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두 번째 대항 (4)
작전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화염에 뒤덮인 도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공장 단지로 옮겨붙으면서 더욱 거세진 불길은 지상에 뿌리를 내린 것을 모조리 좀먹을 기세로 전진해 나갔다. 허공에서는 강력한 마력이 깃든 불씨가 비처럼 내려왔다.
쿠궁. 쿵!
화르륵―!
그때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도로변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전봇대가 무너졌다. 전봇대 근처에 서 있던 승용차의 지붕을 가로지른 나머지 차체가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동시에 차량의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화염과 연기 속에서 활보하던 헌터들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이내 귓가에 손을 짚으면서 말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습니다. 주어진 전투 설계를 최대한 따라가되,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움직이세요.”
말문을 맺는 순간 근처에 처박힌 전봇대의 전선에 불꽃이 붙으면서 금방이라도 폭발하려는 듯 지글거리는 소음이 일었다. 한편 허공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거듭해서 몰아치는 탓에 호흡이 조금씩 버거워지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그때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누군가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곁에 아이도 함께 있는 듯 서럽게 우는 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안진영입니다. 인명 구조부터 진행한 뒤 대열에 합류하겠습니다.
―부상 인원 발생 시 곧바로 보고해 주세요. 안진영 헌터도 위치 파악 후 전달 바랍니다.
머지않아 귓가에서 안진영과 설연호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걸음을 멈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길은 여전히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으나 작전 시작 단계에서 초기 진압을 무사히 진행한 덕분에 한층 수월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최보윤 헌터, 전투는 잠시 중단하고 안진영 헌터 쪽으로 합류하세요. 두 헌터 근처에 있는 1팀 인원들도 위치 파악되는 대로 구조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말을 마친 뒤 다시 두 손으로 총을 거머쥐었다. 이내 앞서 언급한 이들의 반대 방향에서 몬스터와 대치하던 서애란과 다른 헌터들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정면에선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나는 달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방금 리호 쪽에서 연락 왔어. 정원 전자 공장 단지 쪽은 거의 다 정리됐대. 끝나는 대로 우리 쪽으로 이동한다고 했어.
레몬 빛 탄환이 연기를 가르며 몬스터의 몸통을 관통할 무렵 귓가에서 고정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전한 대로 작전의 시작 지점인 공장 단지 또한 화재를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1팀 헌터들이 불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동안 뒤따라 파견된 리호 소속 헌터들이 해당 현장에서 뒷수습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때를 놓쳐서 건물 안에 그대로 갇혀 있던 비상 인력까지 잘 구출했대. 부상자 대부분이 경상 수준이고, 사망자는 아예 없다고 했어.
“알겠어. 취우랑 사양 소속 헌터들 위치도 파악하고 보고해 줘.”
서애란과 백이현을 비롯한 다수의 헌터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동안 고정인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간결하게 대답한 뒤 거대한 몬스터가 짓밟아 으스러진 아스팔트를 마저 가로질렀다.
“이렇게 독한 연기는 처음이야. 게이트 사고 현장이랑 확실히 다르네.”
얼마 뒤 눈을 깊이 감았다 뜨던 서애란이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짧은 순간 동안 떼를 지어 달려들던 짐승 형태의 몬스터가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내 저들끼리 몸통을 들이박으면서 폭발해 버렸다.
“저희도 이제 슬슬 이동할 때 되지 않았나요? 이 시간쯤이면 2, 3팀 헌터들도 현장에 배치됐을 거라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요.”
그녀의 근처에서 기물에 들붙은 불길을 점화하던 백이현이 근처로 다가왔다. 그는 이전부터 다른 헌터들의 경로 확보에 열중했기 때문인지 안색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에서는 인명 구조를 마무리한 안진영과 설연호를 비롯한 여러 헌터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틈에 불길이 잦아든 일대는 조금씩 고요해지는 중이었다. 고요해진 틈을 타 백이현에게 무어라 대답하려는 사이 고정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취우 소속 헌터들도 현장에 도착했대. 그쪽도 지금 난리인가 봐. 십 분 전에 학원가 건물 근처에서 변압기가 터져서 그 일대가 다 정전이래. 사양 쪽은 그래도 거주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인명 피해는 적은데, 과수원이랑 논밭이 모여 있어서 불이 번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네. 그쪽은 어때?
나는 백이현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귓가에 손을 짚고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대답했다.
“근처에 있던 몬스터는 거의 다 정리했어. 불길만 잡고 나서 취우 길드 헌터들 쪽으로 넘어갈 거라고 전해 줘.”
그때 반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강한 열기가 훅 미쳐 왔다. 흙먼지와 잿더미가 뒤섞여 살갗에 들러붙지 않도록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모두 집중하세요. 현재 위치에서 화재 진압이 마무리되는 대로 1팀 인원 전원 구역 이동하겠습니다.”
탕!
그대로 귓가에 손을 짚었다가 떼면서 지시를 내린 나는 구름처럼 부푼 연기를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희미한 형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윽고 멧돼지 형태의 몬스터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전신을 뒤틀었다.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둔 나는 어느새 잠잠해진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모든 인파가 대피하고 난 뒤 검게 타 버린 시청 건물은 굵직한 연기를 피워 올리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 * *
도시의 중심부인 시청을 지나 다다른 곳은 학교 건물이 밀집한 부지였다. 취우 길드 소속 헌터들이 파견된 지 한참이 지났으나 이곳에 퍼진 불길은 쉽게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관부 소속 헌터들도 그쪽으로 이동하는 중인가 봐. 방금 헬기 띄웠다고 했어.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활보 중이던 2팀 인원들과 함께 몬스터와 대치하던 중 고정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그녀는 조금 전부터 이능단속‧관리본부에 파견된 헌터들의 통신 장치를 일시적으로 해킹한 뒤 그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는 중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얘기는 없었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체력 증진 스킬’과 ‘확률’ 스킬을 연달아 전개한 뒤 입을 열었다. 정면을 응시하며 귓가에 손을 올리고 있으니 근처에서 전투하던 홍원하와 공희찬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빨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잠시만.
이윽고 귓가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총을 두 손으로 거머쥔 나는 몇 미터씩 떨어진 지점에서 활보 중인 헌터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쪽 지휘관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네 이름을 여러 번 언급했어. 이관부 허가도 없이 길드 소속 헌터들까지 동원해서 던전 브레이크 현장을 멋대로 활보하는 건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할 수 있을 만한 사안이라고 하더라. 아무리 그래도 고발 얘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틀 전에 회의에서 얘기했던 게 그대로 들어맞아 버렸네.
탕!
나는 이어지는 보고를 들으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최보윤의 뒤를 덮치려는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정도는 한참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관해서 전해 들은 설연리가 우려하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만약 내가 그들의 고발을 두려워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우리를 고발하게 되더라도 그다음 패를 준비하여 반격하면 될 터였다. 그들이 고발을 진행한다는 건 한 사안의 시비를 가리려는 목적도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에서 여론의 화제성을 끌어내려는 목적도 존재할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현선민의 이름을 떠올렸다. 한국마력연구소에서 벌이는 실험에 관한 정황을 파악했음에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던 건 이런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꾸준히 협업해 온 그녀는 이 사태가 지나간 뒤에 꺼내 놓을 다음 패로 부상할 예정이었다.
―마스터, 북서쪽 방면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그때 전방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안진영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공희찬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스킬을 시전했다.
안진영이 지목한 방향을 확인해 보니 거인 형태의 몬스터가 겹겹이 쌓아 놓은 승용차 더미 위로 불길이 치솟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저거 좀 이상한데? 불이 점점 커지고 있어. 저것도 마력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긴 한데……. 지금까지 진압했던 거랑 좀 달라. 그대로 둬도 괜찮은 거냐?”
얼굴에 거뭇한 재를 묻힌 공희찬이 손등으로 뺨을 훔치면서 말했다. 그는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인벤토리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건넸다. 이어서 불안정하게 요동치면서도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리는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인 선배, 이관부 헌터들은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아. 한 십오 분 정도 남았나? 왜? 무슨 일 생겼어?
공희찬의 말대로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불길에 시선을 둔 채 고정인에게 말했다. 나는 귓가에 손을 짚은 채 공희찬을 돌아보았다.
“최종 보스가 나타날 조짐이 보여서. 모쪼록 우리는 이관부 소속 헌터들이 현장에 파견되는 대로 이 현장에서 빠지기로 했던 거, 기억하지?”
그 말은 곧 최종 보스를 처리하고 현장을 마지막으로 수습하는 건 이능단속관리본부에서 파견된 헌터들의 몫이라는 의미였다. 회복 물약을 단숨에 삼킨 공희찬은 내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안 그래도 지금 방송국마다 속보 띄우고 난리 났거든. 어, 방금 NBS 오한빈 기자도 리포트 시작했어. 거기서 고개 들면 바로 보일 것 같은데?
곧바로 고개를 들어 보니 고정인의 말대로 상공에 NBS라는 글씨가 적힌 헬기가 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떠 있던 드론이 나와 공희찬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번에 진행했던 인터뷰 효과가 확실히 좋네. 범람에서도 사람들이 네 얘기만 하고 있어. 현장에서 우리 길드 소속 헌터들 도움으로 구조됐다는 사람들이 적은 글도 계속 올라오고 있고. 방송국에서도 한두 곳 빼고는 대부분 빠른 대처가 아니었다면 사태가 더 악화됐을 거라는 식으로 리포트 중이야.
고정인이 빠른 속도로 설명을 이어 나가는 동안 현장에 배치된 수많은 헌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전투를 진행하고 있었다. 스킬을 통해 확인했던 것과 일치하는 풍경을 한눈에 담아 보던 나는 권총을 고쳐 쥐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이관부 소속 헌터들이 곧 도착한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럼…….
이윽고 머릿속으로 철수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셈해 보았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한기가 몸을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