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164)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164화(164/224)
마탑의 후계자 (4)
클레베는 잠시간 대답 없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여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네 앞에서는 까닥 말실수라도 했다간 큰일 나겠구나.”
클레베는 테오와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깊은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테오는 늪이었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지난 며칠 동안 나자리우의 뒤를 쫓았던 것보다 테오와 이렇게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으니.
“대답은 전부 노코멘트하겠어. 아무리 같은 라그나르라고 해도, 아직은 드러낼 수 없는 기밀이니까.”
“저는 긍정이나 부정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추측을 들어주시길 바랄 뿐이죠. 혹시 압니까? 클레베 님께도 도움이 될지.”
“…….”
“그러니 더 들어주시겠습니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테오는 그것을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한 추측은 두 가지였습니다.”
테오는 검지와 중지를 꼽았다가, 먼저 중지를 접으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페이크. 마탑의 소탑주는 어디까지나 진짜 거래를 숨기기 위해 위장용으로 내세운 연기인 겁니다. 하지만 이건 조금 이상합니다. 소탑주가 가진 마탑 내에서 가진 입지가 불안한 것도 아닌데 위험하게 그런 일을 자처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나자리우가 겉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마탑에서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테오는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그가 전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승승장구.
그 단어는 상아왕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 추측은 기각. 두 번째로 할 수 있는 추측은 의도적으로 라그나르에 이번 거래를 슬쩍 알리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테오는 검지를 접던 중에 클레베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힐다 님과 마탑의 거래가 사실 비밀리에 이뤄질 것이었고, 만약 마탑이 판돈을 올리기 위해 흑설에 거래를 슬쩍 노출할 생각이었다면…… 덧붙여서 라그나르의 내분을 유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만.”
아무리 현재 라그나르의 주도권을 카일이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힐다를 추종하는 무리도 적잖게 남아 있었다.
등룡이 바로 대표적인 예였으니.
그래서 힐다도 그동안 은둔한 채로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괜히 이곳저곳에 모습을 비췄다가 카일에게 경각심만 심어줘서야 내분밖에 일어나지 않을 테니.
그런데 수십 년 만에 힐다가 비밀리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트로이반과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
그것도 라그나르와 관계가 좋지 않은 마탑을 대상으로.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당연히 의심을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흑설은 가장 대표적인 가주님의 친위 부대야. 당연히 이번 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지.’
클레베가 나자리우에게 따라붙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힐다와 마탑의 정확한 거래를 알아내기 위해서.
만약 그 거래가 위험한 것이라면 흑룡은 정식으로 힐다를 고발할 것이다.
‘마탑은 그런 라그나르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용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거고.’
거래 내용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마탑은 거래도 이루고 라그나르도 흔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공적은 모두 이번 사안의 총책임자였던 나자리우가 갖게 되겠지.
차기 탑주로서의 입지를 굳건하게 갖추는 것이다.
“역시나 대답은 노코멘트 하겠어.”
클레베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여기까지 추론해낸 테오의 모습에서 더 놀라지도 않았다.
‘두 번째 추측이 맞는 거군.’
카일과 힐다의 대립.
전생에서는 알기 힘들었던 음지의 갈등이다.
테오는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판국에 어떤 변화를 줄지 계산기를 두들겼다.
“마탑의 소탑주 신병은 우리에게 넘겨준다고 하니 그대로 데려가지. 단, 이번에 우리 일을 망친 건 정식적으로 흑설 이름으로 백갑용기대에 항의가 갈 테니 알아두고.”
“제대로 항변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준비해두라는 거군요. 충고 감사합니다.”
“……간다.”
클레베는 쓰게 웃으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일을 망친 주범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아직 나와는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네만?」
테오와 클레베는 갑자기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허공에서 수증기가 뭉쳐 소용돌이를 그려낸다 싶더니, 곧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등룡이 깊게 착 가라앉은 눈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소탑주의 신병은 등룡관에서 가져가도록 하겠다.”
“……소탑주의 신병을 확보한 것은 테오 라그나르입니다. 그리고 테오 라그나르가 인도한 곳은 저희 흑설 측입니다만.”
클레베는 차마 9룡이나 되는 사람에게 아무런 증거도 없이 혐의를 들먹일 수는 없으니 테오 핑계를 댔다.
하지만 등룡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테오 라그나르는 현재 내 지휘 관할 하에 있네만? 당연히 명령권도 테오 라그나르가 아니라, 본인에게 있지. 소탑주 나자리우 몬테의 신병은 넘겨줄 수 없네.”
“테오 라그나르는 독단적인 결정권이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럴 권한이 곧 주어질 예정이지. 아직 그의 계급이 실전검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일이 꼬여버렸다.
클레베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부장님께서 이번 사안에 대해 쉽게 넘어가지 않으실 겁니다.”
“자네, 아무래도 한 가지 착각하고 있나 보군.”
저벅!
등룡이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것이 설마 내가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보이나?”
“……!”
고오오오-
등룡을 중심으로 거센 기파가 소용돌이쳤다.
살기가 클레베의 폐부를 짓눌렀다.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건 명령일세. 내 명령 앞에서는 아무리 가주님이라 하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만.”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클레베의 몸이 덜덜 떨렸다.
말투는 공손해도 그 속에는 포악한 맹수의 분노가 꾹꾹 담겨 있었다.
“아무리 흑룡이 날고 긴다고 하여도, 내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한 후배일 뿐이야. 알겠나?”
덜덜덜…….
클레베는 어떻게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알겠나?”
클레베의 머릿속이 창백해지면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
테오가 도중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만큼 말씀하셨으면 클레베 님도 알아들으셨을 겁니다. 그만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클레베를 압박하던 살기가 도중에 흩어졌다.
파장을 역으로 맞춰서 벌인 이적.
기가 막힌 마력 제어술이었다.
등룡은 바닥에 주저앉아 속을 게워내는 클레베의 등을 두들겨주는 테오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제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표본이었고.
“그럼 합의된 것으로 하고, 신병은 이쪽에서 데려가도록 하지.”
등룡은 뒷짐을 쥐며 몸을 반대로 돌려 사라졌다.
“괜찮으십니까?”
클레베는 테오가 따스한 마력을 몇 번이고 불어 넣어주고 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제기랄…….”
그녀가 할 줄 아는 대답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9룡의 벽은.
용문검사를 바라보는 그녀에게도 너무 까마득하게 높았다.
* * *
치이익!
덜커덩, 덜커덩-
백탑 유적지로 향하는 마도열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소탑주는 등룡 님이 차지하셨군.’
테오는 등룡의 옆에 나란히 불편하게 앉은 나자리우와 지리마를 보면서 쓰게 웃었다.
물론, 클레베와 흑설이 저들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정체를 숨기고 열차 곳곳에 숨어있겠지. 몇몇은 마차로 쫒아오고 있을 거고.’
이것은 카일과 힐다의 대립, 혹은 흑룡과 등룡의 정쟁이라고 보아야 했다.
아마 앞으로도 음지에서 벌어질 두 사람의 충돌은 적잖을 터였다.
테오는 그냥 신경 끄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보면 테오가 대놓고 불을 지른 격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벌어질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는 흑룡이나 등룡과 전부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굳이 끼어 들어서 눈총을 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넌 불안하지도 않냐?”
“이젠 저희 손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건 그렇지만……. 후우! 하여간 너랑 있으면 도저히 숨을 돌릴 틈이 없구나.”
“나도 동감이야.”
“라그나르라서 그런가.”
“그럴지도?”
“역시 계승권자는 다르구나.”
“……왜 두 분의 이야기가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빠지시는 겁니까?”
셀퍼드와 아린의 대화를 보고 있던 테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에 손에 들고 있던 책자로 시선을 옮겼다.
“<광자의 파동성을 활용한 역장 속성 변환계에 대한 탐색>……? 그런 건 빛의 속성을 다루는 원자 마법사들도 접하기 어려운 책자일 텐데. 마법에 관심이 많아 보이십니다?”
하지만 그런 테오에게 이번에 관심을 보인 건 나자리우였다.
그는 양손이 마력제어 수갑으로 단단히 결박되어 있어도,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잊지 않았다.
마치 등룡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테오 라그나르…… 저 자가 파르켈소스에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어떻게든 알아내야 해.’
분명 겉보기엔 파라켈소스는 이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 특유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파라켈소스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파라켈소스가 아니라고.
‘실제로 파라켈소스는 R랭크의 데이터가 무엇인지도 탐색하지 못했었어. 분명히 데이터를 삼켰을 텐데도.’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다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앞으로 파라켈소스 연구는 함부로 진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테오는 힐끔 나자리우를 보기만 할 뿐, 관심도 주지 않았다.
나자리우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그동안 자신에게 저렇게 쌀쌀맞게 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필요하다면 기초 마법에 대해서는 본인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하오. 목적지까지 가려면 시간이 아직 많으니 언제든지 물어보시오. 하하하! 말 상대가 없으면 너무 무료한 시간이라 말이오.”
하지만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은 채로 호탕한 척 웃었다.
‘애처롭네요.’
『애처롭군.』
물론, 테오와 로드브로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짓이었지만.
『후후후! 안달복달 하는 모습이 꼭 똥 마려운 강아지 같아.』
‘정말이지 악취미이십니다.’
『내가 누구의 반려라고 생각하나? 원래 짝은 서로 닮는 법이지.』
테오는 로드브로크와 말씨름을 해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다는 사실을 몸소 잘 깨닫고 있었다.
‘정말 저기다 무슨 장난을 치신 겁니까?’
『비밀이래도.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 비밀을 풀고 나면 내게 엎드려서 절을 하게 될 것이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의욕이 돋네요.’
『오, 맞춰보려고?』
‘분명히 시간 마법과 관련된 것일 테죠?’
로드브로크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테오는 그녀가 분명히 웃고 있을 거란 느낌을 받았다.
‘일단 해보죠.’
테오는 책을 보는 척 하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파라켈소스를 해킹하면서 얻은 게 많았다.
그 깨달음을 확인해볼 차례였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고,
화아아-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마력과 심장의 마력이 뒤섞이면서 단숨에 뇌문까지 다다랐다.
두 눈에 [영성]이 깃든 순간,
파아아아……!
테오는 공기가 갑갑해진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기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자리우가 여전히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느려서 정지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빠르게 지나쳐야 할 바깥 정경도 거의 정지해서 풀잎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기의 냄새, 열차의 진동, 마력향,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전부 세세하게 들렸다.
마치 테오, 그 자신만이 이 세계에서 유리된 것처럼 외부 세계가 모든 게 느려졌다.
『사고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져서 외부 세계가 상대적으로 느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항상 상대적이기 마련이니.』
‘신기하네요.’
『신기하다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세계는 우리 용들이 살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용들이 모두 생명체에 어울리지 않게 비정상적으로 긴 수명을 누리면서도, 각자 사는 시간이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지. 결국 멸종을 맞은 이유이기도 하고.』
로드브로크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한번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테오는 눈동자를 아래로 돌렸다.
째깍째깍째깍-
그의 발밑으로 크로노그래프가 잔잔하게 퍼지면서 시침과 분침, 초침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네게 <설정>된 시간이다. 그럼 이제 이걸 활용해봐야겠지?』
한껏 느려진 세계에서 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전투 시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퀘스트가 보상으로 준 ■■회귀 능력이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을 터.
테오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우선 팔을 움직여 보려 했다.
그 순간,
치이이익!
팔이 시뻘겋게 타오르면서 떨어져나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크으윽!’
테오의 두 눈에 핏대가 잔뜩 섰다.
『하하하하! 미련하긴! 너의 의식이 빠르다고 해서 설마 육체까지 빠를까?』
‘어떻게…… 하…… 면 좋겠습니…… 까?’
의식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신경계의 한계.
공기가 주는 마찰열이며 근육이 받는 중압감은 테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이냐. 될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엔 없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매화궁주가 테오에게 매화만발을 전수할 때도 이렇게 전혀 다른 시간대를 빌렸었으니.
당시에 실제로 흐른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그리고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것이 바로 시간 마법의 요체인 것 같았다.
‘그 뒤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대 설정도 가능하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보자.’
테오는 자신의 크로노그래프에 다시 신경을 집중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그렇게 훈련에 집중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도열차는 어느새 목적지인 백탑 유적지까지 다다랐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