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두 번째 대항 (2)
현선민과의 만남 이후 시간은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평택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여타 길드 세력 및 이능단속‧관리본부의 눈에 띄지 않도록 물밑에서 손을 쓰면서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오늘은 작전 당일의 타임라인을 명확하게 구상하기 위해 다시 한번 평택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정오를 막 넘어설 무렵 공장 단지에 도착한 나는 신원을 들키지 않도록 무장한 채 근처를 거닐었다. 그러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천리안’ 스킬을 사용해 미래를 내다보았다.
전신을 부드럽게 휘감았던 바람이 완전히 걷힐 즈음 느릿하게 눈을 뜨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앞서 보았던 미래의 모습과 달리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적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끝없이 내리쬐는 햇살에 눈가를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금세 후덥지근해진 나머지 숨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초여름의 길목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은 앞서 내다본 미래의 장면들로 인해 복잡해진 채였다.
지잉―
지잉―
서울로 복귀하기 위해 차량에 다시 탑승했을 즈음 재킷 안쪽에 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인은 정원 전자의 부회장 이성욱이었다.
“네, 도해월입니다.”
―어제 얘기했던 시간보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이쯤이면 확인이 끝났을 듯해서 연락했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이성욱이 언급한 ‘확인’이라는 것은 이틀 뒤에 벌어질 평택 던전 브레이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디아와의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접한 이성욱은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거듭했다.
내가 그와 같은 입장이었어도 자신과 그 집안의 일원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일군 공장 단지가 하루아침에 화염 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단번에 믿기 어려울 터였다.
그럼에도 이성욱은 내가 하는 말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신중하게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하다고 여길 법한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고 나에게 후속 조치에 관해 조언까지 구하게 된 건 나디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신뢰하면서부터 이성욱의 지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렸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일 낮에는 사전에 제안해 주셨던 대로 정오 이후에 도해 길드 소속 헌터들을 데리고 장비 공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나는 대기시켜 놓은 차량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면서 그에게 대꾸했다. 작전 당일 비공개 일정 진행이라는 명목으로 보급품 제작 공장을 방문한 뒤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시간에 맞춰 헌터들을 투입시키자는 의견을 먼저 제안한 건 이성욱이었다.
―잘 결정해 주셨군요. 참고로 저희 쪽에서는 그날 오후 다섯 시 이내로 비상 가동 인력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를 귀가시킬 예정입니다. 도해 길드 소속 헌터들이 방문할 공장의 위치와 기타 사항은 당일 오전에 다시 전달하도록 하죠.
한참 전에 예상했던 대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날 공장 단지 전체의 가동을 정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만 명이 넘는 근로자를 공장 단지에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성욱은 앞서 언급한 수를 제안했다.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저희가 나눈 사안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저희 쪽에서 그런 당연한 사안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이틀 뒤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이윽고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이성욱과의 짧은 통화를 마무리했다. 곧바로 차에 탑승한 나는 가볍게 숨을 고르면서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이번 작전에서 나디아가 뜻밖의 변수로 부상하면서 이성욱 또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가장 우려하던 지점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잉―
얼마 뒤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그제야 시선을 낮추고 쌓여 있던 연락을 확인해 보았다. 가장 최근에 도착한 건 김미솔의 문자였다.
[정건후 선생님 빼고 전부 다 별장에 모였어 자세한 얘기는 나랑 연호가 먼저 할게 도착할 때 돼서 연락해]간단한 답장을 적어 보낸 뒤 숨을 고르면서 다시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어서 내가 향할 곳은 가평의 별장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믿어 왔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작전을 함께 수행할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진행될 만남은 이번 생에서 이능청에 대적하기 위해 구성된 길드 연합의 초석이 되어 줄 것이었다.
* * *
한편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가평의 별장은 여러 사람의 기척이 모여 한창 북적거렸다. 도해월의 연락을 받고 낯선 공간에 모이기로 한 사람들 중 가장 늦게 합류한 건 다름 아닌 정건후였다. 입구에서 뒤늦게 들어선 그를 반긴 건 몇 년 전에 졸업한 두 제자였다.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잘 지내고 계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진작 찾아갔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모쪼록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정건후는 현관에 서 있던 설연호와 김미솔을 차례로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하고 나서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녀석들을 이런 곳에서 다시 마주칠 줄이야. 그래, 다들 모였다고?”
헛웃음을 지으면서 대꾸한 그는 앞서 걷는 김미솔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쳐 거실에 다다른 정건후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한도일이었다. 정건후를 발견한 한도일이 가벼운 눈짓을 전해 왔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조만간 현장 실습 건으로 학교에서 뵙게 될 예정이기는 했지만,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또 몰랐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뒤이어 한도일의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설연리였다. 정건후는 설연리가 내미는 손을 가볍게 붙잡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헌터 아카데미가 아닌 장소에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묘하게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예, 오랜만입니다.”
정건후가 간결하게 대꾸하며 손을 놓을 즈음 근처에 있던 김수호가 자연스레 말을 붙였다.
“반갑습니다, 정건후 헌터. 저희는 오늘 처음 뵙는 거죠. 그동안 곳곳에서 말씀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사양 길드의 김수호입니다.”
이어서 그는 김수호와 손을 맞잡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이따금 마주치는 설연리와 달리 김수호는 완전히 초면이었으나 정건후 역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전해 들었던 터였다.
사양 길드의 간부인 김수호는 마스터인 정수희가 오래전에 직접 발굴한 뒤 지금까지 그녀의 오른팔로서 분하는 인물이었다.
정건후는 오늘 이 자리에 그가 나타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도해월을 떠올리며 새삼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도해월의 능력이 다방면으로 뛰어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나 이런 은밀한 자리에 김수호까지 불러낼 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였다.
“반갑습니다.”
김수호와 인사를 나눈 뒤 한도일의 곁으로 이동한 그는 별장에 모인 이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들은 전부 각 지역 길드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길드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인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한다면 망상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잡념이라고 하면서 비웃을지도 모르겠군’
지금 정건후가 눈에 담고 있는 건 곱씹어 생각할수록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바깥에 알려지면 곳곳에서 파문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오늘 만남에 응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서 전달 드렸던 대로 도해월 마스터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예정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여러분을 어떤 경위로 이곳에 모시게 되었는지 대신 설명해 드리도록 할게요.”
그때 몇 걸음 물러난 곳에서 지켜보던 설연호가 이목을 모았다. 정건후는 그의 안내를 따라서 의자에 앉았다.
“작전 개시일은 이틀 뒤, 시간은 오후 일곱 시 십 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던전 위치는 정원 전자가 운영하는 공장 단지에서 도보로 삼십 분 떨어진 곳이에요.”
이어서 김미솔이 어디선가 가져온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그녀가 지도를 펼치는 동안 설명을 이어 나가던 설연호는 상체를 숙인 뒤 손가락으로 던전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러는 사이 정건후는 여전히 앳되어 보이는 제자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자신이 헌터 아카데미에 교사로 부임했던 건 게니우스의 창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 차정주의 뒤를 쫓기 위함이었지만,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그곳에서 만난 제자들에게 느끼는 애착이 더욱 크고 깊어진 상태였다.
특히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이끄는 도해월은 정건후에게 있어 유난히 각별한 제자였다. 그가 그렇게 느끼는 건 몇 년에 용산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려 죽을 뻔했던 자신을 구해 내고 한평생의 숙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것과 별개의 일이었다.
‘뭐, 자세한 얘기는 이제 들어 봐야 알겠지만……. 그 녀석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고지가 눈앞에 다가온 것 같네.’
사사로운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정건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내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으면서 설연호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 *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내가 별장에 마지막으로 합류했을 즈음에는 설연호가 이틀 뒤에 진행할 작전에 관한 사안을 어느 정도 설명해 놓은 참이었다. 그곳에 모여 있던 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테이블 앞에 선 나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음, 도해월 마스터가 도착하면 직접 묻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발생하는 던전 브레이크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태가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계획한 인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뭔가요?”
이윽고 묵묵히 지도를 내려다보던 김수호가 질문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다른 이들이 차례로 고개를 들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던전이 폭발하기 직전에 등급이 상승하는 속도입니다. 인재로 구분되는 던전 브레이크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태에서보다 던전 등급이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상승합니다.”
나는 비스듬하게 숙였던 등을 바르게 세우면서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설연리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럼 이쯤에서 저도 하나 묻도록 하죠. 이때까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나서 해당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건 오로지 이관부의 몫이었습니다. 사회적 재난 현장에 국가 기관 소속 헌터가 가장 먼저 파견되는 건 게이트 시대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불문율이라는 걸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설연리는 그즈음에서 말문을 닫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단번에 파악했다. 그건 이번 작전에서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맹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