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
2화. 회귀
다시 눈을 뜬 건 창문 너머로 들이닥치는 오전의 햇볕 아래에서였다.
부드럽고 따뜻한 침구, 여느 아침보다 개운한 컨디션, 이건 꼭 지각하는 날의…….
잠시만. 지각?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놀랐는지 몸을 잘못 가눠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다시금 번쩍 일어나 손으로 옆구리와 귓가를 정신없이 짚었다.
내 총 어디 있어. 통신용 단말 기기는?
관절 곳곳이 뎅― 하고 울리는 것 같은 충격으로 욱신거리는 건 개의치 않았다.
이런 미친.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여긴 어디야?
산만한 정신을 다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소 좁지만 쾌적한 구조의 방은 침대 두 개와 책상 두 개, 서랍장과 옷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맞은편 침대는 사용한 흔적 없이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는 사소한 취향 하나 반영되지 않은 탓에 기시감이 들 만큼 깔끔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는…….
“헌터 아카데미 다닐 때 살았던 기숙사잖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마지막 기억은 분명 멸망하는 세상을 뒤로 두고 독주가 담긴 잔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다시’ 눈을 뜬 지금은 집무실이나 이능청 건물이 아닌 구 년 전에 졸업한 헌터 아카데미 기숙사라니.
쓸어 넘긴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잠시 골몰하던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에서는 맑은 빛이 쏟아지고 녹음은 맹렬하게 뻗어 나가며 푸르게 익어 가고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 건물을 비롯하여 그 너머의 다른 건물들까지 온전한 상태였다.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부지런히 눈동자를 옮기던 나는 습관처럼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른 건 다 멀쩡해. 그렇다면 혹시.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더 먼 곳을 내다보았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남산까지는 꽤 먼 거리였지만 날이 맑을 때는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드높게 솟은 산맥 사이로 어렴풋하게 남산타워가 보였다.
이미 무너졌을 다른 건물들도 모자라 남산타워까지 멀쩡한 상태라면 지금은…….
지난 2010년, 한국에 게이트가 생긴 이후 사회는 헌터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헌터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다.
한때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성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 헌터들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며 헌터들이 우위에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해했다.
그 일환으로 헌터를 관리하는 국가 기관인 이능단속‧관리본부는 정부에 의해 경계당하고 심지어는 교묘하게 등한시되었다.
기관 이름의 순서가 ‘관리’가 우선이 아닌 ‘단속’이 우선이라는 것만 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당시 비각성자들이 헌터를 보며 느끼는 본질적인 두려움이 가지고 온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의 사회적 인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계속해서 헌터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주장한 것이 바로 차진명 일가였다.
그런 분위기 속, 2027년 7월에 용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진다. 그 여파로 남산타워까지 무너지게 된다.
당시의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는 큰 반향을 맞이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침대에 주저앉듯 걸터앉았다.
잠잠히 눈을 내려 보니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
이어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왼쪽 손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는 아직 없었다.
그 상처는 차진명이 나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던 그날 생긴 것이었다.
흉터도 없고, 남산타워 또한 멀쩡한 것을 보니 현시점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게이트 사태에서 죽은 가족들을 대신해 헌터 사회에서 끝까지 살아남고자 애썼으나 누구의 눈에도 들지 못해 날마다 좌절하던 시절.
당시의 나는 모든 방면에서 무난한 D급 헌터였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졸업 직전까지 D급을 벗어나지 못했던 내 목표는 어떻게든 중소 길드에라도 들어가 던전을 처리하는 헌터가 되는 것이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하며 좌절했던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 차진명이었다.
D급 헌터였던 나를 이능청 소속 헌터로 입사시킨 것만 해도 파격 대우였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훗날 나는 차진명의 도움 덕에 S급 헌터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그는 보다 더 명예로운 지위를 건네줬다.
특수 헌터 정예 부대 벨레로폰의 총사령관.
직함 자체만 생각하면 누구나 탐낼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상부에서는 석연치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제안이 들어왔던 걸 수도 있지만.
한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지내며 누리게 될 눈부신 명예와 견고한 지위 같은 것은 D급이었던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하지 못할 영예라고 믿으며 차진명의 충실한 개로 살아 왔다.
그래, 길드에서 잘 지내던 애들을 설득해서 끌고 왔던 것처럼 말이지.
그마저도 잠시, 끝내 죽음으로 나를 몰아세운 차진명의 이름을 곱씹으니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개자식을 내 눈앞에 무릎 꿇려 놓고 묻고 싶었다.
하잘것없는 D급에 불과했던 나를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힌 다음 다시 등을 밀어 추락시킨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그마저도 나를 구원하던 순간 차진명이 말했던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는지도.
혹여 과거로 돌아오기 직전에 맞닥뜨렸던 멸망의 전조 또한 차진명의 뜻이었고, 내가 가담했던 모든 죽음 또한 멸망으로 다다르는 계획 중 일부였다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훅 미쳤다. 몇 번을 생각해도 끔찍한 전제였다.
진정 죽기 직전 보았던 푸른빛을 따라 과거로 돌아온 것이라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그 언젠가 스치듯 염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인가?
다가올 미래에 차진명을 선택하지 않고 그에게 대척하며 맞서 나가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그의 적수가 되어 무수한 죽음을 막아 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스스로 되물었다.
거듭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잃어버린 힘을 되찾자.
차진명의 도움을 없이 온전히 바로 서려면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에게 맞서 나갈지는 그다음에 고민할 문제였다.
가슴속에서 넘실대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시스템 창을 끌어 눈앞에 띄웠다.
[사용자가 지정한 의 정보를 조회합니다.]익숙한 푸른빛이 떠오르며 나의 정보가 담긴 창이 나타났다.
[도해월 ― 각성자• 보유 스킬 목록
‣ 천리안 (C)
‣ 증폭 (D)
‣ 기력 증진 (D)
‣ 설계 (C)
‣ 강화 (E)
‣ 확률 (D)]
다시 보니 내세울 것 없이 그저 조촐한 화면이었다.
스킬 이름 또한 그럴듯한 수식어 없이 기재된 것을 보니 그저 길드 스카우터의 눈에 들기 위해 한껏 애쓰던 시절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S급으로 상승한 이후 던전 곳곳을 순회하며 얻었던 희귀한 스킬 또한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든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그때로 돌아와 버렸구나.”
여기까지는 익숙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렸다.
[‣ 선택된 예언자 (미개방)‣ 준비된 설계자 (미개방)]
음? 이게 뭐지?
기억에 없는 스킬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에 떠오른 스킬을 먼저 눌러 보았다.
[‣ 선택된 예언자 (L)미개방 스킬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개방 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야?
이어서 다음 스킬도 눌러 보았다.
[‣ 준비된 설계자 (L)미개방 스킬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개방 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뭐람?
두 가지 모두 그전까지는 없었던 스킬이었다. 스킬의 이름 또한 모호한 터라 쓰임새를 추측하는 것도 어려웠다.
미개방 상태인 나머지 제공되는 정보도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스킬의 등급이 S급을 넘어서는 L급이라는 것뿐.
아직 내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사실조차도 익숙하지 않은데 전설급 스킬이라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전설급 스킬 자체가 낯선 건 아니었다.
죽기 전의 내가 다룰 수 있었던 전설급 스킬이 하나 있기는 했으니까.
지금은 C등급에 불과한 ‘천리안’ 스킬이 바로 그것이었다.
특수 헌터 정예 부대 벨레로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것 또한 천리안 스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의 내가 ‘설계 및 버프 전문 헌터’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천리안 스킬을 통해 근미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발동하면 내가 지정한 시점 이후의 근미래에 펼쳐질 수 있는 수천 개의 상황들이 가지를 뻗어 나가며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한 가정들 중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장면을 선발하여 그에 따라 전투를 설계하고 전투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이 나의 주된 기술이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나타난 두 개의 전설급 스킬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너무 이른 질문이었다.
전설급 스킬을 사용하려면 능력치부터 상승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차진명을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상태창을 흩뜨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교복을 갈아입었다.
벽면에 걸린 시계가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수업은 이미 시작한 지 오래일 텐데.
지금 들어가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것이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을 품으며 책상으로 다가가 시간표를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3교시가 끝나갈 즈음이었고.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시간표를 둘러보던 나는 다급하게 허리를 세우고 책장을 뒤적여 일기를 꺼냈다.
어떤 누구에게도 괴로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날마다 펼쳤던 노트는 모서리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당시에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적었었다.
전날 저녁에 적었을 일기를 확인해 보니 오늘은 2026년 6월 28일 수요일이었다.
“용산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일 년 전. 그리고 6월 하순이면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야. 현장 실습까지도 얼마 안 남았겠네.”
홀로 중얼거리며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될 무렵 학생들로 하여금 현장 실습을 나가게 한다.
이때의 현장 실습은 헌터 아카데미와 결탁을 맺은 외부 길드가 맡은 던전으로 가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이 정말 2026년이고, 내가 죽지 않고 과거로 돌아온 게 사실이라면…….”
현재의 나는 헌터 아카데미 6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현장 실습을 처음 나가는 것 또한 졸업 학년보다 한 학년 아래인 6학년부터다.
그리고 지금은 현장 실습을 나가기 바로 직전이고.
이건 기회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팽팽 돌던 머릿속에 번뜩 깨달음이 스쳤다.
절대 놓치면 안 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쉼 없이 달려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본관으로 향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내내 호흡이 버거웠다. 군데군데 구멍이 많은 D급이라서 그런가.
죽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숨 하나 몰아쉬지 않고 뛸 수 있었는데.
이것 또한 분명 나의 몸이었으나 어떤 저주로 인해 순식간에 나약한 신체에 갇혀 버린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헉헉거리며 내달린 끝에 멈춘 곳은 본관 4층에 위치한 대형 강의실이었다.
뒷문에 난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수업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녹슨 문에서 소음이 번졌다. 그 순간 강의실에 있던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제발. 쳐다보지 마라.
속으로 뇌까리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던 나를 불러 세운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거기 누구니.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 들어와.”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얼굴이나 좀 보자. 수업 마치기 삼십 분 전에 들어올 배짱은 누구한테 배운 건지 궁금해서 그래.”
다시 한번 장내가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학생들 중 몇은 아예 의자에서 몸을 돌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씨발씨발씨발…….
듣자마자 옛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특유의 중후한 음성으로 묘하게 비꼬는 투는 십여 년 만에 들어도 어제처럼 익숙했다.
그는 현장 실습과 과목을 맡은 정건후였다.
한때 외부 길드의 부길드장으로 전전하며 수많은 던전을 활보했던 S급 헌터인 그는 몇 년 전에 입은 치명적인 부상을 계기로 은퇴한 뒤 헌터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헌터 아카데미 교사들 중 대다수가 차진명 일가와 결탁하여 그들이 주는 혜택을 받아먹은 것으로 유명한 가운데 정건후만큼은 자신의 소신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년에 발생하는 용산 던전 브레이크에서 학생들을 구하다가 사망하게 된다.
나는 고개를 반쯤 수그린 채 정건후에게 꾸벅 인사해 보였다.
빈자리를 찾아 주섬주섬 걸음을 옮기던 나를 그가 다시 멈춰 세웠다.
“그래, 늦게 들어온 만큼 반갑네. 그러지 말고 얼굴 좀 들어 보지. 이 중요한 타이밍에 계속 버티고 서 있으면 민폐라는 걸 굳이 짚어 줘야 아는 건 아닐 텐데.”
이어지는 재촉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고개를 들었다.
교탁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기대어 있던 정건후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자세를 바로 세웠다.
“도해월?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전날부터 지금까지 종일 기절한 상태였다며.”
뭐? 내가 그랬다고?
“아, 혹시 현장 실습 조장 추첨하는 날이라서 급하게 온 건가? 그런 거라면 네 의지를 높게 사서 이번만 봐준다. 빨리 와서 앉아.”
하루 동안 쓰러져 있었다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왜 또 얼빠진 표정이야. 다른 애들 앞이라서 부끄럽기라도 한 건가. 그래, 6학년 도해월이 가상 필드에서 던전 입장 대비 훈련하다가 무리해서 쓰러진 뒤로 하루 꼬박 잠들어 있었다는 건 비밀로 해 줄게.”
음, 6학년 현장 실습 나가기 직전이라면 훈련에 미쳐 있을 때니 일어날 법도 한 일이다.
“다들 내가 얘기한 건 비밀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알겠으니까 그 입 좀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