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잃어버린 조각 (4)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그날 공희찬이 펼친 푸른 화염은 물살처럼 흐르는 진흙에 들붙어 곧장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덕분에 나와 동료들은 전생에서 이 사고로 사망했던 대학생을 구할 수 있었다.
이능단속‧관리본부 소속 헌터들이 현장에 나타난 건 거대한 바위와 고꾸라진 나무를 막아 내고 대학생을 구한 직후였다. 그들이 나와 동료들을 지나쳐 정상 근처로 다다랐을 즈음에는 취우 소속 헌터들에 의해 게이트가 거의 닫힌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의 일을 차분하게 곱씹던 나는 휴대전화의 액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사고가 수습되던 날 저녁부터 지금까지 범람은 온통 나와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로 소란스러웠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쉰 뒤 그날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건물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재생했다. 공희찬이 전개한 푸른 화염이 중턱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와 산책로 초입을 덮으면서 진흙이 모조리 사그라드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공희찬이 일으킨 불길을 지표 삼아 뒤로 물러나면서 거대한 바위와 일자로 고꾸라진 나무를 막고 있는 나와 동료들이 보였다. 우연히 사고 현장을 맞닥뜨리고 패닉 상태가 되어 있던 대학생을 발견한 뒤 곧바로 등을 밀쳐 대피시킨 것도 공희찬이었다.
해당 영상은 범람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영상을 확대한 뒤 공희찬이 대학생을 밀쳐 피하게 만드는 장면을 프레임 단위로 캡처하여 분석했다.
댓글에서는 그가 아니었다면 대학생은 꼼짝없이 깔려 버리거나 피하는 과정에서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줄지었다.
이런 흐름은 처음부터 예상한 것이었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사흘 동안 같은 영상을 틈날 때마다 돌려보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영상 속에서 공희찬은 역류하는 진흙과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 기물과 맞서는 듯했으나 이따금 허공을 두리번거리거나 고개를 내젓는 등의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다.
잠시 멈춰서 한숨을 쉬고 주먹을 다잡는 모습까지 발견한 뒤에는 그 부분만 계속 되감기하면서 당시의 그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가늠해 보았다. 짐작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되도록 직접 듣고 싶었다.
똑똑―
“들어와.”
그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곧바로 대답하면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자 설연호와 김미솔이 태블릿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 짐 정리는 아직인가 보네.”
“그러게. 짐은 한참 전에 옮긴 것 아니었어?”
나는 들어선 순서대로 말을 꺼낸 두 사람에게 가볍게 웃어 보인 뒤 책상 맞은편에 놓인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제 슬슬 정리해야지.”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김미솔은 이내 가리킨 자리에 앉으면서 책상 위에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사고 영상 보고 있었네? 오면서 잠깐 모니터했는데, 이른 아침인데도 시끌시끌하더라.”
김미솔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설연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탰다.
“어떤 사람들은 그날 사고를 예언한 것도 우리가 아니었냐고 추측하더라고.”
연이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가운데 놓인 의자를 끌어서 앉았다. 이어서 휴대전화를 들어 고정인이 전날 남겨 둔 보고를 눈으로 재차 훑어 내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기는 해도 공통적인 흐름은 비슷해. 당장은 예언이니 예측이니 하는 것보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더라.”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고 별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데 안도한 사람들은 범람에 올라온 동영상 속 사람들에게 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너희 그것도 봤어? 사람들이 애들을 베이지, 아이보리, 그레이 뭐 이런 식으로 곰인형 색깔로 구분해서 부르던데.”
김미솔은 손끝으로 입가를 감춘 채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서 찍은 영상이라 노이즈가 생겨서 얼굴이나 명찰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와 다른 사람들의 교복 재킷 주머니에 꽂혀 있던 곰 인형을 발견한 데서 시작된 듯했다.
공희찬이 사람을 구한 동영상만큼 화제가 된 것이 바로 그 대목이었다. 끝내 산책로를 지나 대학교 건물 앞쪽 작은 광장까지 밀려온 바위와 맞서고 있을 즈음 교복을 입고 있던 다른 동료들의 주머니에도 똑같은 디자인의 인형이 꽂혀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당연히 봤지. 색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어떤 사람이 애들 교복 주머니에 담긴 인형만 잘 보이게 캡처해서 올린 게시물 때문인 것 같던데.”
이 대목에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게 되리라는 건 예상치 못했기에 다소간 떨떠름했으나 나쁘지 않은 변수였기에 감안하고 말았다.
“뭐,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헌터 아카데미의 졸업생이라는 게 금방 추정돼서 다행이었지.”
잠시 뒤 휴대전화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 범람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이거 걔네잖아 ㄷㅎㅇ 이랑 동아리애들] [야 검색하니까 바로 나옴 신규길드래] [그럼 걔네 길드원 모집 얘기는 없음? 궁금한데]매일 들여다봐도 말을 하다 마는 것 같은 댓글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던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설연호에게 물었다.
“기자들 반응은 어때?”
그 말을 들은 설연호도 휴대전화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짧게 탄식하면서 대꾸했다.
“지금도 전화 오는 데가 있어. 인터뷰 같은 건 안 하겠다고 거듭 얘기했는데도 이러네.”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우리는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계속 가만히 있으면 언론에서도 금방 관심을 거두고 이관부의 대처가 늦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느니, 뭐니 하는 얘기로 넘어갈 거야.”
나와 설연호의 대화를 듣던 김미솔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그녀의 눈길은 여전히 태블릿 화면에 고정된 채였다.
“그리고 인터넷 기사랑 뉴스 다시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 새벽부터 우리 얘기보다 이관부 얘기가 훨씬 많아지고 있어. 학생들이 졸업식까지 이탈해서 사고 현장으로 넘어갈 동안 이관부는 대체 뭘 한 거냐고 책망하는 분위기야.”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이 잠시 고요해졌다. 각자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범람이나 언론의 반응을 살펴보던 중 설연호가 넌지시 목소리를 냈다.
“음, 희찬이는 아직 연락 없는 거지? 이대로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되면 희찬이가 첫 번째 스카우트 헌터가 되는 건가?”
“음, 그런데 공규호 의원이 희찬이를 가만히 둘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랑 연락을 완전히 단절하고 지내는 건 아니겠지.”
“그때 봤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 열의도 있어 보였고 의욕적인 것 같았어. 그때 잠깐 마주치기는 했지만 제대로 얘기를 나누질 못해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나는 차분한 어조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고가 수습되고 바로 다음 날 공희찬에게 길드 소속 헌터로 계약할 것을 제안하며 서류를 보냈으나 아직 답이 없는 상태였다.
“아무튼, 고민할 시간을 더 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계약서를 바로 보내 버려서 의외이긴 했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거야?”
둘 다 궁금했던 부분인지 똑바로 쳐다봐 오는 두 쌍의 눈에 나는 허공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희찬 선배의 마음을 확실히 돌리려면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꽤 진지하다는 걸 선배도 알게 됐을 테니 고민이 끝나는 대로 연락을 주겠지. 기다려 보자.”
그렇게 말한 뒤 태블릿에 저장해 두었던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두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제 보냈던 자료들 확인했어?”
내가 두 사람에게 보낸 자료는 이능단속관리본부에 등록된 길드 이름과 소속 헌터의 수를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토대로 지난 이틀 내내 우리가 경쟁해야 할 길드와 넘어서야 할 길드 그리고 인수 합병을 제안하는 것이 유리할 만한 길드를 분류했다. 품이 제법 많이 드는 복잡한 작업이었으나 전생의 기억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테고리마다 다른 색으로 분류해 뒀어. 오늘은 우선 눈으로 훑어보면서 감을 익힌다고 생각하면 돼. 각 지역에서 유명한 길드나 우리랑 성향이 맞지 않을 것 같은 길드도 정리해 뒀으니까 참고하고.”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잠시 차치하고, 추가로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이어서 태블릿 화면을 두드려 다음 자료로 넘긴 뒤 두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밀어 두었다.
“이름은 백이현. 성별은 남자. 나이는 스무 살. 재작년 여름에 B급으로 각성했어. 백이현 헌터도 제혁이처럼 헌터 아카데미에 중도 입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거절했대.”
내가 내민 화면을 힐긋거린 두 사람은 각자 소지한 태블릿에 같은 자료를 띄우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기록이 생각보다 괜찮은데?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 정도면 꽤 훌륭해 보여. 소속이 없는 걸 보면 아직 고민 중인 건가?”
금세 자료를 다 훑어본 김미솔이 나에게 물었다. 머지않아 설연호까지 고개를 들더니 무언가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이현 헌터라면 나도 알고 있었어. 리호에서도 데려오려고 했었거든. 아무리 봐도 놓치기엔 아까운 인재인데, 우리 말고도 다른 길드의 제안도 다 거절했대.”
“어째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본인은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했어. 적당히 돈벌이만 하면 충분하다고.”
설연호의 말을 가만히 듣던 김미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길드끼리의 인수 합병을 제안하기 전에 이름값 있는 헌터를 몇 명 데려와서 길드의 명망을 높여 보자. 일이 잘 풀린다면 우리가 처음으로 스카우트해서 데려온 헌터는 백이현 헌터가 되겠지. 두 사람 다 동의한다면 이 자료는 예성이한테 넘기고 그쪽이랑 컨택을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어때?”
지잉―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던 찰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는 공희찬이었다.
“여보세요.”
―너 몇 층에 있냐?
“인사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계약서 쓰려고 건물 들어왔는데 몇 층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그대로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살짝 떼어 내면서 설연호와 김미솔을 돌아보았다. 그 두 사람도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감지한 건지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거면 온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선배. 지금 어딘데?”
―엘리베이터 앞.
“지금 내려갈게. 조금만 기다려.”
그대로 통화를 종료하고 내부를 둘러보니 김미솔은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나는 남아 있던 설연호와 눈을 마주치면서 가볍게 웃어 보였다. 이로써 잃어버린 조각 하나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