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마침내 떠오른 (1)
어느덧 뉴스가 시작하기까지 십여 분의 시간만 남겨 둔 채였다. 직전까지 태블릿을 통해 범람의 반응을 주시하던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뻐근한 뒷덜미를 주무르고 있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한숨이 쏟아졌다. 맞은편에서도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정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 분위기가 바뀌었어. 몇 시간 전까지 정황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던 사람들도 잠잠해졌고. 이제 여기서 뉴스만 뜨면 더는 말 못 하겠지.”
“고생했어, 선배.”
“우리 둘 다 고생했지, 뭐. 다른 사람들은 퇴근했대?”
후련한 목소리로 대꾸한 고정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회의실의 스크린을 내리고 불을 껐다. 그 말을 듣고 뒤집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이런저런 연락이 많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연호 선배랑 미솔 선배는 따로 얘기할 게 있어서 잠깐 들어오나 봐. 선배, 저녁으로 샌드위치 괜찮지?”
“완전 땡큐지.”
간결하게 대꾸한 고정인이 노트북 앞에 앉아 스크린 화면에 뉴스 생중계 화면을 틀었다. 머지않아 설연호와 김미솔이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우리 왔어. 뉴스 시작했나?”
“어,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바깥에서 비가 내리는 모양인지 옷자락이 젖은 두 사람은 서둘러 짐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머지않아 빗방울이 부딪혀 내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잠시 뒤 뉴스 오프닝 영상이 재생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부스럭거리던 이들은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얕게 울려 퍼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나타난 앵커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향해 인사한 뒤 입을 열었다.
―오늘 아홉 시 뉴스는 NBS가 단독 취재한 내용을 전해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효신 그룹을 주축으로 한 백억 대의 주가 조작 정황이 확보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희 취재 팀은 추가로 제보를 받아 취재해 왔고, 취재 결과 실제 주가 조작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금융당국에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오한빈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앵커의 설명을 끝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오한빈이 나타났다. 그는 지난 오 년 동안 효신
그룹의 계열사를 주축으로 시작된 주가 조작 정황에 대해 언급하면서 리포트를 시작했다.
나는 금융당국 건물 앞에 서서 명확한 어조로 리포트 중인 오한빈을 바라보았다. 스크린 속의 그는 사석에서 만났던 것과 달리 한층 곧은 자세로 서서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설명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달싹거렸다. 아주 오랜만에 리포트를 진행하는 그의 심정이 은연중에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 오한빈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거듭된 인사이동을 통해 서서히 자리가 밀리면서 결국 행정 부서에 배정되었다. 이번 생과 달리 전생에선 그 시기가 조금 늦긴 했었지만, 당시에도 밀려난 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억대로라면 그때 오한빈은 선거 직전에 차정주의 선거 캠프 내부 비리를 건드렸다가 밀려났었다. 이번에도 그가 같은 아이템을 취재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늘 뉴스를 계기로 우리 길드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으니 만약 후일의 그가 같은 문제로 차정주 세력의 압박을 받게 되더라도 그를 지켜 내면서 함께 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금융당국은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해당 사안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NBS 오한빈이었습니다.
오한빈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회의실 곳곳에서 헛숨이 터져 나왔다. 김미솔이 다시 불을 밝히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나누는 동안 나는 태블릿을 가져와 범람의 반응을 확인했다.
[??? 방금 뉴스 본 사람] [저거 ㄱㅎㅅ네 그룹이잖아 ㅎㅅ이 지금 왜 터지는 건데?] [뭔데 저게 누군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효신은 아는데 그게 지금 얘기하던 거랑 무슨 상관임?] [혹시 저 뉴스랑 ㄱㅎㅅ랑 관련 있는 건가? 그런거면 개쌉소름] [ㅁㅊ; NBS 독기 지린다 근데 방금 나온 기자 뭔가 익숙한 것 같은데] [단독 달고 나온 거면 적어도 일주일 내내 효신 얘기만 하겠네] [혹시 지금까지 언급되던 ㄱㅎㅅ라는 사람이 ㅎㅅ 그룹에 유일한 각성자인가 뭔가 하는 걔였음? 아는 사람 설명 좀] [이렇게 되면 ㅎㅅ이랑 ㄱㅎㅅ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스크롤을 다 내리기도 전에 쉴 새 없이 새로운 글이 쏟아져 나왔다. 물을 가득 채운 잔처럼 쉼 없이 넘치는 게시물 제목을 눈으로 훑다가 눈에 띈 게시물의 제목을 눌러 보았다.
[이렇게 되면 ㅎㅅ이랑 ㄱㅎㅅ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이어서 본문을 확인해 보니 이때까지 효신에서 강효서가 학교에서 보이는 불량한 행보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매번 그를 감싼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도 자식이기도 하고 등급 높은 헌터니까 ㅎㅅ에서 존나 싸고 돌던 거 유명하잖아 재작년에 ㅅㅁ 길드랑 그 커뮤니티 얘기 줄줄이 터졌을 때도 무려 그 커뮤니티 v관리자v였던 ㄱㅎㅅ만 쏙 빠져나갔던 것도 ㅎㅅ이 커버해 줘서 그런 거라는 말 많았음] [‣ ㅁㅈ 막상 그 커뮤니티 애들한테 뜯은 마석은 ㄱㅎㅅ가 다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 ㅈㄴㄱㄷ ??? 리댓 진짜임? 던전에서 가져온 마석 가공 없이 보관하려면 그것만 해도 관리비 개빡세다는 건 들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설마..? ;;] [ㄱㅎㅅ 정도 되는 헌터면 ㅎㅅ그룹 입장에서는 걸어 다니는 금고라고 봐도 이상할 것 없지 이때까지 그냥 터치 안 하고 봐줬던 것도 걔한테 그만한 힘이 있어서 그런 거고 효신이 잘못한 일인데 ㄱㅎㅅ랑 관계가 소원해지진 않을 듯? 오히려 물고 늘어질 것 같은데]NBS의 단독 뉴스는 시작 단계에 불과했으나 사람들은 이미 우리의 의도를 눈치채고도 남은 듯했다. 나는 이로써 서서히 몰락하게 될 강효서를 상상하며 어둡고 흐린 하늘을 내다보았다.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의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오늘까지 계획되어 있던 일정은 전부 해결했어. 지금까지 접촉한 헌터들은 대부분 두 번째 미팅 자리에서 계약서까지 작성했고, 조만간 결재 서류가 올라갈 거야.”
넓은 창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물에서 시선을 거두게 만든 건 설연호의 음성이었다. 이내 그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에는 사양 사무실에 다시 방문해서 관광용 던전 관리 권한 양도 서류를 작성하기로 했어. 시간은 오후 세 시. 그날은 서류만 작성하면 되는 거라서 나 혼자서 다녀와도 될 것 같아.”
자신의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일정을 점검하는 듯한 설연호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김수호 헌터는 내가 만나고 올게. 따로 만나서 할 말이 있거든.”
“알았어. 그렇게 전달해 둘게. 그리고 혹시 매체 인터뷰는 아직도 생각 없어? 범람에 올라오는 글들 보니까 이쯤에서 우리도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로서는 때마침 달가운 소식이었다. 이대로 효신 그룹에서 불거진 뉴스의 여파로 우리와 관련한 열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노를 마저 저을 생각이었으니까.
“음, 사흘 정도 뒤에 인터뷰 일정 잡아 줘. 되도록 오전 중으로 부탁해.”
나는 일정을 간략하게 점검한 뒤 설연호에게 전했다. 그는 금세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면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밤이 깊어지면서 창가를 두드리는 빗줄기 또한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 * *
사흘 뒤, 효신 그룹 미래전략기획실.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에 앉은 강효서는 무릎을 잘게 떨면서 오른편에 놓인 TV 화면을 주시했다. 한편 맞은편에 앉은 효신 그룹 미래기획실장의 눈동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에 향해 있을 뿐이었다.
―오늘 아홉 시 뉴스는 NBS가 계속 이어 온 효신 그룹 주가 조작 보도로 시작합니다. 앞서 효신 그룹의 주가 조작 정황을 포착한 뒤 금융당국이 수사 중이라고 전한 바 있는데요. 한 내부자가 주가 조작 수익금의 행방을 폭로하면서 또 다른 파장이 예고되었습니다.
이윽고 앵커의 멘트와 함께 뉴스의 막이 올랐다. 강효서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매서운 눈으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내부자는 효신 그룹의 유일한 각성자 K 씨가 빼돌린 수익금의 사용처를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소송을 진행 중인 성문 길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정황이 밝혀지게 되면서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오한빈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절 왜 이제야 부르셨어요? 아버지는 몰라도 실장님은 진작 부르셨어야죠. 내가 집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도 나도 엄연히 효신 사람인데. 매번 그랬던 것처럼 빨리 움직였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손톱 거스러미를 잡아 뜯던 강효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기획실장은 그의 물음에도 엷은 주황빛을 띤 찻물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헌터 K 씨가 주가 조작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빼돌리기 시작한 건 사 년 전, 익명 커뮤니티 하나를 개설한 직후였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낡은 사무실 내부에 진입한 오한빈 기자가 리포트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채로 강효서의 지난 행방을 되짚어 나갔다.
“우선 이것부터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오랫동안 침묵하던 기획실장이 입을 뗀 건 쏟아진 찻물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완전히 옅어질 무렵이었다. 그는 한쪽에 덮어 두었던 파일철을 펼쳐 강효서의 앞에 내려놓았다.
[상속 포기 각서 및 관련 절차 진행 동의서]‘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아니, 연을 끊는다고 해도 이번 일은 자기들도 엮인 거잖아? 그리고 나만 잘못한 거야? 자기들도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거면서 콩고물 떨어질 땐 좋다고 받아먹고 왜 내가 다 뒤집어써야 해? 이걸 쓰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강효서는 경련하기 시작한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면서 고개를 틀었다. 맞은편 통창 너머로 흐릿한 하늘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틀 전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굵어지더니 오늘 오전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회색빛 상공에서 가느다란 벼락이 내리쳤다. 동시에 거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자 강효서는 경직되어 있던 몸을 움찔거리면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읽어 보시고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기획실장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뉴스는 계속되었다. 화면 속 오한빈 기자는 강효서가 빼돌린 수익금으로 높은 등급의 마석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개인 공간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감싸 주더니. 고작 이따위 일로 사람을 내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이제 내 도움 같은 건 필요 없다 이거예요?”
울컥거리며 치솟는 감정을 간신히 추스른 강효서가 겨우 내뱉은 말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날을 상상해 왔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자금 또한 충분히 확보해 두었기에 당분간은 차분하게 다음 계획을 구상하면 될 터였다.
다만 그가 궁금한 것은 이번 일을 누가 터뜨렸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강효서는 오늘 같은 날을 상상하기 시작할 무렵, 한참 어렸던 자신의 곁을 떠나간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조만간 검찰에서 도련님을 찾아갈 겁니다. 해외로 도피할 생각일랑 하지 말고 수사에 성실히 임하라는 회장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방금 검찰이라고 했어요?”
“예, 회장님께서 오늘 뉴스와 관련한 사항을 미리 접하시고 내일 오전 중으로 고발장을 접수하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안쪽에서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 올린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당황할 것 없어. 효신이 날 버려도 그 자식은 날 못 버릴 테니까. 내가 그동안 개처럼 수발든 세월이 얼마인데. 더 늦기 전에 연구소부터 가자. 얼른 가서……. .- ’
상념이 걷히기도 전에 다시 한번 거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욱더 거세게 몰아치는 빗물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음이 한층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