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158)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58화(158/224)
영묘의 묘지기 (3)
“응? 그 검은 못 보던 건데? 또 어디서 난 거요?”
테오가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웰링턴이었다.
테오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행색을 내려다보다가 순간 흠칫 놀랐다.
등에는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왼쪽 허리춤에는 월백검과 용살검이, 오른쪽 허리춤에는 영묘검이 걸린 상태.
갖고 있는 검만 네 자루였다.
‘확실히 수상쩍긴 하네.’
테오는 영묘검에 대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
“조금 전에 아린 님이 깨어나셨다고 해서 셀퍼드 님과 레이 모두 그쪽으로 갔소.”
“아린 선배가요?”
테오는 다급하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어디 다친 사람 처음 봐? 왜 이렇게 다들 구경 오는 거야?
아린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침대맡에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셀퍼드가 진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몸은?”
“멀쩡해.”
「레알 참 트루?」
「……그딴 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
「우리 고아원 잼민이들이 쓰던데?」
「늙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 쓰지 마라. 어린 동생 생각나서 자꾸 놀라잖아.」
「하여간 정말 몸 괜찮은 거 맞냐고.」
아린은 셀퍼드가 왜 갑자기 전음으로 거듭 몸 상태를 확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똑같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진짜야.」
「광기가 발작할 정도로 날뛰진 않았으니까 걱정 마.」
셀퍼드는 더 이상 깊게 캐묻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룡회의 후예.
반란자의 씨앗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그들로서는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해야만 한다.
다행히 아린의 눈자위에도 이렇다 할 광기가 풍기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셀퍼드가 안도의 찬 한숨을 내쉬는 동안, 등룡을 포함해서 테오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도 방문했다가 떠났다.
이튿날에는 카산드라까지 무탈하게 일어났다.
다만, 마도여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지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혹시 진단하지 못한 다른 후유증이 있을지 몰라 며칠을 더 장원에서 머물렀고,
일행은 꼬박 열흘 가량을 더 쉰 뒤에야 다시 여로에 올랐다.
기존 테오 일행에 카산드라, 등룡과 웰링턴까지 이제는 제법 머릿수가 많았다.
“우선 우리는 드라빈 시를 거쳐서 백탑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네.”
뿌우우우!
거친 증기 엔진 소리와 함께 마도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1등실에 앉아 등룡은 지도를 활짝 펼친 채로 목적지를 가르쳐주었다.
백탑.
익숙한 이름이었다.
라그나르와 트로이반의 경계로, 현재 북방 전쟁에서 한창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곳.
하지만 원래는 고대 유적지로 더 유명하던 곳이었다.
“현재 백탑은 양측 다 무리한 소모전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일세. 고작 5킬로미터도 안 되는 영역을 확보하겠답시고 백 명이 넘는 인원이 희생되기도 하고…… 아주 지옥이 따로 없지.”
레이는 어린 카산드라가 괜히 겁에 질리지 않도록 귀마개로 살포시 귀를 가려주었다.
셀퍼드가 물었다.
“현재 백탑에 뭉친 부대도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만.”
“백갑용기대나 흑색철기대는 물론, 가주의 명에 따라 적검기사단이 전면에 배치되고 청검근위단도 조만간에 나설 예정이라네.”
“……그렇게나요?”
4대 부대 중 백갑용기대와 흑색철기대가 타격대로서 라그나르의 위엄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면,
적검기사단과 청검근위단은 라그나르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들이었다.
적검기사단은 각 부대에서 최정예들로만 엄선한 엘리트로서 윈터러를 책임지고,
청검근위단은 항상 가주의 뒤를 따르고 가주의 명령만 듣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즉, 그들까지 나섰다는 건 정말 라그나르가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트로이반이 동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다지만, 그렇게까지 저희가 고전을 면치 못할 존재라고 여기기는…….”
“사실 그럴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왜?”
“문제는 트로이반과 함께 하고 있는 자들일세.”
서늘하게 가라앉는 등룡의 눈빛.
셀퍼드는 순간 입술을 꾹 다물고 말았다.
장원을 탈출할 때 마주했던 세력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방랑기사 연합이나 일검회 같은 잔챙이들 따위야 그렇다 치세. 광신도 놈들도 원래 근본이 없는 종자들이니 붙어먹을 수 있지. 하지만 극동부의 마술쟁이들은? 남부 밀림 지대의 짐승 새끼들은 어떻지?”
‘마술쟁이’는 마탑을, ‘짐승’은 수인종족전선을 비하하는 멸칭이었다.
모두 라그나르나 트로이반처럼 황제 선출권을 갖고 있는 선제후들.
“서부 초원에서 양젖이나 짜던 놈들도, 우리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고원 지대에서 근친상간이나 저질렀을 식인종 새끼들도, 대평원에서 흙이나 파먹던 놈들도 전부! 호시탐탐 우리 라그나르가 거꾸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서부 초원 지대의 비단길형제단, 남서부 고원지대의 원주민 보호기구, 극남부 대평원을 대를 석권하고 있는 신사조합까지.
셀퍼드는 물론, 아린이나 레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곳들이 라그나르를 적대하고 있다니.
이건 숫제 세계 전체를 적으로 돌린 꼴이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는 수순이긴 했지.’
여기서 평온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듣는 건 오로지 테오 뿐.
『개판이로군?』
‘라그나르가 도처에 뿌려둔 씨앗이라고 보셔도 될 겁니다.’
테오는 로드브로크의 핀잔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라그나르가 저지른 업보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요. 그 불만이 이번 일을 계기로 폭발한 거죠.’
라그나르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분쟁이 생기면?
그냥 힘으로 짓밟아버렸다.
갈등이 벌어지면?
그 역시 무력으로 꺾어버렸다.
당연히 그 뒤에는 반발이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이 역시 라그나르는 다시는 고개를 치켜들 수 없도록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다른 세력들은 라그나르를 고깝게 보면서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고, 불만과 원한은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 햇수가 무려 천 년이었다. 천 년.
그 정도면 수많은 편견들이 겹겹이 쌓여 진실이 되기 마련.
이제 세계에서 ‘북방’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마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트로이반인지 뭔지 하는 곳이 제대로 다른 곳들의 불만을 긁은 셈이로군.』
‘네. 맞습니다. 지금이야 트로이반을 원조하는 정도에서 끝내고 있는 수준이지만…….’
『여기서 더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아예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할 테고?』
‘그러니 윈터러에서도 그런 언감생심도 꾸지 못하게 트로이반을 아예 압도적으로 짓밟아버리자고 결의한 겁니다.’
『라그나르다운 발상이로군. 아니, 생태계의 법칙에 딱 충실하다고 봐야 하나?』
맹수 집단에서 우두머리가 어느 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맹수들이 불쌍하다고 동정할까?
아니다. 오히려 숨통을 끊을 기회라고 본다.
그러니 우두머리는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도록 압도적인 힘을 간간히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이참에 우리는 불온의 싹을 죄다 짓밟아버릴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라그나르가 그동안 왜 라그나르인지를 증명했던 길일지니.”
등룡이 평상시에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도 그 역시 라그나르.
감히 자신들에게 이빨을 들이댄 자들을 용서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
“…….”
“…….”
셀퍼드와 아린, 그리고 레이는 숨 막히는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웰링턴도 이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몸이 잘게 떨렸다.
전화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화는,
백탑에 있는 동안 더 크게 활활 불탈 테지.
“백탑으로 각지에 흩어졌던 모든 전력이 모이고 있다. 그곳이 바로.”
등룡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트로이반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라그나르의 패업이 완성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테오는 차마 속에 담긴 말을 마저 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등룡. 트로이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 * *
『인간들이 인지하는 시간은 절대적이고 무한하게 앞으로만 내달리는 직선의 꼴을 하고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時制, 시간적 문법)와 시상(時相, 시간적 생각)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오랫동안 진리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북방의 영역은 아주 넓고, 백탑까지는 마도열차를 타고도 족히 며칠을 꼬박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히 허공에 붕 뜰 수밖에 없는 시간.
테오는 그 시간을 대부분 시간 마법의 기초 이론을 배우는 데 사용했다.
진도는 빠른 편이었다.
마도여제가 남겨준 마법 체계가 워낙에 탄탄한 데다가, 로드브로크라는 걸출한 스승까지 있었으니.
학습하는데 검술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집중하기도 좋았다.
『또 참오에 든 것이냐? 참 시도 때도 없구나.』
로드브로크도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몇 번 가르치다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면 그냥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테오가 생각보다 너무 잘 따라오니 오히려 그녀가 놀랄 정도였다.
이놈이 정말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라그나르가 맞나 이따금 의심도 했으니.
하지만 로드브로크가 제일 크게 놀란 건, 테오가 아주 쉽게 황홀경에 빠진다는 점이었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합쳐지고, 이성과 본능이 뒤섞이면서 자타(自他)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지.
황홀경에 빠진 동안에는 보통 무의식 곳곳에 편재되어있던 지식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뇌의 신경망도 강화되면서 새로운 창의성이 마구 튀어나오게 된다.
이때 맛보게 되는 감각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무한한 힘을 손에 쥔 느낌이니.
‘분명 황홀은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면서 계속 상승의 경지로 이끌어. 하지만 그게 너무 잦아지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은데.’
창의성은 새롭게 쌓인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탄생한다.
하지만 황홀이 너무 많이 반복되면 지식이 쌓일 공간이 없고, 따라서 빚어지는 창의성에도 한계가 생긴다.
문제는 황홀이 주는 희열과 여운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곧 황홀의 반복은 중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탄생하는 것이 바로 광기였다.
그런데 테오가 지금 딛고 있는 영역이 바로 딱 그 광기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턱이었다.
‘당장이야 마법과 검술이 뒤섞이는 중이니 괜찮지만, 한동안은 자제시켜야겠어.’
로드브로크는 오랜만에 딱 마음에 든 반려자를 이전의 선택자처럼 허망하게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번 역은 드라빈 시, 드라빈 시입니다. 하차하실 분들은…….
테오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마도열차가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이었다.
백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다.
『반려여.』
‘예.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후후. 이걸로 강의료는 충분히 받겠군.』
하지만 환승 전에 테오는 들를 장소가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쪽지를 가만히 매만졌다.
역대 황제의 비밀금고 중 하나가 바로 이 도시에 있었다.
* * *
“잠깐 도시 구경을 하고 싶다고?”
“예. 다행히 백탑 행 열차가 오기까지는 5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빠르게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둥룡의 질문에 테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답만 보면 처음으로 방문한 대도시에 정신이 팔린 젊은 촌놈이었지만.
피식!
등룡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었다.
네놈이 또 무슨 꿍꿍이를 저지르려고 하는지를 모르겠냐는 듯.
테오는 찔끔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었다.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세상 구경도 식견을 쌓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지. 하지만 혼자서 돌아다니기엔 위험하니 레이, 웰링턴과 같이 움직이게.”
테오는 내심 혼자서 움직이고 싶었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냉큼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좋네. 뭐, 나 역시 이곳에 마침 볼일이 있던 참이니 그럼 딱 4시간 뒤에 여기 승강장에서 다시 보도록 하세나.”
등룡이 할 일?
테오는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곧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승강장을 빠져나왔다.
웰링턴과 레이도 뒤에 대롱대롱 매단 채로.
“으으! 계속 전투에만 시달리다가 이렇게 간만에 사람 사는 곳에 오니 기분이 탁 트이는구려.”
어쩐지 웰링턴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등룡 님이 그동안 험지로만 계속 굴리셨나 봅니다?”
“……험험! 거 쓸데없는 말로 평화로운 사제 관계에 불화를 조성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소.”
“맞네.”
“노코멘트 하겠소.”
웰링턴은 기분 좋게 양팔을 활짝 펼쳤다.
“하여간 해도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도 맑고! 돌아다니기에 아주 좋은 날씨요! 그래서 어디 갈 것이오? 내 알기로 드라빈 시는 쇼핑 도시로 아주 유명하다고 들었소만.”
쇼핑이라는 말에 레이가 가만히 귀를 쫑긋 세웠다.
때마침 그녀도 기분 전환 겸 예쁜 새 옷을 몇 벌 사고 싶던 차였다.
“쇼핑도 하긴 할 건데, 그 전에 우선 들를 곳이 있습니다.”
“아하,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확실히 거긴 가보긴 가봐야지.”
“맞아 맞아.”
“……?”
의미를 알 수 없는 웰링턴의 말에 레이가 가만히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는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황실 비밀창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언급한 적도 없을 텐데……?
그런데 레이도 뭔가를 아는 눈치라서 뭐라고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뻥긋거릴 뿐.
웰링턴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엥? 여기에 열린 <하이 테오도어> 숍에 방문하려던 것 아니었소?”
“……!?”
어머니의 가게가 여기에?
테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