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낡은 비밀이 잠든 호수 (1)
[던전 입장을 시도합니다.] [입장 인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던전 에 입장을 완료하였습니다.]시야를 뒤덮었던 흰빛이 걷히면서 물기 어린 흙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얇은 나뭇가지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멈춘 자세 그대로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이 내려앉은 숲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배경음처럼 파고드는 풀벌레 소리를 따라서 지형을 파악해 보았다.
나무와 흙, 자갈과 바위까지 검푸른색으로 물든 채 은은하게 빛나는 이곳은 평범한 숲이 아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 총을 쥐려던 손길을 멈추고 조심스레 서너 걸음을 옮겼다.
그때 눈앞으로 반딧불이 수십 마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오르면서 근처를 밝혀 주었다. 그것들은 행성 주위를 공전하듯 나와 설연호의 근처를 맴돌기 시작했다.
“저것 좀 봐.”
한 줌의 빛을 따라서 근처에 선 설연호를 돌아보던 순간 그가 검지로 상공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서 올려다본 어둑한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각각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빛을 내는 달을 바라보고 있으니 헛숨이 터져 나왔다. 검푸른 숲과 마찬가지로 저것 또한 평범한 달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오래 쳐다보지 않는 게 좋아. 이제 검을 꺼내 볼게. 혹시 모르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
나는 설연호에게 간략하게 대답한 뒤 인벤토리에서 유스티티아의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칼자루에 살갗이 온전히 맞붙는 순간 팔뚝과 어깨를 타고 소름이 돋아났다.
이어서 느릿하게 호흡을 고르는 채로 오랜만에 꺼내 보는 검의 모습을 훑어보고자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십자 형태의 검 중앙에 새겨진 천칭 모양의 상징이 달빛 아래서 서늘하게 빛을 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기세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했다. 정제되지 않고 사방으로 발산되는 힘에 영향을 받는 건 설연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이를 악물어 소리를 막은 그는 이미 나에게서 대여섯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차진명은 대체 이걸 어떻게 길들인 거지.
심호흡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면서 간신히 중심을 잡았으나 이대로 검을 휘두르는 건 쉽지 않을 듯했다. 검을 쥐는 순간 팔뚝과 어깨를 타고 번졌던 강력한 힘이 어느새 전신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차진명은 대체 이걸 어떻게 길들였을까?
그때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부드럽게 훑으면서 지나갔다. 나는 그 안에 섞여 있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따라 반사적으로 몸을 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배, 방금 뭐라고 말했어?”
“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게 검을 고쳐 쥐면서 설연호에게 묻자 그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서 서너 걸음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 주변 지형을 파악하는 중인 듯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설연호가 아니면 누구지?
검을 쥔 그대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주위를 재차 둘러보았다. 울창하게 선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래도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잘못 들은 것 같았다. 금세 안도하고 검을 두 손으로 쥐려던 순간.
―방금 네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해? 설연호가 아니면 누굴까?
이윽고 숲에서 불어오는 것과 또 다른 갈래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세히 들어 보니 설연호가 아닌 어린 여자아이가 내는 소리인 듯했다. 그 물음을 끝으로 혼자서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조심스레 숲길을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오던 설연호가 물었다. 거리를 좁히는 순간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설연호에게 닿은 건지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가 들렸거든. 그런데 그게 나한테만 들리는 것 같아.”
“너한테만 들린다고? 그게 무슨……. 혹시 몬스터 짓인가?”
설연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D급 던전인 이곳은 전생의 이맘때 차진명의 소개를 받고 들어온 곳이었다. 당시의 그는 이 던전을 두고 공략 난이도가 다른 곳보다 비교적 낮은 동시에 보상이 두둑하게 주어지는 곳이라고 설명했었다.
첫 번째 훈련 장소로 이곳을 택한 건 그가 그렇게 말했을 만큼 지형적 특성이 무난하고 처치할 몬스터의 수가 많으면서도 보상은 좋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타날 몬스터 또한 단거리에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한 놈들이 다수인 만큼 검술 훈련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방금 들었던 환청은 전생에도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던전 안에서 이런 짓을 꾸밀 수 있는 존재라면……. 역시 최종 보스일까.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있으니 이곳의 최종 보스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떠올랐다. 녀석은 자신이 지정한 상대의 속마음을 읽고 똑같이 따라 하면서 혼란을 가중했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 특징은 근거리 전투 상황에서만 발휘되던 것이었다. 최종 보스와 한참 떨어진 게이트 근처에서 영향력을 미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잠시 뒤 이번 생에 이르면서 최종 보스의 등급이 상승하거나 예전보다 힘이 조금 더 강해진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던전의 등급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터라 머릿속이 한층 복잡해졌다.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려면 스킬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검을 쥐고 있는 동안 전신을 휘감았던 낯선 기운도 어느새 잠잠해졌으니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스킬을 시전해 보았다. 이어서 늘 그러했던 것처럼 숨을 가다듬으며 미래에 벌어질 일을 내다보려 했으나.
[현재는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눈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오르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검을 고쳐 잡으면서 스킬을 시전하려 했으나 거듭하여도 같은 문구만 떠오를 뿐이었다.
혹시 성물 때문인가?
스킬 사용이 불가하다는 시스템의 안내 문구를 확인한 건 전생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닥쳤다는 것을 인지하고 설연호를 돌아보고 있으니 다시 한번 익숙한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역시 성물 때문일까?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눈가를 찡그린 채 설연호에게 물었다.
“선배, 지금 스킬 사용할 수 있어?”
“그 검이 가진 힘에 나까지 짓눌리는 기분이라서 확인해 봤는데, 너랑 근접한 위치에서는 사용이 불가하다고 떴어. 왜? 또 뭐가 이상한 거야?”
“아니, 나도 선배랑 똑같은 상태야. 검이 가진 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게 나라서 그런 것 같아. 혹시 더 떨어져서 스킬을 전개하는 건 가능한지 확인해 줄래?”
그 말을 들은 설연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마간 떨어진 곳으로 내달렸다. 그가 거리를 두고 스킬을 전개해 보는 사이 나는 들고 있던 검을 인벤토리에 잠시 넣어 두었다. 그 상태로 다시 눈을 감고 스킬을 시전해 보면 뭔가 다른 반응이 있을지도 몰랐다.
젠장. 이래도 안 되네.
―젠장! 이래도 안 되네? 하하하.
귓가에 들러붙는 음성을 무시하면서 다른 스킬을 시전해 보았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입술을 달싹이면서 고민하던 나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처음 쥐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여전했으나 이전처럼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영역을 지정하고 치유 필드를 전개하는 건 가능할 것 같아. 해월이 넌 어때?”
이윽고 설연호를 돌아보자 검의 힘을 느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나는 쥐고 있는 검과 설연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다른 스킬 없이 이 검만 가지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아직 다루는 게 서툴기는 해도 이거면 여기 있는 몬스터는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선배는 오늘 내 뒤쪽으로 따라오면서 상황을 주시해 주고,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움직이면 돼.”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설연호의 얼굴에 순간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그럼에도 그는 빠르게 수긍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돌아보는 순간 표정을 가다듬으면서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았다. 짧은 웃음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전언이 읽혔다.
휘익―!
탓, 탓, 탓, 탓.
그때 맞은편에서 무언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검을 두 손으로 쥔 채 정면을 응시했다.
천리안 스킬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어도 나에게는 이곳을 공략했던 시간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기억을 지도 삼아 공략을 시도하면 될 듯했다.
머지않아 짐승이 내달리는 듯한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놈이 나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먹구름과 흡사한 색감의 사슴을 마주 보면서 검을 고쳐 쥐었다.
녀석은 가만히 멈춘 자리에서 나를 응시했다. 몸통보다 조금 짙은 회색의 눈동자를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크르르릉.
쿵!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들끓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는 녀석은 어느새 곰의 형체로 변모해 있었다. 이윽고 두 발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가 지면을 내리치면서 거대한 소음을 낸 뒤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두 개의 달은 어김없이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몬스터는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익숙지 않은 검을 사용하여 그것들을 처리하고 있으니 평소보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절감되는 중이었다.
끼기긱!
끽!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나는 이를 악문 채 기이한 소리를 내는 곰의 등허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직전의 부상으로 인해 비틀거리던 녀석은 마지막 공격을 가한 뒤 물러서는 순간 힘없이 고꾸라지고 말았다.
쿵, 쿵.
쿵.
머지않아 거대한 나무와 이어진 굵직한 뿌리 위에 엎어진 녀석의 숨이 끊기면서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녀석의 마지막을 확인하기도 전에 몸을 틀어 뒤쪽에서 덮치려던 몬스터의 목덜미를 깊게 베었다.
[안개의 유령 (E)을 처치했습니다.] [안개의 유령 (E)을 처치했습니다.]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고여 있던 숨을 거칠게 내뱉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칼자루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검을 움킨 두 손등이 붉게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코끝으로 비릿한 혈흔의 냄새가 퍼지는 순간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들이닥치는 몬스터를 무찔러 가며 숲의 초입을 지났으나 성물을 다루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았다.
때로 그 무게와 기운에 짓눌려 검을 잘못 휘두르는 탓에 불필요한 부상을 얻기도 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어느 순간부터는 검을 쥔 손아귀의 살갗이 터지면서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보던 설연호가 치유 스킬을 시전해 주었으나 계속해서 그에게 기대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생의 차진명이 유스티티아의 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내 손으로 사용하려니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것은 평범한 무기와 다르게 사용법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도 아니어서 더욱 곤란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최종 보스를 처리하기도 전에 체력이 소진되어 버릴지도 몰라. 그것도 그렇고 여기서 나가면 검술부터 훈련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뒤이어 따라붙는 목소리는 자연스레 흘려 버린 뒤 검을 느슨하게 쥔 채로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그 전에 이 상황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당장 쓸 만한 것 뭐 없을까.
―그 전에 이 상황부터 해결하는 게 맞지. 당장 쓸 만한 게 있을 텐데?
손등으로 젖은 이마를 훔치면서 상념을 이어 나가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귓가를 스쳐 지나간 음성을 곱씹어 보았다.
조금 더 고민해 보니 이천 게이트 사고를 수습하면서 획득했던 아이템의 존재가 떠올랐다. 이것을 획득한 직후 강효서의 사망 소식을 접한 탓에 여러모로 겨를이 없어 아직 확인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래, 이게 있었지.
―그래, 이게 있었잖아!
[사용자가 선택한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조회합니다.]나는 거칠어진 숨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던 아이템을 눌러 보았다. 이윽고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가 흩어지면서 상세 정보 화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