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3
3화. 현장 실습 (1)
자리에 앉은 이후로도 곳곳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긋거리며 살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젠장. 이게 다 사람 하나 관종으로 몰고 간 정건후 때문이다.
구태여 내색하지 않으며 앉은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었다.
다들 나를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 자신과 가장 낯을 가리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S급 헌터였다가 난데없이 D급 헌터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A급 헌터와 S급 헌터의 차이가 천지 차이라고 한다면, D급과 S급 사이에는 하나의 우주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우주를 가로질러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면 상당한 품이 들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는 차진명이라는 존재 자체가 일종의 버프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막강한 버프. 그러니 걸림돌 하나 없이 순탄하게 출세할 수 있었던 거지.
그 모든 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자, 집중.”
그래, 당분간은 묻지 말자.
“지금부터 현장 실습 조장 추첨을 시작한다.”
묻는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였으면 다시 눈뜨자마자 차진명부터 갈기갈기 찢어 놨겠지.
“그 전에, 여기 있는 7학년들은 이미 현장 실습 경험이 있고, 규칙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겠지만 6학년들은 처음이니까 다시 한번 설명할 테니 새겨듣도록.”
입속으로 차진명의 이름을 짓씹고 있으니 세상이 멸망하던 순간 부대의 사령관으로서 손도 못 쓰고 부대원을 모조리 잃었다는 분노가…….
“도해월, 집중 안 해?”
“네, 네?”
젠장.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바람에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주위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지친 몸 이끌고 힘들게 교실까지 찾아온 건 인정하지만 그 이상의 혜택은 없어. 더는 듣고 싶지 않은 거라면 지금 나가.”
“그런 것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정말 아니야? 현장 실습은 처음 나가는 놈이 집중을 안 하면 어쩌자고. 그러다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네가 다 책임질 수 있어?”
“아니에요. 집중하겠습니다.”
“봐주는 것도 마지막이야. 자세부터 바르게 해.”
불호령이 그친 후에도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쪽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날마다 명예로웠던 특수 헌터 정예 부대의 사령관은 2026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지금은 학생 신분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져야 했다.
“그럼 현장 실습 규칙부터 다시 설명한다. 우리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1학기를 마칠 무렵, 즉 여름방학 직전에 현장 실습을 나간다.”
나는 집중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웃음소리도 완전히 잦아들었다.
“늘 그랬듯이 현장 실습은 외부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으로 나간다. 이제 너희는 한 학기 동안 배우고 실습했던 걸 토대로 던전 공략을 시도해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나른한 웃음기가 배어 있던 정건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말은 공략 시도라고 했지만 나를 비롯한 교사들은 공략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현장은 괜히 현장이 아니야. 경우에 따라 어떤 조는 최대 B급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니 공략은 꿈도 꾸지 말고, 적당히 하다가 살아서 나온다는 걸 최우선으로 해라.”
정건후는 강의실 앞쪽을 느린 걸음으로 배회하며 설명을 이었다.
“졸업 학년들은 특히 열과 성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현장 실습 결과를 두고 방학 동안 외부 길드와의 컨택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정건후가 한쪽에 모여 앉은 6학년 학생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제일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현장 실습에서 너희가 맞닥뜨릴 던전은 7층에 있는 가상 필드 같은 게 아니야. 실제 던전에서는 언제가 됐든 사람이 죽을 수 있어. 실제로 너희 선배들 중에도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간혹 있다는 걸 들어 봤을 거다.”
설명을 경청하던 나는 다시금 자세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게 조장이야. 이번 추첨을 통해 선발된 현장 실습의 조장은 던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게 될 거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나는 이따금 눈길을 교묘하게 틀어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던 것을 그만두었다.
“조장은 두 학년 중에서 무작위로 선발하는 게 원칙이야. 따라서 경험 없는 6학년이 조장이 될 수도 있다. 선발 방식은 간단해. 가장 민주적인 방식인 제비뽑기로 간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나와서 종이 하나를 뽑는다. 그 종이에 검은색 별표가 그려져 있으면 그 사람은 조장 당첨. 이해됐지?”
말을 마친 정건후가 교탁 안쪽에서 정사각형의 상자를 꺼내 올려놓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무사히 복귀할 시에 조장이 갖게 되는 메리트가 크다는 이유로 허튼 수작을 부릴 생각은 마라. 일이 잘못돼서 사람이 죽게 돼도 그 책임은 전부 조장한테 간다는 걸 알면 괜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손 하나로 상자를 들고 가볍게 흔들어 섞은 정건후가 말했다.
게이트 시대가 열리며 과학과 과학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에 민주적이라는 이유로 제비뽑기를 택하다니. 참 그다운 처사였다.
괜한 짓은 하지 말라곤 했지만 오늘 이 수업에서 내 목적은 저 현장 실습의 조장으로 선발되는 것이다.
“자, 앞쪽에 앉은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줄 서.”
정건후의 지시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차례로 나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의자를 끄는 소리와 속닥거리는 소리가 뒤엉키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 사이로 나는 눈길을 옮겨 가며 강의실을 채운 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혹시 했지만 역시 차진명은 없었다.
당연하지, 2026년의 차진명은 헌터 아카데미가 아닌 외국에서 유학 중일 테니까.
6학년에 진학한 차진명은 현장 실습을 나서기 직전 돌연 유학을 떠나 버렸다. 차진명이 어디로 유학을 떠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던 차진명이 돌아온 것은 내가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홀연히 사라졌던 차진명은 용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인한 여파가 차츰 정리될 무렵 홀연히 나타나더니 나에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한다.
그러므로 난 차진명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적당히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고로 이번 실습은 멸망하지 않는 미래로 다다르기 위한 첫 번째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셋째 줄에 앉은 사람들까지 다 뽑았지? 그 다음 줄 사람들 나와. 뽑은 종이는 아직 펼쳐 보지 말고.”
정건후의 지시를 따라 순서를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우연하게 내 시선 끝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
7학년 강효서.
그래, 차진명은 없어도 너는 있을 줄 알았다.
순번을 기다리던 강효서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상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강효서는 차진명의 절친한 친우면서 훗날 그의 조력자가 되는 놈이다.
모르긴 몰라도 차진명이 사람을 죽이려 손을 쓸 때마다 강효서의 도움이 수반되었다는 사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강효서의 모습은 좀 더 악랄하고 그늘져 있었는데.
지금 보고 있는 강효서는 딱 제 나이인 스물한 살의 어린 학생으로 보였다.
강효서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고개를 돌리며 슬슬 순서를 가늠해 보았다.
정건후는 추첨이 공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한 가지 수를 쓸 생각이었다.
민주적인 방식을 두고 괜한 수작 부릴 생각 말라고 했었지.
알 바인가?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르며 아무도 모르게 ‘확률’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등급이 D등급에 불과한 만큼 전투에서의 승률을 높이거나 대원들이 부상당할 확률을 낮출 수는 없겠지만, 제비뽑기의 확률 정도는 건드릴 수 있을 터였다.
[스킬 ‘확률’이 발동됩니다.]눈앞으로 푸른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사용자가 지정한 대상의 확률을 조정합니다.]됐다.
머지않아 내 귓가에 종이들이 섞갈리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이닥쳤다.
이 소리는 스킬 시전자인 나에게만 들릴 것이었다.
내가 뽑은 종이에 별표가 새겨져 있을 확률을 최대치로 높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건후의 지시를 따라 줄을 선 뒤 순서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이 강의실에 함께 있는 이들 중에는 훗날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부대원들도 존재할 것이었다.
어제까지 보았던 것과 달리 얼굴이 앳되고 자세도 부드럽게 흐트러져 있어 그들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 모두를 이곳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만큼은 찾아내야 했다.
차츰 상자와 가까워지던 나는 다시 한번 스킬을 발동했다.
다시금 귓가에 종잇장이 부딪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손을 넣어 접힌 종이를 하나 꺼냈다.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정건후가 박수를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제 자기가 뽑은 종이를 열어 봐. 조장으로 선발된 사람들의 종이에는 검은색 별표와 함께 숫자가 적혀 있을 거다. 아닌 사람들은 그냥 숫자만 적혀 있을 거고.”
얕은 바람처럼 부유하는 웅성거림을 따라 종이를 펼쳤다.
성공이다.
“헐, 어떡해. 나 조장 됐어!”
누군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신호탄 삼아 강의실이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어우, 시끄러워. 애들 아니랄까 봐, 너무 산만하네, 진짜.
어제까지만 해도 29살이었던 나에게 19, 20살들이 잔뜩 모여 앉아 떠드는 광경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얘들은 아침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나.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정건후가 교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다들 조용. 옆 강의실은 수업 중이라고 몇 번을 얘기해.”
그 목소리에 장내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할 말 있으면 수업 끝나고 해. 별표 적힌 사람들 앞으로 나와.”
나는 펼쳐 두었던 종이를 들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책상과 책상 사이를 가로질러 나서는 나에게 은근한 시선이 달라붙었다.
무어라 수군거리는 소리마다 귓가에 선명하게 박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든 말든 나는 어깨를 곧게 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찬찬히 둘러보니 침묵을 유지한 채로 나를 바라보는 설연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아 있었구나, 설연호.
한층 앳된 설연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절로 놓이는 기분이었다.
살아 있으니 됐다. 다행이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부대원들의 생사였다.
설연호가 살아 있으니 다른 이들도 살아 있을 거라는 가정은 확신이 되었다. 내리 굳어 있던 표정도 절로 풀어졌다.
총 여섯 명의 조장들이 일렬로 서자 정건후가 한 사람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6조 조장은 도해월이다. 다들 봤지? 종이에 숫자 6 적힌 사람, 손 들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들어.”
정건후의 목소리에 곳곳에서 손을 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턱을 살짝 당기며 거수한 이들을 둘러보았다.
워낙 오래전의 일인 만큼 모두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대개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다행히 설연호도 6조로 배정된 것이 보였다.
이어서 정건후가 남은 조장들을 호명하고 조원들이 손을 드는 순서가 이어졌다.
“다들 자기 조장 얼굴 확인했지? 지금부터 자세히 봐 둬. 현장 실습에서 너희를 책임지고 이끌 사람이니까.”
설연후는 예의 그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 역시 그와 잠잠히 시선을 나누며 마음을 다잡았다.
과거의 나는 의지도 어떤 염원도 없이 살았다. 그저 시간의 물결에 맥없이 휩쓸리며 휘청이기만 했다.
그러다 나를 구원한 차진명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그의 궤적을 맹렬하게 뒤쫓는 일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저 차진명을 만족시키는 것이 너무도 중요해진 나머지 내 스스로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하는 것들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의 나는 파도처럼 내리쳐 부서지고, 다시 몰아치는 그 시간의 가운데 꼿꼿하게 서서 맞서 싸울 생각이다.
마침내 내가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 부대원들뿐만 아니라 차진명의 개로 살아가면서 차츰 잊어 갔던 진정한 내 모습을 되찾게 되는 날 그에게 선언할 것이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고, 반격할 수 없는 체크메이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