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실습 복기
“조사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좋지 못한 상황을 복기하는 일이었음에도 최선을 다해 협조해 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맞은편에 앉은 모두와 차례로 눈을 맞추며 말하던 배정민이 문간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근처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의 경중을 고려하여 실습용 던전 관리자들 또한 여러분께 직접 사과드리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배정민이 눈짓으로 지시하자 문간에 있던 네 명의 사람들이 근처로 다가왔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성 두 명과 여성 두 명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필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 버리다니.
나는 그들의 장단에 맞춰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드는 채로 생각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더는 불필요하게 불려 다니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다음으로 헌터 아카데미 측의 요청에 따라 현장 실습 복기 또한 이곳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복기 결과를 토대로 여러분의 던전 공략 기여도를 계산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차등 지급할 예정입니다.”
* * *
현장 실습 복기는 정건후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실습 진행 중에는 던전 내부를 관찰할 수 없으므로 당사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했다.
이때의 진술은 추후 7층 필드에서 비슷한 형태의 던전 환경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학기 중간에 진행하는 모의 던전 테스트 또한 학생들이 실제로 다녀온 던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만들어진 경우가 다수였다.
이번 학기에 공략을 시도한 C급 던전‘해무에 잠식된 비탄의 신전’이 물 속성 헌터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정보 또한 현장 실습과 모의 던전 테스트에 관한 정보가 많은 사람에 의해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학기 현장 실습에서 개방되는 던전 정보를 알고 퍼뜨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가장 유력한 후보는 던전을 개방하는 리호 길드 측 사람이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
설령 그 정보를 리호 길드에서 전해 들었다고 해도 유포한 것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과거의 차진명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방식 또한 소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소문을 마구잡이로 수집한 후 사실 여부를 판별하여 쓸 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분리했다.
차진명은 그렇게 얻은 모든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필요에 따라 거짓이 아닌 사실을 퍼뜨리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일부러 거짓된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거짓된 정보를 뿌리는 경우는 주로 커뮤니티 내에 배신자가 있다고 여겨질 때였다.
그건 커뮤니티 전반에 정보를 전하는 소식통을 걸러 낼 때 유용하게 쓰여졌다.
그렇다면 공희찬은 커뮤니티 내의 입지가 어느 정도 되려나.
아마 공희찬의 성격이나 행동거지로 볼 때 중요한 직책은 맡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입이 다소 가벼운 편이기도 해서 학생들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소속감을 돋보이게 하려는 용도 이상은 아닐 듯한데.
마침 공희찬은 묘하게 뿌듯해 보이는 표정으로 정건후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나를 은근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느껴졌다. 분명 정건후에게 내가 얼마나 제멋대로인 조장이었는지 한참을 설파하고 나왔을 테다.
그래 봤자 실습 점수 합산에 있어서 조장의 채점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건 모르는 건지.
저러는 것만 봐도 얼추 답이 나왔다.
공희찬은 차진명의 커뮤니티 내에서 문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였다.
“이번 학기 실습 등수는 어떻게 나오려나. 우리가 A급으로 상승한 던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말고 다른 조는 어땠는지 통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가장 먼저 정건후와 대화를 마치고 한적한 응접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김미솔이 말했다.
“우리가 겪었던 특수한 상황까지 점수 집계에 고려된다면 생각보다 더 높게 나오겠지.”
그 말에 대답한 건 한동안 잠잠하던 설연호였다. 나는 설연호의 안색을 모른 척 살피면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학기 현장 실습에서 1등 했던 건 어떤 조였는데요? 전에 듣기로는 강효서 선배 있던 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한 홍원하가 깊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탓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였다.
“맞아. 작년 2학기 실습에서는 강효서가 있던 조가 1등이었어. 그쪽 애들이 다녀왔던 던전이랑 흡사하게 구현한 모의 던전으로 훈련하는 애들도 엄청 많았기도 했고. 나도 해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더라.”
“필드에 있는 모의 던전 목록에서 봤던 것 같아요. 늪지대 정글 지형 던전 맞죠.”
“응, 그거였어. 우리가 다녀왔던 던전처럼 거기도 온통 진흙투성이라 이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더라.”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던 김미솔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거기에 슬라임처럼 생긴 소형 몬스터는 어찌나 많이 쏟아지던지. 무슨 새똥처럼 나뭇가지마다 들러붙어 있던 게 우르르 떨어져서 곤혹이었다니까.”
나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던전 공략을 시도했을 강효서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정신계 스킬을 다루는 7학년 강효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차진명과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일전에 공희찬이 스치듯 언급했던 ‘커뮤니티의 관리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강효서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직은 과거의 차진명과 관련한 정보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에는 그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탓에 파악이 더딘 것도 있었다.
그래도 정해진 날짜에 성문 길드에 가면 커뮤니티에 대한 건 좀 더 알아낼 수 있겠지.
“저기, 해월아……. 이제 네 순서야.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하셨어.”
머지않아 나타난 강준희의 말을 따라 응접실 내부에 따로 마련된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다 작성했습니다.”
나는 쥐고 있던 펜을 비스듬하게 내려놓은 뒤 실습 채점지를 정건후가 앉은 쪽으로 밀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 봐. 네가 작성한 걸 토대로 다른 조원들 점수가 확정될 테니까. 오탈자는 없는지도 확인해 보고.”
빼곡하게 적힌 활자를 눈으로 대강 훑던 정건후가 말했다.
예의상 종이를 집어 적힌 것들을 한 차례 살핀 나는 다시금 종이를 내밀었다.
“확인했습니다. 이대로 반영해 주세요.”
내 말에 정건후가 그대로 종이를 집어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의 첫 실습을 무사히 끝낸 기분이 어때.”
이걸 무사히 끝냈다고 할 수 있나.
“다들 크게 다친 곳 없이 잘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심정을 적절하게 골라 대답하니 정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설연호랑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전해 들은 게 하나 있어.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괜찮겠지.”
“말씀하세요.”
잠잠한 태로 눈동자만 움직여 활자를 읽던 정건후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내 나와 그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더니 상체를 반쯤 기울였다.
“설연호가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네가 던전에 있을 때 그 녀석을 일부러 한계까지 몰아붙인 것 같더라.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묻는 눈동자에 순수한 궁금증이 드리워 있었다.
정건후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사자에게 직접 듣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도 양쪽의 입장을 전부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아시다시피 그 던전의 해무는 독성이 가미되어 있었어요. 설연호 선배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선배를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넌 그만큼 설연호를 믿고 있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원래 가까운 사이였던가?”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기울이던 정건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런 그가 이어서 전한 말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설연호와 막역한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을 믿었다는 거네. 그건 곧 현장 실습은 물론이고 파티원을 꾸려서 나가는 던전 공략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점이야.”
내가 확률을 건드려서까지 설연호를 데려온 건 그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굳이 짚고 넘어가는 이유가 도대체 뭐지?
“죄송하지만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앞서 다녀갔던 조원들 모두 네가 실습 내내 강압적으로 행동했던 게 아쉬웠다고 말했어. 나 또한 던전에서 네가 한 대처를 보고 비슷하게 말했고.”
“그래서요?”
나는 순전히 궁금한 심정으로 정건후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당장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네가 다른 조원들에게 고집불통에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건 너와 함께한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믿지 않았다니. 내가 정말 그랬던가?
곱씹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내내 그들이 서투르고 연약한 병아리 같다고 느꼈으니까.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그들을 믿어야 한다고 되새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거는 자기 최면에 불과했다.
“다른 애들이랑 전부 이야기해 보면서 확실하게 느꼈어. 6조 조원 중에 설연호 한 사람만 네가 강압적인 면모가 있기는 해도 따르기 좋은 리더였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무릎에 가지런하게 내려놓았던 손끝이 저릿했다.
강준희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심정이라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표정을 보니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었나 봐. 네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내 표정이 그렇게 이상한가. 아니면 그냥 시비 거는 건가.
분간은 되지 않았으나 지금 느껴지는 한없이 낯설고 생경한 감각이 싫지 않았다.
회귀하자마자 설연호의 생사부터 확인했던 건 상관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일 뿐이라고 믿어 왔는데. 어쩌면 난 스스로 예상했던 것보다 부대원들을 더 아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습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성물 관련 법령에 따르면 물건을 습득한 이상 한국성물연구소에서 등록을 진행해야 해. 방학식을 마치는 대로 움직이는 게 적기일 듯한데.”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하나로 모으면서 말을 잇는 정건후의 눈동자가 어딘가 미묘하게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고심하다 말문을 열었다.
“등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등록을 하지 않는다면…….”
그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서류를 한데 모아 가지런하게 정돈하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이내 서류를 다시 내려놓은 정건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네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로 한국성물연구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됐던 거라고 해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미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당시의 문제가 되었던 세력은 전부 척결되었으니 괜찮을 거다. 하지만 그 물건의 주인은 이제 네가 되었으니 결정은 스스로 하도록 해.”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라면 2014년에 있었던 게니우스의 창 도난 사건을 말하는 건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가 나를 무척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런 위험한 물건을 가진 이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너 자신을 지킬 힘을 반드시 길러야만 할 거다. 항상 몸조심하도록.”
서류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린 정건후는 말문을 맺으면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입술을 굳게 다문 나는 소리 내어 대답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