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낡은 진실이 잠든 호수 (2)
[획득 아이템 – 언약의 무지개 (등급 추정 불가)전용 아이템입니다. 사용 즉시 시간의 궤도를 □□하여 □□□의 피안(彼岸)으로 이동합니다. □□□ 내부의 규칙과 □□의 원리를 이해한 뒤 의 설계를 완성하면 바라던 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 해당 아이템의 사용 가능 횟수는 총 3회입니다. (0/3)
‣ ‘□□’이 사용자에게 남긴 전언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어두운 숲길 가운데 우두커니 선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활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하단에 기재된 질문까지 확인한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연이어 재독해 보았으나 군데군데 글자가 감춰진 나머지 아이템의 기능은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다음 몬스터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다음 몬스터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귓가에 익은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이천 게이트 사고에서의 기억을 간단히 되짚어 보았다. 그날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떠오르면서 시스템의 안내 문구가 나타났었지.
그 순간에 내가 보았던 건 미개방 스킬의 해금을 위한 특정 분기점을 달성했다는 것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 특별 아이템이 주어진다는 문장이었다.
또한 이것은 현실의 재화로 값을 치르고 획득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런 고로 이 아이템에는 지금의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이건 분명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존재와 관련이 있을 거야.
―이게 정말 너를 과거로 돌려보낸 존재와 관련이 있을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던전 내부의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그때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있던 설연호가 말했다. 나는 잠시 숲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심호흡을 여러 번 잇는 동안에도 저 멀리 어둠 너머는 잠잠했다. 그럼에도 미리 주의할 생각으로 설연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선배, 있다가 내가 주저앉거나 쓰러지더라도 놀라지 마. 확인해 볼 아이템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대신 몬스터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그때까지 선배가 내린 방어막으로 조금만 버텨 줘.”
나는 설연호가 무어라 되묻는 소리를 다 듣지 못하고 시스템 창에 떠오른 안내 문구를 눌렀다.
[이윽고 당□의 눈앞□ □□를 무지개는 □□ 선택된 예언자에게 남□□ 언약의 증표입니다. □□□ □□□ □□□ □□□□ □□□ □□□ □□□ □□□.]그 순간 이전에 떠올랐던 푸른 활자가 흩어지면서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곳곳이 감춰진 것으로 모자라 마지막 문장은 통째로 가려진 상태였다.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발밑으로 환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 * *
이윽고 당도한 이곳은 던전의 내부도 아니고 그 바깥도 아닌 제삼의 공간인 듯했다. 나는 손이 가벼워진 사실을 인지하고 눈길을 틀어 확인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성물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허전한 손끝을 말아 쥐면서 드넓은 공간을 거닐어 보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앞에서 교차하던 빛이 방향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벽면과 천장에 독특한 문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용자가 시간의 궤도를 □□하여 □□□의 피안(彼岸)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만화경 내부의 규칙과 □□의 원리를 이해한 뒤 의 설계를 완성하면 바라던 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수만 갈래의 빛이 대칭을 이루면서 벽면을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 아이템 상세 설명을 조회했을 때 적혀 있던 안내문의 감춰진 글자가 일부 공개된 것이 눈에 띄었다.
“역시 만화경이었구나. 설계를 완성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설계라면……. 이 안에서 스킬을 사용하라는 뜻인가?”
허공에 대고 입을 연 순간 손끝에서부터 마나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미지근한 온기와 함께 전신을 부드럽게 뒤덮었다.
동시에 각성자 등급이 상승하던 순간에 느꼈던 것과 흡사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어딘가에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입는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만화경 내부의 규칙 중 일부가 해금되었습니다. 현 시각부터 사용자의 체내 마나 운용이 가능합니다.]이어서 나의 물음에 응답하듯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 손을 쥐었다가 펼치면서 마나의 순환을 안정시키던 나는 이곳의 규칙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젖혔다.
눈앞에서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패턴이 수천 개, 수만 개도 넘게 생성되었다가 흩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패턴으로 모습을 뒤바꾸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음엔 만화경 내부의 규칙과 무언가의 원리를 이해하라고 했었지.”
그대로 멈춰서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멈춰 있던 자리에서 걸음을 옮겨 내부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공간을 천천히 거니는 동안 수만 갈래의 빛이 벽면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행렬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불규칙하게 교차하며 뒤엉킨 줄 알았던 것이 일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의 궤도. 만화경 내부의 규칙. 설계. 원하는 답. 마지막으로……. 대칭의 원리.”
나는 네 개의 단어를 연달아 곱씹던 것을 멈추고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보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 공간은 내 목소리를 귀 기울이고 있던 것처럼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만화경 내부의 규칙 중 일부가 해금되었습니다. 현 시각부터 사용자가 지정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화경의 주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뒤이어 떠오른 푸른 활자를 확인한 나는 시간을 더는 지체하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눈을 감고 스킬을 전개했다.
[사용자가 지정한 ‘천리안’ 스킬이 발동됩니다.]딸깍.
그때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듯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자 직전까지 어지럽게 부유하던 패턴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패턴이 걷히고 마침내 나타난 건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조각마다 검을 들고 활보하는 나의 행적이 거울로 비춘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눈앞에 떠오른 미래의 장면들은 평소에 스킬을 시전했을 때와 다르게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서 불규칙한 순서로 부유하는 중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인해 불거진 혼란은 잠시뿐이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원하는 미래의 장면을 연이어 포착한 뒤 힘주어 쥐고 있던 주먹을 느슨하게 풀면서 스킬을 시전했다.
[사용자가 지정한 ‘설계’ 스킬이 발동됩니다.]머릿속에서 전투 설계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비어 있는 손아귀에 검을 쥐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그 검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설계가 더욱 견고해지고 상상의 밀도가 높아질 무렵 던전에서 느꼈던 검의 기운이 손안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검에 깃든 강력한 힘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자연스럽게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설계를 마친 뒤 다시 눈을 뜬 뒤에도 눈앞에서는 여전히 미래의 장면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잠시만. 저게 뭐지?”
나는 순간 멈칫하면서 방금 발견한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시선이 멈춘 곳은 숲의 중심부이자 최종 보스의 거점에서 전투를 이어 가는 내 모습이 담긴 장면이었다.
계속해서 들여다보니 그 장면이 담고 있는 건 나와 설연호의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설연호의 근처에서 또 다른 사람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설연호 없이 나 혼자서 숲길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그 옆에 있는 조각에 비친 나는 최종 보스에게 다다르기도 전에 귀환석을 사용하여 복귀하려는 듯했다.
그 사실까지 인지한 뒤부터 이질적인 장면이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앞에서 스킬을 전개할 때는 성물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제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각 순간의 나는 옷차림도 다르고, 동행인도 다르고, 취하는 행동 또한 달랐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공톰점이라면 검을 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사방에서 교차하던 수만 갈래의 빛 사이로 낯설게만 느껴지는 내 모습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눈앞의 장면이 흐릿해지면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
[사용자가 지정한 ‘□□’은 현시점에서 접근할 수 없는 □□□입니다.] [사용자가 지정한 ‘□□’은 현시점에서 접근할 수 없는 □□□입니다.] [사용자가 지정한 ‘□□’은 현시점에서 접근할 수 없는 □□□입니다.]그와 동시에 내가 바라보던 조각들 틈으로 환한 빛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빛이 시야를 가득 메울 즈음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숲길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설연호가 부축하고 있었다. 시야를 다잡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그의 주변으로 불투명한 막이 둥글게 덮여 있는 상태였다.
쿵! 쿵! 쿵!
머지않아 설연호가 내린 방어막 위로 짐승 형태의 몬스터가 온몸을 내던져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 나 이제 괜찮아.”
주저앉은 자리에서 나를 감싸고 있던 설연호의 팔목을 가볍게 쥐면서 말했다. 그러자 방어막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하던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를 유심히 살피며 상태를 가늠하던 설연호가 방어막을 걷어 냈다. 그 즉시 눈앞에서 한 줄기 빛이 작은 폭죽처럼 터져 오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달 근처에서 멈춘 빛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펑!
어느덧 세 개의 달이 떠오른 것만 착각에 마른 입술을 축일 즈음 굉음과 함께 빛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 빛이 곳곳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검푸르게 물들어 있던 나무와 흙의 빛깔이 달라지더니 평범한 숲과 다름없는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뒤이어 맑아진 하늘에 떠 있던 두 개의 달이 사라지고 무지개가 떠올랐다.
쿵. 쿠궁.
그 광경에 눈길을 빼앗긴 사이 숲 전체에 무언가 내려앉는 듯한 둔중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나와 설연호가 서 있던 숲길이 진동하면서 던전을 채운 자연물들이 본래의 검푸른 빛깔을 되찾아 갔다.
탓, 탓, 탓.
탓, 탓, 탓, 탓, 탓.
이어서 멀리 있던 몬스터가 순식간에 떼를 지어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정면을 응시하면서 녀석들의 수를 계산해 보던 나는 당장 떠오르는 의문은 머릿속에 접어 두고 검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이템을 사용하기 전과 달리 검에서 뿜어져 나온 강한 기운이 멋대로 산발하는 듯한 느낌이 더는 들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던 소용돌이 같은 것이 이제는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며 내 손아귀 안쪽으로 집결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내가 바라던 답은 이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미묘한 희열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시금 두 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허공에 칼날을 겨누자 강한 힘이 체내에 머무르던 마나의 기운과 적절히 섞이면서 순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것 같아. 선배, 나 좀 서포트해 줘.”
숨을 고르면서 혼란스러운 속내를 가다듬은 나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틀고 설연호에게 지시를 전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한 뒤 근처까지 당도한 몬스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