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몰이해의 시간 (1)
같은 시각, 7층 필드 통제실.
서애란이 잠긴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틈으로 비집고 나온 마력이 7층 복도 내부를 감돌았다. 나는 그것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수습한 뒤 서둘러 통제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전의 서애란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남긴 흔적이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중앙 제어 시스템을 해킹한 고정인이 모의 던전 테스트를 재개할 즈음 귓가에서 서애란이 무어라 보고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서 고정인과 서애란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작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하는 건 이곳에서 상황을 주시하며 대기하는 것이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통제 장치 끄트머리에 두 손을 얹고 상체를 비스듬히 숙인 나는 창 너머로 늪지를 활보 중인 관리자와 조력자를 내려다보았다.
침묵 속에서 그들의 앳된 얼굴을 지켜보고 있으니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접어 두었던 기억이 밀려들었다. 뒤이어 떠오른 건 주해나의 이름이었다.
나는 결국 간담회에서 받았던 주해나의 명함을 버리지 못했다. 한참 전에 고예성에게 받았던 사진과 함께 서랍에 넣어 두고 말았다. 거듭하여 고민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 서랍에는 앞서 졸업한 동료들의 졸업식 당일에 단체로 찍었던 사진도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사진 속에는 서늘한 겨울의 창가를 배경 삼아 환하게 웃고 있는 강준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때 통제실 바깥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 왔다. 거리를 짐작해 보니 7층에 막 올라선 것 같았다. 곧바로 바깥에 설치된 CCTV 중계 화면을 살펴보니 닫힌 문 앞에서 허망하게 서 있는 강준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쾅―!
화면 속에서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닫힌 문의 측면에 부착된 화면을 통해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이내 발끝으로 문을 연달아 걷어차면서 무어라 벙긋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감고 증폭 스킬을 시전했다.
―처리할 거면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해야 한다고 내가 분명……! 이런 씨발, 진짜!
이윽고 귓가에서 화를 내는 강준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욕설을 구사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 나머지 눈가를 찡그리던 것도 잠시 강준희는 이 사고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에 의아해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확인했던 모든 미래에서 강준희는 이 사고에 더 개입하지 않고 급하게 사라졌으니까.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어서 나가서 뭐든 말해 봐야 했으나,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망설이는 건 그동안 우리를 떠난 강준희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쏟아 내는 장면을 수도 없이 상상했던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빨리 가서 물어봐야 할 것 아니야. 어떻게 내가 가진 성물의 존재를 알아냈는지, 하필이면 그 비밀을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차진명에게 가서 고한 건지, 그렇게 떠난 뒤로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네, 저예요. 급하게 전할 얘기가 있는데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음……. 제가 맡았던 학생 중에, 네…….
괴롭고 허망했는지. 그 모든 걸 말하기도 전에 강준희는 닫힌 문을 노려보더니 휴대전화를 쥐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분노로 치솟는 숨을 억지로 참아 가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나는 전생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씻어 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 노력으로 과거의 잘못은 어느 정도 바로잡았지만, 새로 만난 동료는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떠나 버렸다.
결국에는 강준희가 내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의 곁에 서는 걸 택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뼛속에 한기가 스미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들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는 일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그러했다.
―네, 지금 들어갈게요. 바로 연구소로 가면 되죠?
그때 누군가와 통화를 마무리한 강준희가 화면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급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간담회가 있던 날 주해나를 두고 돌아섰던 것이 떠올랐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더는 두 사람의 흔적이 담긴 서랍을 열어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나와 끝까지 함께 가는 슬픔으로 남게 되리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런 감정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이윽고 이번 꾸민 관리자에게 분노한 듯 한참 동안 욕설을 중얼거리던 강준희의 기척이 귓가에서 완전히 흐릿해졌다. 이윽고 귓가에서 서애란의 보고가 들려왔다.
―두 사람 근처로 접근했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들었다. 나는 시선을 빠르게 옮겨 상황을 파악한 뒤 귓가에 손을 짚으면서 서애란에게 지시를 내렸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 조력자를 데리고 입구 근처까지 도착하면 테스트를 강제로 종료할 거야.”
뒤이어 서애란과 고정인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남아 있던 계획을 되짚어 보다가 다시 한번 7층 복도를 비추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예측대로라면 강준희가 떠나간 저 자리에는 머지않아 백이현이 나타날 것이었다. 미래에서 본 백이현은 나와 서애란이 오늘 여기에 나타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더불어 그와 함께 나타난 낯선 여자 또한 익명의 후원자 중 한 명인 듯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돕지 않고 그들이 직접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또한 조력자를 구하러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머릿속에서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 고로 이번 작전의 목적은 조력자를 구출하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연이어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나아가 이때까지 우리를 도왔던 익명의 후원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 * *
이후의 상황은 회의에서 계획했던 것처럼 순차적으로 흘러갔다. 고정인이 모의 던전 테스트를 종료하기 직전, 백이현이 7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통제실에 남은 흔적을 정리한 나는 고정인에게 마무리를 부탁한 뒤 곧바로 걸음을 틀었다.
서둘러 복도로 향하니 닫힌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이현이 보였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내 인기척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돌아보더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아, 마스터님.”
“이런 데서 나를 마주쳤는데도 상당히 태연하네요. 백이현 헌터가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에게 눈인사를 건넨 나는 근처로 걸음을 옮기면서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백이현 또한 닫힌 문과 나를 힐긋거리면서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자세한 상황은, 음, 그러니까…….”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백이현은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스킬을 통해 확인했던 미래의 장면과 달리 그와 동행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이 제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 터라 경황이 없네요. 마스터님이 저한테 뭘 묻고 싶으신 건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요.”
나는 어딘가 횡설수설하는 백이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오늘 동행하기로 했던 사람도 필드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 듯했다.
하지만 서애란한테 따로 보고받은 사항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그나저나 방금 백이현이 ‘적당한 때’라고 말하지 않았나?
“모쪼록 자세한 이야기는 필드에 들어간 사람들이 전부 빠져나온 뒤에 장소를 옮겨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서애란 헌터가 구출한 학생은 저희가 데려가서 보호할 생각입니다.”
“보호라니요?”
백이현이 이어서 말하는 걸 듣다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제대로 들으신 게 맞습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목적도 거기에 있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은 차마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몇 주 전에 스킬을 사용하면서 내가 보았던 건 백이현과 또 다른 누군가 이곳에 나타나는 장면까지였다. 마력의 한계로 인해 그 이후의 장면까지 세세하게 내다볼 수는 없었다.
―테스트 종료했어. 애란이도 곧 나갈 거야.
그때 귓가에서 고정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백이현이 했던 말은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들렸으나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빠른 판단을 내려야 했다.
“내 앞에서 줄곧 얘기하던 적당한 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나는 얕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곁눈으로 퇴로를 확보하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백이현은 크게 안도하면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탕―!
그때 필드의 입구가 열리더니 멀리서 희미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틈으로 나타난 건 서애란과 조력자뿐만이 아니었다. 축 늘어진 서애란을 부축하면서 나타난 그녀는…….
“이유나?”
그 소리에 반응한 누군가 내가 서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마주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제대로 호명한 것이 맞는 듯했다.
“콜록, 콜록.”
그마저도 잠시 기침을 토하는 서애란을 곁눈질로 확인한 나는 이유나에게서 그녀를 넘겨받은 뒤 조력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전부 빠져나왔어. 학교 밖으로 완전히 벗어난 다음에 다시 얘기할게.”
―.근처 공원 쪽으로 조금만 가면 원하가 차 대기시켜 놨을 거야. 그거 타고 바로 사무실로 오면 돼.
백이현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떨고 있는 조력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에는 고정인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런 다음 모두를 이끌고 미리 확보해 둔 퇴로를 따라 교정을 벗어났다.
* * *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백이현이 이끄는 대로 향한 곳은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 낯선 건물이었다.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던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낯선 풍경 속에서 나를 맞이한 건 한동안 보지 못했던 안지유였다.
“왜 둘만 여기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니, 인사부터 하는 게 맞지. 안녕. 졸업식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입구까지 달려 나온 안지유는 문가에 서 있던 나와 백이현의 뒤를 힐긋거리다가 금세 자세를 바꿔 인사해 왔다.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오늘 내가 이 공간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 그들 계획의 종점인 듯했다.
“그런 셈이지.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얼굴이네. 우선 들어와서 얘기할래? 네가 궁금해하던 걸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해서. 그리고 또……”
그즈음에서 말끝을 흐리던 안지유는 백이현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곁에 서 있던 백이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 순간 안지유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을 이었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쪽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겨 두었던 많은 질문에 답을 들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