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as the Reincarnated Bastard of the Sword Clan RAW novel - Chapter (83)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83화(83/224)
힐다 라그나르 (3)
“기무국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일을 잘도 저지르고 있었구려. 하지만…… 당신이 하는 것 치고는 어딘가 어설픈 것도 같은데.”
율리우스는 이블린이 올린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찝찝함이 있었다.
찝찝함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정보부장?”
율리우스가 고개를 위로 들자, 그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떨어졌다.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그저 물증이 가리키는 대로 범인을 체포하면 그만인 것을.”
흑룡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율리우스 앞에 다른 서류를 던졌다.
“증거는 확실하다. 뱀의 계절 소속의 일급 암살자로 전력이 꽤 화려하더군. 작년에 있었던 질풍검단 2조장 암살 사건의 범인도 바로 이놈이었다.”
율리우스는 새로운 서류를 살피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어디 다치기라도 하신 거요? 왼팔이 불편해 보이는데.”
“……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그 서류나 보도록.”
율리우스는 더 물어봤자 흑룡이 대답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서 크게 싸운 모양이로군. 저 괴물 같은 양반도 다치긴 하나?’
하지만 율리우스의 의문은 서류 내용을 본 순간 싹 사라졌다.
작년에 윈터러를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질풍검단이 외부 임무에 나서던 도중에 안가에서 지휘관이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임무 수행 중에 전사한 게 아니라 은신처에서 암살된 만큼,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게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렇다 할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오.”
“외부에는 그렇게 알려졌지. 능구렁이의 이목을 가려야 했으니까.”
능구렁이.
에드 트로이반의 숨겨진 또 다른 별명이었다.
“당시 질풍검단은 ‘백탑 유적지’의 갈등 때문에 트로이반과 한창 국지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꽤 트로이반을 귀찮게 했었지.”
“그러니 트로이반이 의심스러웠다?”
“당시 중앙기무국장이 중재를 하면서 유적지의 관할은 우리 쪽으로 가져오긴 했으나, 당시 트로이반의 가주가 상당히 화가 많이 났었다는 첩보가 있었거든.”
“음.”
율리우스는 침음성을 흘렸다.
흑룡이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지만, 트로이반이 비밀리에 움직인 정황을 모두 파악했다는 뜻이었다.
흑설의 정보력은 이미 세계 제일이었으므로.
“그뿐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측에서 시도하려 하거나 검토하였던 이득 중 상당수가 트로이반과 그 산하 조직이 먼저 선수 친 경우가 왕왕 있었지. 우리 측 중심부에 세작이 심어진 게 아니라면 파악하는 게 절대 불가능한 고급 정보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가면 너머. 흑룡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두렵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눈빛.
“그러니 가장 먼저 의심이 드는 이가 누구겠나?”
“중앙기무국장과 3부인이 아니겠소?”
흑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들이 대외적으로 트로이반과 연을 끊었다고 발표했어도, 뒤로 호박씨를 까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니. 그래서 혹시나 해서 일 년 넘게 표적 수사를 했었다.”
“꼬리를 밟으셨던 것이구려.”
‘흑설이 꼬리를 잡았다는 건 애당초 가주 님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뜻일 텐데. 그런데도 쳐내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두신다는 건. 흠.’
어쩐지 카일의 노림수가 먼 곳까지 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주 비릿한 피 냄새가…….
“그래. 그리고 보다 확실한 증거를 잡을 목적으로 포로 주변에다 우리 측 요원들까지 배치해뒀었지.”
순간, 율리우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게 말도 없이 본대의 본부에 그림자를 묻어두었다, 이 말이오?”
“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허!”
자신도 의심했었다는 뜻이다.
필요하다면 충성스러운 아군도 의심하고 쳐낼 수 있는 칼.
그렇기에 모든 기관장과 간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두려움만 사는 존재가 바로 흑룡이었다.
“문제는 우리 요원이 나설 기회조차 없었다는 거지만.”
이 대목에서는 율리우스도 괜히 우쭐해졌다.
“우리 이블린 조장이 좀 잘하긴 하지.”
“사실인가? 이 일을 예측한 것이 테오 라그나르라는 것.”
“맞소. 정보부장의 똑부러지는 조카님의 건의로 성공한 일이지.”
“그렇단 말이지.”
픽.
율리우스는 가면 너머에서 들리는 실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양반이 웃는다고?’
수십 년 동안 라그나르에 종사했던 율리우스도 처음 본 모습.
“테오 라그나르를…….”
“싫소.”
“아직 내 말도 다 안 끝났는데?”
“하려는 말이야 뻔하지. 흑설로 보직 변경을 해달라, 혹은 파견이라도 보내 달라, 뭐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거 아니오?”
“뭐, 그렇긴 하다만.”
“그러니 싫소.”
“…….”
“고놈은 내 것이오. 가져가려거든 내 배부터 갈라야 할 거요.”
율리우스는 불쑥 배를 내밀었다.
흑룡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천하의 마룡이 이런 짓도 할 줄 아나?”
“천하의 흑룡이 내 어여쁜 새끼를 빼앗아가려고 하는데 이빨 안 드러내게 생겼소? 덤비지 마시오. 콱 물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뭐, 어쩔 수 없군.”
흑룡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율리우스로서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 여러 마수들(?)로부터 테오를 보호하려면(!) 더 단단히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이 양반들 때문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단 말이야.’
“하여간 꼬리는 잡은 듯하니 몰이를 시작해보지.”
흑룡의 말에 율리우스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 번 해봅시다.”
* * *
다그닥다그닥-
잘 닦인 대로 위를 달리는 마차 한 대가 있었다.
“흑설이 꼬리를 잡은 것 같다고?”
안에 타고 있던 에드는 천장에서 들린 보고에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전음들.
“……그렇단 말이지?”
피식!
에드가 가볍게 웃었다.
“가주……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그러다 다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다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대기하도록. 그리고 아버지께도 소식을 전달해 드리게. 용이 이제 본격적으로 꿈틀댈 것이라고. 역린에다 비수를 꽂으려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우선 필요한 것만 챙겨서 곧 찾아뵙겠다고 말이야.”
곧 마차 위에 있던 모든 기척이 사라졌다.
에드는 의자에 몸을 반쯤 묻으면서 눈을 감았다.
“과연…… 이걸 보고 난 뒤에 어떤 수를 놓을까? 벌써 궁금해지는구나, 테오 라그나르.”
* * *
동쪽으로 이어지는 겨울산맥의 어느 끝자락.
겉보기엔 평범한 사냥꾼의 쉼터로 보이는 오두막집에 테오가 도착했다.
에리카 남매는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며 헤어진 상태였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 쌍의 시선이 쏟아졌다.
두 명은 아는 얼굴이었고, 한 명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젯밤엔.”
그중 모르는 얼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암구어를 물었다.
“소쩍새가 울었다.”
“테오 라그나르, 맞나?”
“그렇습니다.”
“반갑군. 무설(無雪) 클레베라고 한다.”
군인 같은 말투와 절도 있는 동작.
짧은 숏컷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하지만 테오가 놀란 점은 따로 있었다.
무설.
흑설을 대표하는 특급 요원이 눈앞에 있었다.
‘흑설이 이를 악물었군.’
테오는 클레베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번 임무의 지휘관이자 그대의 시험관을 맡기도 했다. 부장님께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두 사람은 구면일 테니 따로 소개는 필요 없겠지?”
“예.”
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블린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한 번 맡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맡으라고 하시더군.”
“그래도 조장님이 계셔서 저는 좀 더 수월하게 임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말은 나는 있으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뜻으로 봐도 되나?”
이블린의 옆에 있던 헤이젤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들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다만. 나는 네가 제대로 임무에 참여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할 생각이니까.”
헤이젤은 노골적으로 테오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매화궁주 님의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 말에 마음이 상한 것 같은데.’
테오는 쓰게 웃고 말았다.
언제는 매화궁주의 제자가 되는 걸 쉽게 허락할 수 없다더니, 정작 알겠다고 하니까 저런 반응이었다.
매화궁주가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걸까. 참 피곤한 사람이다 싶었다.
하지만 헤이젤의 실력만큼은 진짜였기 때문에 기대되는 면도 있었다.
‘백갑용기대, 매화궁, 흑설. 상급검사만 두 명에 그에 준하는 실전검사 한 명……. 전부 나를 감시하면서도 지원해준다는 뜻이겠지. 무조건 성공해야만 해.’
이번 임무는 대체 승급 시험이기에 앞서 에드의 팔다리를 자르기 위한 밑작업.
본격적으로 개시된 에드와의 정쟁이기 때문에 절대 질 수 없었다.
“인사 다 나눴으면, 시급한 사안인 만큼 바로 브리핑을 시작하지.”
클레베가 입을 열자 남은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이번 임무의 내용은 사전에 고지된 것과 비슷하다. 우리 네 명이서 뱀의 계절의 본부에 침입하여 말살을 시도한다. 생존자는 전무해도 좋다는 상부의 지시이다.”
전원 말살령.
라그나르는 감히 자신들의 터전에 함부로 발을 들인 놈들을 살려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증거들…… 특히 트로이반이나 중앙기무국과 관련된 모든 연결고리를 가지고 윈터러로 귀환하는 것이다. 질문 있나?”
테오가 손을 들었다.
“말하도록.”
“중앙기무국장은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할 확률은 없겠습니까?”
“좋은 질문이로군. 이미 거기에 대해서는 다른 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클레베가 손가락을 꼽았다.
“간단하다. 하나는 포로가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암중에 퍼져 중앙기무국장의 귀에 들어가도록 해놨다는 것이고.”
두 번째 손가락이 접혔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흑설에서 파악만 해뒀던 중앙기무국의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것.”
테오의 머릿속으로 흑설의 노림수가 빠르게 정립되었다.
“성동격서로군요. 중앙기무국장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 다음에 꼬리를 완전히 잡으려는.”
흑설의 목표가 중앙기무국에 있는 것처럼 에드 트로이반을 속이고, 실은 뱀의 계절을 직접 쳐서 트로이반 가문과 에드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그만큼 시간이 생명이겠습니다. 암살자가 이쪽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중앙기무국장이 알아채기 전에 들이쳐야 할 테니.”
“흑설에 가장 잘 어울릴 인재라고 말씀하시던 부장님의 말씀이 맞았군. 그대, 정말 열다섯 살이 맞는 거겠지?”
테오는 말없이 웃었다.
클레베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로만 듣던 것을 실제로 보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이런 막중한 임무에 일개 수련검사를 끼우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이만한 안목을 갖고 있다면 방해는커녕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잘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이쪽으로 회유하도록.
떠나기 전에 흑룡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재미있겠어.’
듣자 하니 테오와 에드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원수 관계라 했으니 더 볼만 할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이것부터 받아두도록.”
클레베가 테오에게 뭔가를 던졌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함.
영험한 기운이 풍겼다.
테오의 눈이 반짝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번 공적에 대한 포상. <청명단>이다. 마력을 맑게 해주는 영약이지. 그리고 하나 더 있다.”
테오는 두 번째로 던진 물건을 받았다.
겉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낡은 책자.
“<열결의 식>. 뇌광 속호법의 보조 호흡법이다. 기존 호흡법을 강화시키고 청명단을 체내에 안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다.”
“……!”
“나는 우레 속성의 사범이기도 하다. 가는 길에 자세한 운용 방법을 지도해줄 테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 익히도록.”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