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51)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51화(51/224)
카일 라그나르 (1)
라그나르를 비롯한 북방의 가문들은 보통 동물에 빗대어 표현된다.
라그나르는 용,
나르시오는 사자,
하나비는 독수리,
가드너는 늑대,
그리고,
랑케는 곰이었다.
곰은 미련하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강한 근력과 거대한 덩치, 모든 걸 먹어 치우는 잡식성과 흉포함 때문에 고대 사회에서는 토테미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테오가 봤을 때, 랑케 가문만큼 이런 곰을 닮은 곳도 없었다.
덩치와 힘은 물론, 영리한 머리까지.
항상 라그나르와 나르시오라는 거대한 산자락 아래에서도 랑케 가문이 오랫동안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에리카가 그런 랑케의 화신이나 마찬가지였지.’
지금이야 랑케 가문을 대표하는 북부 4준은 흑웅 홀커스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홀커스를 훨씬 압도하는 인재가 나타나 가주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백웅(白熊) 에리카였다.
‘다른 별호로는 ‘재해의 에리카’가 있었지, 아마? 이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쑥대밭이 되어서 온전한 것이 없다고 했으니.’
테오도 흑설에 있던 중에 에리카와 같이 작전을 수행했던 적이 있어 그녀의 성향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사납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박고 보는 성격 때문에 랑케 가문이 겪어야 했던 고역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레이처럼 꽤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하고 있어서 그동안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아는 사람만 기대하는 천재였었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바로 이번…… 개화식이었고.’
그리고 그녀는 유일하게 속호법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어 처음으로 두각을 드러내게 될…… 예정이었다.
‘나로 인해 그런 사실은 없던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테오는 에리카와 마주했을 때부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에리카가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실하게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낭군이 되라고?’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 건지.
“아아……! 제기랄, 진짜로 말할 줄이야. 이 미친 누나가…….”
홀커스는 뒤에서 큼지막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이 순간이 너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레이와 웰링턴도 도저히 이 대화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 멀뚱하게 테오와 에리카를 번갈아 봐야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테오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에리카를 바라봤다.
에리카가 익살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네가 이놈을 두들겨 팼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계속 너를 살피고 있었거든?”
누이의 시선을 받은 홀커스가 순간 움찔거렸다.
저 커다란 덩치가 주눅 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놈이 생긴 건 멍청하게 생겼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는 아니거든. 내가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단련을 시켜놔서.”
“대체 누가 멍청하게 생……!”
“그런데 그런 애가 두들겨 맞았어. 그런데 욕심 많은 악시온 놈이 어떻게든 잡으려고 이를 바득바득 간다고 하네? 게다가 석판에다 칼자국도 시원하게 남겨, 이러니 안 궁금하고 배기겠어?”
에리카는 홀커스의 항변을 가볍게 묵살하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투 핸디드 소드.
테오가 갖고 있는 츠바이핸더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대검이었다.
“그래서 마주치면 대련이나 한판 당기자고 하고 싶었는데, 어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야지. 그런데 결산식에서 갑자기 네가 나한테 단검을 던지더란 말이지.”
에리카는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던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희열이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살갗이 막 찌릿찌릿하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뿜하구, 응?”
“알 것 같군.”
“그렇지, 너는 이해하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에리카가 환하게 웃었다.
동지를 만난 사람이 보이는 격한 반가움.
테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해해. 네가 변태라는 거, 아주 잘 알겠어.”
“뭐, 인마?”
“푸하하핫!”
에리카의 얼굴이 무참하게 구겨지고, 홀커스가 옆에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누이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은 뒤에야 겨우 입을 틀어막았지만, 새빨개진 얼굴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결국 한 판 붙어보자는 말을 너무 둘둘 돌려서 말하는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역시. 시원시원해서 좋네.”
테오와 에리카의 시선이 허공에서 아주 잠깐 교차하고.
파아앗-
두 사람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꺼진다 싶더니 정중앙에서 만나 충돌했다.
차아아앙!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커다란 두 개의 대검이 거칠게 부딪치면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에리카는 한순간 두어 발자국 밀려나는 자신의 발자국을 보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힘에서 자신이 밀릴 줄이야.
북방에서 ‘힘’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문이 바로 랑케인 만큼, 그녀는 정말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다.
“야.”
“왜?”
“너 진짜 진지하게 우리 집 데릴사위 할 생각 없냐?”
랑케 가문은 무엇보다 힘을 숭상한다.
테오의 ‘힘’이라면 충분히 랑케 가문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내가 사실 엄청난 얼빠거든? 그런데 힘까지 세네? 그럼 당연히 데릴사위 각이지, 안 그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테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회귀를 하고 나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싶었던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눈에 차는 남자가 없다고, 그 많던 구애들도 전부 걷어찬 걸로 알고 있었는데.’
웰링턴 때와 마찬가지로.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에게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물론, 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엥? 왜? 데릴사위라는 말 때문에 쪽팔려서 그래? 그래도 잘 생각해봐. 넌 모르고 있겠지만, 나 이래 봬도 곧 가주가 될 몸이라고? 랑케 가문의 영부군(令夫君). 꽤 괜찮은 직함 아냐?”
피식-
테오가 가볍게 웃었다.
“아니, 그런 이유는 아니고.”
“그럼?”
“라그나르의 가주가 어떻게 랑케의 영부군이 될 수 있겠어?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대가문인데.”
“……?”
에리카는 순간 테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곧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뭐? 파하하하! 너 설마 계승권을 노리고 있는 거였어?”
그 자리에 있던 레이와 웰링턴, 홀커스까지 세 사람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아니, 그들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테오와 에리카의 충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심판관과 시험관들까지 전부 충격에 젖은 얼굴이었다.
특히,
레이의 놀라움이 가장 컸다.
보통 계승권자들은 대권을 노리고 있더라도,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질 때까지는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다른 형제들의 간섭과 제재가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른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였으니.
‘서자인 테오라면 잘 알 텐데…… 그래도 말했어.’
이것은 출사표였다.
-가주가 되겠다는 출사표.
이미 수석 자리는 물론, 마의 3천을 넘은 것만으로도 많은 이목을 사게 된 그가 던진 출사표인 만큼,
외부에 알려진다면 엄청난 파란을 일으킬 게 빤히 보였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심판관과 시험관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
저 먼 꼭대기 위.
아버지, 카일이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이라면,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용의 화신인 그분이라면 충분히 테오의 각오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곧 아버지도 뵐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오?’
레이의 생각이 깊어졌다.
한편,
“라그나르의 대권……. 대권이란 말이지?”
에리카는 웃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비웃음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놀라워하는 것 같기도 한 웃음.
“라그나르의 계승권자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꿈꿀 수 있다만?”
“그래. 꿈이야 꿀 수 있지. 하지만 그것도 엄연히 다르단 말이지? 단순히 꿈꾸는 거랑 진짜 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가?”
“당연하지. 그런데 보니까.”
에리카는 눈을 반짝이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츄릅!
“너는 진짜 할 것 같단 말이지.”
테오는 별다른 대답 없이 웃어 보였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런데 너 서자라고 들었는데. 괜찮겠어?”
“서자는 계승권을 주장하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잖아? 대권을 움켜쥐려면 그만한 배경과 기반이 있어야 할 텐데, 너는 그런 게 부족하니까.”
“기반이야.”
“……?”
타닥-
테오가 다시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 만들면 그만이지.”
“……!”
쐐애액-
드레이크의 날붙이가 거칠게 횡대로 움직였다.
채채채챙-
쩌엉! 쩌엉! 쩌엉! 쩌엉!
에리카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웃으면서 테오의 검을 빠르게 맞부딪쳤다.
대검 대 대검.
힘 대 힘.
충격과 충격이 거듭 더해지면서 땅이 잔잔하게 울리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이만하면 만들 자격 정도는 충분히 되지 않나?”
테오가 씩 웃어 보였다.
그쯤 되니, 에리카의 웃음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광소(狂笑)였다.
“푸하하하-! 자신감 보소! 너무 멋진데? 그래! 사람이면 그런 야망을 하나쯤은 가져야지. 야, 홀커스 너도 좀 배워. 매번 한판 붙자고 하면 이상한 핑계나 대지 말고!”
난데없이 화살을 맞게 된 홀커스는 뭔가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에리카는 싱글벙글 웃다가 갑자기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아, 이거 정말 아쉽네. 좋은 낭군감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딴 데서 찾아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뭐, 그래도……!”
쩌어어엉!
에리카가 목젖으로 달려들던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거칠게 튕기면서 씩 웃었다.
“좋은 술친구는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미성년자라, 아직 술은 안 마셔서.”
“어쩐지 말투가 너무 샌님이더라니. 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그럼 그냥 친구는?”
“그런 거면 나도 환영이지.”
테오도 같이 웃어 보이자, 에리카의 웃음이 더 커졌다.
“좋아. 그럼 우선 둘 중에 누가 더 위인지 한 번 확인해보자고!”
“서열을 나누는 게 친구라 할 수 있나?”
“쫑알쫑알 대지 말고, 검이나 휘두르셔! 아직 대련 안 끝났으니까!”
파아아앗-
에리카와 테오가 다시 충돌했다.
* * *
“대권이라, 대권이란 말이지! 파하하하!”
용의 화신, 카일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기뻐죽겠다는 듯.
혹은 우스워죽겠다는 듯.
호르르!
그때, 카일의 왼쪽 어깨에 앉아있던 검은 종달새가 울었다.
뭔가 염려가 가득한 울음소리.
“안다. 네가 뭘 우려하는지.”
호르르…….
“하지만 본인이 꿈을 꾸겠다는데 타인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하물며 부모 자식 간인데 말이다.”
카일은 테오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토르켈을 비롯해 그가 진심으로 아낀다는 다른 다섯 자식들처럼.
물론, 그 마음은 일반적인 부자지간과는 궤를 달리했다.
가문의 부흥.
라그나르의 성세(盛世).
그것을 위한 ‘검’들이기에 아꼈던 것일 뿐.
카일은 어디까지나 그 검들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어야지, 그 검들의 칼날이 자신에게로 향한다면 언제든 부러뜨릴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테오가 말하고 있었다.
그 검이 되겠노라고.
다만, 순순히 칼자루가 될지, 혹은 칼날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그 검의 칼날은,
아주 예리할 거라는 것.
“너나 나도 저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나? 젊은 혈기는 어느 누가 와도 막을 수가 없는 법이지. 그러니 어디 지켜보자꾸나.”
검은 종달새는 결국 부리를 꽉 다물었다.
“커다란 장벽을 만나서도 과연 꺾이는지 아닌지.”
창밖을 보는 카일의 눈빛이 흉악하게 번뜩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