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55)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55화(55/224)
카일 라그나르 (5)
부글부글 끓던 키르손의 속은 테오가 예복으로 환복하고 돌아왔을 때, 바로 진정되었다.
“허!”
“역시 우리 아드님, 대체 누굴 닮았는지 태가 남달라요.”
세실리아는 테오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면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완성 시킨 최고의 걸작이 마음에 든 탓이었다.
몸맵시가 살아나는 옷태,
위로 바짝 끌어모은 머리칼이며 새하얀 목덜미,
당당한 눈빛,
단단한 어깨까지.
단 반년 사이에 테오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여리여리한 꽃미남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야수미도 드문드문 섞여 나왔다.
수많은 예술품을 보고 수집하는 취미를 지닌 키르손도 여기선 감탄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미의 아들이 아니랄까 봐, 젊은 시절의 제 어미와 똑같구나.’
키르손은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차던 세실리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잃어버린 두 모녀의 시간 간극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지만, 카일 놈의 얼굴도 보이고.’
물론, 그런 감상은 머릿속에서 바로 지웠다.
자신에게서 어린 딸을 빼앗아간 못된 놈팡이였으므로.
-어머, 어머, 저 사람……!
-맞아. 테오 라그나르야.
-저렇게 잘생겼었어? 아니, 잘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꾸며놓으니 꼭……!
-제기랄! 얼굴 가져, 재능 가져, 실력 가져, 대체 안 가진 게 뭐야?
-가주님의 눈에 띄었다는 말도 상당하니, 미리 우리 쪽 식구로 들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주변 곳곳에서 쑥덕대는 소리도 들렸다.
정작 테오는 여전히 어색한 얼굴이었지만.
‘연미복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불편하긴 불편하단 말이지. 좀 더 편하게 안 되나?’
그나마 한 번 입어봤던 거라 그런지 이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뭐, 그래도 덕분에 카나카 군도의 광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정도 불편쯤이야.’
테오는 입꼬리가 씰룩거리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나카 군도의 광산은 아다만트만 묻혀있는 게 아니었다.
그와 비슷하거나 훨씬 값진 광물들도 더러 산재해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바스크 공방을 상징하는 최대 광산이 될 곳에 한발을 들이게 된 셈이니 남는 장사였다.
“이제부터 지명식을 시작할 예정이니, 수료생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이도록-!”
바로 그때, 심판관의 마력 섞인 고지가 들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세요.”
테오는 세실리아의 격려를 뒤로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지명식이라, 지명식이란 말이죠? 악시온이 없는데도 어떻게 이딴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거죠, 오라버니?”
옛 동백궁주, 에밀은 장미궁의 허름한 창밖 너머로 보이는 중앙청 청사를 보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악시온이 머리 잃은 주검으로 돌아온 뒤.
에밀은 며칠 동안이나 그런 아들을 꼭 끌어안은 채 품에서 놓지 않았다.
시체가 조금씩 부패하기 시작해 악취가 풀풀 날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다 모든 개화식이 끝나고, 지명식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이 아예 맛이 갔군.’
에드는 에밀의 눈가에 어린 광기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 총명한 에밀은 더 이상 보지 못할 듯싶었다.
‘멍청한 놈……! 그렇게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굴더니.’
만약 악시온이 에드의 지시를 제대로 따랐더라면 테오가 가진 유물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 목숨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테오 라그나르가 받고 있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악시온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에드가 중앙기무국을 통해 겨울산맥에 설치한 함정은 절대 일개 수련검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모’라는 죄는 북방에서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그 모든 함정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으니.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악시온이 멋대로 죽어버린 탓이었다.
‘함정을 다시 깔려고 해도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 그러기도 어렵다. 유물에 대해 알아내려면 방법을 원천적으로 바꿔야 해.’
이번 지명식에서 테오를 어떻게 대할지는 결정한 상태.
이것은 가문…… 자신의 소식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트로이반을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다른 기회는 언제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밀이 에드의 손을 꽉 붙잡았다.
“오라버니.”
“예. 말씀하십시오, 궁주.”
“그놈…… 병신 새끼를 죽여주세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아주 갈기갈기 찢어주세요.”
에드는 다시 한 번 더 속으로 혀를 찼다.
에밀은 이제 사리분간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까지 죽이려 드는군.’
하지만 밖으로 꺼내는 말은 속마음과 달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전부 맡기라는 듯한 말투.
그러나 에드를 붙잡은 손길은 도저히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해주실 거죠?”
“예. 맡겨주십시오.”
에밀은 그 뒤로도 몇 번씩이나 에드의 확답을 들은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지명식에 참가해야 한다며 떠나는 에드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에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대로 해주셔야 해요, 오라버니. 만약 그러시지 않는다면.”
에밀의 눈동자는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정말 조금 전까지 미쳐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도 가만히 있기 힘들 테니까요.”
* * *
“으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잖아.”
홀커스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청사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참관인 숫자가 확 줄어든 만큼 개화식 때보다 인파는 적었지만, 그보다 훨씬 강렬한 마력 파동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저 높은 곳에 앉아있는 9룡은 물론, 라그나르를 대표하는 여러 부대의 부대장들까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영웅들이 한자리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던 홀커스로서는 넋이 나갈 수밖에.
“덩치는 산만 한 놈이 뭐가 이렇게 간이 작아?”
“작은 게 아니라 누나 간댕이가 큰 거거든?”
홀커스는 옆에서 코웃음을 치는 에리카를 보면서 발끈했다.
“그럼 저쪽은? 저쪽도 멀쩡한데?”
홀커스는 에리카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피식 웃었다.
우뚝 서 있는 테오가 보였다.
“에이, 우리 테오는 다르지.”
“……‘우리’?”
순간, 에리카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럼 테오 님?”
“어제 뭐 잘못 먹었어? 갑자기 왜 이래?”
“누나, 나 어제부로 정했어.”
“뭘?”
“테오한테 내 인생 걸어보기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
화등잔만 하게 커진 에리카의 두 눈이 황급히 홀커스에게 향했다.
“너 그게 무슨 소리……!”
“밤새 고민 많이 했어.”
홀커스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테오, 저거 분명히 앞으로 크게 사고 칠 놈이야. 야망도 있고, 역량도 그만큼 되고. 무엇보다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주 내 맘에 든단 말이지.”
“…….”
“어차피 우리네 랑케의 인생이라는 게 정해져 있잖아? 라그나르의 검. 그중에서도 투박하고 힘센 검. 어차피 저들에게 쥐어질 검이라면, 다른 검들이 자리 차지하기 전에 선점해두는 게 좋다, 이거지.”
에리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라그나르의 검.
그것은 랑케 가문에 있어 굴레이자 속박이었다.
영광이 되기도 하지만, 지옥이 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면 화려하게 빛날 것이나, 그렇지 못한 주인을 만나게 되면 부러지고 말 테니.
랑케의 성씨를 타고난 이들의 운명은 하나 같이 그러했다.
아니, 랑케만이 아니었다.
6설가라면 누구나 그러했다.
그들은 오로지 라그나르를 위해서만 뜨고 져야 했다.
그나마 랑케의 가주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지만.
홀커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애당초 그 자리는 쌍둥이 누이 에리카를 위한 것이니까.
그가 조금만 욕심을 부린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지만…… 홀커스는 그러지 않았다.
에리카가 얼마나 그 자리를 간절히 바라는지를 잘 아는 까닭이었다.
“나는 말이야, 누나도 잘 알겠지만 딱히 욕심이란 게 없거든? 그냥 더 맛있는 거 먹고, 더 편한 데서 자고, 더 강해지고, 더 멋있어지고…… 그거면 충분해. 꿈이란 게 없었단 말이야. 그런데 저놈이 그걸 심어줬어.”
“……그 많은 시험관이 보는 앞에서 권좌를 차지할 거라고 선전포고하는 놈은 또 없을 테니까.”
“맞아. 그게 난 엄청나게 충격이었거든. 그래서 결심했어. 부러질 때 부러지더라도, 이 한 몸 크게 불사를 수 있는 곳에 서보고 싶다고.”
에리카는 처음으로 ‘욕심’을 부리는 동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게 테오 라그나르라는 거야?”
“어. 저놈이라면 엄청 날 마구잡이로 다뤄줄 것 같아서.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흐흐!”
“미친놈아, 누가 인생사를 재미로 결정해?”
“에이, 내가 아무리 미련곰탱이라도 단순히 그렇게 정했겠어? 누나도 인정했었잖아. 테오라면 기반 마련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
“그러니 난 거기에 배팅해보기로 한 거야.”
에리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라.”
“누나도 이미 우리 테오한테 마음 넘어간 거 같더만.”
“몰라, 이 새꺄. 그리고 우리, 우리, 좀 그만해. 손발이 다 오그라드니까. 생긴 건 산도적같이 생긴 놈이 무슨.”
“누나, 다들 우리더러 닮았다던데. 그거 제 얼굴에 침 뱉……!”
“뒈질래?”
에리카는 투 핸디드 소드를 슬쩍 뽑아 홀커스의 입을 닥치게 했다.
하지만 녀석의 입가에 싱글싱글 맺힌 미소는 도저히 사라지질 않았다.
“근데 테오 녀석은 이 결정 알아?”
“응? 아니. 당연히 모르지. 오늘 새벽에 결정한 건데.”
“…….”
“지금부터 말해야지.”
“……그럼 아무런 감정적 교류도 없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 거냐, 설마?”
“후훗! 친히 이 홀커스 랑케께서 검이 되어주겠다는데 세상에 거부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에리카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아! 테오랑 이미 이야기가 되어야 부대도 같은 부대로 들어갈 거 아냐! 검이 되겠다는 놈이 다른 부대에 지명되면 어쩌려고 그래?”
“……어? 그, 그, 그것도 그렇네?”
에리카가 멍청하게 두 눈을 끔뻑대는 홀커스를 보면서 인상을 구기던 그때.
“지금부터 지명식을 시작하겠다-!”
심판관의 외침에 따라 수료생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단상 쪽으로 향했다.
9룡을 비롯한 여러 간부진도 마찬가지.
둥, 둥, 두웅-!
엄청난 전고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심장도 거칠게 뛰었다.
“전체 수석, 테오 라그나르! 앞으로 나오도록!”
저벅, 저벅-
테오가 단상에 선 순간.
“…….”
“…….”
“…….”
거짓말처럼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수선하던 9룡과 간부진들까지 전부 단상 쪽을 보는 내내 눈동자가 죄다 이글댔다.
어떻게든 테오를 영입하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역시 광기가 가득하네.’
에리카는 그런 간부들을 보면서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다 싶어서.
한편으로는 테오가 받게 될 압박감도 작지 않을까 싶었지만,
‘뭐야, 저 새끼 즐기고 있잖아? 파하핫!’
테오는 그런 시선들을 전부 한꺼번에 마주하면서도 태연했다.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원래 이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듯이!
‘역시 내 눈이 맞았어. 저 녀석은 애당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사고, 그것을 틀어쥐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는 녀석이야.’
왕재(王才).
타고난 왕의 자질인 게 분명했다.
‘동생아, 멍청한 동생아, 저런 놈의 검이 되겠다고?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뭐 빠져라 굴러야 할 걸?’
에리카는 자리를 선점하겠답시고 앞으로 모질게 고생할 홀커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룡 율리우스도,
검룡 매화궁주도,
질풍검단, 흑검단, 율법청, 보안국, 흑색철기대……. 내로라하는 라그나르의 모든 부대와 조직들이 관심을 보일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심지어 중립을 지켜야 할 등룡 심판관까지 관심을 기울이니.
‘이곳은 이미 저놈의 자리야.’
심지어 다른 수료생들까지 테오를 선망에 찬 시선으로 보는 가운데,
끼이익!
갑자기 누군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그를 발견한 에리카의 시선이 가늘게 좁혀졌다.
9룡과 간부들도 마찬가지.
전부 굳은 채로 그쪽으로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항룡 에드였다.
‘설마?’
율리우스와 매화궁주 등은 재빨리 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무리 에드가 슬픔에 잠겨 있다고 해도,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테오를 해칠 정도로 멍청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그래도 그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여차하면 바로 개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에드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테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 역시 그런 시선을 느꼈던지 그쪽을 돌아보았다.
“…….”
“…….”
두 사람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중앙기무국장,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자리에 앉도록 하시오. 아직 첫 번째 수료자에게 지명식 절차에 대한 설명도 시작하지 않았소.”
심판관이 그런 에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에드는 이번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중앙기무국에서는 테오 라그나르에게.”
그것은 아주 작은 울림이었지만,
“부국장 자리를 약조하겠다.”
“……!”
“……!”
“……!”
조용하던 좌중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