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28)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28화(28/224)
월백검 (3)
‘내가 안 나서도 되는구나.’
바스크 공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레이는 대표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에 서서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테오가 월백검을 손에 쥔 순간 위험해 보여서 나설까 했었는데.
다행히 테오가 알아서 잘 해결한 것으로 보였다.
‘뭐든 도와주고 싶은데…….’
어린 시절에 테오가 자신을 도와줬던 것처럼, 자신도 테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뒤따른 발걸음.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이 나설 기회는 없어 보였다.
‘조금만 더 따라 가보자.’
레이는 그런 생각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스륵-
거짓말처럼 그녀의 몸이 그림자에 가려져 사라졌다.
* * *
다그닥다그닥-
테오와 세실리아를 태운 마차는 다시 동백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은 검을 얻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혹시 바쁘다고 거절을 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세실리아가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자, 테오가 희미하게 웃었다.
불량품을 팔았다며 키르손에게 항의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테오는 이제 슬슬 어머니의 진짜 모습을 알 것 같았다.
세실리아는 사실 이렇게 여린 면모를 갖고 있었다.
다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동안 표독하고 기센 모습만 보였을 뿐.
하나뿐인 아들이란 녀석이 그동안 어머니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덕분에 쉽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아드님? 큰 행사를 앞둔 자식에게 어미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을요.”
세실리아는 말과 달리 테오의 감사 인사가 기분 좋았던지 웃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마장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준다 했으니 기대해보도록 하죠.”
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난 가요?”
“아, 갑자기 어머니께서 마장께…….”
“그냥 편하게 할머니라고 불러도 된답니다.”
“……할머님과 흥정을 하셨던 게 떠올라서요.”
세실리아가 팔짱을 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 아닐까요? 분명히 당신의 외손주에게 줄 생일 선물이니 신경 써달라고 그렇게 당부했었는데 그딴 걸 준 건 어머니니까 말이죠. 그걸 무마하려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
‘덕분에 돈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한동안 허리춤을 바짝 옥죄게 생기시지 않았습니까.’
테오는 키르손에게 열심히 딴죽을 걸던 세실리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선이요? 역시 작년에 준 이것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물건이란 뜻이군요, 어머니?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마.
키르손이 자신만만하게 말했을 때, 세실리아가 도끼눈으로 그런 사실을 꼬집었다.
키르손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 그건……!
-어쩐지 너무 불량하다 했어. 애당초 여길 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느냐!
-아니긴 뭐가 아닌가요. 안 되겠어요, 아드님.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딴 곳으로 가시죠.
테오에게 멋진 검을 만들어 줄 테니 아주 감사하게 받으라고 으스댈 생각이었던 키르손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만 했다.
세실리아가 역시 제대로 된 검을 주지 않았다며 히스테리를 부린 것이다.
덕분에 키르손은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만 했고.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투르칸 상회나 게오르그 공방이 있으니 거기로 갈까 싶은데요.
-아니, 그 덜떨어진 곳들은 대체 왜!
투르칸과 게오르그, 두 곳 모두 바스크 공방과 곧잘 비교되는 공방이었다.
당연히 키르손은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그 덜떨어진 곳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우리 아드님에게 불량품을 내놓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그러니까 불량품이 아니래도……!
-그야 보면 알 일이죠.
-검…… 그래! 당장 개화식에 쓸 검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딴 곳에 가봤자 눈에 차는 검은 구할 수도 없을 게다.
-글쎄요.
-공방 구역 전부 주문이 한창 밀려서 밤낮없이 일하고들 있는데, 어떻게 보검을 구하겠다는 거냐? 그러니 편하게 내가 만들어주는 것으로…….
-아뇨.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안 된다니까?
-그새 잊으셨나요, 어머니? 제 아드님이 북부 4준도 꺾은 인재라는 걸? 거기다 전설로만 알려진 월백검의 선택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서로가 너도 나도 아드님에게 검을 주려 하지 않을까요?
-……!
-분명히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될 테니까요.
키르손은 자신의 속내가 모두 들켜버리자 동공이 격하게 떨렸다.
-어머니도 그걸 노리신 걸 테구요. 아닌가요?
그 순간, 키르손은 깨달았다.
과거에 자신이 키운 수양딸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었다.
진짜 피를 나눈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과 쏙 빼닮아 있었다!
결국 키르손은 양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시해야만 했다.
-……알았다. 정말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주마.
-좋아요. 이제야 협상이 좀 되겠네요.
-원하는…… 조건이라도 있느냐……?
-그걸 굳이 왜 저희 모자가 말해야 하나요?
-……뭐?
-아쉬운 쪽이 선제시 해야죠.
-…….
결국 키르손은 세실리아에게 한참 동안 휘둘린 뒤에야, 겨우 협상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남들은 얻고 싶다고 통사정을 해도 구할 수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게 마장의 검일 텐데……. 내 어머니지만 참 대단하시단 말이지.’
세실리아가 뜯어낸 보검의 스펙은 아주 간단했다.
60% 설백괴와 34% 흑단목.
그리고.
‘6%의 아다만트.’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아무리 마장이라지만, 아다만트까지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아다만트는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서만 극소량으로 발굴되는 초금속이었다.
특정 방식이 아니면 절대 부서지지도, 녹일 수도 없다는 특징을 자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다만트가 소량만 섞여도 ‘보검’의 수준을 넘어선 ‘신검’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런 것을 0.6%도 아니고 6%나 섞으라고 한 것이다.
이 정도면 강탈이나 다름없었지만.
-싫으신가요? 그럼 마시구요.
세실리아는 키르손의 간곡한 애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도도하게 일어설 준비를 했다.
결국 키르손은 완전 항복을 외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그런 검이 곧 내 것이 된단 말이지.’
다만, 키르손은 그만한 검을 제작하는 건 하루 이틀은 안 된다며 밤새 일해도 최소 1주일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화식이 시작되는 것이 닷새 뒤이니 아쉽기도 했지만.
‘어차피 1차 개화식은 시험장에서 주는 일반 철검으로 치르는 것이니 괜찮아. 2차 개화식부터는 사용할 수 있어.’
테오는 벌써부터 마장의 보검이 자신의 손에 잡힌 것 같아 손끝이 간질간질했다.
우우우웅!
그런 테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허리춤에 매달린 월백검이 거칠게 울어댔다.
* * *
“……망할 것. 아주 제 어미의 허리를 아주 분질러버리는구나. 자식새끼 키워봤자 아무 쓸모없다더니, 아이고, 아이고!”
키르손은 테오와 세실리아가 떠난 뒤부터 곡소리를 냈다.
월백검을 빼앗기고 지붕이 날아가서 당분간 찬바람 맞아가면서 일하는 것도 서러울진대.
딸이라는 녀석이 월백검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홀라당 삼켜버렸으니.
그렇다고 해서 거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정말로 테오가 투르칸이나 게오르그의 지원을 받아 개화식의 수석을 차지하게 되었을 경우.
그때에는 자연스럽게 세실리아와 자신의 옛 관계도 소문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서야 ‘외손주의 재능도 알아보지 못한 멍청이’라는 낙인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광고판 하나 섭외해보려다가 제대로 코가 꿰인 셈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하면 감당할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 크기의 검을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광물의 양이야 뻔하니까.
하지만.
테오와 세실리아, 두 모자가 떠날 때쯤에 테오가 했던 말이 폭탄이 되고 말았다.
-츠바이핸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크기는 대략 2미터30센티. 두께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기는…….
-야이, 도둑놈의 새끼들아아아!
테오가 원하는 검이 키르손이 상정했던 것 이상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 정도면 거의 ‘통짜’나 다름 없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설백괴와 흑단목, 아다만트를 필요로 했다.
……키르손의 비상 금고를 열어야 할 수준이었다.
“자식 새끼도 그렇지만, 외손주라는 놈은 대체 그런 걸로 왜 그딴 걸 만들라는 거야.”
까드득, 까드득!
이가 으스러져라 갈아댔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 결정을 무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우-
키르손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의자에 상체를 묻히면서 연기를 자욱하게 퍼뜨렸다.
“그래도 너무 터무니없는 짓은 아니긴 한데…….”
키르손의 시선이 탁상 위에 놓인 물건들로 향했다.
테오가 검을 제작할 때에 혹시 필요하다면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던 재료들이었다.
레서 드레이크의 이빨과 발톱들.
그것도 상처 하나 없는 상등품이었다.
‘분명히 유물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겠지.’
자신이 제작할 보검에 이것들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수백 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로서도 손에 꼽힐 만한 <걸작>이 탄생할 게 분명했다.
그동안 자본주의에 충실한 노예가 되느라, 가슴 한쪽에다 꽁꽁 숨겨 뒀던 장인의 본능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머릿속에 도안까지 그려지고. 하! 환장하겠군.”
키르손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망치를 어디다 뒀는지 떠올리던 그때였다.
“…….”
키르손의 얼굴 표정이 싸늘하게 식더니 시선이 곧 창가로 향했다.
푸드득!
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던 커튼 아래로 종달새 한 마리가 착지했다.
전신이 온통 까만 털로 덮인 특이한 모습의 종달새.
짹! 짹짹!
「오랜만이군, 마장.」
키르손의 귓가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파시 마법이었다.
“그다지.”
「여전히 그대는 차갑군.」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썩 꺼져라. 오늘은 간만에 기분이 좋던 참이니, 네놈 때문에 괜히 더럽히기 싫구나.”
「반가운 손님이라도 왔다 갔나 보지?」
종달새가 훤히 날아간 지붕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예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장 구역의 폭발 사고는 라그나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큰 참사로 비화될 위험이 큰 데다가, 무기 수급이 도중에 중단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상급 장인 한 놈이 연구하다가 터진 흔적이다. 조금 전에 근신 명령도 내렸고. 됐냐? 그리고.”
키르손의 한쪽 눈썹이 말려 올라갔다.
“괜히 떠볼 거면 꺼지라고 했을 텐데?”
종달새의 시선이 다시 키르손에게 향했다.
「좋아. 그럼 하나만 묻고 꺼져주지. 고민은? 좀 해봤나?」
“고민?”
「그래. 이전에 말했던 유물에 대한 자문 건 말이다.」
“아, 그거? 여전히 생각 없는데. 이제 관심도 없어졌고.”
「…….」
“뭐? 왜?”
「그대에게 있던 유물이…… 아니다. 되었다.」
키르손이 귀찮다며 곰방대를 쥔 손으로 손사래를 치니, 종달새도 뭔가 말하려다 말고 부리를 꽉 다물었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파진다.
강제로 제압하려 해도 순순히 잡힐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 엘프도 아니었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종달새는 날카로운 눈으로 키르손을 노려보다가, 날갯짓을 하면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자리.
키르손은 곰방대를 입게 깊게 물며 투덜거렸다.
“하여간 이놈의 집구석. 마음에 드는 데가 하나도 없어. 여기에 못난 딸자식만 없었어도…… 어휴!”
* * *
닷새가 순식간에 흘렀다.
개화식이 치러지는 당일.
테오는 이블린과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채채채챙!
차차차창-
“검술이 전체적으로 많이 단단하고 빨라지셨습니다.”
“그만큼 정교해졌단 뜻이지? 다행이네. 이블린의 칭찬도 받고.”
“하지만 그만큼 정석적인 틀에 갇히실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유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주의할게.”
남들이 봤을 때에는 진짜 칼싸움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렬한 대련이었지만.
테오와 이블린은 오히려 그게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투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람이 아니시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빌과 추종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반년 동안, 테오와 그들 간에는 엄청난 격차가 발생한 느낌이었다.
그들도 분명히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건만.
테오의 성장 속도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라그나르라고 해도 저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차아아앙!
그때, 격렬한 쇳소리와 함께 테오와 이블린이 널찍이 떨어졌다.
이블린이 거칠게 떨리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다 조용히 검집에 밀어 넣었다.
테오는 이제 그녀를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여기다 마력까지 개방된다면?
‘괴물이…… 탄생하겠지.’
이블린은 하루라도 빨리 그 괴물을 보고 싶어서 몸을 잘게 떨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부터 있을 개화식,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전부 이블린 덕분이야. 고마워.”
테오의 말에 이블린은 코끝이 살짝 찡해졌다.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저입니다.”
이블린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른팔을 잃으면서 마음속에서도 놓아버렸던 검을, 테오 덕분에 다시 쥘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오히려 몸에서 검을 떼어놓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만약에 수석을 차지하게 되면, 소감 말할 때 이블린 이름 말할 테니까 알고 있어.”
“그건……!”
이블린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뭐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시빌이 끼어들었다.
“도련님, 도련님! 이블린 님 다음에는 제 이름도 말씀해주십시오!”
“저도!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떻게 안 됩니까?”
추종자들이 너도 나도 끼어달라면서 어수선해진 모습에 테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그럴게.”
테오는 허리춤에는 월백검과 수련용 철검을, 등에는 임시로 구한 츠바이핸더를 매단 채 연무장을 벗어났다.
반드시 수석을 차지하라는 추종자들의 응원을 들으면서.
회귀를 한 지 정확하게 반년이 된 날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