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78)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78화(78/224)
공동 전인 (3)
날이 완전히 저문 저녁.
쌀쌀한 밤하늘 한가운데를 테오와 움브라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케에에엑!
움브라가 오래간만에 즐기는 자유 비행이 좋았던지 괴성을 질렀다.
테오는 그 위에서 서류 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승급 시험일 통보서>
‘벌써 승급 시험을 치르란 말이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데.’
테오도 최대한 빨리 승급 시험을 치를 자격을 갖출 생각이긴 했었다.
하지만 서너 번의 임무 수행 후에나 가능할 거라고 여겼지, 이렇게 빨리 주어질 줄은 몰랐으니.
보통 이런 경우에는 중앙기무국에서 조금만 더 살펴보자며 차단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천 명단을 보니 통과가 될 수밖에 없겠다 싶긴 했다.
<추천인 명단>
-백갑용기대장 ‘마룡’ 율리우스 라그나르.
-매화궁주 ‘검룡’ 오사 라그나르 프루너스.
-흑설 수장 ‘흑룡’ 로베르 라그나르.
.
.
9룡 중 무려 3명이 나섰다.
아무리 중앙기무국이라고 해도 이런 요구를 뭉개긴 어려웠겠지.
‘그런데 흑룡은 대체 왜 나선 거지?’
다만, 테오는 율리우스나 매화궁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흑룡이 왜 여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지명식 때도 그랬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직 그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으니.
‘이번에 흑설에서 잘못 파악한 정보를 넘겨준 것 때문에 그러나?’
듣기로 흑설은 현재 블랙 스컬의 뒤추적은 물론, 갑자기 나타난 3세력에 대한 배후도 파악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비상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 이번에 자칫 큰 홍역을 치를 뻔했던 그들을 도와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테오에게 호감이 가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사람이 추천인 명단에 있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하지만 테오가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인사는 따로 있었다.
-흑색철기대장 ‘아이언 퓨마’ 토르켈 라그나르.
‘토르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지.’
토르켈이 테오를 흑색철기대로 초빙하고 싶어 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부대장인 아이얀 소소리를 보내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명식 당시에는 워낙에 쟁쟁한 사람이 많아 나서지 않고 결국 포기한 줄로만 알았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던 걸까?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 봐도 좋겠어.’
테오는 통보서를 고이 접어 상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승급 시험은 앞으로 닷새 뒤. 그때까지 어떻게든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놔야겠어.’
승급 시험은 소속 부대에서 1명, 중앙기무국에서 1명, 타 부대에서 1명이 각각 차출된 총 3명의 시험관을 앞에 두고 치르게 된다.
대련에서 한 명 이상 시험관의 검을 꺾거나, 두 명 이상의 인정을 받으면 승급이 통과되는 식.
헤이젤 코플이 매화궁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싶거든 자신을 꺾으라고 한 것도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었다.
‘제자 자리를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 난 뒤에는 아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었지. 시험관이 되려면 어떻게 되려나?’
테오는 매화궁을 빠져나올 때 헤이젤이 보였던 눈빛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보다.’
그러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테오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가 움브라를 데리고 때아닌 밤산책을 하게 된 이유.
바로, 유령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찾았다.’
순간, 테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숲 지대로 보이는 침엽수림.
하지만 그 위로 희미하게 감도는 귀기를 놓치지 않았다.
-유령성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정 무렵에 이 근방을 지나쳐야 해.
-자정?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유령성은 보안 문제로 정확한 위치가 결계로 가려져 출입을 할 수가 없어. 하지만 하루 중 딱 한 번,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시각이 있어.
-그게 자정이란 말씀이시군요.
-그래. 하루와 하루가 교차하는 자정은 원래 음기가 가장 충만하다고 알려졌지. 결계를 구성하는 마법의 힘이 가장 약해질 때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때를 노려.
유령성의 정보를 요청했을 때에 이블린은 수소문 끝에 이러한 비밀을 알아 와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이 자정 무렵이었다.
‘자정까지 2분여.’
테오는 세실리아에게 빌려온 회중시계를 잠깐 살피고 고삐를 세게 쥐었다.
“움브라, 가자.”
케에에엑!
움브라는 크게 홰를 치면서 지상으로 활강을 시도했다.
테오는 시간을 적절하게 확인하면서 점점 결계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회중시계가 정확하게 자정을 가리켰을 때, 침엽수림 위로 희뿌연 무언가가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
테오는 움브라와 함께 단숨에 결계를 통과하여 지상에 착지했다.
탁!
그러자 숲 지대를 따라 흐르던 공기가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졌다.
축축하고, 음습하고.
또, 괴기스럽고.
츠츠츠…….
위이이이!
바람이 커다란 침엽수에 부딪힐 때마다 내는 소리가 어쩐지 귀곡성처럼 들렸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감각도 뭔가에 차단된 것처럼 제대로 인지하질 못하고 있어. 일단 찾아오긴 제대로 찾아온 셈인가.’
테오는 움브라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너는 잠시 하늘 위에서 대기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주고.”
움브라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케엑! 케에엑!
“……아니, 여기선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그냥 가기엔 위험하다니까? 지상이라서 너도 싸우기 힘들고. 두고 가려는 게 아니래도.”
케에에엑!
테오가 뭐라고 말해도 움브라는 전혀 듣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에게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싶어 하기보다는 테오가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테오가 난감한 마음에 뒷머리를 벅벅 긁던 그때였다.
키에에에!
움브라가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크게 포효를 지르더니 갑자기 움브라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아니, 정확하게는 형체가 가라앉으면서 테오의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난데없는 상황에 테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움브라의 흡족한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케케케케!
‘영사룡의 능력을 각성했어!’
테오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원래 영사룡은 그림자를 둥지로 삼아 활동하던 마물.
그림자를 활용한 능력이 무척 뛰어났지만, 이번 생은 영마독이 없어서 활용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케에엑!
그림자가 크게 출렁거렸다. 움브라가 한껏 우쭐대면서 소리쳤다.
여기라면 오히려 하늘에서 보는 것보다 테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내 생각이 짧았어. 같이 가자.”
케에에엑!
움브라의 울음소리가 다시 숲 자락을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르릉-
테오는 드레이크의 날붙이를 천천히 뽑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제, 힐다를 찾을 차례였다.
* * *
부스럭, 부스럭-
테오는 안개 속을 계속 거닐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방향 확인이 어려웠지만, 움브라는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조금씩 길을 잡아주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에 살짝 걸쳐진 옛 고성(古城)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사막 속 신기루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곳.
유령성.
하지만 테오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파아아아-
태고룡의 유물을 발견할 때면 보았던 푸른빛이 거기서 풍기고 있었다.
‘역시 저기였어.’
테오는 자신이 제대로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미소를 짓다 말고, 갑자기 등골을 섬뜩하게 만드는 느낌에 재빨리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스스스-
키아아아!
맞은편 숲에서 귀곡성이 음산하게 퍼지더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
열두 살?
아니, 열세 살쯤 되었을까?
어린 소녀가 웬 길쭉한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테오는 유령종에 속하는 마물인가 싶어 예기를 날리려다가 잠깐 행동을 멈췄다.
소녀는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퀭한 눈빛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곧 조용히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뭐지?”
혹시 형체를 숨겼다가 뒤를 노리려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런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대신에 이번에는 다른 방향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열다섯 살쯤 되었을까.
조금 전 보았던 소녀가 나이를 먹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여인이 이를 악문 채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고.
악에 잔뜩 바친 듯한 여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러다 여인도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대체 무슨?’
그리고 또 다른 방향.
이번에는 열아홉쯤 된 듯한 여인이 나타나 누군가와 맹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적을 베고, 또 베고.
항복하는 이들의 머리마저 가차 없이 날려버리는 그녀의 얼굴은 악귀처럼 살의로 가득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또 있어.’
다른 방향에서 순차적으로 여인의 나이 먹은 다른 모습들이 나타났다.
갈수록 점점 더 흉흉한 살기를 퍼뜨리고, 잔인한 손속을 휘둘러대는 여인.
그러다 중년이 되었을 때는 얼굴에서 감정조차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가면을 쓰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
적을 해치우는 데에 일말의 동요도 내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오랜 가신으로 보이는 동료의 머리를 날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노년이 되었고, 여인은 왕좌에 앉아있었다.
주변 인물들 그 누구도 여인의 눈을 감히 마주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조아리기에 급급할 뿐.
모두 철혈의 권력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다 궁궐이 불에 타는 화재가 일어나고, 반란이 벌어졌다.
왕좌에 앉아있던 여인은 홀로 반란군을 맞닥뜨렸다.
얼마든지 덤비라는 듯.
반란군들은 차마 그녀에게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누군가가 용기를 갖고 덤비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제자리를 박찼다.
여인이 광소를 터뜨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화재와 함께 성이 무너졌다.
그 광경이 저 멀리 보이는 유령성과 언뜻 비슷했다.
‘이건 생애를 비춰주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살았던 생애를.’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없던’ 일이 되어버린…….
테오는 환영의 정체를 깨닫고 다시 유령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환영은 다시 새로운 광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던 열두 살의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다만, 그 아이는 이번엔 검이 아닌 거울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치 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이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비명까지 질렀다.
그러다 뭔가를 다짐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음부터 소녀가 보이는 일상은 이전과 아주 달랐다.
자신을 화려하게 가꾸기 시작했다.
검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미모가 사람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무기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여러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허우적거렸다.
지난 생에 그녀를 몰락시키거나 적대했던 이들이 모두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 나가고, 그 주변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철혈의 장벽이 쌓였다.
그녀는 거대한 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거대한 성을.
하지만 갖가지 음모와 계략으로 둘러싸인 성은 얼마 가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으니.
이번에는 지난 생애에 그녀를 따르던 이들이 일으킨 반란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남자의 배신이 뼈아팠다.
푸욱-
여인이 고개를 들어 연인에게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냐고.
연인이 쓸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노라고.
이에 여인이 악에 받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더 두렵게 해주겠다고.
더 이상 아무도 자신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두렵도록 해주겠다고 말이다.
스스스-
다시 환영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열두 살 난 아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려진 얼굴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듯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러 움직였다.
그녀는 지난 생에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검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
.
테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 여인의 여러 인생이 차례로 나타났다.
여인이 처음 눈을 뜰 때면 열두 살의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 이전 생과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한다.
천재라고 추앙받고, 승승장구하고, 많은 이들의 복종을 받고, 배신자를 미리 처단하고, 악녀라고 불리다가 권좌에 앉게 된다.
철혈의 권력 앞에 모든 이들이 숨죽여 고개를 조아린다. 나라 전체가 그녀의 손아귀에 움켜쥔 것 같다.
하지만,
그 마무리는 항상 같은 결과로 마무리된다.
-배신.
어떤 삶을 살아도 여인의 인생은 매번 그렇게 끝났다.
비참하게.
혹은 비루하게.
‘계속 방황하는 삶이야. 끝없는 회귀로 매번 새로운 기회를 손에 넣고 더 높은 깨달음을 얻어도, 결국 주변에 남아있는 것은 늘 혼자뿐. 이 여인은 이런 삶을 사셨던 건가?’
테오는 이 끝없는 굴레를 되풀이하기만 하는 여인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면서도, 보는 내내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광기도 같이 느꼈다.
-광기.
그래. 이건 광기였다.
될 때까지 부딪치고 보는. 자신이 부서져도 계속 달려들어 끝끝내 상대를 부수고 마는.
주변이 온통 배신자로 가득 차게 될 것을 알아도, 매번 그들을 공포로 지배하고자 하는.
그래서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손에 넣고 마는.
라그나르만이 가질 수 있는 광기.
-나도 회귀를 ‘반복’할 수 있다면 이렇게 되는 걸까?
테오는 그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위로 들었다.
어느새 그는 유령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반쯤 무너진 성곽 위.
한 여인이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보았던 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인.
그녀가 광기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광경은 어땠지? 재미는 있었나?”
힐다 라그나르였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