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반격의 시간 (1)
도해월이 의식 불명 상태로 침상에 누워서 지낸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설연호에게 있어 지난 한 주는 또 다른 난리 통이었다. 길드 마스터의 부재가 불러오는 여파를 하루하루 뼈저리게 실감한 그는 근심으로 얼굴에 그늘이 졌다.
처음에는 마스터의 부재를 비교적 담담하게 견디던 소속 헌터들은 닷새가 지났을 무렵부터 서서히 불안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길드 내부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소식을 기다리려 해도 안팎이 워낙 소란한 나머지 헌터들의 심정적인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소속 헌터들의 불안감에 커다란 불씨를 틔운 건 단연 여론의 자극적인 보도였다. 사흘 전 어느 보도 전문 채널에서 도해월이 진정 피습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 것이 아니라 사실 다른 이유로 잠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시작한 뒤 곳곳에서 비슷한 의심이 불거졌다.
그리고 어제는 이능단속관리본부에서 도해 길드를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로 인해 여론이 다시 한번 휘청이기 시작했다. 해당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앉아 있던 설연호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오늘만 잘 버티면 괜찮을 거예요. 대비는 예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맞은편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예성이 말했다. 고예성은 사태 이전에 도해월이 지시했던 대로 물밑에서 법률 관련 자문을 진행해 왔었다. 용산구 내부 길드 순위가 발표된 뒤 인력을 충원하여 꾸린 언론홍보 팀 또한 소임을 다하는 중이었다.
“이번 일 겪으면서 느낀 건데, 설연리 헌터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긴 하더라. 상황만 놓고 보면 몇 주 전에 별장에서 다른 길드 사람들이랑 모였던 날 얘기해 줬다던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이어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고정인이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설연호는 방금 고정인이 언급했던 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리호 길드 사무실에서 따로 만났던 날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그녀는 도해월의 계획을 돕기로 결정하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는 말을 덧붙었다.
‘도해월 마스터가 고안한 방법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길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작전은 어느 방면에서든 리스크가 상당해. 재난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큼 훌륭한 일은 또 없지. 하지만 그 시작이 선의였던 것과 별개로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는 사람들한테서 바라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어.’
이내 고민 끝에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설연리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녀의 말대로 절대다수에게 선의를 베푼 뒤 그들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의 호의를 보답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것만큼은 예상을 빗나갔으면 했는데. 기껏 구해 줬더니 고마운 것도 모르고 냅다 고소해 버리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상식이냐? 마스터도 없는데 일이 자꾸 터지니까 환장하겠다, 진짜.”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리던 고예성이 말했다. 이어서 그가 설연호에게 내민 화면 속에는 던전 브레이크 현장에서 도해 길드 소속 헌터가 구출했던 시민 한 명이 구조 과정에서 생긴 부상을 이유로 고소장을 접수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마스터가 없으니까 더 난리인 거지. 해월이가 직접 나서서 정리해 주면 끝날 일을 우리 선에서 처리하려고 하니까 이런저런 잡음이 자꾸 생기잖아. 이거 보면 고소장 접수한 건 오히려 정중해 보일 지경일걸.”
고예성이 내민 태블릿을 힐긋거리던 고정인이 자신이 보고 있던 노트북을 틀었다. 설연호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거두고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해월이가 이대로 정말 사망하게 되면 사실상 자업자득인 셈 아니냐면서 욕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야.”
고정인이 보여 준 건 범람에 올라온 익명 게시물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을 읽고 있으니 머리가 다 어지러워지는 듯했다. 설연호는 재차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비난 여론으로 완전히 치우친 건 아니잖아. 사태 당일부터 NBS는 계속 우리 쪽에 호의적인 리포트만 하고 있고. 그리고 오늘 오전에는 황선규 의원실 수석 보좌관이랑 통화했어.”
그 말을 듣던 고정인이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설연호를 바라보았다. 태블릿 화면을 묵묵히 넘기던 고예성도 손을 멈췄다.
“그쪽에서도 도울 게 있다면 손을 보태겠대. 대신 해월이가 깨어나고 나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더라.”
“요 며칠 동안 들은 얘기 중에 제일 좋은 소식이네. 그쪽에서 그렇게 신경 써 준다고 하면 금방 잠잠해지겠지. 그렇게 되려면 일단 해월이가 하루빨리…….”
지잉―
그때 테이블에 놓여 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쪽으로 손을 뻗은 고예성은 설연호와 고정인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설연호는 그에게 어서 가도 좋다는 듯 손짓했다. 그가 모습을 감춘 뒤 회의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던 고정인이 설연호를 돌아보았다.
“현장에서 피습한 놈들 말이야. 해월이 쓰러진 날부터 백방으로 뒤져 보고 있기는 한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 이렇게까지 꼬리가 안 잡히는 건 처음이라 답답하네.”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로 말하는 나머지 웅웅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났다. 설연호는 마른세수하는 그녀를 힐긋거리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일주일 전에 만났던 한도일과 정건후에게 답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해월이 깨어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아무튼. 뭐든 덜미 잡히는 대로 얘기할게. 사실 다 됐고 해월이만 멀쩡하게 일어나 줘도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피로한 얼굴로 의자에 늘어지듯 기댄 고정인이 말했다. 설연호는 그런 그녀에게 가볍게 웃어 주면서 무거운 속내를 감췄다.
“음, 나도 잠깐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올게. 잠시만.”
이윽고 고정인까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설연호는 소식 없이 잠잠한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도해월의 병실에는 정건후만 남아 있을 터였다.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린 설연호는 다시 태블릿 화면으로 시선을 낮췄다. 화면에 떠오른 서류를 점검한 지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테이블 위로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음?”
난데없이 밀려든 그늘을 바라보며 갸웃거리던 설연호가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분명 시간은 오후 두 시를 지나고 있었으나.
“뭐지? 내가 시계를 잘못 본 건가? 아니, 아까까지 분명.”
드넓은 창문 밖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주변 전경 또한 한낮의 환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검게 물들어 있었다.
[미개방 스킬 해금을 위한 특정 분기점에 도달하였습니다.]유난히 가깝게 떠오른 듯한 보름달을 마주하며 주춤거릴 즈음 그의 눈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활자가 떠올랐다.
‘미개방 스킬이라면…….’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며 머릿속을 되짚어 보던 설연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도해월과 처음으로 함께했던 현장 실습에서 얻었던 미개방 스킬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망각의 샘물.
하지만 그 스킬은 습득한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징조가 없었던 나머지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야 반응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요새 잠을 못 자서 헛것을 보는 건가.”
상념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하늘은 여전히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에서 시선을 거둔 설연호는 손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지잉―
이윽고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창가를 등진 채 휴대전화를 집어 든 설연호는 정건후의 이름을 확인한 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해월이 깨어났나요?”
―그래, 한 십 분 전에.
“몸은 좀 어때요? 괜찮은 거래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얼른 그쪽으로…….”
설연호가 다급하게 말하는 것을 저지한 정건후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진정해. 녀석이 깨어났다는 건 아직 의료진한테도 알리지 않은 상태다. 지금처럼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소식이 알려지면 기자들이 들이닥칠 거야. 대책부터 마련한 뒤에 움직이는 게 나을 듯하군. 그리고 네가 급하게 움직이면 여러 사람 눈에 띌 테니 급한 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해결하고 오도록 해.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설연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해월이는 괜찮은 거죠?”
―멀쩡해. 걱정할 것 없다.
정건후의 확답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한 설연호는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다시 돌아본 창밖에서는 환한 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헛것을 본 거였어.”
지잉―
지잉―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하는 동안 설연호의 휴대전화가 재차 진동했다.
[현선민입니다 도해월 마스터는 아직도 의식 불명인가요?] [그쪽에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사안이 하나 생겼어요] [우선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부길드장님이 대신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연이어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다시금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답장을 전송했다.
* * *
긴 잠에서 깨어난 뒤 정건후의 손을 한참 동안 붙잡고 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기증을 호소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기력을 차린 뒤에는 정건후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건 나를 피습한 이들의 정체에 관한 것이었다.
“역시 그런 거였군요. 사실 저를 습격한 놈들이 평범한 청부업자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정건후는 곁눈으로 나를 힐긋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보다 설연호가 네가 가진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더군. 뭐, 네가 가진 물건이니 그런 건 알아서 할 일이고. 모쪼록 사태가 벌어졌던 날 나는…….”
드르륵―
그때 닫혀 있던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설연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문간을 넘어선 그는 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잠시 제쳐 두었던 중요한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그건 바로 설연호가 지나온 서른 번의 생에서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나와 함께했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난 의료진을 만나고 올 테니 둘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해.”
잠시 뒤 나와 설연호를 번갈아 바라보던 정건후가 말했다. 그는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아직 바깥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의료진과 조율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네, 다녀오세요.”
한층 홀가분한 표정을 짓던 정건후는 설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병실을 벗어났다. 정건후에게 고개를 숙이는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주 복잡하고 또 서글픈 심정이 되었다.
“음,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좀 많았거든. 일주일이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건 처음이었어.”
나와 조금은 비슷한 심정인 건지 어느새 눈시울을 붉힌 설연호가 어찌할 줄 모르고 주절거렸다.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언제가 되었든 회귀하여 과거로 되돌아온 직후의 내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설연호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어이 마주한 설연호를 보면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항상 같은 것이었다.
“무사히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거면 됐어.”
살아 있으니 되었다고. 그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되새기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지금의 설연호가 그런 것처럼.
“걱정 많이 했지. 기다려 줘서 고마워, 선배.”
달이 뜬 바다에서 마주한 기억은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눈이 되어 줄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바랐던 미래에 도달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그때가 되면 지긋지긋한 회귀의 굴레를 끊어 내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