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또 다른 소실점 (1)
차정주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방송국마다 관련 뉴스를 송신하기 시작했다. 나와 설연호는 회의실에 마주 보고 앉아 지상파 방송국과 주요 언론사의 기사를 훑어보았다.
눈앞에 놓인 태블릿 화면을 검지로 두드리면서 주된 흐름을 확인하던 나는 지상파 방송국의 리포트를 재차 들여다보았다.
“이관부에 우호적인 YBC는 반응이 확실히 긍정적이네. 우리한테 도움을 줬던 NBS는 차정주 이사장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분석 중이고.”
잠시 뒤 나는 NBS의 리포트 영상에서 시선을 거두면서 입을 뗐다. 맞은편에서 자신이 지닌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던 설연호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OVN은 공영 방송국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국장이 비각성자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예 중립으로 노선을 잡았나 봐.”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OVN이 진행한 뉴스 리포트를 확인했다. 영상 속 차정주는 매끄럽게 정돈된 언어로 선거 출마에 관한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OVN의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멘트에 따르면 차정주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이능단속‧관리본부의 고유 권한을 강화하고 국가 기관과 길드 세력 사이의 상생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자는 것.
“방금 범람은 어떤지 확인해 봤는데, 그쪽 반응도 엄청 떠들썩해. 명망 높은 헌터가 정계에 입문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지만 S급 헌터가 나서는 건 처음이라 더 그런가 봐.”
“그렇겠지. 헌터 아카데미는 그 자체로 차정주 이사장의 행보를 집대성하는 상징처럼 기능해 왔으니까. 그걸 내려놓으면서 한다는 말이 이관부의 고유 권한을 강화하자는 거였으니 놀랄 만도 해.”
이어서 태블릿을 내려놓은 나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연호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고유 권한을 강화하자는 얘기는 예전부터 계속 거론됐으니 당황스러울 건 없고……. 문제는 다음 대목인 것 같아. 국가 기관과 길드 세력 사이의 상생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자고 말은 해도 진짜 속내는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
그 대목에 관해서는 나 또한 계속해서 곱씹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발언은 전생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것이었기에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선배 말대로 속뜻은 그게 다가 아닐 거야. 그저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대규모 길드가 가진 사회적 권력을 꺾어 버리고 자기들이 우위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그게 그쪽에서 생각하는 상생일 테고.”
관자놀이를 짚었던 손을 거두면서 눈을 뜬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허공을 응시했다. 이제 겨우 출마 선언이었을 뿐이었으나 차정주는 자신의 당선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태도는 전생에서도 다를 것이 없었으나 길드에 관한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를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거나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읽혔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이능청으로 승격하는 시기도 전생보다 앞당길 생각인 건가?
나는 차정주가 자신의 계획을 전생에서보다 빠르게 실행시킨다는 가정하에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상상해 보았다. 그렇다면 헌터 특수 정예 부대가 상설되고 이에 불만을 품은 길드 세력들이 연합을 이루는 시기 또한 앞당겨지게 될까.
“근데 그건 뭐야? 아까부터 보고 있던 것 같은데.”
깊어진 상념을 거둔 건 설연호의 목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파일철 위에 손을 얹고 느릿하게 두드리고 있던 것이 보였다.
이윽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진 속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 보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숨을 골랐다.
“오전에 예성이한테 따로 보고받고 나서 마저 보려고 가져온 서류야. 오월에 이관부에서 진행될 심사에 에덴 길드도 참여할 생각이라던데. 선배도 혹시 알고 있었어?”
“아니, 처음 듣는 얘기야. 다른 곳도 아니고 에덴 길드가 이런 심사에 끼어든다고? 왜?”
에덴 길드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의아해하던 설연호가 곧장 대답했다. 나는 파일철에 얹었던 손끝으로 딱딱한 표면을 매만지며 고예성과 나눴던 대화를 간단하게 정리해 설명해 주었다.
“에덴 길드는 오래전부터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걸로 유명했으니 그럴 만도 해. 다만 이제 막 발을 뗀 신규 길드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하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예상보다 길어진 설명을 끝으로 한참 침묵하던 설연호가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려고. 예성이 통해서 소식 듣고 김수호 헌터한테도 연락해 봤는데, 그쪽에서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어서 덮여 있던 파일철을 열고 그 안쪽에 있던 인화 사진을 꺼내 설연호가 앉은 쪽으로 밀어 놓았다.
“그건 그렇고……. 선배 혹시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머릿속이 복잡해진 듯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집던 그는 내가 내민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사람 주해나 헌터 아니야? 에덴 길드 간부 중에 하나잖아. 되게 어릴 때 각성했는데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대신 그쪽 길드 마스터한테 찾아간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내가 알기로는 주해나 헌터도 게이트 고아였다던데. 아, 혹시 둘이 아는 사이야?”
“맞아, 아는 사이야.”
물론 이번 생의 주해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입속에 맴도는 말은 간신히 삼킨 뒤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주해나 헌터는 왜?”
“그냥. 선배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파일철을 덮었다. 그녀의 존재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고민이 이어질 터였다. 당장은 눈앞에 놓인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 내 속내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 건지 설연호가 화두를 돌렸다.
“오늘 자로 차정주 이사장이 출마 선언을 했으니 조만간 새로운 사람이 이사장으로 부임하겠네. 어떤 사람이 오게 될까.”
눈앞에 놓인 파일철 위에 태블릿을 올린 나는 설연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지로 화면을 두드렸다. 이윽고 떠오른 기사 속 차정주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속내를 가늠해 보았다.
* * *
똑똑―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재단 이사장실로 복귀한 차정주는 가운데 놓인 일인용 소파에 앉아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기사문을 단숨에 읽은 뒤 홀가분한 기색으로 문가를 돌아보았다.
“들어와요.”
이어 방문객 응대를 위해 놓인 낮은 테이블에 태블릿을 내려놓은 차정주가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이어서 천천히 열린 문틈으로 그의 비서와 또 다른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덴 길드의 부길드장 전태무 헌터님이십니다.”
빠르고 정확한 어조로 나란히 들어선 인물의 소개를 마친 비서가 두어 걸음 물러났다. 차정주는 전태무라고 불린 인물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어려운 제안에 선뜻 응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덕분에 우리 학생들을 두고 돌아서는 길이 염려스럽지 않게 되었어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더욱 많은 터라 후임 이사장으로서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차정주보다 조금 어린 연배의 전태무는 깍듯한 자세로 그와 손을 맞잡았다. 헌터 아카데미의 후임 이사장으로 분하게 된 그는 내심 기쁜 기색을 드러내면서 차정주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머지않아 다시 나타난 비서가 두 사람 앞에 향긋한 홍차를 내려놓은 뒤 사라졌다. 전태무에게 손짓으로 차를 권한 차정주의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사회 쪽에서 송부해 주신 계약서는 확인해 보았습니다. 계약 조건대로 에덴 길드의 부길드장 권한은 내려놓고 간부직은 유지하는 조항에 관한 것도 충분히 숙지했고요.”
이어서 두 사람은 앞으로 달라질 각자의 생활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전태무를 배웅한 뒤 홀로 남은 차정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창가를 내다보았다. 처음 그를 후임 이사장으로 지목한다고 했을 때 재단 이사회에서는 약간의 반발이 존재했다.
그들은 다른 직분을 겸임하는 인물 대신 오로지 이사장직만 맡을 수 있는 인물을 세우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으나 결국에는 차정주의 뜻을 따르게 되었다.
“전태무 헌터님께서 준비해 드린 차량을 통해 귀가하시는 것까지 확인하고 왔습니다. 다음 보고 진행할까요?”
어느 사이 기척도 없이 나타난 비서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차정주는 턱을 까딱인 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창밖을 응시했다.
비서는 지난 한 주 동안 차진명이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쯧.”
가만히 서서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던 차정주가 혀를 차며 무심한 어조로 혼잣말했다.
잠시 말을 멈추고 기다리던 비서는 차정주의 손짓을 따라 보고를 마저 이어 나갔다. 차정주는 비서의 입에서 새로 심복이라며 데려온 놈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여과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내 끼고 다니던 놈이 상을 치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 녀석을 대체하겠다고 데려온 놈도 영 시원치 않으니, 원.’
차정주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즈음 비서가 보고를 마무리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비서에게 나가 보라는 듯 손짓한 뒤 차진명으로 모자라 자신도 놓쳐 버린 도해월의 이름을 떠올렸다.
차정주에게 도해월은 곱씹을수록 탐이 나는 패였다. 그 패를 자신의 판에 올릴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때때로 입이 썼다.
그가 특히 눈여겨보았던 것은 도해월의 성장 속도였다. 도해월이라면 차정주가 내내 바라 왔던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접어들 무렵…….
지잉―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국민미래당 의원의 이름을 확인한 차정주는 금세 창가에서 돌아서면서 전화를 받았다.
* * *
설연호가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결국 다시 펼쳐 놓은 파일철 안쪽에 꽂힌 사진 위로 부드러운 노을빛이 쏟아지는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잉―
지잉―
지잉―
그때 근처에 뒤집힌 채로 놓여 있던 휴대전화가 연달아 진동했다. 곧바로 확인해 보니 지선일이 남긴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 지금 전화 가능하세요?] [저랑 제혁이가 뭘 좀 알아냈거든요] [그리고 음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그 일에 준희 선배도 얽혀 있는 것 같아요]나는 지선일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읽으면서 헛숨을 삼켰다. 이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