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새로운 무기
정건후와 이야기를 마친 나는 응접실로 돌아와 다른 이들과 대기했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배정민과 정건후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배정민이 들고 있던 파일철을 펼쳐 한차례 점검한 후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실습 보상에 관한 안내를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과 보고를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직접 처치한 것으로 집계된 D급 몬스터 통곡의 피라미의 수는 총 32마리입니다. 처치 직후 나타난 마석은 직후에 진행된 던전 토벌 이후 전문 짐꾼에 의해 회수되었습니다. 관련 법령에 따라 마석을 학생 여러분께 직접 드릴 수 없는 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2마리.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
나는 곁눈으로 집중한 상태로 설명을 귀담아듣는 이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설연호를 제외한 조원들은 직접 고른 게 아닌데도 꽤 괜찮은 녀석들만 모였단 말이지.
헌터 아카데미에 재학할 적부터 실력이 출중하다고 알려진 설연호는 이미 검증된 인재였다. 그러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이번 실습을 계기로 처음 마주한 김미솔과 홍원하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수확이었다.
흙 속성의 C급 방어형 헌터 7학년 김미솔은 같은 학년의 다른 우등생에 비해 실력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으나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등급이 높은 던전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위험한 사고가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졸업 학년이자 조의 맏이로서 갈등 상황 또한 유연하게 통제할 줄 아는 김미솔은 팀을 꾸렸을 때 반드시 필요한 헌터였다.
나와 같은 6학년이자 물 속성의 C급 공격형 헌터 홍원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홍원하는 예상대로 물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홍원하는 실습 중에 말수가 급격히 적어졌으므로 평소에도 조용한 성격일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전날 복도에서 사이렌을 울려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든 것만 해도 그래.
똑똑한 줄만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이상한 구석이 있을 줄이야.
커다란 소란을 일으켜 놓고도 본인은 유유자적하게 사라져 버린 지난 기억을 되짚었다.
그런 와중에 고마우면 갚으라는 말까지 남기는 뻔뻔함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솟는 듯했다.
이어서 눈길이 옮겨 간 곳은 잔뜩 긴장한 건지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는 강준희였다.
강준희야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수확이라 말할 수 있었다.
바람 속성의 D급 헌터인 강준희는 공격과 방어 중에서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번 실습에서 특히 유용했던 것이 강준희의 비가시화 스킬이었다.
공기 속성 헌터의 경우 대부분 바람을 비롯하여 주변 날씨를 조종하는 스킬을 구사했다.
강준희 또한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강준희는 해 보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도 극심한 긴장 상태인 건지 항상 주위 눈치를 보기도 하고.
잘 키우기만 하면 올라운더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상황을 관조하는 심정으로 배정민의 목소리에 다시금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공희찬 학생이 처치한 몬스터의 수는 총 7마리입니다,”
이건 좀 의외의 결과인데?
배정민에 따르면 피라미를 가장 많이 처치한 것은 홍원하였다.
8마리를 처치하여 제일 많은 마석을 얻게 된 그보다 고작 한 마리 적은 숫자를 처치했다니.
심지어 6마리를 처치한 김미솔보다 더 나은 결과였다.
공희찬은 일부러 물 속성에게 유리한 던전을 골라 자신을 모욕했다는 둥 헛소리나 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실하게 임한 듯했다.
사실상 그의 말대로 사방이 바다로 이루어진 그 던전은 불 속성의 C급 공격형 헌터 공희찬에게 불리한 환경이었다.
공희찬이 앉은 쪽으로 고개를 틀자 녀석은 소리 없이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하도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길래 불성실한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었나 보네.
가만 보면 공희찬도 칭찬에 목말라 있는 것 같던데. 그 점을 이용해서 구슬리면 어떨까.
배정민이 보고를 끝내고 물러서자 정건후가 나서서 이목을 모았다.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현장 실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처치한 몬스터의 수가 아니라 던전 공략 기여도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생각보다 많은 수를 처치했다고 자만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건후의 말대로 설연호는 몬스터를 처치하지 않았지만 이번 실습의 주축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실습에서 가장 높은 기여도를 달성한 사람은 설연호다. 던전 공략 시도를 안전하게 이끌어 준 조장 도해월 다음으로 설연호가 가장 많은 보상을 획득하게 될 거야. 다들 불만 없지?”
그 말을 끝으로 정건후는 허리춤에 얹었던 손을 떼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조원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모두 이견이 없는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지막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획득한 실습 보상은 전부 한화로 환산하여 현장 실습 장학금으로 개인 계좌에 지급될 예정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던 배정민은 마지막 말까지 전달한 후 모습을 감췄다.
그가 떠나간 뒤 나는 얻은 마석의 개수를 한화로 다시 계산해 보았다.
강준희가 5마리를 처치했고 내가 6마리를 처치했다고 했어.
거기에 D급 마석 가격을 환산해 보면…….
헌터 아카데미 학생들이 왜 현장 실습에 목숨을 거는지 알겠네.
물론 실제로 지급되는 건 현장 실습 기여도에 따라 나눈 것이겠지만.
* * *
“확실히 E, F급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랑 차원이 다르다. 속으로 얼마나 받게 될지 환산해 보다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지 뭐야.”
김미솔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지는 듯 계속해서 손가락을 접어 보며 가격을 세어 보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난 사방이 바다만 아니었어도 그보다 더 많이 처치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어.”
마지막 안내를 마친 배정민까지 모습을 감추자 공희찬은 거만해진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공희찬, 똑바로 앉아야지.”
정건후가 엄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공희찬이 금세 자세를 가다듬었다.
“전 진짜 살면서 제 손으로 이렇게 큰돈을 벌어 보는 건 처음이에요……. 우리보다 등급이 높은 헌터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겠죠? 왜 뉴스에 자주 나오는 S급 헌터들은 전부 부자인 건지 알겠어요.”
김미솔이 손가락을 접을 때마다 덩달아 손가락을 접으며 수줍게 웃던 강준희가 말했다.
“근데 S급 헌터라면 우리 옆에도 있잖아? 선생님도 학교로 오시기 전에는 엄청 유명한 길드에서 활동했다면서요! 어디라고 했지?”
이어지는 김미솔의 말에 조원들이 일제히 정건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쳐다볼 것 없어. 그 돈은 다 어디 갔냐고 물어봐도 안 알려 줄 거다.”
생각해 보니 정건후에 관한 건 부상으로 인해 길드에서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나 또한 굳이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정건후가 헌터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렇게 쳐다보지 마. 대답 안 해 줄 거니까. 다들 계속 잡담만 하고 있을 거야? 방금 받은 랜덤 상자랑 아이템 상자는 언제 열어 볼 건데.”
“아, 맞다.”
“맞아, 이것부터 열어 봐야지.”
나는 그제야 인벤토리 창을 눈앞으로 띄워 올렸다.
몬스터를 처치하여 얻게 된 실습 보상 외에도 리호 길드에서 따로 지급하는 보상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예고 없는 던전 등급 상승 사태로 인하여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한 보상품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죽지 않고 돌아온 것에 대한 감사를 담은 것일 터였다.
만약 이곳에서 누구 하나라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을 테다.
한참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인벤토리에 자리한 아이템 박스의 잠금을 해제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보상은 D급 랜덤 아이템 박스 3개와 C급 아이템 박스 하나였다.
[사용자가 선택한 의 잠금을 해제합니다.] [축하합니다! ‘마력 상승 팔찌’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D급이라 효력이 어떨지 모르겠네.
[획득 아이템 ― 마력 상승 팔찌착용하는 즉시 사용자의 마력 스탯이 ‘+30’ 만큼 상승합니다. 효력 발생 시간은 총 ‘6시간’입니다.
*해당 아이템은 일회성 소모 아이템입니다.]
지금 내 마력 스탯에서 +30이라면 ‘천리안’ 스킬을 사용할 때 체력 소모를 일정 수준 감소시키면서 지속 시간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아. 두 번째도 열어 볼까.
[사용자가 선택한 의 잠금을 해제합니다.] [축하합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이건 뭐지?
[획득 아이템 ―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착용하는 즉시 사용자의 이동 속도가 상승합니다. 전투 상황에서 사용 시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적의 시야를 벗어나 은신할 수 있습니다. 효력 발생 시간은 총 ‘2시간’입니다.
*해당 아이템은 일회성 소모 아이템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신발에 부착하여 착용하는 물건이었다.
멀고 먼 천 리 길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인가 보네.
나머지 하나도 열어 봐야지.
[사용자가 선택한 의 잠금을 해제합니다.] [축하합니다! ‘화염 저항 실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D급이면 운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을 텐데. 까는 족족 괜찮은 것만 나와서 기분은 좋네.
[획득 아이템 ― 화염 저항 실드착용하는 즉시 사용자의 주변에 미친 화염에 저항할 수 있게 됩니다. 투명한 형태의 실드로 발현되며 화염 및 연기의 영향력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효력 발생 시간은 총 ‘1시간’입니다.
*해당 아이템은 일회성 소모 아이템입니다.]
셋 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수확이다.
성문 길드에서 어떤 지령을 받게 될지 모르지만, 혹여 던전에 입장할 일이 생긴다면 혼자서도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이제 아껴 뒀던 C급 아이템 상자를 열어 볼까.
이왕이면 쓸 만한 무기가 나와 주면 좋을 텐데.
[사용자가 선택한 의 잠금을 해제합니다.] [축하합니다! ‘버프 전용 백색 권총’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버프 전용 백색 권총?
마침 필요했던 게 바로 나올 줄이야.
나는 아이템 상자를 개봉하는 즉시 인벤토리에 추가된 권총을 꺼냈다.
손아귀에 알맞게 감기는 흰 빛깔의 권총은 사용감 없이 매끈하고 단단했다.
[획득 아이템 ― 버프 전용 백색 권총 (C)버프 스킬 보유 헌터 전용 아이템입니다. 해당 아이템에 스킬을 접목한 후 대상자를 향해 격발하면 둥글고 투명한 레몬 빛 탄환이 유성우처럼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실제 총기를 모티프로 구현하였기 때문에 적발 시 실제의 것과 유사한 소음을 유발하고 시전자의 몸체에 반동이 나타납니다. 탄환과 접촉한 대상의 스킬 지속 시간 및 마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 내구도: 200]
이윽고 시스템 창을 띄운 뒤 아이템 설명까지 천천히 읽어 보았다.
백색의 생김새부터 피스톨 형태의 권총인 것까지 과거의 내가 사용하던 것과 흡사했다.
예전에 쓰던 것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이번 실습에서 사용한 권총은 보급품에 걸맞게 오래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템 상자에서 나온 무기는 상점제 무기와 달리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고유의 기능과 효력 또한 정식으로 구매한 무기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기를 구매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지 않거나 자신에게 맞는 무기의 형태를 찾으려는 어린 헌터들에게는 꽤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손에 쥔 권총의 생김새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엄지로 총신을 쓸어 보았다.
총사령관이었을 적의 쓰던 것과 달리 각인 없이 매끈한 표면이 다소 어색했다.
이전 생에서의 기억과 확연히 달라진 것들을 체감할 때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불편한 옷을 벗고 나에게 알맞은 옷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는 건 쉽지 않았다.
이 불쾌한 감각에서 벗어나려면 과거의 내가 가진 능력들을 되찾는 수밖에 없어.
방학 동안 무슨 짓을 해서든 B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설마 이번에도 등급 측정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