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결전(完)
‘난···.’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다.
육신이 사라진 그 순간, 오감 또한 모두 사라졌기에 이걸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설마, 죽은 건가.’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부유하는 것만 같은, 도무지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각 속에 현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정말로 죽었다기엔 이상한데.’
여전히 사고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사후 세계인지.
아니면, 그저 육신을 잃고 영혼만 남은 것인지.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일단 아주 절망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을 되짚는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하나, 아자토스에 의해 자신의 육신이 폭죽처럼 터져버렸던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되짚는다.
전신이 파열하는 짧은 순간.
현우가 느꼈던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강렬한 미련.
설마, 그 감정이 이렇게 현우에게 죽지도 살지도 않은 애매한 유예를 만들어주기라도 한 걸까.
아니.
만일 육체가 존재했다면 아마도 현우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이다.
정확한 수단은 모르겠으나.
그 과정만큼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아자토스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완벽히 분해했다. 그건, 나로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도 없는 고차원적인 방식이었다.’
흡사 프로그램에 명령을 내리듯.
녀석은 말 그대로 현우를 그 자리에서 ‘삭제’시켜버렸다.
녀석의 의도는 뻔했다.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 현우라는 변수를 삭제하고. 본래의 목적인 유희의 완전한 끝을 가져오는 것.
‘하지만, 나는 이렇게 남아 있다.’
있을 리 없는 유예.
이는 아자토스, 녀석에게 있어 분명히 계산 밖의 상황일 것이다. 이는 변수고, 다시 말해 반전의 초석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삭제’에 유예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아자토스에 준하는 존재들뿐일 터.
그렇게 사고가 도달한 순간.
현우의 앞에 또 한 번의 오감을 초월한 기묘한 경험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불꽃.
의식 저변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무형의 불꽃이 현우의 정신을 휘감았다.
인위적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현상.
곧, 현우는 아자토스와 비슷한.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어떤 존재감을 느꼈다.
‘또 다른 외신인가?’
이는···.
마치 누군가 현우를 위해 조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의문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으나.
지금의 현우로서는 딱히 선택지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현우는 범접할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있는 불꽃 속에서. 매우 낯익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창천신공.
그 순간, 뇌리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이해했다.’
처음 마나에 대해 깨우치듯.
그리고 마나의 우위에 있는 의념의 영역에 입문했던 것처럼.
창천신공과 불꽃의 근본이 닿아 있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지며 현우의 심상이 거대하게 확장되었다.
‘조부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거다.’
주양태 회장.
그 역시도 회귀자로서 한 때 이 세계의 변수였다. 그러니 본인이 알지 못한다 해도 당연히 외신과 접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창천신공.
‘역시,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나.’
주양태 회장으로부터 비롯되어 이제는 주현우라는 존재로서 완성된 무공. 이는 이미 의념의 불꽃인 신화로 승화되었을 때부터 ‘무공’이라는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렇게 이 순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외신의 권능, 그 편린이다.’
그들이 이 거대한 유희를 계획하며 세계에 던진 변수 중에 하나.
그리고 지금, 그 변수의 불씨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쳐 이 순간, 진정한 ‘신격’에 준하는 화마로 거듭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에 유예를 주고.
‘신격’의 발화를 이루어준 존재. 그는 아마도 이 불꽃의 근원에 해당하는, 알 수 없는 외신이겠지.
‘어쨌든 내겐 기연을 만난 셈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천천히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현우 또한, 자신의 의식을 불꽃 속으로 집어삼키며 신격에 대한 이해를 빠르게 키워나갔다.
불과 몇 초 사이.
어렴풋한 빛이 현우의 의식 속에 떠올랐고. 이는 곧, 거대한 깨달음의 폭발이 되어 연쇄적으로 그의 의식 저변을 확장했다.
만일 육신이 있었다면, 아마 그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이런 거였군.”
형상화 하는 것은 불꽃.
이 세계가 외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들의 유희에 불과하다면, 현우는 그 유희 속에 던져진 하나의 변수이자 불씨였다.
그리고 불씨는···.
촉매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불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겁화로 거듭날 수 있는 화력을 품고 있으니.
‘이거라면···.’
아자토스.
분명, 녀석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
***
“혀, 현우 형···!”
눈앞에서 폭발한 그를 부르짖으며.
분노한 주건우가 앞 뒤 가리지 않고 일단, 아자토스를 향해 달려들려던 그때.
“어, 어어···?”
다시금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화아악─!
허공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불꽃은 찰나의 순간, 하나의 인형(人形)으로 거듭났다.
주현우.
그가 이 세계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자토스.
주현우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을 뿐인, 범접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존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넌, 내가 분명히···.”
사고가 복잡해진다.
이 세계의 삭제 과정에 다른 외신들이 간섭해 온 것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현우.
녀석이 이렇게 돌아온 것은 아자토스, 그의 예상을 초월한 결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당황케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격이 달라졌다.’
더 이상 인간 따위가 아닌.
외신인 그에 준하는 신격이 느껴졌다.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은 모양이군.”
덤덤한 한 마디.
아자토스는 흔들리는 눈으로 주현우를 바라봤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그의 경험 속에도 이런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으나.
현우는 한 마디의 대답도 없이 그저 천천히 아자토스를 향해 걸어올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아니.”
재차 묻는 질문에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동문서답에 가까운 대답에 아자토스의 눈이 가늘어지는 찰나. 현우는 가볍게 자신의 손을 몇 번 쥐락펴락 하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질문이 틀렸다 아자토스. 네가 물어봐야 했던 것은 ‘어떻게’가 아니다. 방법을 안 다고해서 결과가 변하지는 않으니까.”
“···주현우.”
“네가 물어봐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뿐.
“내가 너를 어떻게 처리할 지다.”
현우는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물론, 아자토스가 굳이 질문을 통해서 묻지 않아도 제대로 알려줄 생각이었다.
“이, 하등한 녀석이···.”
아자토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시야에 비친 것은 자신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뻗으며 도약하는 주현우의 신형이었다.
“···!”
반사적으로 그는 손을 내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눈앞의 존재를 아예 분해해버릴 수 있다. 그게 외신으로서 그가 가진 상식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그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고.
숨을 쉬며 눈동자를 굴리는 것처럼. 외신, 아자토스로서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권능의 행사 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의문에 대해 자세히 숙고해볼 여유는 없었다. 빠른 속도로 목전까지 도달한 현우의 주먹이 정확하게 그의 턱을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커, 허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먹에 얻어맞은 녀석이 그대로 지면을 향해 고꾸라졌다. 현우는 녀석을 향해 픽, 하고 웃어보였다.
“네가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허접한 수준의 움직임을 보니. 직접 몸으로 뛰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네.”
“끄으으···!”
아자토스는 어금니를 강하게 씹으며 바닥을 기었다. 억겁에 가까운 세월을 초월자로 살아오며 경험하지 못한 격통이 그의 의식을 불쾌하게 점유하고 있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현우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녀석은 인간에게 있어서 대응이라는 단어조차 성립하지 않는 그야말로 재앙 이상의 존재였으나.
녀석은 분명 당황하고 있었다.
‘저 재앙과 같은 존재도 한낱 의식과 자아를 가진. 근본에 있어서는 인간과 별반 다를 바도 없다는 거다.’
신적인 존재.
그건 단순히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수준의 격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뿐. 결국, 녀석은 완벽한 의미의 신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지칭할 정도로 압도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였을 뿐.
‘지금의 나는, 녀석과 동격···.’
아니, 그 이상이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의식하며. 현우는 이제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아자토스.”
쓰러진 녀석에게.
현우는 천천히 다가갔다.
“일방적인 고민이긴 하지만, 내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봤거든. 어떤 마무리가 네게 있어 가장 비참하게 느껴질지.”
답은 간단했다.
똑같이 돌려주면 된다.
“네가 가지고 놀던 인간처럼 죽는 것. 아무래도 그게 네게 있어서는 가장 비참한 끝이 아닐까 싶더군.”
“이···!”
녀석이 양손으로 바닥을 내짚으며 현우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하등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네.”
외신으로서 가진 압도적인 권능이 통하지 않으면, 아자토스는 놀랍게도 무력한 인간 수준의 저항밖에는 하지 못했다.
현우는···.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녀석에게 절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놈···!”
녀석이 황급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그 선택마저도 현우의 손바닥 안이었다.
현우가 손을 뻗었고.
아자토스, 녀석의 실체가 그의 손아귀를 향해 끌려왔다. 당연히 필사적인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우득
그렇게 현우는 즉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버둥거리는 녀석의 목을 꺾어버렸다.
녀석의 ‘주현우’라는 존재를 이 세계에서 삭제했던 것처럼. 현우 역시, 녀석이 행사한 권능과 마찬가지로 녀석의 실체를 비틀어 꺾어버린 것.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추욱 늘어지는 아자토스.
이윽고.
현우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녀석의 신체가 서서히 먼지로 변한다. 이는, 녀석이 분명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증거였다.
“후···.”
이제 정말 끝이다.
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다니엘 블랙과 질긴 인연도. 그리고 언젠가는 매듭을 지어야만 했던 ‘외신’이라는 아자토스와의 마무리도. 이 순간, 전부 끝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정신적 피로감이 단번에 몰려왔다.
“···피곤해 죽겠네.”
실제로 한 번.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쉬고 싶었다.
“야···.”
현우는 주건우에게 손짓했다.
이 모든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녀석은, 오랜만에 이름을 불린 강아지 같은 속도로 현우에게 뛰어왔다.
“응, 현우 형!”
“뒤는 알아서 수습 좀 해줘.”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이미 현우는 밀려드는 피로감에 눈을 감고 있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현우는 천무그룹의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꽤, 오래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천천히 몸을 일으킨 순간.
현우의 눈에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는 주양태 회장의 모습이었다.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 탓에 현우는 몸을 반쯤 일으키던 자세 그대로 우두커니 멈추고 말았다.
“···조부님?”
주양태 회장.
아니, 이제는 전 회장인 그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건강을 전부 회복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으나. 다행히 곧 죽을 것 같이 수척한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던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더군.”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리고 다행히도 모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고생이 많았다.”
짧은 한 마디.
주양태 전 회장과 현우 사이에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낯간지러운 기류가 감도는 찰나. 벌컥, 회복실의 문이 힘차게 열렸다.
“형!”
주건우.
그리고 그의 뒤에 류한나가 따라서 회복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어.”
걱정스레 묻는 주건우.
현우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진짜로 괜찮은 거야?”
“그럼, 당연히 괜찮지. 대단한 부상을 입었던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잠깐 눈 좀 붙인 거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설마, 모르는 거야?”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이후로 형은 벌써 삼 일이나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었어. 이대로 영영 눈을 안 뜨는 건가 걱정했다고!”
“걱정은 무슨···.”
현우는 멋쩍게 웃었다.
새삼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입니다.”
류한나가 한 마디 거들었다.
“주건우 도련님은 매일 주현우님의 손을 붙잡고 우셨습니다. 매번 손을 닦느라 힘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오늘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겠군요.”
“···.”
뭘, 닦았다는 걸까.
현우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나저나.”
주양태 전 회장이 입을 열었다.
“큰일들은 모두 지나갔지만, 이대로 가만히 쉬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나는 이미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기에 천무그룹의 미래는 네 손에 달려있다.”
그는 약간의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봤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글쎄요···.”
특별히 생각해둔 것은 없다.
하지만, 결전이 끝난 지금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중심에는 천무그룹이 서 있을 것이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남았다.’
과거의 차원.
우선은 그곳부터 제대로 수습하자. 그리고 천무그룹을 중심으로 세계를 안정시킨 후엔, 모든 것을 ‘대전이’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을 생각이었다.
또한, 아자토스 외에도.
이 세계에 간섭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외신의 존재를 탐색하고. 이들의 영향력에서 세계를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까지.
‘이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하지만 시간만 오래 걸릴 뿐.
이제 외신과 동등한 격에 다다른 현우에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해야 할 일.
아니,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일단은···.”
현우는 가뿐한 몸으로 일어났다.
앞으로 일이 뭐가 되었든 간에, 두 번의 삶을 반복하며 드디어 원하던 종지부를 찍은 지금은 반드시 이걸 하고 싶었다.
“다 같이 축배부터 들죠.”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진탕 취해서 이 종지부의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