군도를 떠받치는 마력풍 시스템의 변화.
군도 주민들의 피해.
이번 피해를 수습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란트라는 외지인이 해결했다는 것이지? 큰 빚을 졌군.”
“테오 라그나르입니다.”
“아, 본명이 그렇다고 했었지. 라그나르라.”
비토리오는 돋보기안경을 아래로 내리면서 맞은편에 서 있던 손녀 마르티를 바라봤다.
젊은 시절, 선박 사고로 자식 내외를 잃어버린 그에게 마르티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자 분신이었다.
“승냥이를 물리쳤더니 범을 집안으로 들인 꼴이로군. 그들은 또 어떤 행패를 부릴지 짐작도 가질 않아. 더구나 크림힐트의 후계자라니.”
이미 군도 내 트로이반에 대한 여론은 최악인 상태.
몇몇은 전쟁도 불사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같은 대가문인 라그나르라고 다를까?
그는 내심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라그나르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
“지금이야 권력을 쥐기 위해 어느 정도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쥐고 나면? 그땐 어떤 진면목을 보일까?”
비토리오의 주름진 입가가 비틀렸다.
“나는 뱃사람으로서 아주 오랫동안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그러고 나서 느낀 점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사람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거다. 모두 자기 잇속을 채우기 바쁘지. 과연 이 소년이라고 다를까?”
툭, 툭-
비토리오는 검지로 서류를 두들기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조금 더 양보해서 네 말마따나 지금 당장은 이 소년을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라그나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신세. 결국 우리 부유군도에는 커다란 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단언이었다.
테오도 트로이반 일당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결국 부유군도를 집어삼킬 야욕을 보일 거라는 단언.
“그래도 테오 라그나르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거다.”
마르티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해수면으로 떨어지는 그 혼란 중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던 테오의 모습을.
혹시 노일의 반격이라도 있을까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던 열의를.
그 열기.
그 고동소리.
그 긴장감.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만나보시면.”
하지만 그걸 전부 말로 표현하기는 무리였기에,
“만나보시면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실 겁니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이번에는 비토리오가 한참 동안 마르티를 지그시 쳐다봤고,
“네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주장하는 건 신전 기사단에 들어갔을 때 이후로 또 처음 보는구나.”
결국 비토리오는 한발 물러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님.”
“곧 만나보면 알겠지. 이 로멜린과 베노타의 운명을 걸어볼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비토리오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 * *
테오는 긴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잊고 있던 전생.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 쳤지만 살아남을 수 없었던 시간들.
그 한 모퉁이에 처박아두고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 손님이시로군. 그래. 무엇이 궁금해서 이 늙은이를 찾으셨나?
길을 걷던 중이었다.
우연히 유랑 중이던 어느 집시 집단을 만났고, 싸게 점을 쳐준다는 말에 점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던졌던 질문이 무엇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대신에 들었던 대답은 이상하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런 것이 궁금하단 말이지? 신기한 친구로구먼. 잠시만 기다리게. 내 한번 점복을 굴려볼 테니. 여기서 카드 세 장을 뽑아보시게.
-이렇게 하면 되오?
-으음. 어디 보자.
-뭐라고 나오오?
사실 뽑은 카드의 앞면을 봤을 때부터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죽음의 수레바퀴.
수십 개의 검에 꽂힌 기사단장.
왕관을 내려놓는 여왕.
하나 같이 불길해 보이는 것들뿐이었으므로.
-아주 기이한 카드들만 뽑으셨구만. 잘 나오기도 힘든 것들인데 말이야. 낄낄. 그럼 이 카드부터 말씀드리지. 이 카드는 말일세.
첫 번째 죽음의 수레바퀴.
그 의미는…….
“테오, 테오!”
테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정신 들어?”
레이가 걱정 어린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테오는 그녀가 갑자기 왜 그러나 싶다가, 잠들기 전의 기억을 빠르게 떠올렸다.
‘아, 마력 탈진으로 움브라 등 위에서 바로 기절했었지.’
별다른 당부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니 놀랐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은 낯선 방이었다.
“응. 나 괜찮아. 레이, 그보다 여기가 어디야?”
“마르티 집. 우리 도와줬어. 테오 치료도 도와줬어.”
“치료?”
“기억이 안 나나 보네. 너 나흘은 족히 앓아누워 있었어, 인마. 사람 걱정이란 걱정은 다 끼치고, 어휴!”
때마침 셀퍼드와 아린이 다가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변 경계를 지키던 중에 테오의 기척이 느껴지자 부리나케 달려온 모양이었다.
셀퍼드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테오가 말없이 기절하고 난 뒤. 마르티가 다급히 그를 로멜린의 대저택으로 데려와서 치료를 해주었다고.
또, 용사가 다쳤다는 소문이 도니 부유군도의 명의란 명의는 죄다 몰려오고, 심마니란 심마니는 온갖 영약을 들고 찾아왔댄다.
부서진 신전 앞에는 테오의 건강을 기원하는 주민들로 북적대서 발을 들일 틈이 없었다고.
“그래도 다행히 너 진맥했던 의사들이 회복 속도가 너무 좋아서 위기는 어렵지 않게 넘겼다던데, 진짜였나 보네. 약효가 좋았나?”
테오는 말없이 웃었다.
용혈을 깨우친 덕분에 이제 웬만한 부상 따윈 어렵지 않게 자기회복이 가능하다고 어떻게 말할까.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어지럽지는 않고?”
아린의 질문에 테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몸이 무거운 것 말고는요.”
“다행이다. 때마침 본부에다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원조 요청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차였거든.”
“아뇨. 지금은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저! 저! 탐욕 덩어리 보소. 네가 다 깔아둔 판에 영감들이 숟가락 얹을까 봐 그러는 거지?”
“아니라고는 않겠습니다.”
테오는 셀퍼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말 나온 김에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꽤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혼란으로 그치면 다행이지. 개판이지, 아주.”
“뜸 들이지 말고 제대로 말씀 좀 해주세요.”
“아니, 그보다 너 환자라니까, 새꺄? 좀 쉬라고. 그새 일 생각이냐. 회복 다 하고 해도 되는 거잖아?”
“저는 이게 쉬는 겁니다.”
“……하여간 이래서 일벌레들은 이해를 못 하겠어요.”
셀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르티, 그 아가씨가 지금 엄청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경비대 본부 급습해서 압수 수색 시작하고, 그리말 대저택 탈탈 털면서 그들과 연관된 의원들이며 장사꾼들까지 죄다 체포하고서는…….”
현재 부유군도 자치령은 전국에 계엄령이 떨어진 상태.
모든 항구를 봉쇄해서 외부와의 연결을 전면 차단했기에 내지인은 절대 탈출이 불가능했다.
마르티는 신전 기사단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그런 도망자들을 모조리 잡아내고 있단다.
귀살대가 수장되고, 경비대가 명분을 잃으면서 남은 군사 집단이 신전 기사단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항을 조금이라도 하면 즉결 심판, 조금이라도 구린 구석이 있으면 무조건 감옥에 가두면서 행정적 공백이 생기기도 했지만.
남은 해운 3가의 로멜린 가문이 인력을 보충해주니 어떻게 보충은 되고 있다고.
“그리말은 거의 가문이 절단 났을 것 같고, 스피놀라 쪽은 어떻습니까?”
“거기도 다르진 않아. 애당초 그리말의 죄목이 ‘용사 암살 미수’였잖아? 이때다 싶어서 같이 엮어버리더라고.”
테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야 사실상 해운 3가에서 남은 곳은 이제 로멜린밖에 없지 않은가.
“감옥이 미어터지겠군요.”
“말도 마라. 그 때문에 선처 좀 해달라고 여기도 아주 시끄러워 죽겠……!”
셀퍼드의 설명이 도중에 끊어졌다.
우당탕탕.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용사님! 제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저희는 당신의 편이 아니었습니까!”
한 남자가 다급하게 테오의 침대 앞에 몸을 던지면서 간곡하게 호소했다.
뒤늦게 따라온 로멜린 가병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이놈이!”
“이곳은 용사님께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어서 나오지 못해!”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시오.”
가병들은 남자의 뒷덜미를 끌고 가려다 말고 도중에 멈췄다.
테오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블랙 스컬의 간부 중 하나.
“기어코 찾아왔구만. 어휴.”
셀퍼드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팽 되고 만 거군.’
테오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러려 했던 것처럼 마르티도 블랙 스컬과 손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로서는 한때 뒤로 호박씨 깔 준비를 하던 그들을 업고 갈 이유가 없었겠지.
당연히 테오를 도와 한 자리를 잡을 줄 알았던 블랙 스컬로서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테고.
그래서 이렇게 나흘 내내 테오의 얼굴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던 모양이었다.
테오는 가병들에게 나가봐도 좋다는 눈짓을 주었고, 가병들은 절도 있는 인사와 함께 물러났다.
쿵!
문이 닫혔다.
남자는 절절하던 조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안절부절 못했다.
차마 테오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지난 나흘 동안, 부유군도에서 테오의 입지는 이제 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용…… 사님. 저희는 귀살대에 맞서 마지막까지 용사님을 호종하려……!”
“살고 싶소?”
테오는 구구절절한 설명 따윈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남자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방법이 하나 있소.”
“방법이라 하시면……?”
“선배님.”
테오는 셀퍼드를 바라봤다.
셀퍼드는 피식 웃으면서 문가를 지켰다.
아린은 창가를, 레이는 바깥쪽을 살폈다.
테오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면서 방을 밀실로 바꾸었다.
꼴깍!
남자는 불안한 마음에 마른 침을 삼켰다.
병석에 앉아있어도.
테오의 두 눈은 용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개가 되어라.”
“……!”
“짖으라면 짖고, 흔들라면 흔드는 개.”
“…….”
“할 수 있겠나?”
테오가 남은 블랙 스컬에 바라는 것은 딱 하나였다.
절대적인 복종.
그의 손발이 되어 부유군도를 움직이는 데 한 몫 보태라는 의미였다.
여기서 남자가 할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고개를 조아리는 것뿐.
[‘스킬: 해츨링 싱크로’가 발동하여 상대의 심층 심리에 트라우마를 각인합니다.] [세뇌를 시도합니다.]덜덜덜…….
남자의 몸이 잘게 떨렸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희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세뇌가 성공했습니다.] [이제부터 상대는 당신에게 강한 공포심을 느껴 당신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할 것입니다.] [‘스킬: 해츨링 싱크로’의 새로운 사용법을 터득했습니다.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좋다.”
테오는 차갑게 웃었다.
사념을 읽는 해츨링 싱크로를 이용하면 반대로 특정 사념을 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테오에 대한 두려움으로 심리적 불안감이 심했던 덕분인지 성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세력 기반을 만드는 데 있어 새로운 열쇠를 얻게 된 기분이었다.
“그럼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마, 말씀만 하십시오!”
“남은 블랙 스컬 모두 신전 기사단에 가입해라.”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남자는 이유 따윈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개일 뿐.
‘이렇게 하면 기사단의 피해도 메울 수 있을 뿐더러, 마르티에게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겠지.’
여차하면 마르티를 견제할 수단도 될 수 있을 테고.
그녀가 크림힐트의 후계자인 자신을 배신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준비를 해둬서 나쁠 건 없었다.
“이것을 내가 줬다고 하고 기사단에 가져가라. 그럼 어렵지 않게 가입할 수 있을 테니.”
테오는 책자 하나를 남자 앞에 툭 하고 던졌다.
“이게 무엇입니까?”
“니벨룬.”
테오가 힘을 주어 말했다.
“크림힐트 님의 비전이다.”
“……!”
신전 기사단을 완전한 <크림힐트 기사단>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그들의 충성심을 완벽하게 사서 그만의 세력 기반이자 힘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부유군도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
부유군도가 해운연맹을 통해 은행, 선박, 무역, 중개 따위로 제국에 미치는 경제 영향력은 아주 컸으니.
금력(金力).
이를 통째로 손에 넣는 것이야말로.
테오가 그리는 최종 시나리오였다.
바로 그때.
“꽤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데. 이 늙은이도 거기에 숟가락 좀 올릴 수 있겠나?”
뒤쪽에서 한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