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새로운 국면 (2)
“한마연에 관한 거? 대외적으로 도는 정보 말고 더 알아낸 게 있는 거야? 내가 알아보려고 했을 때는 어느 부분부터는 정보가 꽉 막혀 있더라고.”
김미솔은 기억을 되짚어 보는 듯 허공을 보다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공희찬은 한숨을 얕게 쏟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뒤 모두와 차례대로 시선을 맞췄다.
“작년이었나? 해월이 쟤 등급 상승한 것 때문에 범람이 술렁였던 거, 다들 기억하지? 뭐 너희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알겠지만.”
“그때 그 일도 지켜보고 있었구나.”
곧바로 받아치는 설연호의 말에 조용히 수긍한 공희찬은 주위를 돌아보더니 목소리를 올려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여기 뭐 마실 건 없어? 한참 전부터 나만 계속 떠들었더니 슬슬 목마르네. 그보다 바깥에 불은 왜 꺼 놓은 거냐? 난 또 깜짝 파티라도 해 주는 줄 알았잖냐.”
똑똑―
“파티 대신 깜짝 등장은 어때?”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고정인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음료 캐리어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음, 딱 보니까 알겠네. 너희 희찬이 제대로 반겨 주지도 않고 일 얘기만 하고 있었지?”
“역시 용하다니까. 잘 마실게.”
테이블 가운데로 상체를 숙여 음료를 한 잔 가져간 김미솔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한숨을 크게 내쉰 공희찬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얘네가 그렇지 뭐. 잘 있었냐?”
나는 맥없이 웃으면서 얼음이 한가득 담긴 커피를 가져와 설연호에게 내밀었다.
“아, 고마워. 그나저나 정인이 넌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야? 하루 종일 잘 거라며.”
설연호는 커피를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시곤 분주하게 움직이는 고정인에게 물었다. 앉은 자리에서 노트북을 펼치던 고정인이 공희찬을 힐끔거리면서 대답했다.
“희찬이 때문이지, 뭐. 동기끼리 서로 챙겨야 하지 않겠어?”
이윽고 마우스와 충전기까지 꺼내 세팅한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희찬에게 다가가더니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아, 아! 야, 너 뭐냐? 왜 꼬집는데?”
곧장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틀던 공희찬이 고정인을 노려보았다. 방금까지 차분한 기색을 보이던 고정인도 물러서지 않고 매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넌 그걸 몰라서 물어? 너 그동안 우리가 연락했을 때는 확인하는 척도 안 하더니 해월이가 연락하니까 바로 받더라? 그때 그렇게 연락 두절되고 나서 졸업도 안 하고 사라졌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야, 그거는 내가 다 사정이…….”
“사정은 무슨 사정!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준희 걔가 그렇게 떠난 게 마음에 걸렸으면 우리한테 말을 했어야지, 너까지 도망치면 다야? 제일 늦게 들어온 나보다 책임감 없이 굴면 어쩌자는 건데?”
“아,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니까? 야, 근데 나 왜 혼나는 거냐?”
고정인이 허공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따박따박 몰아세우자 공희찬이 점점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이내 어깨를 잔뜩 움츠린 뒤 꼬집힌 팔뚝을 감싸던 그가 나를 돌아보면서 눈짓으로 도움을 청했다.
“정인 선배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뭐.”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한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 주는 걸 굳이 말리고 싶지 않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아, 미안하다고. 내가 진짜 미안하다니까! 넌 못 본 사이에 애가 왜 이렇게 사나워졌냐?”
혼자서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진땀을 빼면서 사과한 공희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정인이 앉아 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손수 끌어당겼다.
“일단 앉아. 이제 막 중요한 얘기 꺼내려고 했으니까.”
“중요한 얘기? 뭔데?”
공희찬을 따라서 순순히 자리에 앉은 고정인이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희찬은 남몰래 고개를 젓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숨을 골랐다.
“한마연에 관해서 희찬이가 알아낸 게 있대. 그거 얘기하려던 참이었어.”
그때 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김미솔이 마시던 음료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아, 잠만. 이걸 다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고정인 너도 차정주 이사장이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라는 건 알고 있지?”
다시금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공희찬이 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고정인을 돌아보면서 운을 뗐다.
“응, 알아. 근데 나 궁금한 게 있어. 돈을 벌 만큼 벌었다는 어른들은 왜 결국 정치판으로 빠지는 걸까? 그게 그렇게 좋은 건가.”
고정인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더러 있었으나 금세 고개를 저었다.
“차정주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각성자들의 처우에 관해서 계속 얘기하던 사람이었잖아. 헌터 아카데미를 지은 것도 그 일환이었고. 뭐,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투쟁하던 사람은 어디 갔나 싶지만.”
이어지는 김미솔의 말에 수긍하고 있으니 공희찬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것도 아버지 수행원들 통해서 들은 풍문인데, 이사장이 차진명을 이관부에 보낸 건 몇 년 안에 걔를 거기 우두머리로 앉힐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래. 차정주 이사장이 정치판에 뛰어든 목적은 거기 있을지도 몰라.”
“뭐? 정말?”
“어, 진짜야. 생각해 봐. 헌터 아카데미는 자기가 직접 세웠고, 한마연도 대학 동기인 박호재가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게 뭐가 있겠어?”
이어지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입술을 벙긋거리던 고정인은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나로서는 한참 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전생의 내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그때의 난 이런 흐름을 눈여겨볼 새도 없이 성장에 매진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 또한 현재의 차진명과 마찬가지로 이능단속‧관리본부 내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하느라 다른 것을 돌아볼 새가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차가운 커피를 손끝으로 쥐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하던 얘기 마저 한다?”
공희찬은 또 다른 이야기의 서두를 열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B급으로 상승했던 작년 가을로 되돌아갔다.
당시 범람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꾸준히 지켜보던 수행원들은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바로 한국마력연구소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범람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되게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 우리도 한참 지켜보다가 사람들은 그냥 한마연의 이름이나 권위만 빌려 와서 으스대는 거라고 판단했는데. 혹시 뭐가 더 있었던 거야?”
한참 이야기를 듣던 고정인이 넌지시 물었다. 곁눈으로 그녀를 살피던 공희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연은 헌터 등급 측정 기구가 출력한 결과를 임의로 건드릴 수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증거가 있어?”
그 순간 반사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은 나의 질문에 공희찬은 눈을 맞춰 오며 대답했다.
“아직 정황 증거에 불과해. 하지만 다들 이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잖아?”
공희찬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버지 수행원 중에 F급 각성자가 있어. 그 사람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데리고 있던 사람이고, 능력도 꽤 출중해. 정황 증거는 그 사람한테 있어. 내가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대뜸 집을 나와 버려서 문제라면 문제지만…….”
차가운 음료를 쥐고 있던 탓에 물기가 묻은 손가락을 옷자락에 닦던 공희찬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불법 마석 가공물도 거기서 만들었을걸? 그리고 우리가 막아 낸 용산 던전 브레이크의 배후 또한 그쪽 사람들이랑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뭔가 뒤가 구리다는 건 계속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까 감회가 새롭다. 누가 들으면 비리 종합 선물 세트라도 되는 줄 알겠어.”
잠자코 듣고 있던 고정인의 말에 다들 피식 웃었다. 나 또한 풀린 분위기에 편하게 말을 이었다.
“뭔가 수상한 짓을 벌이고 싶은 거라면 한마연이 딱 적당한 것 같기는 해. 거기 위치가 좀 애매하잖아. 한국대는 국립대지만 연구소 자체는 차정주 이사장이랑 박호재 연구소장 손에서 규모가 커진 거라 국가기관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대학의 울타리에 있는 만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 쉽게 들여다볼 수도 없어. 대학 사회는 게이트 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폐쇄적인 걸로 유명하기도 했고.”
뒤이어 김미솔이 내 말에 넌지시 의견을 더했다. 이내 모두가 생각을 정리하려는 건지 회의실 내부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사실 난 희찬이 네가 더는 헌터로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인지 이 많은 걸 네가 다 알아냈다는 것도, 그걸 우리한테 말해 주는 것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한참이 지나서 다시 입을 뗀 건 설연호였다. 공희찬은 그의 질문을 듣고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더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수행원들을 따라서 열정적으로 조사했던 건 아버지한테 신임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어.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아버지가 날 돌아봤거든.”
“…….”
“그런데 얼떨결에 게이트 사고를 막아 내고 나서부터 생각이 좀 달라졌어. 난 내가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할 줄 아는 건 불태우는 것밖에 없는 머저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꼭 아닌 것 같더라고? 이건 아까도 얘기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되묻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숙인 공희찬이 마른 입술을 축이면서 말했다.
“그냥 그게 다야.”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묵묵하게 전한 공희찬이 계약서에 손을 얹었다. 나와 동료들은 그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뭘 또 그렇게 심각해지냐? 나 진짜 괜찮으니까 괜히 걱정 같은 거 하고 그러지 마라. 안 괜찮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머지않아 공희찬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예전과 사뭇 달라지기는 했으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와 함께했던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은 그저 다시 그와 마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 * *
공희찬과 다른 동료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내다본 창밖은 어둑해진 상태였다. 공희찬에게 받은 계약서를 잘 보관해 둔 나는 태블릿을 들여다보면서 백이현에 관해 다룬 정보를 점검했다.
지잉―
잠시 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곧바로 확인해 보니 김미솔이 남긴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백이현 헌터가 만남에 응하겠대] [의외로 순순히 알겠다고 하더라]이윽고 김미솔에게 고맙다는 말을 적어 보낸 뒤 태블릿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그를 데려오려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재능이 출중한 헌터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역시 익숙해.”
나는 백이현과 아주 오래전에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