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ng with the King’s Power RAW novel - Chapter 692
2부 108화
성력으로 만들어진 포식에 당하고 의식을 잃은 듯했다.
“빌어먹을….”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심상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
김태현이 탑주를 만나고 성력을 회복했듯.
자신 역시 회복된 체력 탓에 전력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패배했다.
변명의 여지 없이 압도적인 완패였다.
‘여긴 또 어디….’
의식과 함께 돌아온 시력이 불안정하다.
차츰 초점이 회복되기 시작하며 드러난 광경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두 팔과 다리가 사슬에 묶여 있었다.
속박의 사슬.
상계의 녀석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상계와 하계.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바깥’의 시스템을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걸.
문제는.
스스스.
츠즈즈.
사슬을 통해 마력과 신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이은 패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풀어.”
내뱉은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깼냐?]스륵.
자신의 머리 위에서 광휘가 내려앉는다.
광휘는 사람의 형태를 취했다.
김태현.
아니, ‘삼천세계의 포식자’가 바깥에서 이루고 있는 초월체의 모습.
조금 전의 상황이 겹쳐진다.
“쯧.”
또 깼냐고 묻는다.
다른 이가 봤다면 친우의 안부를 묻는 다정함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녀석에게 다정함이라.’
그럴 리 없지.
“사슬. 풀어라.”
촤르륵. 촤륵.
움직이려 할 때마다 속박의 사슬이 행동을 제약한다.
마치 자신이 심상세계에서 다른 이들을 처형할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처럼 얘기하더니. 끝까지 짜증나게 하는군.”
저도 모르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김태현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공간이 일렁인다.
녀석을 둘러싼 광휘 주위로 스파크가 튀고 마력과 신력이 충돌한다.
마치 공간이 녀석을 거부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이제 마무리 작업 중이니.]마무리 작업이라는 건 자신의 몸에서 마력과 신력을 뽑아내는 걸 말하리라.
대해와 같은 힘이 어느새 2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태현…. 또 무슨 짓을….”
[이제 김태현은 너지.]“뭐?”
[이름에는 힘이 있다. 그 이름이 너를 이쪽 세계에 존재하게 해줄 거다.]“…….”
나는 몸을 내려다봤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사용하고 있는 언어부터 지구인의….
[다른 녀석들에게도 설명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 정말 한계야.]그리 말한 김태현의 몸에서 일어나는 스파크가 더욱 심해졌다.
신력을 둘러 성력이 새어 나가지 않게 최소화하고 있다.
무리하여 세계의 법칙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렸다.
마력과 신력이 모두 뽑혀 나간 육체에.
스스스스-
츠즈즈즈-
새로운 힘이 밀려들고 있었다.
“……!!”
그 이질적인 기운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중급 성좌 ‘운명을 거스르는 요마왕’.
하급 성좌 ‘삼천세계의 포식자’.
삼천세계에서 탄생한 두 성좌의 성력(星力)이다.
자신이라는 특이점을 공유했던.
자신을 친우라 불렀던 성좌들의 힘이 구분되어 육체에 각인되었다.
포식자가 히죽 웃으며 두 손을 털었다.
[요마와 나의 성력이라 봤자 한 줌. 그 양도 제한적이다.]고작해야 한 줌.
하지만 앞으로의 전투에서 분명 한 번쯤은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 하였다.
“쓸데없는 짓….”
[너무 툴툴거리지 마라. 곧 이별할 사이인데. 넌 하고 싶은 말 없냐?]“기다리고 있어라. 이 몸이 바깥으로 나가는 날이 네놈을 먹어 치우는 순간이 될 테니.”
협박이었으나 김태현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기다리겠노라 말할 뿐이다.
젠장.
자신을 애처럼 다루다니.
치미는 짜증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이….
[어라. 너 우는 거냐?]김태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한번 공간이 진동한다.
[육체가 있으니 좋지? 그렇게 울 수도 있고 말이야.]“그런 거 아니니까 닥쳐.”
놀랍게도 김태현은 정말로 닥쳐 주었다.
스륵.
그가 휘두른 손에 속박하고 있던 사슬이 사라졌다.
[성력과 함께 맹약은 맺어졌어.]자신은 긍정한 적도 없는데.
맹약이라니?
어처구니없어하는 내 반응에도 김태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당분간은 김태현으로 살아야겠지만. 언젠가 너만의 이름을 얻게 될 날이 올 거다. 어떤 이름을 얻게 될지는 앞으로의 선택에 달렸겠지. 삼천세계를 부탁한다.]아니. 잠깐….
내 대답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김태현이 제 말을 끝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됐어, 탑주.]화아아.
적색 하늘이 열리며, 새로운 성력이 김태현의 몸을 휘감았다.
성력에 휩싸인 몸이 조금씩 사라진다.
[어디 한번.]두 번째 회귀를 마무리한 포식자는.
[마음껏 날뛰어 봐라.]삼천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김태현.
녀석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보이는 건 거대한 나무.
신수였다.
신수의 주위로 새롭게 재단장된 요정왕의 영역.
김태현의 눈과 기억을 통해 수없이 보았던 광경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일어났느냐?]로자리아. 자애로운 서큐버스 퀸이 기다리고 있었다.
“…….”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요정왕의 영역에 누워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무리했더구나.]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서큐버스 퀸의 시선.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녀의 적안과 마주하면 자신이 김태현이 아니라는 게 들통날 것 같아서다.
[…계약자?]‘젠장. 하필 만나도 저 녀석과….’
로자리아는 김태현이 가장 처음 계약을 맺은 대공이다.
누구보다 태현에 대해 잘 알고, 많은 기억을 공유한 전우.
만약 자신이 김태현의 몸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전투는 필연적이다.
“…….”
몸을 돌린 채 상태를 확인했다.
‘만신창이군.’
존재력은 심상세계에서 사용하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심상 세계를 벗어나며 원래의 육체로 돌아온 영향이었다.
이런 몸뚱이로 어떻게 자신에게 저항한 거지?
아니, 그것보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요정왕의 영역은 김태현의 본거지나 다름없다.
모여드는 녀석들 역시 계획에 동조하고 있는 대공들.
자신과는 앙숙이라 해도 좋을 관계였다.
‘이 몸이 김태현이 아니라는 게 알려진다면….’
눈앞의 로자리아는 물론, 영역의 주인인 요정왕이 가만있지 않으리라.
‘김태현이 떠났다는 말을 순순히 믿으려 하진 않을 테고…. 당분간은 숨겨야겠군.’
로자리아라면 정신지배로 기억을 샅샅이 훑으려 할 것이고.
엘븐이라면 마력을 입자 단위로 쪼개어 진실을 실토하라 고문할 것이다.
그녀들은 김태현에게 홀린. 반쯤 미친 것들이니까.
‘젠장. X된 상황이군.’
저도 모르게 김태현의 입버릇이 튀어나온다.
[계약자. 괜찮은 것이냐.]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지금은 로자리아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게 우선이다.
“괜찮…아.”
최대한 무뚝뚝하지 않게.
평소의 김태현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일대에 침묵이 감돌았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진다.
5초. 10초. 15초.
침묵이 길어질수록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놈의 육체는 쓸데없이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풍부하다.
체내에 형성한 마정석과 별개로,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심상 세계에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에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었다.
그렇게 30초가 지났을 즈음.
로자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본녀도 정신을 차려보니 심상 세계에서 빠져나와 있더구나. 이그문은 도망쳤고, 네 명의 악마왕은 현재 마계로 돌아간 상태다. 길페르는 엘븐을 통해 회복 중이지.]자신이 의식을 잃은 사이 있었던 일을 담담히 말해 주었다.
“…그래. 좀 쉬고 싶은데.”
[엘븐을 부르겠다.]아니. 그 미친년은 됐….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며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아니…. 혼자 있고, 싶다.”
[…알겠다. 본녀 또한 잠시 몽마성에 들릴 생각이니, 볼일이 있다면 언제든 부르거라.]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가 게이트를 열고 사라졌다.
몽마성까지 단번에 공간 이동한 것이다.
그녀의 기척이 사라지고 다시 1분.
그제야 나는 몸을 돌릴 수 있었다.
“일단 위기는 넘겼군.”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대화를 한 것도 잠깐이다.
자신이 김태현이 아니라는 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적색 하늘이 눈에 보인다.
분명 심상 세계와 같은 적색 하늘인데.
더 이상 갇힌 신세가 아니기 때문일까?
다가오는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자유라….”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에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김태현. 오리지널의 육체.
하계왕의 격을 얻었다 해도 여전히 부실한 육체.
이 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김태현이 이럴 때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질리도록 지켜봤으니까.
“상태창.”
이름: 김태현
나이: ???
등급: ???
칭호: ???
[고유스킬]포식捕食(???) – 사용불가
몽식夢食(???) – 부분허용
왕의 각인(???) – 부분허용
판도라의 상자(???) – 해제 불가
[일반스킬]여왕의 영역(???)
여왕의 명령(???)
공간 도약(???)
요정왕의 가호(???)
[소환스킬]정령왕 이그리트(???)
정령왕 젠키(???)
정령왕 바라노스(???)
떠오른 상태창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유독 ‘???’로 떠오른 항목이 많아서다.
탑을 오르는 데 정신이 팔린 김태현이 상태창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지만, 굳이 이전처럼 수치화된 정보가 없어도 제 몸 상태를 확인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건 일반 스킬 정도군.”
알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은 몸뚱이다.
심상세계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제약이 풀리겠지만, 김태현과 달리 자신은 도플갱어라는 존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최대한 다른 이를 끌어들이는 건 피해야 할 터였다.
‘성력은 사용할 수 없고…. 왜인지 신력도 봉인되었군. 귀찮게 됐어.’
가장 큰 타격은 포식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포식 그 자체인데. 포식이 봉인당하다니.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군.”
그리 중얼거리길 잠시.
띠링.
[고유스킬 포식(???)이 발동되었습니다.] [고유스킬 판도라의 상자(???)가 발동되었습니다.] [고유스킬 포식(???)의 발동이 취소되었습니다.]역시나 ‘판도라의 상자’가 강제로 발동되며 스킬이 캔슬된다.
그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고 있을 때다.
띠링.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탑의 관리자’가 형제의 몸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경고합니다.]탑의 관리자라면 난쟁이 녀석. 톨킨이다.
“뭐야. 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건가.”
“호오.”
[‘탑의 관리자’는 떠나간 형제의 의지를 ‘새로운 형제’가 잇기를 맹렬히 응원합니다.]새로운 형제.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 톨킨 이 녀석은 무능력해 보여도 어찌 되었든 탑의 간부다.’
앞으로 자신이 움직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군이었다.
그렇다면 서열 정리를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보상은?”
[‘탑의 관리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설마 무보수로 탑을 오르라는 건 아니겠지? 앞으로 어떤 녀석들이 튀어나올 줄 알고.”
[‘탑의 관리자’가 당황해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형제와의 맹약을 잊은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탑의 관리자’는 ‘새로운 형제’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느낍니다.] [‘탑의 관리자’는….]수많은 메시지가 눈앞을 가린다.
그럴수록 올라간 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이봐, 탑의 관리자.”
[‘탑의 관리자’가 불손한 의도에 불쾌함을 느낍니다.]지금 이 순간.
나는 김태현의 모습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 시끄럽게 굴면.”
[‘탑의 관리자’가 계속 말해 보라며 고개를 치켜세웁니다.]“너 먹어 버린다.”
필요한 건 협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