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예언자의 행마 (4)
같은 시각, 경기도 파주.
오래전, 서애란과 이유나의 도움으로 7층 필드에서 구조된 학생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노트북 화면을 주시했다. 화면 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건 NBS 뉴스였다.
몇 달 전부터 이곳을 왕래하던 오한빈 기자는 과거 강효서가 관리하던 마석 공장에서부터 불거진 의혹을 시작으로 그동안 알아냈던 사안을 순차적으로 리포트하고 있었다.
대량의 마석을 불법으로 보관하던 공장에서 시작된 리포트는 어느새 헌터 아카데미로 배경을 옮겨 그 안에서 진행되던 불법 마석 가공물 거래에 관한 대목을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은 손톱에 이어 메마른 입술을 잡아 뜯으면서 화면 속 오한빈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노트북에서 누군가의 변조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거래자, 그러니까 학교에서 불법 마석 가공물을 거래했던 학생은 자기가 그걸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선배한테서 떼오는 거라고 했어요. 그걸 먹으면 음,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운이 좋으면 각성자 등급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했고요. 제가 듣기로 학교 어른들도 그런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인 것 같았어요.
익숙한 말투가 변조된 채 송출되는 걸 듣던 학생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음성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뒤이어 오한빈 기자는 불법 마석 가공물의 효력을 다시 한번 정리한 뒤 그것의 부작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한빈이 언급한 모든 증상은 자신의 친구에게서 나타났던 것이기도 했다.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눈가에 열이 오르더니 금세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무엇보다 소중했던 친구가 결국 폭발 직전의 던전에서 사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서애란을 통해 접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생은 떠나간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친구를 죽음으로 떠민 사람들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단죄받게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뒤 감정을 추스른 학생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범람에 접속한 뒤 오한빈의 리포트 영상 링크가 담긴 게시물의 댓글을 확인해 보았다.
[나 헌터 아카데미 졸업생인데 저 약 먹고 특별반 올라간 애들도 있었음] [새 이사장 ㅊㅈㅈ ㅎㅂ 사람이잖아 이관부 인력 늘리겠다고 작정하고 보냈다는 얘기가 많던데] [▸ ㅁㅈ 특별반 애들 다 길드 컨택 무시하고 이관부로 간다며] [아니 얘들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다음 보도에는 더 큰 거 터진대] [나도 저거 거래해 본 적 있는데 약발 떨어지면 무슨 서류 주면서 거기 서명하면 약 계속 준다고 함 근데 조건이 주기적으로 ㅎㅁㅇ 가서 실험에 참여하는 거였음 내일 나오는 보도는 그거랑 관련된 얘기일 듯] [▸ ㅎㅁㅇ이면 내가 아는 거기 맞음? 실험 참여면 ㅅㅂ인체실험…?] [▸ ㅁㅊ 인체 실험이라고?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정신 나간 거 아님?]빠르게 댓글을 확인하던 학생은 숨을 고르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로써 자신의 친구를 살해한 이들의 죗값을 치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폭발 직전의 던전에서 불어오던 돌풍은 복귀한 뒤에도 수많은 반향을 불러왔다. 그중에서도 세간에 가장 큰 충격을 안긴 건 한국마력연구소에서 진행해 왔던 인체 실험 관련 정황을 담은 뉴스와 주해나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이 바로 나였기에 사망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권한 또한 내게 주어졌다. 그런고로 나는 하루 동안 길드 사무실에서 일련의 상황을 정리하고 그녀가 심은 세작들의 처분을 결정한 뒤 오늘에 이르러서야 해당 소식을 공표할 수 있었다.
[‘에덴 길드’ 부길드장 주해나 헌터, 도해 길드 관할 던전에서 사망] [도해 길드, “주해나 부길드장의 사망에 공적 책임 전무해” ] [길드 연합 성명문 발표, “경쟁 길드에 세작을 파견한 에덴 길드에 책임 요구”] [길드 연합 측, “지속적으로 도해 길드를 음해한 에덴 길드에 엄벌 강력 촉구”] [주해나 부길드장의 사망으로 미궁에 빠진 진실, ‘도해에 심은 세작은 누구인가’] [‘동산의 젊은 파수꾼이 떠났는데……’, 주해나 부길드장 사망에도 잠잠한‘에덴 길드’]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른 오전부터 한낮에 이른 지금까지 언론은 주해나의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태블릿을 통해 뉴스의 흐름을 확인해 보니 전날까지 대다수의 신문사와 방송국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총선 관련 뉴스는 전부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뒤이어 태블릿을 내려놓는 순간, 맞은편에 서 있던 고예성이 말했다.
“연합 쪽에서 내보낸 성명문도 계속 퍼지고 있어. 반응 속도가 어찌나 전투적이던지, 홍보 팀 직원들도 전부 다 혀를 내두르더라.”
길드 연합에서 내보낸 성명문이라 하면 도해 길드 내에 세작을 심은 건에 관한 책임을 요구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성명문에서 언급된 세작들은 지금까지 우리 길드 사무실에 남아 그들이 저지른 죄목을 심문받는 중이었다.
“다행이네. 세작들은 어디까지 불었다고 했지?”
고예성을 보며 피식 웃던 나는 태블릿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물론 주해나가 심은 세작의 행적은 고정인을 통해 한참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술을 유도하는 건 해당 사태의 파급력에 불을 붙이기 위함이었다.
길드 차원에서 직접 심문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행법상 사업장의 영업 비밀을 외국에 넘기지 않는 이상 엄중한 처벌을 기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헌터 사회에서 이어지던 불문율대로 그들의 신원과 그간의 행각을 공표한 뒤 세작들이 더는 헌터로 활동할 수 없도록 제지를 걸어 놓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잠시 고민하던 고예성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음, 우선 주해나 부길드장이랑 처음 접촉한 날짜, 그리고 구두로 세부 사항을 협의한 날짜까지 확보했어. 여기 오기 직전에 들은 바로는 주해나 부길드장이 S급 마석을 심으라고 지시했던 것까지 불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그 정도면 충분해.”
나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작에 관한 사안을 길드 연합의 이름을 빌려 공표한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세작들의 진술이 전부 확보되면 그들이 심어 놓은 S급 마석이 한국마력연구소 측에서 제공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오래전부터 우리 길드를 음해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입증할 생각이었다.
“증언이 전부 확보되는 대로 취합해서 리호 길드 측으로 넘겨. 그쪽에서도 몇 년 전부터 고의로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킨 게 한마연이라는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고 하니 도움이 될 거야. 설연리 헌터한테는 내가 먼저 연락해 놓을게.”
뒤이어 말문을 열면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고예성이 금세 대답을 내놓았다.
“오케이. 마침 리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젯밤에도 현선민 헌터 습격한 놈들이 있었다고 하더라. 일부러 재단 밖으로 나와서 피신한 곳까지 기어이 찾아가서 해코지하려고 했대. 다행히 리호 쪽에서 보내 둔 헌터들이 있어서 금방 제압했고. 하여튼 징그러울 만큼 집요해, 그 새끼들.”
설연리에게 메시지를 남겨 놓은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한빈의 보도가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이런 식으로 위협을 가하는 세력이 나타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재단은 물론이고 오한빈을 비롯한 취재 팀 인원들까지 위협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그런 위협에서 그들을 지킨 것이 바로 길드 연합 세력이었다.
“모쪼록 전날 저녁에 오한빈 기자도 한마연 관련 리포트까지 진행했고, 현선민 헌터랑 유가족들 기자회견도 그대로 진행한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건 없어. 음, 이제 곧 시작하겠다. 그럼 나도 슬슬 나가 볼게.”
보고를 마친 고예성이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를 배웅한 나는 태블릿 화면을 재차 들여다보면서 주해나와 관련된 기사를 점검해 보았다. 언론에서는 그녀의 시신이 던전 내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설연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뭇 굳은 얼굴로 들어선 그는 문을 굳게 닫은 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나는 태블릿을 내려놓으면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얕은 한숨을 내쉰 설연호는 책상 앞으로 다가오면서 조용히 물었다.
“이렇게 묻기 좀 뭐한데. 음, 주해나 부길드장 정말 죽은 거 맞아?”
뒤이어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눈앞에 내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상자를 포장한 가느다란 매듭 사이에 공들여 말린 라일락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보고 얘기하자. 이건 누가 보낸 건데?”
“발신 주소는 없고 수신 주소만 네 앞으로 찍혀 있었어. 라일락을 보니 주해나 부길드장인 것 같아서. 보자마자 예전에 해월이 네가 주해나 부길드장이 라일락을 좋아한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설연호가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건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니. 문득 새삼스러운 심정이 되어 상자를 집어 들었다. 얇은 줄기를 조심스레 빼낸 뒤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붉은 벨벳으로 덮인 사각형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아티팩트인가?”
케이스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붉은 보석 위에 자그마한 은색 잎사귀를 달아 사과처럼 세팅해 놓은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그대로 손가락에 걸어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에 비춰 보니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 보석 뒤쪽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미간을 슬며시 좁히면서 목걸이를 들여다보던 설연호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뒤집어 보니 둥근 보석 뒤쪽에 무언가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초소형 유에스비 같아. 어떻게든 보답하겠다고 하더니. 그게 이거였나.”
“보답?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그보다 주해나 부길드장이 정말 살아 있는 거야? 던전에서는 분명……. 아니다, 네가 직접 얘기해 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설연호가 금세 심각한 기색이 되어 되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에게 테이블을 손짓하면서 말했다.
“부고 기사 외에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렇겠지. 먼저 얘기 못 한 건 미안해, 선배. 이틀 내내 정신이 없기도 했고, 일단 공식 기사부터 낸 다음에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
이윽고 설연호와 마주 보고 앉은 뒤 주해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던전에서 그녀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설명해 주었다.
“선배도 그동안 지켜봐서 알겠지만, 준희가 그렇게 된 걸 알고 나서 내내 후회했어. 적어도 주해나 부길드장한테만큼은 다시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을 맞춰서 내보낸 거야.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도 했고.”
그즈음에서 말문을 맺으면서 눈앞에 놓인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에덴에서 건너온 선악과처럼 붉은 보석을 보고 있으니 주해나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한 보답을 전하겠다고 했었다.
“주해나 부길드장만큼은 절대로 돌아설 일이 없을 줄 알았어. 서른 번 내내 그랬으니까. 사실 두 사람을 계속 지켜봤던 내 입장에서는 좀 머리가 복잡하기는 한데……. 일단 알겠어. 지금 시간이 몇 시나 됐지? 일단 유에스비에 담긴 건 현선민 헌터 기자회견부터 보고 마저 얘기하자.”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면서 태블릿 화면을 두드렸다. 곧이어 기자회견장에 앉은 현선민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의 등 뒤로 [한국마력연구소 임상시험 피해자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그 앞에 앉은 현선민을 보고 있으니 오랫동안 추적해 왔던 비밀이 비로소 내 손을 떠났다는 실감이 한층 선명해졌다. 이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정주와 차진명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죗값을 치르게 될 터였다.
그 두 사람이 비로소 심판대에 올랐으니 나는 다가올 미래의 일을 준비해야 했다. 차진명이 던전 내부에 꽂아 놓은 창은 세상의 멸망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을 이어 나가고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