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실습 보상 (2)
이른 아침의 교정 근처는 때 아닌 소란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진을 치고 기다리던 방송국 기자 무리는 강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교문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각자 카메라를 세팅하거나 휴대 전화에 무어라 떠들어 대면서 시간을 죽이는 듯했다.
“이야, 저 사람들이 다 우리 때문에 왔다는 거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왔네. 학교 앞에 기자들 저렇게 많이 온 건 처음 봐.”
간신히 한숨을 삼키던 내 곁에서 공희찬이 비죽거렸다.
건들거리며 실실대는 모습을 곁눈으로 살피다가 혀를 끌끌 찼다.
“새벽부터 모든 방송국 뉴스 헤드라인이 우리 학교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더라. 인터넷도 다를 건 없었고.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추측하는 걸 보고 있으니 내 심장까지 졸아드는 기분이었어. 네가 어떤 대형 사고를 친 건지 이제 감이 좀 잡히지? 진작 나오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창가에 서서 손날로 눈가를 가린 채 교정을 내려다보던 김미솔이 덧붙였다.
홍원하는 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갯짓으로 기자들의 수를 세어 보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건 C급 판정을 받았던 던전이 예고 없이 A급 던전으로 상승했다는 것 정도밖에 없더라.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빠져나온 건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
“나는 나오기 전에 던전 연구자라는 대학교수가 인터뷰하는 걸 봤거든. 그 교수라는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까 조금만 더 위험했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수도 있었대.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뉴스만 봐도 심장이 막 벌렁거려.”
이곳 4층 복도에 다다랐을 때부터 근처에 서 있던 강준희는 말하면서도 몸을 잘게 떨었다. 덩치는 큰 게 겁은 많다.
작은 소리로 오가던 대화를 잠자코 경청하던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머지않아 멀끔하게 차려입은 정건후가 손을 흔들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따라 차례로 고개를 돌리던 조원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다들 좋은 아침. 이미 봐서 알겠지만, 정문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야. 그나마 기숙사로 이어지는 후문은 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어서 비교적 안전해. 리호 길드 쪽에서 차량은 이미 보내 뒀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걸 타고 이동한다.”
“혹시 이동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죠? 누가 습격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무서운데요.”
“아침 뉴스는 진작 보고 왔겠지? 너희 신변까지 노출되진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오전 중으로 학교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언론에도 관련 보도 자료를 뿌릴 예정이니까.”
“그쪽 건물에도 사람이 몰려 있지 않을까요? 편하게 갈 수 있는 건 좋은데 거기도 여기랑 비슷하면 어떡해요?”
“그쪽에서는 아예 전날 저녁부터 손을 썼다고 하더라. 그 근처 일대까지 싹 정리했다고 했으니 걱정할 것 없어. 길드 건물 내부로 무사히 진입하기만 하면 더는 문제없을 거다. 또 질문이나 궁금한 것 있는 사람?”
나는 한참 전부터 침묵을 유지하던 설연호에게로 눈길을 틀었다.
설연호는 불필요한 말은 최소로 아끼는 편이었지만 속내가 번잡할 때는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고는 했다.
길드 건물로 직접 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보네.
언젠가 부대원이었던 설연호는 리호 길드 건물에서 보냈던 시간이 자신에게 고역으로 남았다고 고백했었다. 그 이유가 길드 마스터이자 설연호의 모친인 설연진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제 졸업까지 한 학기밖에 안 남았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 따갑게 느껴질 테고.
끈덕지게 쫓아가는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설연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 * *
“우와, 저 리무진 처음 타 봐요! 가끔 지나다니는 것만 봤거든요. 안쪽은 훨씬 더 좋다!”
강준희가 여과 없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리무진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에 비해 김미솔과 홍원하는 꽤나 점잖게 행동하고자 애쓰는 것이 보였으나 두 눈에 드리운 이채만큼은 감출 수 없는 듯했다.
“난 이런 거 자주 타서 놀랍지도 않아. 이게 다 아버지 잘 만난 덕이지. 거기 버튼 누르면 간이 바도 나올 텐데?”
공희찬은 거만한 자세로 푹신한 시트에 기대어 강준희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고 있었다.
“헐, 진짜다! 여기 초콜릿 있어. 쌤, 초콜릿 드실래요? 선배는요? 해월이 너도 먹을 거지?”
조용히 가려던 나는 강준희가 눈을 빛내는 걸 보다가 어쩔 수 없이 초콜릿을 받았다.
“선생님, 근데 저분은 누구예요? 리호 길드 소속 헌터인 거예요?”
진작 초콜릿 모서리를 베어 물던 김미솔이 정건후에게 물었다.
창가를 내다보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정건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무어라 설명하려는 찰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무리를 돌아보았다.
“네, 리호 길드 소속 A급 헌터 윤해리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헌터 아카데미 학생 여러분께 오늘 일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질의응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소리에 저들끼리 투닥거리던 공희찬과 강준희가 가만히 멈췄다.
여성의 조곤조곤한 언사에도 설연호는 맞은편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말씀하실 때 잘 들어라.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면 대답 안 해 줄 거야.”
정건후가 가볍게 동조한 뒤 윤해리라고 소개한 여자에게 마저 이야기하라며 손짓했다.
“오늘 저희가 여러분을 길드 건물로 직접 모시는 이유는 가장 먼저 이번 사태에 관해 진심 어린 사과를 직접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후에는 간단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고요.”
사태가 벌어진 뒤로 리호 길드 측에서도 당황스러웠겠지.
잘 관리되었을 던전이 A급으로 상승하는 건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
“조사라고 해서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까지 학생들도 충분히 입장할 수 있도록 실습용으로 관리되던 던전의 위험도가 갑작스레 상승하게 되면서 생긴 문제니까요. 이에 관해 저희 쪽에서는 진작 조사에 착수했고, 이번 조사는 그곳에 계셨던 여러분의 증언까지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윤해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채로 우리의 반응을 살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여러분은 비밀 통로를 통해 건물에 입장한 뒤 곧바로 5층에 도착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어 8층에 자리한 외부인 응접실로 이동하시면 보상 지급과 조사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목요연한 설명을 귀 기울여 듣던 조원들은 긴장이 배가되는지 어느새 조용해졌다.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 설연호를 스치듯 바라보던 윤해리는 길드 건물에 다다를 때까지 그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 * *
“저거 마스터님 아들 맞지? 올해로 벌써 7학년이라던데. 시간 참 빠르다.”
“새삼스럽게 뭘. 그래도 어떻게 A급 던전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네.”
“연호 학생이 못 돌아왔으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말 하지도 마.”
윤해리의 말대로 금세 5층에 다다른 나와 일행은 안내를 따라 드넓은 공간을 가로질렀다.
워낙 규모가 큰 길드인 나머지 곳곳에서 은근하게 주목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증폭’ 스킬을 발동시켜 대화를 전해 들었다.
“저도 방금 사무실에서 듣고 왔는데, 거의 죽을 뻔했던 학생들을 다 데리고 나온 게 연호 학생이었대요.”
“어이쿠, 깜짝이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아무튼, 진짜 그런 거래?”
“네, 그렇대요! 그것 때문에 연호 학생이 졸업하는 대로 후대 마스터로 지목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고 있어요!”
“설마, 그 정도까지? 이번 일이 큰일인 건 맞지만 그건 너무 간 것 아니야?”
“하긴 그건 그래요. 그렇지만 다들 연호 학생이 그동안 길드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고 있어서 그런 얘기까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저들끼리 모여 있던 이들에게서 걸음은 점점 멀어졌으나 목소리만큼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러게. 이때까지 내내 찬밥 신세다가 갑자기 후대 마스터라니. 사람들 속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우리 같은 사무직 헌터는 윗사람들 다툼 지켜보는 게 쏠쏠한 낙이잖아요. 이만큼 재미있는 콘텐츠가 또 어디 있나 싶기도 하고요. 아까 들었는데 설연리 헌터한테도 소식이 전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저녁에 미국에서 급하게 귀국한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거기도 마음이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양자가 치고 올라오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겠지.”
“말만 들었는데도 벌써 드라마 한 편 본 기분이에요. 헌터 아카데미는 곧 방학이라던데. 그럼 연호 학생도 더 자주 오겠죠? 당분간 출근길이 즐거울 것 같네요.”
그 말을 끝으로 웃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차츰 흩어졌는지 더는 소음을 잡아 낼 수 없었다.
나는 앞서 걷는 설연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스킬을 완전히 거두었다.
설연호의 신성력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힐러를 등한시하는 한국 헌터 사회의 분위기는 리호 길드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 사태 직후 고아가 된 설연호가 설연진의 양자로 입적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는 몇 주 내내 그들의 행보를 떠들어 댔다.
설연진이 예고도 없이 설연호를 입양한 것에 대한 추측이 여러 갈래로 난무했다.
그 가운데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진 것이 바로 후대 마스터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연호는 세간에 설연진과 같은 극강의 공격력을 가진 전투형 헌터라고 알려져 있었다.
설연호가 살생하지 않는 헌터라는 것까지 알려진 이후에는 입지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내가 이용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지.
“이쪽으로 입장해 주시면 됩니다.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던전 공략 및 관리팀 팀장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세한 사항을 안내해 주실 겁니다.”
한참을 복잡한 길을 따라 걷던 윤해리는 안내를 마치는 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마침내 다다른 곳은 그녀가 리무진에서 설명했던 8층 외부인 응접실이었다.
고급스러운 자홍색 벨벳과 고동색 원목 가구로 꾸린 공간은 일개 학생들을 대접하기에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는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대우였지만.
폭신한 소파에 기대어 앉은 나는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주위를 마저 둘러보았다.
“나 진짜 살면서 이렇게 좋은 곳은 처음 와 봤어. 진짜 너무 좋다. 무슨 응접실이 내 방보다 세 배는 더 큰 것 같지?”
“실제로도 세 배는 넓은가 보지. 야, 이런 곳까지 와서 자꾸 어리바리하게 굴 거야? 조용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
“그러는 선배야말로 들어오면서 남몰래 침 삼키는 것 다 봤거든요…….”
“누가 초대받은 자리까지 와서 말다툼하니. 예의범절은 학교에 두고 왔어?”
저들끼리 투닥거리던 강준희와 공희찬은 정건후의 나지막한 호령에 금세 조용해졌다.
그 둘을 제외한 7학년들은 제법 공손한 자세로 문간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설연호의 안색을 살피려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혼란스러워 보이던 것도 잠시였을 뿐 설연호는 자신에게 익숙한 건물에 들어선 이후로는 어떤 표정도 없이 담담한 상태였다.
그때 누군가 닫혀 있던 문에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검은색 수트를 차려입은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아카데미 학생 여러분. 그리고 정건후 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길드 마스터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하고, 보상 지급과 조사를 함께 진행할 리호 길드 던전 공략관리팀 팀장 배정민입니다.”
기다란 사지를 휘적이며 나와 일행이 자리한 테이블 근처까지 다다른 남자가 허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을 따라 느지막하게 서서 그에게 목례했다.
자신을 배정민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고개를 들고 모두와 차례로 시선을 맞추었다.
차분하게 순서를 옮겨 가던 시선은 나에게 다소 오래 머무르는 것이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가 실습의 조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읽히기라도 했는지 배정민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그의 손을 가볍게 맞잡으며 악수했다.
“이번 실습에서 6조의 조장을 맡았던 도해월 학생이시죠. 리호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학생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는데, 늦지 않게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