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도약의 시간 (5)
던전 브레이크 발생 지역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평택에 다녀온 지도 어느덧 나흘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오한빈의 요청으로 NBS 뉴스룸 인터뷰 녹화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뉴스 데스크 스튜디오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근처에 앉아서 대기하던 오한빈과 앵커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나 또한 잠시 카메라 앞에서 굳어 있던 몸의 긴장을 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한 십 분 정도 휴식하고 마저 진행할게요. 여기서 잠깐 앉아 계시면 분장 스태프가 와서 수정 도와드릴 거예요. 그럼 전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잠시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아 있던 오한빈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보다 먼 곳에 앉아 있던 앵커는 나에게 눈인사를 전하면서 데스크를 벗어났다.
“네, 전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오한빈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붙이면서 걸음을 옮겼다. 환한 조명 아래 홀로 남은 나는 며칠 전 평택에서 보았던 알 수 없는 환영을 곱씹어 보았다.
그날 스킬을 전개하려던 내가 알 수 없는 힘에 휩쓸려 도달한 곳은 생전 처음 보는 바닷가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목소리는 설연호의 것이었다.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그 바다에서 연호 선배 다음으로 목소리를 냈던 건 분명 나였어.
그 사실을 상기하고 있으니 오래된 예언을 외우는 목소리가 귓가에 되풀이되었다. 회귀한 이후 관련한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머릿속이 흐릿해지던 것과 다르게 그 순간에는 예언이 나를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장 수정해 드릴게요. 잠시만 이쪽으로 돌아서 앉아 주시겠어요?”
그때 뉴스 데스크에 앉아서 대기하던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다가온 스태프를 향해 몸을 돌려서 앉으니 그녀의 손길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같은 인생을 두 번씩 살아도 영영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구나…….
섬세한 손길이 콧등과 뺨을 오가는 동안 낯간지러운 속내를 견딜 수 없던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사실 이 정도는 카메라 앞에서 모습을 비추는 것에 비하면 약과였다.
“수정 끝났어요. 이제 눈 뜨셔도 돼요.”
그 말을 끝으로 고개 숙여 인사한 스태프가 데스크 바깥으로 모습을 감췄다. 다시 정면으로 몸을 틀고 앉은 나는 눈앞에 놓인 거대한 카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한사코 거절했을 방송 출연을 결심한 건 앞으로 벌어질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었다. 짐작했던 대로 다음 던전 브레이크는 평택에서 벌어질 예정이었다.
며칠 전 공장 단지에서 스킬을 통해 확인한 미래에 의하면 전생과 마찬가지로 그 공장 단지에서 도보로 삼십 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던전이 폭발하면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평택 던전 브레이크 사태는 지난번처럼 나와 동료들이 직접 던전에 입장해서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진명이 이번에 택한 던전은 길드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입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략을 구상해야 했다.
그런 고로 던전이 폭발하면서 공장 단지에 옮겨붙은 화염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지역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예정인 만큼 발 빠른 대처가 중요할 터였다.
방송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었다. 정신없는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무사히 대피시키려면 일찍이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인상과 함께 기시감을 심어 주는 건 덤이었다.
“다시 시작하려면……. 오 분 정도 남은 것 같네.”
휴대전화를 들고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에는 범람에 접속하여 반응을 확인해 보았다. 조회 수가 높은 게시물만 모아 둔 게시판을 정독하고 있으니 지난 며칠 동안의 흐름이 한눈에 읽혔다.
[이쯤에서 다시 보는 ㄷㅎㅇ 헌터 아카데미 무용담 모음.jpg (스크랩)] [도해 길드 측, [공식 입장] “헌터 등급 측정 결과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한마연, [공식 입장] “현재 화제가 된 D 헌터의 등급 측정 결과는 측정 기구의 출력값 그대로 반영한 것… 오해 없길”] [상반기 용산구 길드 순위 결과 끌올 (ㄷㅎ 길드 얘기 추가+제보받음)] [지금 봐도 놀라운 신촌 게이트 사고 수습 현장.gif (베어즈 짤 추가)] [과거 이관부 이원석 헌터 발언 재조명….“진정한 영웅과 시정잡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 누구인가?” 네티즌 반박 여론 빗발쳐] [ㄷㅎㅇ 등급 측정 결과 조작 가능성 제시+과거 헌터 아카데미에서 돌던 소문 (약물 관련)] [전설로 남은 이천 게이트 사고 무지개 + 현장 직관한 시민 인터뷰.jpg] [요즘 뜨는 ㄷㅎ 길드 초창기 길드원 정보 정리 (베어즈 시초)] [“아카데미 졸업생 증언은 다르던데…”, 도해월 헌터를 둘러싼 의혹들 + (댓글 참고)] [에덴 길드 이브 호텔 간담회 당시 ㄷㅎㅇ 헌터 기사 사진 모음.jpg] [현재 길드원 모집 공고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 찍은 도해 길드.jpg]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려서 확인해 보았으나 부정적인 반응에 비해 긍정적인 반응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곧이어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나는 스튜디오 내부를 둘러보았다.
방송국은 날마다 수많은 정보가 빠르게 순환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청해 듣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사용자가 지정한 ‘증폭’ 스킬이 발동됩니다.]그 순간 얕은 바람이 불면서 청각이 극대화되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뒤덮었다.
“와, 실물 진짜 미친 것 같지 않아요?”
“저 방금 분장 수정해 주고 왔잖아요. 가까이서 보면 더 미쳤어요. 향기도 엄청 좋아요.”
이내 어딘가에서 누군가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대화에 합류하는지 걸음을 옮기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전 신촌 게이트 사고에서 베어즈 떴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이목구비가 저화질 뚫고 나오는 거 보이시죠?”
“혹시 오늘 블루는 안 왔나? 그 서애란 헌터 말이야. 난 그 헌터가 좋더라.”
“서애란 헌터도 무진장 예쁘죠. 인터넷에서 그……. 누구지? 그레이랑 엮이지 않았어요?”
“아, 고예성 헌터? 근데 난 그 국회의원 아들이 더 잘생겼던데. 아무튼, 다 됐고 인터뷰 끝나고 가서 사진 찍어 달라고 하자. 남는 게 사진이야.”
그놈의 곰 인형 얘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다른 곳에서 들리는 대화에 집중해 보았다.
“풍문에 듣기로는 에덴이 도해를 은근히 경계한다고 하더라고요. 에덴이 뭐가 아쉬워서 그러나 했는데……. 오늘 보니까 왜 그런지 알겠어요. 솔직히 D급만 돼도 평생 먹고사는 건 문제 없잖아요. 그런 와중에 악바리로 A급까지 올라가다니. 평생 각성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설마 S급까지 찍는 건 아니겠죠?”
“그러게요. 오늘 오전에는 한마연에서도 공식 입장 발표했잖아요. 사람들이 오죽 들들 볶았으면 그런 입장까지 냈을까 싶기도 하고……. 아, 소문으로는 황선규 의원이 도해월 마스터랑 서로 친분이 있다던데. 진짜일까요?”
“엥, 황선규 의원 길드 뒷배 절대 안 봐주는 걸로 유명하지 않아요?”
거기까지 듣고 있을 무렵 멀리서 오한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스킬을 거두면서 그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지난 취재 이후로 다시 뵙게 되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기꺼이 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고요. 그리고 또…….”
다시 그의 자리에 앉은 오한빈이 작은 소리로 말을 붙였다. 말끝을 흐리는 그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반쯤 기울였다.
“제 도움이 필요해지면 언제든 다시 연락 주세요. 쓸 만한 뉴스거리라면 언제든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던 오한빈은 아직 비어 있는 앵커의 자리를 힐긋거렸다. 그를 따라서 시선을 옮기고 있으니 그가 슬며시 웃어 보였다.
“이제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스크립트는 확인해 보셨죠?”
그때 나타난 앵커가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우면서 말했다. 오한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앵커 자리에서 시선을 거두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말은 안 해도 앵커 자리를 내심 바라나 보네.
그런 그의 심정을 금세 읽어 낸 나는 내색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스튜디오 가운데 놓인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늦은 저녁, 한국마력연구소.
“도해월 옆에 있었다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이야. 됐어, 나가 봐.”
그 말을 끝으로 차진명과 성민주 앞에서 장장 두어 시간 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강준희가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방금까지 그가 머무르던 곳은 성민주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귓가에 내리꽂히던 차진명의 날카로운 음성에 몸을 움찔 떨던 강준희는 손등이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을 힘껏 움켜쥐면서 반대로 걸어갔다.
자신을 힐긋거리는 몇몇 연구원의 시선을 피해서 향한 곳은 비어 있는 실험실이었다. 강준희는 지난 두어 시간 내내 자신에게 쏟아지던 말을 곱씹다가 이내 손으로 귓가를 거칠게 털었다.
“도해월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두어 시간 내내 자신에게 분풀이하고 모욕적인 언사까지 내뱉은 건 분명 차진명이었다. 하지만 강준희가 떠올린 이름은 도해월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런 수난을 겪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순식간에 움튼 적의로 인해 살갗까지 뜨거워지고 말았다. 강준희는 그 상태가 익숙한 듯 심호흡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는 오늘 나왔다던 문제의 인터뷰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도해월의 등급 상승 소식이 전해진 뒤 연구소의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등급 측정 결과가 발표되기 전 실험체를 꾸준히 수급받던 보육원에 도해월이 방문한 일이 알려지면서 연구소 내부에 소란이 불거졌던 것이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때 도해월이 이번 달에 수급 예정이었던 애를 콕 집어서 후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하에 막 내려온 말단 연구원 하나가 이대로 여기서 했던 일이 다 들켜 버리면 어떡하냐면서 소리 지르는 게 패닉까지 온 것 같았으니까…….’
물론 그 연구원은 어느 순간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신촌 게이트 사고 당시의 도해 길드의 대처를 맹렬하게 비난하던 이능단속·관리본부 소속 이원석의 칼럼 또한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해당 사고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지도 않고 도해 길드의 행태를 무작정 비난했던 이원석헌터는 물론 그가 속한 이능단속·관리본부의 늑장 대처까지 재조명되는 중이었다.
그 외에도 오래전부터 도해월과 그 길드를 향해 있던 부정적인 여론조차도 그가 비현실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의 강점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강준희가 손가락으로 액정을 몇 번 두드렸다. 이어서 차진명을 분개하게 만든 도해월의 인터뷰 영상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D급에서 A급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눈부신 도약의 주역, 도해월 마스터]강준희는 환한 조명 아래서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인터뷰에 응하는 도해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서 있는 실험실의 어둠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음,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 전 그저 허튼 수를 쓰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무기와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화면 속의 도해월이 특유의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차진명은 이때껏 도해월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크게 반응한 적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차정주를 만나고 돌아온 차진명은 평소보다 훨씬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이능단속‧관리본부 소속 헌터들은 그가 분노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했다.
‘뭐라고 떠들더라. 상사인 이원석 헌터가 수모를 겪는 걸 보고 대신 분노해 준다고? 크큭, 지랄도 유분수지. 차진명은 그럴 만한 인간이 아니야.’
차진명이 이토록 크게 동요하는 건 다름 아닌 차정주 때문이었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오직 강준희 자신만 알고 있었다. 그건 차진명의 곁에서 개처럼 구르면서 얻은 유일한 수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