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언약의 무지개
마침내 공들여 구상한 작전의 개시일이 다가왔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확인했다. 최근 장비와 보급품을 구매하면서 발생한 회계 처리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내내 쥐고 있던 펜을 비스듬하게 내려놓은 나는 태블릿으로 손을 옮겼다. 오전 여덟 시를 기점으로 갱신된 뉴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강효서의 소식으로 온통 떠들썩했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밝히겠다”더니…… 강효서, 진술 번복에 수사 난항]태블릿 화면을 들고 기사의 제목을 훑던 나는 눈가를 찡그리면서 해당 뉴스를 클릭했다. 오한빈이 아닌 다른 기자의 리포트 내용에 따르면 며칠 전 검찰 수사에 임하기 전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던 강효서는 자신의 말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효신 그룹이 감행한 주가 조작에서 발생한 수익금의 상당수를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한 것은 맞지만, 그 외의 혐의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검찰이 확보한 정황을 전면 부인하면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버티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강효서에게 주어진 혐의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수사에 진척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는 의아한 심정으로 기자의 리포트가 마무리된 뒤에도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에 의하면 강효서는 효신 그룹에게서 버려졌다. 효신 그룹은 자신들이 벌인 주가 조작 혐의를 일부분 인정하지만, 강효서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벌인 행위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그에게 고발장을 접수했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조치인 만큼 앞으로 효신과 강효서의 연은 완전히 끊어졌다고 볼 수 있을 터였다. 이어서 그가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곧바로 잡혔다는 점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진술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차진명에게서도 내쳐진 것일 텐데.
이미 수사가 시작된 뒤에 말을 번복한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혹여 이와 관련하여 쓸 만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범람에 접속했다. 범람에서는 며칠 전에 예고했던 게이트 사고에 관한 추측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 시간임에도 게시물은 끊임없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 흐름을 살펴보니 우리가 예고한 사고에 관한 것과 강효서가 진술을 번복했다는 뉴스가 번갈아 언급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터라 다소간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오늘은 작전을 개시하는 날인 만큼 이 상황을 오래 살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짧은 고민 끝에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백이현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 최종 조율을 마치고 계약서 수리를 마무리한 그와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를 불러낸 대외적인 목적은 간단한 면담이었으나 실상은 익명의 후원자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어떻게 반응했을지 짐작해 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백이현이 나에게 진실을 낱낱이 고하지 않겠지만 그가 하는 사소한 말에서 작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각까지 대략 여덟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도 동료들이 현장에 먼저 파견된 뒤 주변 상황을 살필 예정이었다.
오늘 작전에서 고정인과 고예성은 사무실에 남아서 상황을 주시하고 다른 직원을 살피기로 했다. 백이현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은 출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기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즈음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 나는 미팅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레 진술을 번복한 강효서를 떠올리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으나 내색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이윽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백이현이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그에게 앉을 것을 권하면서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범람에 올라온 예고는 저도 봤습니다. 이번에도 저희 길드에서 사고를 막아 낼 예정인 건가요?”
마주 앉은 백이현의 질문은 과연 단도직입적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그 또한 안지유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했다.
나는 비밀을 겹겹이 덧입고서 내 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질문에 달리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웃어 보였다.
* * *
백이현과의 면담을 마무리하고 사고 발생 현장으로 향하자 어느새 정오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건지 한적해 보이는 들판 근처를 거닐던 나는 귓가를 손끝으로 짚으면서 말했다.
“나도 도착했어. 다들 현재 상황 보고해.”
―전부 각자 위치에서 대기 중. 아직까진 잠잠한 상태야. 게이트가 발생하면 그 지점으로 바로 모일 수 있도록 동선 확인도 했고.
설연호의 음성이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번에 장비와 보급품을 마련하면서 함께 구매한 인이어 형태의 통신 기기의 성능이 상당했다.
―사무실도 아무 문제 없어. 사고 발생 예정 시간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았으니 참고해. 희찬이까지 정식으로 합류한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큼 잘해 보자. 나랑 예성이도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
나는 게이트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며칠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머리 위로 전에 없이 화창한 하늘이 펼쳐진 상태였다.
이윽고 이곳에 도착한 직후 스킬을 통해 내다보았던 미래를 다시금 점검해 보았다. 전생에서는 이번 사고를 통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결과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으므로 경계를 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직전 회의에서 구상한 작전 사항들 전부 숙지했지. 게이트가 열리는 지점으로 전부 모이는 즉시 설계 스킬을 시전할 거야. 거듭해서 말했던 것처럼 이번 사고는 가능한 우리 선에서 해결하는 걸 목표로 삼았으니 그 부분은 계속 유의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동료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이따금 겹쳐 울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오전에 강효서에 관한 뉴스를 확인한 이후부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당장은 작전에 몰두해야 했다.
펑!
그때 멀리서 거대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짙은 회색빛의 연기가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지. 게이트가 열린 것 같아. 지금 내 위치에서 전방 삼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불덩이 같은 게 떨어졌어.
다급한 어조로 소식을 전한 건 홍원하였다. 나는 동료들에게 전부 같은 방향으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그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한 느낌이 낭자했으나 애써 삼키면서 바람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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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하의 예측대로 게이트가 열린 곳은 드넓은 들판 한복판이었다. 과거에 조경 작업을 진행하여 관광지로 개방하였으나 현재는 길게 자라난 갈대와 이름 모를 꽃만이 한가득 심겨진 곳이었다.
게이트가 열린 지 어느덧 삼십여 분. 그사이, 게이트에서부터 쉼 없이 쏟아져 나온 몬스터는 온몸에 화염을 두른 채 들판을 활보하며 메마른 땅에 불씨를 놓았다. 게이트가 열린 직후 사태를 파악하고 곧장 대처를 시작했으나 무서운 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들불을 다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지점은 지난 사고와 달리 인구가 비교적 적은 도시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었다. 한때 관광지로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인적이 드물어져 혹시 모를 인명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한참 전에 대피시킨 인근 주민들은 멀찍이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멀리 떨어진 탓에 선명하게 들리진 않았으나 그들은 나와 동료들을 보며 무어라 소리치는 듯했다.
“연호 선배, 원하는 지금 어때?”
탕!
탕!
나는 백색 권총을 거머쥔 채 눈앞으로 달려드는 마그마 덩어리와 대치하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가까이 들붙을 적마다 살갗이 익는 듯한 감각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나 이제 멀쩡해. 어디로 가면 돼?
“원하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면 대열 끄트머리로 다시 합류해. 거대한 그물을 펼쳐서 불을 뒤덮는 식으로 움직여. 다른 사람들은 몬스터가 들판을 벗어나지 못하게 계속 대치하고.”
빠른 속도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뒤덮으려던 불길은 홍원하의 스킬 덕분에 초반 상황에서 기세를 잡아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체력을 금세 소진한 홍원하는 순간 쇼크 증상을 호소하며 쓰러졌으나 설연호를 통해 치료를 마무리한 듯했다.
한편 맞은편에서는 공희찬이 더욱 큰 불길을 일으키며 몬스터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나의 설계를 이탈하지 않고 정석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근처에서 거대한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기력을 회복한 홍원하가 지시대로 물거품을 통해 그물을 구현한 뒤 거세게 날뛰는 불길 위로 내려 앉혔다.
나는 그 틈을 타 옆얼굴을 어깨에 기울여 젖은 살갗을 훔쳤다. 불길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은 동안 저마다 얼굴에 들붙은 거뭇한 재를 닦던 동료들에게 눈길을 옮겼다.
대부분 새로운 무기와 각종 장비를 착용한 덕분인지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대부분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예전과 비교하면 한층 안정적인 호흡으로 임하고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인 선배, 그쪽 상황은 어때?”
―저번처럼 범람에서 상황이 중계되는 중이야. 이관부에도 생각보다 일찍 신고가 들어갔고, 헬기도 한참 전에 띄웠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홍원하가 덮어 놓은 그물을 뚫고 나올 듯 거세게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동선을 계산한 뒤 귓가에 손을 짚고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즉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모이면서 공격을 개시했다.
얼마 뒤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들판의 끄트머리까지 퍼졌다가 다시금 작아지기 시작한 불길을 진압하던 순간이었다. 권총을 고쳐 잡던 나는 이를 악물면서 들판에 번진 마지막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던 것도 잠시, 홍원하가 멀리서부터 끌어온 물살이 불씨만 남은 들판을 일직선으로 곧게 가로질렀다.
솨아아―!
게이트를 훌쩍 뒤덮을 만큼 높은 하늘을 가로지른 물살이 둥근 궤적을 그려 나갔다. 동시에 지면으로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또 어디선가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한데 얽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전력을 소진한 뒤 숨을 몰아쉬던 나는 고개를 힘껏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홍원하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지나간 자리에 크고 투명한 무지개가 떠올라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으니 곳곳에서 주저앉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흠뻑 젖은 동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전생에서도 인명 피해는 없었던 작다면 작은 게이트였지만,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라 긴장한 상태였다. 불길했던 느낌도 그냥 느낌일 뿐이었나. 전생에서 있었던 피해보다도 훨씬 적은 피해에 마음이 놓였다.
[미개방 스킬 해금을 위한 특정 분기점에 도달하였습니다.] [해당 조건의 달성 보상으로 사용자에게 특별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축하합니다! ‘언약의 무지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그때 눈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연이어 떠올랐다. 나는 투명한 무지개를 배경 삼아 연이어 나타난 활자를 곱씹어 보았다.
―저기, 해월아. 이거 지금 너한테만 들리게 채널 맞춰 둔 건데 혹시 들려?
“잘 들려. 무슨 일이야?”
―그, 강효서 말이야. 조사받던 도중에 사망했대. 확실하진 않은데 사망 원인이 음독인 것 같아. 뭘 마시고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아직 안 나왔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고정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원치 않게 불길한 예감의 정체를 마주한 나는 무지개를 더는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