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여름 방학 소모임 (3)
시간이 꽤 소요되었음에도 전투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다다른 숲의 중심에 이 던전의 모든 몬스터가 모여 있던 듯했다.
처치하는 족족 새롭게 모습을 보이는 몬스터는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방에서 청설모 형태의 소형 몬스터가 풍성하게 부푼 꼬리로 지면을 탁, 탁 내리치며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탕!
탕!
총구에서 터져 나온 레몬 빛 탄환이 퍼지며 사태가 잠시 진정되는 듯했다.
다시금 맞은편에서 몬스터들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동안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대로 포기할 생각 중인 건 아니겠지.”
숲의 중앙까지 시간을 한참 소요한 탓인지 전부 힘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쌩쌩하던 김미솔조차 힘이 모자란 건지 굵은 줄기를 다루다가도 툭 떨구고 말았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돌아가면 안 될까……. 충분히 멀리 온 것 같은데. 아니면 잠시 쉬었다가 하는 거라도 괜찮으니까…….”
겨우 쏟아내듯 읊조린 건 손으로 나무를 짚은 채 허리를 수그리고 있던 강준희였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세가 한쪽으로 무너지는 걸 보니 왼쪽 다리를 다친 듯했다.
설연호가 스킬을 통해 내린 방어막 안에서는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불가피하게 생긴 부상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찍이 자세를 낮추고 앉은 설연호는 강준희의 부상 부위에 손끝을 얹고 힐을 가하고 있었다. 마나가 부족한지 안색이 창백하긴 했지만.
“치유해 주고 있잖아. 그대로 회복하면 좀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최종 보스까지는 금방이야. 처음 목적을 잊은 건 아니겠지.”
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의지를 다잡는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왜 이렇게 나약하게 구는 거지? 좀 더 해 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건가?
나는 진심으로 의아했다. 내 뜻대로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상황을 답답해할 수는 있어도 좀 더 할 수 있음에도 포기하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다독이는 말에 정신을 다잡은 몇몇은 고개를 가로젓고 마저 공격을 이어 나갔다.
곳곳에서 복부를 쥐고 쓰러지거나 더 걷지 못하고 고꾸라져 넘어지는 이들이 보였다.
힘겹게 버티는 걸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들이닥치는 몬스터와 대척해 나가도록 설계를 강화하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이대로 더는 못 버텨. 처음부터 우리 목적은 각자의 전술을 확인하는 거였잖아. 이 정도면 내 스킬도 충분히 보여 줬다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김미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던전은 어떻게 공략할 건데. 우리한테 시간은 많지 않아. 다들 모일 수 있을 때 최종 보스 근처에 한 번이라도 더 가자고 했던 말 잊었어?”
그 말을 끝으로 김미솔에게 총구를 겨눠 버프 스킬을 걸어 주려 했으나.
“됐어. 이제 그만해.”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김미솔이 맨손으로 총구를 거머쥐었다.
돌덩이에 직격당한 건지 손등이 푸르스름하게 부어 있는 상태였다.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이거 안 놔?”
나는 총구를 비틀어 빼내는 대신 김미솔의 눈을 바라보았다.
또렷한 빛을 품은 다갈색 눈동자에서 순순히 놓지 않겠다는 투지가 읽혔다.
“도해월, 너야말로 정신 차려. 너 지금 우리를 사람으로 보고 있기는 해? 어떻게든 효율만 쥐어짜면 끝인 무기처럼 보고 있는 건 아니야?”
김미솔의 목소리와 함께 총을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빠져나갔다.
* * *
2030년, 여름.
평택시 서해대교 부근.
“부대원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 겁니까? 사령관이나 됐으면서 사람을 무기처럼 부리는 게 정상이라고 믿는 건지 묻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 악을 지르는 탓에 귀가 따가웠다. 굳이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저따위 하극상을 저지르는 건 이 부대에서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지선일 중위, 귀관에게 내린 명령부터 이행하라고 했을 텐데.”
쿵.
쿵.
쿵. 쿵. 쿵.
그 순간에도 맞은편 도로에서 둔중한 소음이 거듭해서 울려 퍼졌다.
반도체 공장 단지가 폭발하며 촉발된 불길이 도시의 절반을 뒤덮은 채였다.
거대한 불길 속에서 거대한 몸집의 몬스터가 온갖 기물을 짓밟으며 활보했다.
나는 전봇대를 붙든 채 상체를 수그린 설연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차진명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에게 손을 먼저 내민 건 당신이었잖아. 내가 필요하다며. 내 스킬이 쓸모가 없다고? 그럴 리 없어.
틈 없이 맞물린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면서 통증을 호소하는 설연호를 재촉했다.
“설연호 중위, 명령이다. 더는 나약하게 굴지 말고 일어나.”
내가 보지 못한 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차진명의 말이 목울대에 가시처럼 걸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몰아붙였다가 무슨 꼴을 보게 될 줄 알고 이러는 겁니까!”
초점이 반쯤 나간 설연호를 채근하던 나를 밀친 건 곁에 있던 부대원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설연호가 엉망이 된 제복 차림 그대로 천천히 일어섰다.
“명령 이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설연호의 호흡이 불안정했다. 눈동자는 이미 충혈된 상태였다.
회복 물약을 다급하게 들이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설연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대원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지긋지긋해.”
그가 돌아서는 순간 내게 들리도록 중얼거린 걸 알면서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건 차진명이 품은 오해를 바로잡고 내 쓸모를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터질 것처럼 움켜쥔 주먹만이 내 심정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에게 닿는 시선이 느껴져 눈길을 틀고 보니 문제혁이 멀찍한 곳에 서 있었다.
문제혁은 핏줄이 불거지다 못해 하얗게 질린 내 손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나도 모르게 힘을 풀어 버렸다.
이내 몸을 틀고 문제혁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모두의 신임을 잃을지라도 그가 내게 걸고 있는 기대만큼은 함부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나는 마주 보고 선 김미솔에게서 시선을 비스듬하게 틀었다.
시선이 가장 먼저 멎은 곳은 설연호였다. 잔상 속의 모습과 달리 두 발로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 역시 평소처럼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조금 더 채근한다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으나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이어서 살펴본 이들 또한 비슷한 상태처럼 보였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는 최종 보스에게 다다르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곱씹어 생각해도 지쳐서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섣부른 일이었다.
그 순간 차진명과 기억 속에서 맞닥뜨린 부대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교차하며 울렸다.
‘고작 그것밖에 못 보다니. 생각보다 쓸모가 없는 스킬이네.’
‘지긋지긋해.’
난데없이 맞닥뜨린 이정표 앞에 선 나를 이끈 건…….
멸망하기 한참 전에 죽은 지선일과 멸망하던 순간 귓가에 쏟아지던 음성.
각별하게 여기던 이름이 차례로 호명되는 동시에 전해지던 그들의 사망 소식.
그 순간 눈앞으로 펼쳐지던 그들의 잔상, 죽어 가면서도 멸망을 실감하지 못해 아연실색해졌을 심정 같은 것이었다.
자연스레 맥없이 스러져 가는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다친 이들과 겹쳐 보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자는 심정으로 무리했다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전과 같은 삶을 더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는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옳은 처사였다.
김미솔이 총구를 붙든 손아귀에 힘을 주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나는 그 손길에 순응하며 팔목을 아래로 처뜨렸다.
“왜 계속 넋을 놓고 있어.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선택해.”
금방이라도 잡아당길 것처럼 방아쇠에 걸쳐 두었던 손가락을 느슨하게 풀었다.
이쯤에서 내가 되새겨야 하는 것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성장을 위해 사용될 발판 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내가 이번 생에서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 언제까지나 무사하도록 지켜 나가고 싶다고 결심하게 만든 촉발점이 되어 주었을 뿐이다.
“모임을 만들자고 한 것도 너였고, 테스트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를 이끈 게 너였으니까 너한테 묻는 거야. 대신 네가 책임질 수 있는 대답만 해.”
한층 누그러진 기색의 김미솔이 말했다.
다시 바라본 김미솔의 눈이 나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한 ‘책임’이라는 단어를 소리 없이 곱씹어 보았다.
그 말에 설연호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설연호가 한참 전부터 전개하던 치유 스킬이 걷히면서 강준희의 다리를 감쌌던 흰 빛이 서서히 흩어졌다.
설연호의 부축을 받던 강준희가 온전히 지면을 딛고 서는 모습과 주저앉아 있던 이들이 차례로 안정적인 호흡을 잇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 인정할게. 여기서 더 버티라고 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어. 오늘은 돌아가자.”
이후에는 큰 고민이 뒤따르지 않았다.
입장 당시 부여받은 테스트 조장의 권한으로 필드 내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모의 던전 테스트를 종료합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점수를 토대로 최종 결과를 산출합니다.]내가 보았던 무수한 미래를 두고 돌아서는 걸음은 묘하게 가볍기까지 했다.
안내 문구가 담긴 푸른 활자가 천천히 흩어지면서 눈앞의 풍경이 이전처럼 되돌아왔다.
주위를 정리하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메시지에는 자립 지원금 수령에 필요한 서류는 직접 작성해야 하니 이른 시일 내에 보육원에 방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손등을 열기로 홧홧해진 이마에 얹으면서 소리 없이 한숨을 쏟아 냈다. 오래전에 돌아서 나온 보육원에 잠시나마 돌아갈 생각을 하니 공연히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참 전부터 예상한 일이었잖아.
가서 문제혁을 다시 만나겠다는 생각도 했으면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눈앞에 닥친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한참 전부터 나를 지켜본 것 같은 설연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말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설연호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선배, 혹시 조만간 시간 좀 낼 수 있어?”
보육원에 가면 문제혁을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설연호와 마찬가지로 문제혁이 살아 있는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고민되는 지점이 하나 있었다.
“조만간이면 언제? 이번 주는 언제든 가능해.”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과 현시점의 문제혁은 전혀 다른 모습일 터였다. 속을 모를 정도로 점잖고 차분한 문제혁은 어디까지나 부대원일 때의 모습이었다.
과거로 회귀하여 다시 만나는 문제혁은 이전과 달리 나에게 의지하려고 할 터였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할 즈음 설연호를 보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내일모레 시간 좀 내줘.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한 설연호라면 문제혁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이번 생에서도 나와 함께할 테니 일찍 만나서 나쁠 건 없을 터였다.
“그러지, 뭐. 근데 어디 가는 건데?”
“내가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보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