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도움닫기 (7)
나는 고개를 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는 어른인 나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내가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믿음직한 어른이라면 분명 자신을 도와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건 영락없는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절실한 거겠지.
그 마음이 나에게 닿는 순간 앞서 아이를 만나러 들어오기 전 혼자서 했던 여러 가지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증언이니 뭐니 하며 본능적으로 아이의 쓸모를 계산했던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언젠가 이 아이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 만약 그럴 수 없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눈을 가볍게 감았다 뜨면서 결심을 마친 나는 아이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두어 걸음을 남기고 멈춘 다음에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아이와 시선을 마주쳤다.
“오늘 내가 여기 온 건 작년 겨울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고 싶어서야.”
평소보다 느릿하고 친절한 어투로 입을 열곤 아이의 젖은 이마를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던 아이는 금세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걸 알아내려면 사라진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그동안 누구를 데려갔는지, 왜 데려갔는지, 데려간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은 뭐였는지 찾아내야 하거든.”
“그런 거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 다 기억하고 있어요. 누가 사라졌는지, 언제 사라졌는지, 뭐라고 하면서 사라졌는지 다 알아요.”
이마에서 손을 거두고 아이의 어깨를 조심스레 거머쥐던 나는 맥없이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내 다시 눈을 맞추면서 진지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아저씨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해 주면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줄게. 어때, 할 수 있겠어?”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동료들이 나에게 우리 길드의 뒷배로 황선규 의원을 지목했던 이유를 묻던 것이 떠올랐다.
전생과 다르게 차정주의 기세를 꺾은 다음 황선규를 국가 원수로 세우고 싶은 것도, 앞으로 연쇄적으로 발생할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내고 싶은 것도 사실상 같은 이유에서였다.
세상의 멸망을 막아 낸 다음, 그다음에 다가올 미래에서 안정적인 삶으로 보상해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이전 생에서 영문도 모르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죄일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미래였으나 눈앞에 선 아이가 그 시간을 살아갈 모습을 상상해 보니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약속할게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어느새 온몸의 떨림이 잦아든 아이가 나에게 대답했다. 아이의 어깨를 놓으면서 천천히 일어선 뒤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가 자신의 손을 얹는 순간, 부드럽고 연한 살갗에 깃든 온기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본관으로 돌아간 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최성일이었다. 그는 나와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면서 입술을 벙긋거렸다.
“어허, 선생님이 허락 없이 신관에 가지 말라고 했지.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왔는데 왜 이제 왔어. 그보다 해월이 네가 왜……. 설마 그 애를 후원하고 싶다는 거니?”
습관적으로 아이를 다그치려던 최성일은 아이가 주춤거리면서 내 곁으로 달라붙자 말끝을 흐리면서 어색하게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보육원에 후원 물품을 제공하고, 그리고 이 아이를 개인적으로 또 후원할 생각이에요.”
“그걸 그렇게 빨리 결정하면, 음, 우선 원장실로 들어가 있을래? 그 손은 잠깐 놓고. 선생님이 따로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제원아, 그 손 놓고 어서 들어가.”
“아뇨.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을 전해 들은 최성일이 적잖이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냈으나 이내 팔을 내리면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해월이 너도 잘 알다시피 한 아이의 진로를 꾸준히 지켜보면서 후원하려는 분들이 없는 건 아니야. 너도 그런 의미에서 후원을 결정한 거라면 다른 아이를 추천해 줄게. 물론 제원이도 참 똑똑한 아이지만 이왕이면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아이가 좋지 않겠니? 그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소개해 주마.”
손바닥을 겹쳐 잡은 채 모기라도 된 것처럼 이리저리 비비던 최성일이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내 손을 힘주어 잡은 채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혹시 제가 이 아이를 택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부터 먼저 듣겠습니다. 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보육원 전체 후원도 재고해 볼 생각이니 신중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며 잡고 있던 손을 힘껏 고쳐 쥐었다. 이내 잔뜩 긴장한 듯 무르고 여린 살갗에서 땀이 배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최성일은 끝내 변명하지 못하고 아이와 나를 원장실로 데려갔다.
* * *
하늘 보육원에서 정기 후원 관련 사항을 조율하고 돌아온 지 어느덧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재단 건물 로비의 휴게 공간에 앉아 있던 나는 현선민과 아이를 기다리면서 당시의 기억을 상기했다.
그날 아이를 후원하겠다는 말에 옹졸하게 대꾸하던 최성일 원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목소리를 귓가에서 떨치기 위해 고개를 내젓고 있으니 멀리서 현선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발견한 뒤 가볍게 미소 지으면서 의자에 앉은 그녀는 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급한 연락을 확인하는 동안 스킬을 통해 보았던 정보를 어디서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았다. 잠시 뒤 현선민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최성일 보육원장은 입양 브로커를 통해 아이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입양 보낼 때 중간에서 취하는 수익의 몇 배는 되는 고액의 사례금을 취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요.”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손쉽게 넘기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돈 때문이었군요.”
그녀의 말대로 최성일은 사람의 도리보다 재화를 더욱 우선시했다. 또한 그는 사람을 온전하게 믿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가 신뢰하는 건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과 앞으로 얻게 될 돈뿐이었다.
“원장은 브로커와 한마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사라진 아이들에 관한 서류와 그 아이들을 브로커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는 폐기하지 않고 보관해 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스킬을 통해 미래를 내다본 뒤 거기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추론한 결과였다. 잠시 뒤 내 말을 들으면서 입술을 달싹이던 현선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 서류의 존재가 발각되면 원장도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텐데요.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남겨 뒀다는 건가요? 정말 그런 거라면……. 언젠가 이 일과 관련해서 덜미가 잡혔을 때 본인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잘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려고 일부러 남겨 둔 것처럼 보여요.”
현선민은 내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짐작해 냈다. 나는 그녀의 분석이 끝날 무렵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했다.
“정확합니다. 최성일 보육원장은 예전부터 의심이 많았거든요. 아이들과 관련한 자료를 남겨 놓은 이유도 말씀하신 그대로의 이유일 겁니다.”
“친히 증거를 남겨 놓았다고 하니 우리야 다행이지만, 그 원장은 기껏 남긴 증거가 자기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겠네요.”
이윽고 나와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이틀 전에 만난 아이의 진로를 지켜보며 후원하기로 결정한 이상 최성일은 아이를 브로커에게 함부로 넘기지 못할 터였다.
조만간 그 아이를 다시 찾아가 실험에 동원된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성일이 숨겨 둔 자료를 확보하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될 것이기도 했다.
“도해월 마스터가 이번 달에 연구소로 넘어갈 예정이었던 아이를 콕 집어서 후원하겠다고 밀어붙였으니 원장은 당분간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예요. 우선은 하늘 보육원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원장의 경계를 허물고 의심을 거두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현선민은 한참 전에 재단 소속 헌터가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눈가를 미약하게 찡그리면서 고민하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원장이 보관 중인 자료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가만히 두고 볼 게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서 수색하는 게 좋을 듯한데……. 괜찮은 방법이 있을까요?”
“도해에서 정기적으로 물품을 전달하는 날에 재단 소속 헌터들을 봉사자로 보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제가 후원하기로 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 아이를 대신해서 다른 아이를 보내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면 그 방법이 가장 적합할 겁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한 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날마다 보육원에 방문해서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눈을 붙여 놓으면 최성일 또한 계속해서 우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좋습니다. 이유나 헌터와 안지유 헌터 같은 주요 인력은 이미 불법 마석 가공물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 다른 현장에 투입이 어렵지만, 그 외의 헌터들을 보내는 건 가능할 것 같아요. 헌터가 아닌 일반 봉사자라고 얘기해 두면 큰 문제 없이 보육원에 드나들 수 있을 거예요.”
다행히 현선민은 나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해 주었다. 그 말을 끝으로 나와 현선민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임시방편으로 보육원을 들여다보는 눈을 잔뜩 붙여 놓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 아닐까 싶네요. 도해월 마스터에게 들은 얘기나 조사 과정에서 알아낸 것들을 취합해 보면 하늘 보육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많은 아이를 보호할 만한 재목이 결코 아닌 듯해요.”
그건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최성일이 성장이 끝나지 않은 미취학 아동들을 마력 연구소에 넘기는 이유가 순전히 돈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보니 더더욱 진절머리가 났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서너 명의 아이들만 넘기는 걸로 파악이 되었지만, 그건 그저 누군가에게 들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본인한테 돈을 지급하는 상대의 속내를 떠보려고 일부러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거겠죠.”
최성일의 속내는 굳이 묻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 현선민 또한 이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연구소에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한테까지 손을 뻗기 시작한 건 실험의 대상자가 될 사람들이 그만큼 부족해졌기 때문일 거라고 보고 있어요. 거기에 도해월 마스터가 방금 말한 경우까지 더해서 생각한다면 원장은 언젠가……. 그곳에 있는 아이들 전부를 팔아넘길 생각으로 한마연 쪽에 거래를 제안할 수도 있겠네요.”
이어지는 현선민의 추측 또한 충분히 일리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연구소에서 이때까지 벌인 일을 생각하면 그들이 최성일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딱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은 불법 마석 가공물에 얽힌 진실을 파고들기 위해 한 아이를 후원하기로 했지만,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나오려고 한다면 상당히 큰 품이 드는 일이 될 거예요. 일단 저는 하늘 보육원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 곳인지 알게 된 이상 저는 그곳에 있는 아이들 전부를 이곳에 무사히 데려오기 위한 계획을 지금부터 구상해 볼 생각입니다.”
현선민은 내가 머릿속으로 막연히 생각만 하던 것을 직접 실행에 옮기려는 듯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 그녀가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한마연이 피험자를 구하는 곳이 과연 하늘 보육원뿐일까 싶기도 해요.”
그렇게 말하는 현선민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충분한 가능성에 근거한 추측이었다. 헌터 아카데미 내에서 거래를 주도하며 실험체를 수집하려고 했던 사실만 봐도 그러했다.
맞은편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인지 말없이 묻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