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26)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26화(26/224)
월백검 (1)
흑룡.
혹은 흑제(黑帝).
테오가 모를 수 없는 별호였다.
무려 전(前) 직장 상사의 별호였으니까.
‘하늘에는 용의 화신, 땅에는 흑제…… 그들 두 사람이 있어서 라그나르의 시대를 막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지.’
흑룡은 9룡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심지어 라그나르의 간부들은 물론, 흑룡을 수장으로 둔 정보부 ‘흑설(黑雪)’까지도.
그동안 카일이 절대적으로 은폐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흑룡의 명성이 널리 퍼진 데에는 그가 출몰한 지역에 항상 그를 상징하는 특별한 흔적이 남아서였다.
테오는 이런 흑룡을 딱 한 번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노을이 붉게 깔린 하늘.
강가에 앉아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던 한 노인.
그 모습만 두고 본다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울 테지만.
-으음……! 너, ‘이것’이 보이는 게로구나?
테오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지 못했다.
노인 뒤로 수백 구에 달하는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시체들은 하나 같이 온전한 모습을 한 것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물어뜯긴 것처럼 손발이 흩어져 있거나, 얼굴이 잔뜩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괴물이 앉아 피에 젖은 발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독수리의 얼굴과 날개, 사자의 상반신, 그리고 용의 하반신과 비늘 덮인 꼬리를 지닌 괴물.
-이래서는 난감한데. 어쩐다?
말투와 다르게 노인은 긴 백발에 어울리지 않는 까만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테오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 있었다.
피 냄새가 풀풀 날리던 시체 더미와 이상한 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 * *
테오는 목격자를 절대 남기지 않는다던 흑룡이 당시에 어째서 자신을 살려뒀는지 몰랐다.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었고, 갑자기 급한 용무가 생겨서 떠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새까만 가면과 그 뒤에 서 있던 괴물만큼은 잊을 수 없었으니.
흑룡이 부리던 괴물에 대한 단서는 나중에야 얻을 수 있었다.
-너 그 소문 들었냐? 흑룡께서 왜 석 달마다 꼬박꼬박 자리 비우시는지?
-아니. 못 들었어. 그보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는 게 어때?
-하여간 정 없기는. 들어봐. 흑룡이 쓰시는 검 있잖아. 그게 실은 요괴가 담긴 검이어서 일정 주기마다 사람의 피를 엄청 먹여야 한다던데? 안 그러면 주인이 먹힌다는 말이 있더라고.
-……그 말, 어디서 들었어?
-어디서 듣긴. 보안요원들은 다들 알음알음 알고 있더만.
테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거기서 말하는 ‘요검’이 사실은 자신이 봤던 괴물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절대 입 밖으로 벙긋거리지 않았다.
만약 흑룡이 뒤늦게 자신을 떠올리고 또 변덕을 보이면 안 되니까.
최대한 쥐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흑룡이 누군가의 입방아에 올라가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실제로 테오에게 요검을 말해줬던 동료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으니.
테오도 결국 흑설을 도망치듯이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여기 있다고?’
덜그럭, 덜그럭!
나무함은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갑갑하다는 듯이 연거푸 들썩거렸다.
테오는 그때 봤던 괴물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등골이 서늘했다.
‘흑룡이 월백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게 대략 4년 뒤부터이긴 했지. 그럼 이때는 월백검이 흑룡이 아니라 키르손의 손에 있었던 걸까?’
세실리아가 모함으로 처형되었던 것이 3년 뒤였으니…… 그것과도 어떤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아하니 이 검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로군.」
테오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잠시 과거 회상에 빠져 감정적 동요를 숨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어. 네가 유물의 주인이라면 분명히 월백검의 선택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한번 뽑아볼 테냐?」
테오의 시선이 키르손에게 향했다.
곰방대를 꽉 문 키르손의 입가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완전히 뽑는 데 성공한다면 말한 대로 그것을 너에게 주마.」
‘……!’
무려 흑룡이 아끼던 애검을 주겠다고?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이런 보검을 가지는 것은 모든 검사들의 로망이었으니.
「어차피 내 손에 들어온 지 200년도 넘었지만 여태 뽑지 못했거든. 그럼 결국 내 물건은 아니란 뜻이지. 그러니 해보아라. 단,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 못 진다는 건 알아두고.」
바로 그때였다.
띠링!
+
[튜토리얼 퀘스트 #13]푸른색 빛을 내뿜는 해당 무기의 선택을 받으십시오.
· 난이도: C+
· 보상: 월백검 소유권
· 실패시: ■■
+
테오 앞으로 떠오른 퀘스트 창.
‘던전 클리어보다 난이도가 한 단계 더 높아. 그럼 분명히 쉽지는 않다는 뜻인데.’
하지만 테오는 이제 잘 알고 있었다.
퀘스트가 절대 불가능한 임무는 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힘들면 힘들수록 주는 보상도 아주 컸다.
무엇보다.
월백검을 가질 수 있다는 욕심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레서 드레이크를 상대할 때도 느껴보지 않았었나. 보검의 중요성을.
아무리 험하게 사용해도 절대 날이 상하거나 부러지지 않는 그런 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무엇보다…… 흑룡의 손에 들어가기 전인 지금이라면, 분명히 품고 있는 요기도 아주 약할 거야.’
키르손도 말했었다.
이 요검을 손에 넣은 지 200년도 넘게 흘렀다고.
그럼 그 세월 동안 꼬박 이 나무함에 처박혀 있었다는 뜻.
아무리 대단한 요검이라고 해도 기력이 많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짐승을 내가 거둬서 부릴 수 있다면……!’
그런다면.
지나가는 자리마다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파괴한다고 해서 ‘파멸제(破滅帝)’라고도 불리던 흑룡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테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내보자는 의지만 강하게 남을 뿐.
테오는 [푸른 열쇠]를 왼손 소맷자락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그것은……?”
키르손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반면에 세실리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드님, 그 검은 뭘 모르는 이 어미가 보기에도 너무 불길해 보입니다. 굳이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설마 할머님께서 외손자에게 잘못될 일을 시키시겠어요? 위험하다 싶으면 나올 테니 걱정 마세요.”
테오는 세실리아를 달래고, 키르손을 바라봤다.
키르손은 ‘할머니’라는 단어에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만약 테오가 다친다면 세실리아가 말한 대로 ‘망할 늙은이’가 된다는 속뜻을 눈치챈 것이다.
‘겉보기엔 예의 바르게 보이는데 속은 완전히 능구렁이가 따로 없구나. 세실리아에게 어쩌다 이런 아이가 나왔을꼬?’
“그것이 유물의 봉인을 푸는 열쇠더냐?”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끝까지 제대로 된 대답 한 번 주지 않는군. 약속은 걱정 마라. 내 종족이 무엇인지 잊은 게냐?”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르손의 종족은 엘프. 그들은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할 경우에 정령의 버림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진실의 종족이라 불리기도 했다.
찰칵!
테오는 나무함을 꽁꽁 묶고 있던 자물쇠에다 열쇠를 꽂았다.
동백궁의 창고방을 열었을 때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열쇠를 옆으로 돌린 순간,
철컹, 철컹!
쇠사슬이 터지듯이 풀리면서 뚜껑이 벌컥 열렸다.
고오오오-
동시에 실내를 엄습하는 막강한 요기(妖氣, 요사스러운 기운)의 폭풍.
테오의 긴 머리카락이 요란하게 흔들릴 정도로 거셌다.
“이것이……!”
키르손은 이제 곰방대를 입에 무는 것도 잊어버리고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나무함 안에 가지런히 놓인 검 한 자루.
저것을 보기 위해서 한평생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지만 야속하게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던 녀석이 오늘 처음 만난 외손자 앞에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진짜 월백검이야.’
테오는 마른 침을 삼켰다.
전생에 봤던 것과 똑같은 모습.
손을 뻗어 검집을 매만졌다.
테오는 요기가 어떻게 달려들지 몰라 잔뜩 긴장하는데.
“응……?”
“무, 뭐지?”
월백검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녀석이 내뿜던 요기가 천천히 사그라지기까지 했다.
테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나무함에서 아예 월백검을 꺼내 검집을 분리했다.
스르릉-
그러자 마치 어두운 밤하늘처럼 새카만 색깔의 검신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은 이상 무.
오히려 거울처럼 투명한 검신에 테오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아무래도 전설이 너무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던 모양이군. 아니면 네가 정말 유물의 선택을 받은 자라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키르손은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주인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구나. 괜한 놈팡이에게 가는 것보다야 세실리아의 아들이라면…… 뭐.”
괜찮다고 말해도 키르손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미련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월백검에 시선이 고정된 테오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혹시, 만약에 말이다. 그 검이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개화식 전까지 내가 좀 살펴봐도 될……!”
“아뇨.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린 게 아닙니다.”
“뭐라?”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풀릴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테오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체 더미 위에 앉아 있던 괴물.
그 눈빛은 분명히 먹이를 끝없이 갈구하는 허기진 야수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흉포하던 녀석이 이렇게 얌전하게 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바로 그 순간, 테오는 피에 젖은 발을 핥아대던 괴물의 모습을 떠올렸다.
녀석은 허기와 갈증을 피로 달래는 것처럼 보였었다.
‘피.’
아무래도 그게 ‘진짜’ 열쇠인 모양이었다.
테오는 재빨리 월백검의 날을 왼손바닥에다 살짝 갖다 댔다.
“너 무슨 짓을……!”
키르손이 화들짝 놀라 말리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상처가 나면서 붉은 피가 검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날이 너무 날카로웠다.
파아아아-
여태 잠잠하던 검신이 격하게 떨리면서 검면 위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룬 문자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글자 위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푸른빛.
마치 달빛 같았다.
그 순간.
화아아악!
세상이 반전되었다.
* * *
어느 이름 모를 짐승은 기쁜 마음으로 산자락을 오르고 있었다.
‘400년 만인가? 드디어 밖으로 나오게 되었구나!’
오랜만에 만나게 된 ‘자격자’인 만큼 아주 잘 대우해줄 생각이었다.
‘흐흐흐! 네가 마음 속 깊이 갖고 있는 절망과 미련. 내가 어떻게든 이뤄주마.’
사람은 누구나 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소망 하나쯤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통 그런 소망은 환경 때문에, 혹은 신분 때문에, 혹은 나이와 성별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짐승은 바로 그런 점들을 살살 긁으면서 힘을 주겠노라고 악마처럼 속삭이곤 했다.
그럼 십중팔구 사람은 누구나 넘어오게 되어 있었으니까.
힘만 있으면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게 바로 인간이었다.
짐승은 테오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닥!
짐승이 지면을 거세게 박차면서 어느 건물의 지붕 위에 착지했다.
시선을 내린 곳.
한 남자가 사슬에 칭칭 감긴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소중한 가족이나 동료라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슈슈슉-
바로 그때, 남자의 머리 위로 화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절망이로구나.
짐승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모습에 콧방귀를 꼈다.
제대로 저항하지도 않고 당하기만 하는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보아하니 무슨 일 하나 똑바로 해내지 못하는 머저리인 게 분명했다.
……그런 놈이 대체 어떻게 ‘자격자’가 되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짐승은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그런데 저놈, 나이가 열다섯 정도이지 않았나? 저기 있는 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서른 살은 넘어 보이는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평소 의심 많던 녀석의 성격이라면 의구심이라도 한 번 가졌을 테지만.
200년을 넘게 이어진 오랜 허기와 갈증이 그의 눈을 멀게 했다.
크허허헝!
짐승은 포효를 지르면서 남자가 있는 마당 쪽으로 몸을 던졌다.
-네 몸을 내놓아라, 인간!
짐승의 탐욕스러운 아가리가 목덜미를 덮쳐올 때까지,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축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송곳니가 살결에 닿으려던 그 순간.
퍼어엉-
차차차창!
별안간 남자를 꽁꽁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이 단번에 박살났다.
그리고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봉두난발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용의 눈처럼 사나운 눈매가 나타났다.
테오였다.
-……!
짐승은 그제야 이것이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차 싶었지만.
덥썩!
테오는 이미 손을 뻗어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역시 허약한 상태였어. 예전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예전?
난 널 처음 보는데?
짐승은 의문을 표시하고 싶어도 입을 뗄 수 없었다.
꽈아악!
테오의 악력이 너무 단단한 나머지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테오는 그런 녀석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수십 미터도 넘는 크기를 자랑하던 녀석이 현재는 고작해야 2미터에 불과하다.
거기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체구도 비쩍 마른 상태.
레서 드레이크도 잡은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맥아리도 없는 녀석을 놓칠 리 만무했다.
-자, 잠……!
짐승이 제발 살려달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며, 충성을 바치겠다며 외치려 했지만.
콰직-
그보다 먼저 테오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우드드득!
짐승의 머리가 힘없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