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with the King’s Power RAW novel - Chapter 691
2부 107화
참았던 숨을 내쉬듯.
도플갱어가 길고 긴 호흡을 내뱉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하급 악마로 격락한 길페르도.
버러지 같은 대공들도.
짜증나는 김태현도.
심상세계를 집어삼킬 듯 밀려들던 성력도.
그 모든 게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구름 하나 없는 적색 하늘은 평온하기만 하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잔잔했다.
조금 전 있었던 대혼란이 착각이라 여겨질 정도로 불편한 평화.
다른 이들이었다면 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착각했던 게 분명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화아악.
도플갱어의 몸에서 발산된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하계왕 수준으로 회복한 검붉은색의 마력.
거대한 마력에 닿은 공간이 일렁인다.
공간을 장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파직.
스파크가 튀었다.
탐지되는 생명체는 하나뿐이다.
누구보다 익숙한 또 다른 자신.
[김태현.]도플갱어가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깼냐.”
[…….]도플갱어가 말없이 장악된 심상세계를 둘러봤다.
붉은 하늘 아래 사막.
변한 건 없다.
그가 태현과 눈을 맞추었다.
자신에게 깼냐고 물었다.
그 말은.
[역시 시간이 멈췄던 건가.]낮게 읊조렸다.
시간의 권능.
과거 요마의 몸에 있을 때 경험해 본 적 있는 힘이다.
차이라면 이번에는 그 힘의 범위가 상당히 깊고 넓다는 것.
아마 다른 녀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잡지 못했으리라.
[그 쓰레기들은?]“그래.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쯧.]도플갱어가 혀를 찼다.
처음이다.
심상 세계에서 군림하는 자신이, 포식자의 힘이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지는 건.
대등하지도, 엇비슷하지도 않았다.
성력 앞에서 자신이 가진 힘은.
‘압도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껏 패왕이라 자신한 것과 달리 하찮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것도. 처리한 것도 결국 눈앞의 김태현이다.
굴욕감에 앞서.
궁금증이 치민다.
[무슨 짓을 한 거냐.]“궁금해?”
[이 새끼가….]“그러면 보면 되잖아.”
태현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이상하다.
김태현은 자신에게 이 정도의 거리를 허락한 적 없다.
배신할 경우를 염두에 둬 거리를 두는 건 항상 녀석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다.
뭐지?
어째서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났다.
“본능치고는 나쁘지 않았어.”
툭.
다가온 태현이 도플갱어의 어깨를 잡았다.
어느새 그의 두 눈이 자주색 마력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거대한 힘.
잔재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성력을 확인했다.
[설마….]“내 눈을 봐라.”
그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자주색 마력.
성력을 내포한 거대한 힘이 각인되었다.
* * *
각인된 마력을 통해 기억이 떠오른다.
“탑주. 그런데 말이야.”
[음?]“나는 몸이 두 개란 말이지.”
그건 김태현과 노인의 대화였다.
[심상세계 속의 도플갱어를 말하는 건가? 그를 이용해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취하려 하는 거군.]“그래. 그렇게 한다면 어느 쪽도 포기할 필요가 없잖아?”
김태현은 노인을 탑주라 불렀다.
탑주(塔主).
김태현이 회귀한 시간선.
녀석이 상급 성좌가 될 수 있도록 준비된 시련을 관장하는 자.
“창조(創造). 그 힘이라면 도플갱어의 육신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거 같은데.”
[일반적인 육신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는 경우가 다르다네.]탑주를 통해 김태현에게 스며든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대성좌 시조새.
대성좌 창성.
새로운 대우주의 탄생과…. 상급 성좌 노네임이 만들어낸 삼천세계.
“도플이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네. 확실히 그 녀석이라면 뭐든 먹어 치워 제 것으로 만들려 하겠지.”
김태현을 믿은 요마와.
요마를 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려는 김태현.
그리고.
탑주가 경고하고 있음에도.
김태현은 자신에게 육체를 넘기겠다 말하고 있었다.
“그 녀석만 한 적임자가 없지.”
[…….]탑의 가능성.탑의 확장성.
탑의 성장성.
김태현과 탑주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는.
하나같이 이 세계의 비밀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100층에 오르려 할 거야. 이전부터 나와 요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어 했으니까.”
[도플갱어. 그자의 가능성으로 인해 김태현이라는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네.]“이제는 내가 그 녀석을 믿어줘야지.”
하나의 소우주를 넘어.
별자리 전쟁을 목표로 한 성좌의 다짐.
멈춰진 시간선을 목격한 도플갱어의 심장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 * *
[…….]심장이 날뛴다.
눈이 떨린다.
거대한 진실을 받아들인 대가.
기억을 읽은 매개체가 된 적안과 머리통이 터질 것 같다.
주륵.
도플갱어의 눈으로 액체가 흘렀다.
슬퍼서?
아니.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였다.
[감히….]몸이 떨린다.
조금 전 성력의 잔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할 때의 무력감.
그 이상으로.
감정에 휩싸인 육체가 제어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었다.”
태현이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너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야.”
[이 새끼가….]그의 몸에서 제어하지 못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공간장악 된 심상세계가 진동한다.
태현이 그 모습을 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잃었던 성력.
탑주와의 계약을 통해 그 힘을 모두 회복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네놈은 바깥으로 나가 요마를 구할 테니. 나더러 대신 탑을 올라 힘을 손에 넣어라?]“그래.”
[개소리!!]쩌어억.
태현의 발밑으로 아가리가 나타났다.
포식(捕食).
도플갱어의 근원이자.
플레이어 김태현을 상징하는 스킬.
또한.
하급 성좌 ‘삼천세계의 포식자’가 가진 고유한 힘.
태현의 몸에서 미약한 성력이 피어올랐다.
그것만으로.스르르.
태현이 딛고 있던 두 발에 포식의 아가리가 빨려들었다.
“이런 건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도플갱어가 개의치 않으며 투기를 쏟아냈다.
쿠구궁.
투기는 패기가 되어.
쿠구구궁.
금방이라도 태현의 몸을 짓이길 것처럼 밀려들었다.
패기의 주인 하자드.
마룡화한 그가 전력을 드러내었다 해도 이보다 거칠진 않을 것이다.
화아아.
한 줌의 성력이 태현의 몸을 둘렀다.
그것만으로 거대한 패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몸을 원했잖아?”
삼천세계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격을 얻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 몸을 완벽히 차지할 수 있다고.
하급 성좌인 자신은 그때의 그를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라 말하였다.
[닥쳐라.]콰르릉.
갑작스럽게 천둥이 쳤다.
적색 하늘을 가르는 뇌전이 태현을 내려쳤다.
어느새 도플갱어의 손에 우레가 쥐어져 있었다.
[웃기는 소리.]츠즈즈즈.
그의 몸에서 핏빛과 갈색, 그리고 푸른색과 오색 마력이 피어오른다.
‘흡수’와 ‘강화’. ‘폭주’와 ‘대원소’의 권능이었다.
이외에도 대공들의 권능이 차례로 피어올랐다.
‘독’. ‘공포’. ‘투쟁’. ‘진화’. ‘대마력’. ‘정신지배’, ‘재생’.
하계의 지배자를 자처하기에 부족함 없는 마력을 둘렀음에도.
부족하다.
도플갱어는 신력에 손을 뻗었다.
대천사 시절 루시페르의 권능 ‘광휘’.
대천사 미카엘의 권능 ‘심판’.
한 손에는 우레를.
다른 손에는 데카메론을.
두 개의 신기를 쥔 도플갱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통합왕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역시. 너라면 나보다 빠르게 도달할 줄 알았지.”
태현이 기꺼운 목소리로 도플갱어의 전력을 칭찬했다.
지금 그가 보이는 모습은 과거 자신이 삼천세계의 최강자가 되었을 때였으니까.
요마왕의 힘으로 정제되고, 함께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며.
도플갱어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있었다.
만약 태현이 성력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결코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몸을 차지하는 건 이 몸의 의지다.]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 할 과정이라고.
[감히 너 따위가 양보 운운할 게 아니란 말이다.]저벅.
도플갱어가 태현에게 다가섰다.
“그리 말할 줄 알았다.”
태현이 물러서지 않으며 마주 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사용하는 힘은 몸에 두른 성력.
전력을 몸에 두르고, 두 개의 신기를 든 도플갱어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스륵.
태현이 들어 올린 검지에 한 줌의 성력이 압축되고.
압축된 성력이 하나의 에너지 볼을 이루었을 때.
[……!!]도플갱어는 거대한 태양을 마주한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하나의 우주.
세계 그 자체가 눈앞에 압축되어있는 듯한 기분이다.
두 개의 신기와 에너지볼이 조금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우리의 마지막 전투를 위해 준비한 무대다. 다른 녀석들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건방 떨지 마라.]도플갱어가 허공에 데카메론을 휘둘렀다.
파직.
검풍에 찢겨진 적색 하늘에,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마력도 신력도 아닌 새로운 에너지가 심상 세계에 흘러들었다.
정령계.
태현이 세 정령왕과 계약하기 위해 방문한 이차원의 세계가 강제로 열린 것이다.
[와우.]태현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무리 도플갱어 녀석이 통합왕 수준의 힘을 회복했다 해도, 신수와 결합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차원의 좌표를 역추적해내다니?
태현에게도, 엘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수록 더더욱.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기대 이상이야.”
누구보다 도플갱어를 잘 알고 있는 태현이기에.
탑주에게 부탁해 지금의 심상세계를 만들었다.
온전한 성좌의 힘을 쓸 수 있는 건 그래서였다.
0층에서는 탑주가 술식을 준비하고 있다.
잠시 후.
자신은 강제로 바깥으로 방출될 것이다.
그때까지 도플갱어에게 자신의 모든 걸 전해주고 싶었다.
기억으로 읽는 것과.
‘포식자’의 힘을 직접 경험하는 건 다른 문제일 테니.
“약육강식. 그게 우리의 법칙이었지.”
스르르르르.
에너지 볼이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그에 대응해 도플갱어의 주위로 온갖 영역이 펼쳐진다.
하계와 상계.
중간계의 정령계.
세 계층의 에너지가 성력에 저항하듯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데카메론과 우레의 위로 아가리가 덧씌워졌다.
얼마나 많은 영역과 권능이 겹쳐진 걸까.
지금껏 태현이 보아온 도플갱어의 어떤 절기보다 강렬함이 느껴진다.
“넌 학습 능력이 빨라서 좋아.”
[닥치라고 말했다.]어느덧 거대해진 에너지볼이 아가리의 형태를 취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포식.
태현이 처음으로 성력을 익혔을 때 사용한 권능의 기본형.
고작 그 정도임에도.
콰드드드드.
도플갱어가 장악한 일대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태현이 자신의 범위 안에 들어온 친우를 바라보았다.
굴욕과 분노. 이외에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다.
“먹어 치워라, 포식.”
쩌어어어억.
무자비한 성력의 아가리가 벌려졌고.
[…젠장.]욕지거리와 함께.
도플갱어가 아가리에 집어삼켜졌다.
* * *
몸이 무겁다.
거대한 힘을 사용한 대가로 탈력감이 찾아온 탓이다.
뒤늦게 아가리에 집어 삼켜진 충격이 찾아온다.
의식이 흐려진다.
‘빌어먹을 김태현.’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나의 친우.
[도플아.]김태현의 목소리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