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또 다른 소실점 (10)
한동안 결석했던 조력자가 학교에 나타난 건 사고가 발생하기 이틀 전이었다. 지선일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작전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위해 서애란과 고정인을 회의실로 불러냈다.
그런 다음 지선일과 통화를 연결하여 설명을 들어 보니 조력자의 안색이 이전보다 훨씬 창백해졌으며 컨디션 또한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럼에도 조력자는 등급 측정 이후 성장을 향한 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조만간 7층 필드에서 훈련하겠다는 뜻을 여기저기에 전하고 다니는 듯했다.
“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몸도 성치 않은 애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의심을 안 했대? 왜?”
그때 회의실 테이블 가운데 놓인 휴대전화에 대고 목소리를 낸 건 고정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북과 주위에 널린 각종 장치 너머로 고개를 힘껏 내밀고 있었다.
―평소에도 워낙 성실한 학생이었나 봐요. 작년부터 5학년으로 진급해서 7층 필드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면 엄청 열심히 훈련할 거라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했어요.
이어서 스피커폰으로 설정되어 있던 지선일의 음성이 회의실 내부를 울렸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던 서애란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주변 사람들도 속으로는 쟤가 왜 저러나 싶었겠지. 아픈 와중에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걸 보면서 의심하기는커녕 저러다 쓰러지지만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까.”
―애란 선배 말이 맞아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 말을 끝으로 내부에 침묵이 감돌았다.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던 고정인과 서애란의 눈이 나를 향할 즈음 앉은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밑밥 깔아 놓는 방식은 예전에 사라진 강현욱이랑 크게 다르지 않네. 걔도 강효서 선배가 지시해서 나를 감시한 것 같기는 한데 막상 하는 짓은 너무 허술했던 게 기억나.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인 건가?”
그 물음을 끝으로 나의 시선이 서애란을 향했다. 그녀는 지난 경험을 되짚어 보는 듯 흐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예측했던 대로 준희가 강효서 선배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게 사실이라면 아마 그럴 거야.”
그녀의 대답을 듣던 나는 스킬에서 보았던 강준희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모자라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했던 것을 보면 이번 사고는 그가 지시한 것이 아닌 듯했다.
―저기, 선배들. 저한테 더 물어볼 건 없는 거죠? 점심시간이 곧 끝나서요.
그때 휴대전화 너머로 잠잠하던 지선일이 목소리를 냈다. 동시에 나를 힐긋거리던 고정인에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녀가 대신 대답을 전했다.
“응, 더는 없어. 얘기해 줘서 고마워. 수업 잘 듣고 나중에 봐!”
짧은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종료한 고정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배경음 삼아 태블릿 화면에 떠오른 달력을 들여다보던 나는 고개를 들고 고정인을 향해 말했다.
“정인 선배, 내가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
“7층 필드 훈련 예약 명단 말하는 거지? 일단 이번 주는 확보됐고 나머지는 좀 더 기다리면 돼. 잠시만.”
화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던 고정인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대꾸했다. 이내 마우스로 손을 옮겨 클릭을 몇 번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드라이브에 자료 올렸어. 학교 건물 도면은 예성이가 출력해서 가져온다고 하니까 그것부터 먼저 보고 있으면 돼.”
그녀의 말을 듣고 태블릿 화면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드라이브에 접속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자료를 확인하니 이번 한 달 동안 7층 필드에서 모의 던전 테스트 진행을 예약한 학생들의 이름이 시간대별로 나뉘어 적혀 있었다.
“여기 있네. 나흘 뒤, 오후 여섯 시. 이게 그 애들 이름이지?”
옆자리에서 자신의 태블릿을 들여다보던 서애란이 손가락으로 화면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같은 이름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긍정의 눈짓을 전한 뒤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7층 필드에서 사고가 생기는 건 이틀 뒤야.”
“이틀 뒤? 그날 예약자 이름은 다르게 되어 있던데.”
똑똑―
“얘기 중에 미안. 도면 여기 두고 갈게.”
서애란이 반문하는 사이 회의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등장한 고예성은 두툼하게 접혀 있는 흰색 종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어, 땡큐. 그런데 예약자는 다른 사람으로 등록되어 있잖아. 그걸 바꿔서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내가 다닐 때만 해도 필드 입장할 때 학생증이랑 지문 둘 다 찍고 들어가야 했던 것 같은데.”
고예성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던 고정인이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예성이 건네고 간 헌터 아카데미의 도면을 펼쳐 놓았다.
“그 부분은 스킬로 해결할 생각인 것 같아. 원래 예약했던 두 사람한테 최면을 걸어서 학생증이랑 지문을 빌린 다음에 관리자가 조력자만 데리고 들어가겠지.”
묵묵히 설명하면서 도면을 들여다보다 손끝으로 7층 필드가 위치한 부분을 짚어 보았다. 몸을 반쯤 숙이고 있으니 서애란이 곁으로 다가왔다.
“이번 작전에서 현장에 직접 투입되는 인원은 너랑 나, 둘밖에 없어. 주요 지시는 정인 선배가 내릴 거고, 나는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마지막 단계에 합류할 예정이야.”
이내 서애란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져 갔다. 도면에 눈길을 두고 곳곳을 살피던 그녀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날 내가 어떻게 하면 돼?”
그렇게 전하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덤덤했으나 내심 긴장한 것인지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 * *
서애란은 지난 이틀 동안 회의실에서 구상했던 작전을 끊임없이 곱씹었다. 마침내 작전 개시 시각에 맞춰 헌터 아카데미의 교정으로 이동하는 이 순간에도 그간 머릿속으로 너무 많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나머지 이것 또한 상상이 아닌지 거듭해서 확인해야 했다.
전날 새벽에도 오늘 마주하게 될 어둑한 하늘과 미지근하게 부는 바람까지 낱낱이 상상했던 그녀는 교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쪽으로 들어서기 전 귀에 꽂은 무전기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도착했어요. 교문 앞이에요.”
―벌써 도착했어? 잠시만, 출입문 보안 시스템 해킹이 아직 안 끝났어. 학교 전체에 걸린 거라 몇 분 더 걸릴 것 같아. 한 일이 분이면 될 거야. 주위에 아무도 없지?
귓가에 손을 올린 채로 고개를 숙인 서애란은 그렇다고 대답한 뒤 어깨를 곧게 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눈을 빛내던 그녀는 스킬 목록을 눈앞에 띄워 보았다.
[서애란 – 각성자• 보유 스킬 목록
‣ 언령 (B)
‣ 설득 (B)
‣ 전파 (B)
‣ 맹신 (A)
‣ 기도 (A)]
서애란은 고정인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면서 눈앞에 떠오른 푸른 활자를 주시했다. 이번 작전은 다른 동료들 없이 혼자 해내야 하기에 어깨가 유난히 무거웠다.
―이제 들어가도 돼. 방금 진행 상황 확인해 봤는데 관리자랑 조력자는 이미 필드 안에 들어간 것 같아. 애란이 넌 바로 통제실로 가면 되고.
그럼에도 그녀는 귓가에 지시가 울리는 즉시 어둠 속을 내달려 본관 건물에 진입했다.
―통제실에 진입해서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앙 제어 장치가 있을 거야. 거기에 내가 준 유에스비를 삽입하고 해킹 코드가 먹힐 때까지 대기하면서 애들 상황이 어떤지 우리한테 알려 줘.
끝도 없이 펼쳐진 계단을 거듭해서 밟아 오르던 서애란은 호흡을 조절하면서 고정인의 지시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계속해서 말했다.
―중앙 제어 시스템을 해킹하고 난 뒤에는 모의 던전 테스트 구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거야. 그때 애란이 네가 내려가서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돼. 안쪽에서는 여전히 실제 던전이랑 흡사한 수준의 마력이 순환하고 있으니까 주의하고.
단숨에 7층에 다다른 서애란이 기척을 숨긴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7층 필드의 야간 개방으로 인해 최소한의 조명만 밝힌 복도는 더없이 한적했다.
“방금 통제실 들어왔어요.”
마지막으로 주변을 확인한 서애란이 통제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미리 소지하고 있던 카드 키를 입구에 대고 안쪽으로 진입했다.
내부로 들어선 서애란을 반긴 건 푸른빛을 내뿜는 거대한 장치들이 늘어선 풍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긴 장치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고정인의 지시를 곱씹었다.
이어서 자세를 굽힌 서애란은 손끝으로 기계의 옆면을 더듬으면서 유에스비를 꽂아 넣을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찾았어요. 유에스비 지금 삽입할게요.”
―오케이. 이제 애들은 어떤지 확인해 줄래?
망설임 없이 유에스비를 꽂은 서애란은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중앙에 난 창을 통해 필드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도해월이 예측했던 대로 실제의 던전처럼 구현된 공간을 활보하는 건 예약자 명단에 적혀 있던 6학년 학생이 아닌 관리자와 조력자였다.
“필드에 들어온 사람만 달라지고 다른 건 예약 명단에 적혀 있던 그대로예요. 관리자가 선두에 서서 가고, 조력자도 얼굴이 창백하기는 한데 움직이는 것 보면 멀쩡해 보이네요.”
서애란이 빠른 속도로 보고하는 동안 시스템 화면에 오류 표시가 떠올랐다. 해킹이 진행되는 동안 서애란은 작은 창 너머로 앳된 얼굴의 두 사람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귓가에서 이틀 전 작전을 구상하던 순간 도해월이 했던 말이 되살아났다.
‘잠금 장치를 해제하려면 강도 높은 마력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해. 그걸 오차 없이 성공하려면 그만큼의 정신력이 뒤따라야 하고.’
도해월은 거기서 말을 아꼈으나 서애란은 그가 더해서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작전은 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날마다 생각하고 있던 그 일과 일맥상통한 구석이 존재했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랑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온몸을 던져서 막을 수는 있겠지.’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사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이유나를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믿음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었다.
삑―
이윽고 서애란의 눈앞에 있던 모니터 화면에서 붉은 경고문이 떠올랐다.
[중앙 제어 시스템 가동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습니다.]―이제 됐어. 이 상태로 버틸 수 있는 건 딱 십 분이야. 그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야 돼.
가볍게 숨을 고른 서애란은 기계에서 울리는 소리와 고정인의 음성이 겹쳐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통제실을 빠져나갔다.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긴 뒤 굳게 닫혀 있는 입구에 손을 얹은 뒤 눈을 감자 그녀의 주위로 붉은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달칵―
그로부터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눈에 봐도 육중해 보이는 입구 안쪽에서 장치가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서애란은 이를 악물면서 문을 밀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쿵―!
서애란이 강한 마력으로 구현한 정글의 진흙을 밟고 나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것이 입구가 닫히는 소리라고 여기면서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런 자신을 뒤따라 들어온 누군가의 모습은 차마 확인하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