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결전(3)
한편···.
뉴욕 시내.
“다들 괜찮으십니까.”
검존 구동철.
그는 검을 가볍게 휘둘러 잔뜩 묻은 피를 털어내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치렀음에도 그에게는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 뭐···.”
존 록펠러가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순간에 뉴욕 곳곳에 출몰한 끔찍한 살덩이의 괴물과 거인. 아마도 다니엘 블랙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들이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전부 무사한 것 같군요.”
이걸로 한숨은 돌렸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방금 전까지 그들을 몰아붙이던 적이 사라졌으니. 최소한 전황이 그들에게 있어 불리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리라고 믿고 싶었다.
“잠룡, 그가 성공한 거겠죠?”
안젤라 록펠러.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월드 타워를 뒤덮고 있던 살덩이 역시, 어느새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긍정적인 사인이었지만.
마냥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핫, 이 아가씨가 당연한 것을 묻는군. 그거야 당연히 다니엘 블랙을 완전히 묵사발 내버렸으니. 이쪽의 흉측한 거인과 괴물도 전부 사라진 게 아니겠소!”
토르켈 한센.
그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 안에서 자신의 애병, 썬더 브링어를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일단은 이쪽 일도 대강 정리된 것 같으니. 여기서는 우리 회장님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떻겠소.”
“음, 그러는 편이 좋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오수진.
아직 뉴욕 도심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천무그룹이 아닌 록펠러 가문의 영역이다.
이미 충분한 빚을 지웠다.
이 정도의 정예 전력으로 사소한 관리까지 전부 도와주는 것은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지긋지긋한 블랙 가문과의 악연도 이걸로 끝이겠군. 검존,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 함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건 어떻소?”
까딱 손을 기울여 보이는 토르켈.
구동철은 그를 향해 헛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천무그룹에 소속되어 있더니. 한국 사람이 다 되어버린 모양이군.”
“뭐, 필드에서 먼지 마시고 땀 빼면서 뛰었으면. 목구멍에 기름칠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소.”
“나쁠 건 없지.”
어깨를 으쓱하는 구동철.
그렇게 연이은 전투로 경직된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지려는 찰나.
“잠깐만요.”
류한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방금 전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녀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 역시 굳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온다.
다니엘 블랙을 목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이들은 뭔가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설마, 우리 회장님이···.”
잘못 된 것은 아닌가.
토르켈은 차마 그 말은 입에 담지 못하고. 이마에 배어나오기 시작한 식은땀을 한손으로 훔쳤다.
“아니, 분명 다니엘 블랙이 부리는 괴물과 거인들은 사라졌어. 월드 타워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고. 우리 귀염둥이가 그 녀석에게 당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오수진이 그 추측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이들이 느끼고 있는 존재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 저기···.”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주건우.
그 손가락에 시선이 채 따라가기도 전에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중후한 존재감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
짧게 감도는 침묵.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 자리에서 제대로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건, 대체···.”
심지어 세상만사에 조예가 깊은 편이라고 자부하던 적마녀, 오수진마저도 저 거대한 존재감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그저 마른침을 삼키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다.
“한나 씨.”
주건우.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순간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이라는 것을.
“잠시, 이쪽을 부탁할게요!”
류한나가 뭐라 대답을 하기 전, 그는 기다리지 않고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달려 나갔다.
***
그 무렵.
현우 역시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으로 점점 더 명확하고 육중해지는 존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낯선 감각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녀석의 안배 중에 하나였던 심연에서 마주해본 존재감. 그러나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가 다를 뿐이었다.
‘착각일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현우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존재감은 사방에서 옥죄여 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지만. 주의를 조금만 더 기울여 느껴보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하늘.
특정된 순간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아직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변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구름 한 점이 없던 하늘.
그곳에 무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현우는 물론이고 이 세계의 누구의 눈에도 목격된 바가 없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지금까지 지구에 등장하지 않았던 검은색 게이트가 열리고. 그 너머로 서서히 빠져 나오는 형체가 보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현우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감각은 그저 존재감이 아니다. 압도적인 위압감과 공포감 따위의 복잡한 감각들이 한데 섞인 기묘함.
녀석은 그저 현존하는 것만으로 생물의 부정적인 본능을 최대한으로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
“···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눈.
명확하게 인간의 것이 아닌 노란 눈동자와 길쭉하게 찢어진 동공. 이를 마주한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영혼이 빨려 나간 것처럼 멈출 수 밖에 없으리라.
그나마 현우는 제정신을 유지하고 저 존재와 마주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평범한 인간은커녕, 웬만한 헌터라도 정신력이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단순히 저 눈동자와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마치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던져진 것만 같은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우우우─
녀석이 흘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신체를 휘감은 아지랑이···.
혹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이 보였다.
덕분에 거대하고 선명하게 보이던 눈동자 이외의 형체가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거대한 신형.
아니, 그것을 과연 신형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게 녀석의 본모습이었나.’
저 거대한 눈동자는, 분명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켜야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난색을 표현할 수 있는 것조차 운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녀석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으나.
아직, 그와 동시에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고. 현우의 목숨도 이렇게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벌일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으니.
“···젠장.”
눈가가 욱신거린다.
현우는 잠시 눈을 어루만지며 내뱉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안구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자토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녀석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쨌든 지금은 녀석이 이쪽에 접촉해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쯧, 하고 혀를 차며 털썩 주저앉아 잠시 숨이라도 고르려는 찰나. 누군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곳에 보인 것은···.
“형!”
주건우였다.
녀석은 지면에 처박듯이 착지를 하더니. 곧바로 현우를 향해서 한 달음에 달려왔다.
“무사했구나!”
“당연하지.”
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에 주건우는 주위를 잠시 살피는 듯이 눈을 굴리더니. 하늘에 떠 있는 아자토스의 거대한 형상을 곁눈질 하고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다니엘 블랙은?”
“죽었어.”
“역시···!”
스쳐가는 안도의 빛.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니엘 블랙이 죽었다면, 지금 보이는 저 위압적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능한 단서가 없었으니까.
“근데 그럼, 저건 대체···.”
“외신.”
그것밖엔 설명할 말이 없다.
현우 역시도 ‘아자토스’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바는 없었고. 녀석을 포함, 외신들이 세계를 그저 유희거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고차원적인 존재라는 것밖엔 알지 못했으니까.
“···외신?”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주건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우에게 되물었다.
“그게 뭔데?”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주건우가 입을 뻐끔거렸다.
현우가 모른다는 이야기에 아마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녀석의 동공이 마치 사시나무 떨리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지금 그들이 미증유의 압도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어··· 그, 그러면 어떡하지?”
“일단 뒤로 물러나 있어.”
주건우에겐 마주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현우 또한, 녀석의 본체로 생각되는 것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도저히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때.
아자토스의 형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형상.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곁에 있던 주건우가 숨을 삼켰다.
“저거, 형이랑 닮았···.”
닮았다고 해야 할까.
완전히 빼다 박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는 같았다. 주건우는 순간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끝까지 말을 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형체를 변화시킨 순간,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해낼 줄이야.”
주현우.
아니, 그와 같은 껍데기를 뒤집어쓴 존재. 외신 아자토스가 허공에 떠서 이곳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건···.
흡사 신적 존재의 강림 같아 보였다.
“훌륭하군.”
현우의 모습을 취한 존재.
외신, 아자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가볍게 박수를 쳤다.
“···뭘 하는 거지.”
“음, 인간들이란 이런 방식으로 상대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 아니었더냐. 분명히 방식이 틀리지는 않았을 터인데.”
까딱, 고개를 기울이는 아자토스.
이윽고 그는 전혀 괘념치 않는 듯이 다시금 현우를 향해서 짧게 박수를 쳤다.
“네 존재는 내가 계산했던 대로 이 지루한 유희에 충분한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삶을 반복하며 연못 전체의 물을 흐리던 한 마리의 미꾸라지, 다니엘 블랙도 처리해주었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현우는 가만히 녀석을 노려보았다.
“너는 선택을 받을 가치가 있다.”
선택.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회귀를 말하는 거냐.”
“완전히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다만. 네가 경험한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 이 유희의 세계를 벗어나 더 상위의 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다.”
아자토스가 속삭였다.
“이 세계가 유희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알면서도 모른 척, 계속해서 반복되는 세계를 매번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나는 너를···.”
아자토스가 씨익 웃었다.
“이 지루한 유희에서 탈출시켜주는 동시에 ‘우리’와 동격의 존재로 거듭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동격···?”
“그래, 동격.”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이는 분명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자, 어떤가.”
아자토스가 팔을 벌려보였다.
“부디 내 호의를 거절하지 말게나. 자네가 나와 함께한다면 더욱 새롭고 신선한 유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으니.”
“···.”
현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새롭고 신선한 유희.
그래, 결국 녀석에게 이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대의나 정의 따위는 알바가 아니지만,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거절한다.”
그래서 선택했다.
“유희는 너희들 끼리 즐겨라. 외신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들인 지야 모르겠다만. 적어도 서로 죽고 죽이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게 무슨 소리지.”
“다시 말해···.”
현우는 녀석을 향해 중지를 들어보였다.
외신인 녀석에게 뜻이 제대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욕은 만국 공용어라는 소리도 있듯이 최소한 늬앙스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꺼지라는 소리다.”
“호오.”
녀석이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눈빛은, 마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어쩔 도리 없이 부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의 것과 같았다.
“그래···.”
아자토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정녕, 그게 자네의 선택이라면.”
공격하려는 건가.
현우는 반사적으로 보폭을 넓히며 대응을 위한 자세를 잡았지만. 아자토스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존중해주어야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자토스는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도 주변에 퍼져 있는 자연의 마나를 통제하지도 않았다.
의념이 움직인 기색도 없다.
아자토스는 그저 그곳에서 현우를 향해서 빙긋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퍼억─!
둔탁한 파열음이 들린 순간, 멍하니 서 있던 주건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흐, 어···?”
주현우가 당했다.
아니, 이걸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주현우의 신체가 말 그대로 파열해버린 것이었다.
“유희는 이걸로 끝이다.”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아자토스는 짧은 선언과 함께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그는 그대로 이 세계에 종말을 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의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무언가.
아자토스, 그의 의지에 간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