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다시 시작된 날갯짓 (6)
자정 무렵, 황선규가 탑승한 차량이 도심의 한적한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는 뒷좌석에 기대어 앉은 채 차창을 넘겨다보며 손등으로 턱을 문지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편 조수석에 앉아서 태블릿을 들여다보던 수석 보좌관은 백미러로 자신이 모시는 의원의 모습을 흘긋거렸다. 거울 너머로 비치는 그는 종일 바쁜 일정을 수행했음에도 흐트러짐 없이 멀끔한 행색이었다.
“보고할 것 있으면 해요. 난 괜찮으니까.”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황선규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면서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수석 보좌관은 침착하게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에 도해 길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용건은 지난번과 같았습니다. 의원님을 그쪽에서 보유한 관광용 던전에 초대하고 싶다더군요. 의원님께서 거절하신 뜻을 이해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말문을 맺은 수석 보조관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곁눈으로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황선규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시 연락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빠른 것 같단 말이지…….’
자세를 바르게 세운 수석 보좌관은 백미러로 황선규의 모습을 살핀 뒤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는 뜻일 터였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을 눈에 담던 황선규는 도해 길드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던 사항을 떠올려 보았다.
3선 의원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다다를 때까지 어떤 길드의 뒷배도 자처하지 않았던 그에게 대뜸 초대 의사를 전달한 도해 길드는 곱씹을수록 재미있는 존재였다.
황선규가 도해 길드의 마스터인 도해월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지난 2월 신촌 게이트 사고 당시의 행적을 다른 뉴스를 통해서였다.
그 뉴스 속에서 도해월과 그의 동료들은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한 것처럼 차분하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당시에 사람들이 주목했던 건 그들이 헌터 아카데미를 막 졸업하거나 여전히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었으나, 황선규의 이목을 이끈 건 그런 단순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봤던 건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어린애가 펼칠 만한 전술이 아니었어. 아니지, 전술이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야. 그것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 텐데.’
황선규는 습관적으로 넥타이 모양을 단정하게 가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손을 천천히 내린 그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제 또래에 비해 노련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그런 몸가짐은 분명…….’
이어서 그가 떠올린 것은 군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의 모습이었다. 교복을 벗은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이를 보면서 이런 감상을 느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어이없게 느껴졌으나 그런 감상을 제외하고는 도해월을 정확히 설명할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황선규 역시 한때 직업 군인으로 분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을 해군에서 보낸 그는 부상을 이유로 제대했고 이후로는 오랫동안 집안에서 운영하는 제약 회사의 대표 이사로 지냈었다.
자신이 지나온 삶에 견주어 보면 군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때 익힌 감각만큼은 국회의원이 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고로 자신이 도해월을 보면서 느낀 감상은 착각에 불과하지 않을 터였다.
‘그 정도로 비상한 머리라면 내가 길드의 뒷배를 봐주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나를 택했을까.’
황선규가 길드의 뒷배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은 도해가 창설되기 한참 전부터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특정 길드의 뒤를 봐주는 의원들은 그들을 돕는 대가로 거액의 비자금을 받았으나 황선규는 그런 식으로 얻는 수익을 원치 않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유였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제약 회사에 몸담았던 그는 돈의 흐름을 보는 눈이 밝았고 재화를 얻고자 하는 욕심 또한 무척 강했다.
이러한 사실과 별개로 그가 길드의 제안을 거절해 왔던 건 그의 마음에 드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기 초반에는 내로라하는 대규모 길드에서도 연락을 몇 번 받았지만, 하나같이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입소리를 내던 황선규는 그들의 제안에 어떤 식으로 대답하는 게 좋을지 고심해 보았다.
“저 의원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때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셈해 보던 수석 보좌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황선규는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처음 도해월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건 얕은 흥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이 초대 의사를 전달한 이후 도해에 관해 좀 더 면밀하게 알아보니 도해월에게 직접 묻고 싶은 질문이 몇 가지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궁금한 건 공규호 의원의 아들인 공희찬을 어떻게 세상 밖으로 꺼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황선규는 공규호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어떤 식으로 방치하고 고립시켰는지 충분히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초대에 응하겠다고 해요. 일정은 윤 보좌관이 알아서 잡아 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것 말고도 그를 만나기로 결심한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으나 밤이 깊었으니 이쯤에서 상념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황선규는 자신의 보좌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 * *
나는 고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복귀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앞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서애란에게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날이 밝은 뒤에 만나자고 전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끝내 서애란의 고집을 꺾지 못한 나는 곧장 집무실로 향한 뒤 주변 정리를 마치고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담긴 건 책상에 걸터앉아 있는 서애란의 뒷모습이었다. 그녀는 창문 너머 야경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듯 인기척에도 미동이 없었다.
“거긴 내 자리인데.”
짙은 피로가 턱밑까지 치솟은 나머지 말소리에 길고 무거운 한숨이 섞여 나왔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서애란은 피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내가 먼저 왔으니까 오늘은 내 자리야.”
나는 그녀를 따라서 넌지시 웃어 보인 뒤 창틀에 허리춤을 기대어 선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따라 절반쯤 그늘진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피곤하면 일단 쉬고 내일 일찍 나오지, 왜.”
“이대로 들어가면 괜히 생각만 길어져서 뒤척였을 거야. 그럴 바에는 그냥 너랑 먼저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거기까지 전한 서애란은 잠시 허공으로 시선을 틀었다.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보육원 얘기는 며칠 전에 현선민 헌터한테 직접 물었다고 했지. 그때 어디까지 들었어?”
“이전까지 구관에서 지내다가 각성하고 나서 신관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던 애들 몇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까지. ”
머릿속으로만 담아 두었던 것을 직접 말하고 보니 당시의 기억이 한층 생생해졌다. 그런 나에게서 고개를 돌린 서애란은 마른 입술을 축이면서 입을 열었다.
“현선민 헌터가 짐작했던 대로 달마다 한 명씩 그보다 많으면 세 명까지도 사라지고 있다는 정황을 확보했어. 그 아이들이 보육원을 떠난 뒤에는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 부분은 현선민에게 관련 정황을 전해 들었던 순간부터 예감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짐작하던 것과 상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자 곧바로 대답했다.
“만약 그 아이들이 한마연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보육원장은 오래전부터 왕래하던 입양 브로커한테 일 처리를 맡겼을 거야. 직접 넘겼다가 괜히 뒤를 밟히는 것보다 신뢰하던 브로커를 통해서 정리하는 게 훨씬 깔끔했을 테니까. 브로커 쪽에서도 평소에 하던 일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겠지.”
“맞아, 딱 그런 경우였어.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은 대부분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고 하더라. 그중에는 비각성자인데도 각성했다고 속이고 신관으로 넘겨 버린 경우도 더러 있었고.”
“비각성자를 넘긴다고?”
팔짱을 끼운 채 서애란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면서 서애란을 바라보았다. 이내 팔을 떨구면서 자세를 바로잡으니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우선 내가 재단 사람들이랑 알아낸 것도 거기까지였어. 자세히 알아보려면 사라졌다는 아이들의 개인 정보를 입수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바로 꼬리가 밟힐 것 같아서.”
“고생했어. 달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게 확실하다면 보육원에 가서 스킬을 사용했을 때 그 일이랑 관련해서 보이는 게 더 있을 거야.”
나는 피로가 쌓인 눈가를 손가락으로 지압하면서 대꾸했다. 서애란도 나와 비슷한 상태인 건지 어둠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 움직이면서 안지유랑 예전에 사라진 강현욱에 관해서 따로 얘기한 게 좀 있는데…….”
이윽고 서애란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설명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강현욱을 다시 떠올린 건 안지유가 강현욱 또한 부작용 증세로 고통받고 있을지 의아해하면서부터였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수면에 떠오른 일이 아니라서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강현욱이 부작용을 호소하기 시작한 시기를 계산하면 불법 마석 가공물이 언제부터 제조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답은 알아냈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알아내기는 했어. 재단에 있던 다른 졸업생들한테 먼저 물어봤는데 그 애들은 강현욱이 학생회장이었던 것만 알고 있고 자세한 건 잘 몰랐대. 그렇게 돌고 돌아서 결국 답을 알려 준 건……. 이유나였어.”
이유나의 이름은 서애란에게 있어 닳도록 익숙한 것이었겠으나 그 이름을 소리 내서 말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금 어색해 보였다. 이어서 그녀는 이유나 또한 강현욱에 관해 잊고 지냈던 나머지 그동안 제대로 떠올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강현욱이 예전이랑 달라지기 시작한 건 차진명 선배가 유학을 떠나기 일 년 전부터였대. 그리고 증상이 심화된 건 그 선배랑 성민주 선배가 떠나고 난 뒤부터였고. 예전 같았으면 그게 불법 마석 가공물이랑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더라.”
서애란의 추측이 마냥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나도 동의했다. 성민주가 유학에서 돌아온 뒤로 그녀의 삼촌인 박호재 연구소장은 한국마력연구소를 통째로 넘기려고 하고 있고, 그 안에는 사라진 성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중이었으니까.
“한마연처럼 거대한 집단에서 그런 걸 만들었다고 했을 때는 원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집단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잘 아는 두 이름이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니까 모든 게 새삼스러워지더라고.”
어느 순간부터 어깨를 움츠린 채 팔뚝을 문지르던 서애란이 나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벌이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또렷한 형태로 귓가에 맴돌았다. 그건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때까지 제대로 가져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질문이 무의식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