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마침내 떠오른 (3)
오한빈과 NBS 취재 팀의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효신 그룹의 주가 조작 사건으로 시작한 단독 보도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뉴스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날 강효서의 소식이 전해지고 난 뒤 바로 다음 날 효신에서는 그를 고소했다. 그건 곧 거의 모든 책임을 강효서에게 전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강효서가 검찰 조사에 송치되는 날이었다. 화면 속의 그는 양팔이 구속된 채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곁을 집요하게 따르는 카메라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화면 속의 강효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마 뒤 그가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 앞에 몸을 돌리고 섰다. 그러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사에 성심성의껏 임하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강효서의 대답은 그 두 마디가 전부였다.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은 그는 자신을 붙잡고 선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어 모습을 감췄다.
나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다시 김미솔에게 건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태블릿 액정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던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살아생전에 강효서가 저런 꼴로 붙잡혀 들어가는 걸 내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효신에서 강효서를 고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효신에서 확실하게 짓밟아 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저 선배는 어떻게든 빠져나왔을 거야.”
그런 다음에는 사람을 죽였을 거고. 한두 명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을 죽였겠지.
나는 이어서 떠오른 말은 애써 삼킨 채 맞은편에 앉은 김미솔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나처럼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건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가 성문 길드를 상대로 걸었던 소송도 마무리될 거래. 소문으로는 오월부터 이관부에서 성문 길드가 보유했던 던전의 관리 권한들을 심사를 거쳐서 각 길드에 배정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심사의 기준이라는 게 우리가 예측했던 거랑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 심사 대상을 신규 길드에 국한하지 않을 거래.”
그렇게 말하면서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김미솔이 내가 앉은 쪽으로 다시 밀어 주었다. 그녀가 띄운 화면에서 방금 말한 심사와 관련한 기사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열린 판도라의 상자, 성문 길드가 보유했던 던전은 누가 관리하게 될까?”]“뭐라고?”
[검찰 관계자에 의하면 오는 삼월, 헌터 아카데미가 성문 길드를 상대로 걸었던 소송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성문 길드가 그간 보유하던 던전의 관리 권한을 강제로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이어졌다.한때 성문 길드는 ‘용산의 노다지’라고 불렸다. 그들이 좋은 조건의 던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재작년 겨울, 헌터 아카데미의 재학생들이 입장한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고의로 발생시키려 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기사에선 성문 길드의 소송과 그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길드 관계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성문이 보유한 던전은 이능단속‧관리본부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용산구에 소재를 둔 소수의 길드에게 배분될 예정이다. 해당 심사는 이르면 오월 내에 시작될 예정이며 심사 기준에 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질 것이라고 한다.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길드 관계자를 비롯한 모든 헌터의 이목이 이능단속‧관리본부에 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열린 판도라의 상자에서 누가 가장 좋은 보물을 얻게 될까.]
빠르게 시선을 옮겨 기자의 마지막 단락까지 읽고 난 뒤 다시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밑으로 뜬 관련 기사에서는 용산에 터를 둔 유명 길드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중이었다.
“심사 기준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니.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배분하겠다는 말을 이따위로 돌려서 뱉을 줄이야.”
태블릿을 다시 김미솔이 앉은 쪽으로 밀어 놓았다. 내 말에 그녀는 잠시간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이관부에서 우리 존재를 의식하고 그런 거겠지. 어쩌면 강효서에 대해 제보한 게 우리라는 걸 그쪽에서도 눈치챘을지도 모르고. 또 그거랑 별개로 게이트 사고 이후에 이관부가 우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건 사실이니까.”
김미솔의 말은 충분히 일리 있었다. 한도일이 예전부터 이능단속‧관리본부에 인맥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거라 말했던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였을 것이다.
“용산구에 소재를 둔 모든 길드가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거면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길드들도 몇 배는 늘어나는 거잖아. 아무리 봐도 이건 우리한테 너무 불리한데.”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달싹이던 김미솔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차진명에게 강효서는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와 별개로 꽤 유능한 인력이었다. 그런 그가 사라진 이상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당분간 분주할 터였다.
차진명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두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차진명이 다른 패를 준비해 두었다면 나 또한 맞서면 그만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그의 다음 수를 예측해 보았다.
* * *
같은 시각, 이능단속‧관리본부.
“예, 접니다. 방금 뉴스 보면서 확인했습니다. 일이 이런 식으로 튈 줄 몰랐는데. 이것 참……. 저야, 뭐. 안타깝기는 하지만 별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 친구가 가진 배포의 전부라면 그런 줄 알고 있어야지요.”
휴대전화를 귓가에 붙인 채 창가에 서 있던 이원석이 낮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어유, 선생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친구가 하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고, 우리 이관부를 우습게 여기는 게 하도 눈꼴 시려서 몇 자 적기만 했을 뿐입니다. 저희 쪽에서 책잡힐 일은 추호도 없을 테니 염려 마세요.”
창가 너머로 펼쳐진 작은 광장에 눈길을 두었던 그는 허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거슬리는 놈들을 당장이고 처리하고 싶죠.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각성자, 비각성자 할 것 없이 온갖 사람들이 지금 이관부 건물에 비치는 햇살이 어떤 각도로 쏟아지는지까지 집요하게 살피고 있다는 거. 우선은 잘 심사해서 적당히 나눠 줄 생각입니다. 그래야 뒤탈 없이…….”
계속해서 전화기에 대고 말을 이어 가던 그가 잠시 침묵했다. 건너편에서 넘어오는 음성에 한참을 귀 기울이던 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예. 아드님도 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낙하산이다, 뭐다 꼴같잖게 떠드는 것들 때문에 조금 골머리를 앓았나 봐요. 그래도 지금은 일도 아주 잘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맥도 넓히면서 잘 지내고 있으니 이사장님께도 그리 전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어느새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붙든 채 굽신거리던 이원석이 허공에 대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어서 통화를 종료한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직전까지 보았던 인터뷰 기사 제목을 내려다보았다.
[]이원석은 휴대전화 액정을 검지로 툭툭 두드리면서 스크롤을 내렸다. 이윽고 중앙에 배치된 사진 속의 도해월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이원석은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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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기존의 길드원만 불러 회의를 진행했다. 나는 회의실 가운데 놓인 화이트보드에 부착해 둔 경기도 이천시 지도에 표식을 남기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쌀을 재배하는 농지에서 열린 게이트라 인명 피해는 없을 거야. 하지만 제대로 수습하지 않으면 그만큼 경제적 손실을 보는 곳이 많아지겠지. 지난번처럼 지형이 극악인 것도 아니라서 취우에 따로 도움을 청하진 않을 생각이야.”
이어서 게이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과 가장 가까운 가정집의 위치 등을 표시해 두었다. 그런 다음 만일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관한 계책을 설명했다.
“대략적인 동선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 막상 현장에 가면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당일에 내다본 미래를 토대로 전투 설계가 바뀔 수 있으니 걱정할 건 없어.”
마지막으로 작전 당일의 동선을 계산한 선을 그려 넣은 뒤 지도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혹시 모를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주의하는 거고.”
나는 그즈음에서 숨을 고른 뒤 오랜만에 같은 자리에 모인 이들과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이관부가 도착하기 전에 게이트를 닫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방문한 지선일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작전에 관한 건 전부 이해했고,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백이현 헌터랑 다른 헌터들은 이번 작전에 같이 나가지 않는 건가요?”
나는 그녀와 나란히 앉은 문제혁까지 한눈에 담으면서 문간을 돌아보았다. 한동안 다른 일로 바빴던 나머지 그들과 개인적으로 면담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기존의 길드원만 모여서 나가는 작전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앞으로는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도록 때마다 팀을 나눠서 움직일 생각이거든.”
그러자 저마다 시선을 나누던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전부터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고정인이 입을 열었다.
“사고를 예고하는 건 지난번이랑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준비해 뒀어. 시간은 예상대로 오후 열 시로 하는 거, 맞지?”
“맞아. 예고 이후에 계속해서 범람의 반응을 주시하다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있으면 보고해 줘. 다른 사람들도 작전 직전까지 되도록 무리하지 말고, 전날 다시 모여서 최종적으로 동선을 점검해 보자.”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고개를 까딱이면서 대꾸했다. 그것을 끝으로 회의를 마무리하고 동료들을 배웅했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던 문제혁에게는 가볍게 웃어 주고 말았다.
그렇게 혼자 남은 사무실은 이전과 달리 깊은 밤에도 아주 환하고 말끔했다. 어두컴컴한 길목을 조심스럽게 가로지르며 기숙사로 돌아가던 겨울밤과 달리 이제는 봄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비어 있는 내부를 한참이고 둘러보던 나는 소등을 마치고 집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날이 밝은 뒤 분주하게 움직이려면 서둘러 잠을 청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