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여름 방학 소모임 (6)
“진, 진짜? 어떻게 하면 돼?”
“내가 가진 물 속성 스킬도 너처럼 자연물의 방향을 조종해서 사용해야 하는 거라 고민이 많았어. 단순히 방향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고유의 형태를 만들고 싶었거든.”
홍원하의 대답을 들은 강준희가 공감한다는 양 연신 끄덕거렸다.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했을 때 돌아오는 답은 항상 비슷하더라. 스킬을 시전하는 내가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고유의 형태를 찾아서 그걸 구현한다고 생각하래. 나한테 제일 잘 맞는 건 창의 형태였고. 너도 훈련만 몇 번 더 하다 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어려울 때는 내가 도와줄게.”
드문드문 전하는 홍원하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이야. 이때까지 강준희 넌 바람의 방향을 우회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그 흐름을 한데 모이게 만든 다음 폭탄처럼 활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떠오르는 대로 간단하게 덧붙이니 강준희가 고개를 부지런하게 끄덕거렸다.
금세 고개를 숙이고 노트에 내가 한 말을 받아 적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방학 동안 파티원을 이렇게 유지할 거라면 테스트를 진행하거나 던전 공략을 시도할 때 활용할 규칙을 간단하게 정해도 좋을 것 같아.”
강준희의 옆에서 팔짱을 끼우고 있던 홍원하가 말했다.
“그것도 물론 좋지만 처음부터 공격 패턴을 정해 두면 예외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혼란이 올 수도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건 우리한테 경험치가 좀 더 쌓였을 때 정해도 괜찮을 것 같아. 당장은 해월이가 쓰는 설계 스킬로도 충분하기도 하고.”
나는 홍원하의 말에 김미솔이 차분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만족스러워지는 듯했다.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모이자.”
손가락 사이에서 돌리던 보드 마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좋아. 안 그래도 목말랐어. 물 마시고 와야겠다.”
“나갈 거면 같이 가, 누나. 나 텀블러 가져왔어.”
차례로 회의실을 빠져나간 뒤 홀로 남은 나는 의자에 앉아 칠판을 올려다보았다.
이어서 나눠야 하는 안건들을 훑어보고 있으니 문득 부대원 지선일이 떠올랐다.
지선일은 이 소모임을 확장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영입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설연호는 무사히 내 편으로 만들었고, 문제혁은 원래 나만 따라다녔으니 더 신경 쓸 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지선일이었다.
지선일은 이전의 두 사람을 포섭하는 것보다 품을 훨씬 많이 들여야 할 것이다.
그나마 계급장을 달고 있었을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차렸지만 이제는 달랐다.
서로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이자 선후배 관계로 만났으니 한층 격의 없이 대하겠지.
차진명의 커뮤니티는 대부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는 기술이 발달한 세계일수록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비밀이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만든 커뮤니티는 그들과 방향성과 지향점이 완전히 반대되어야만 했다.
도리어 사람들의 눈에 띄면서 선망과 기대를 한몸에 받을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이다.
차진명이 다루는 정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가 취급하는 것의 대부분이 언젠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도덕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차진명은 치밀하게 꾸린 술수를 복잡하게 얽어 두었다.
차진명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술수를 여러 갈래로 얽고 있을 것이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나는 대로 빈자리가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홍원하, 일하는 건 좀 어때.”
나는 텀블러를 들고 자리에 앉는 홍원하를 보며 말했다.
“음, 막상 훈련해 보니까 생각보다 좋더라고. 조만간 고깃집 일은 정리할 생각이야.”
“결국 그렇게 결정한 거야? 잘 생각했어.”
그 곁에 나란히 앉은 김미솔이 홍원하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칭찬했다.
그러자 평소에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홍원하가 은근하게 만족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쟤 저럴 줄 알았지. 홍원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묻는다고 한들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의문하는 동안 내 시간만 소요되고 답은 평생 알 길이 없을 테니까.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남몰래 고개를 저은 나는 칠판 앞에 서서 남은 안건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이번에는 테스트해 보면서 느낀 보완점은 뭐가 있을지 얘기해 볼래?”
그때 설연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는 공략이든 테스트든 실습이든 뒤에서 보조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느낀 게 있었거든.”
나는 설연호에게 마저 이야기하라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처음 진행한 테스트에서는 우리가 너무 지쳐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다친 사람도 있으니 복귀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해월이가 우리를 데리고 더 이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어. 다들 동의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자 강준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조해 보였다.
“저도 같은 생각 중이었어요……. 저희가 조금만 더 힘내면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심 아쉬웠거든요.”
두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김미솔이 고심해 보다가 굳게 닫힌 입술을 열었다.
“두 사람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혼자서 들어가지 않고 여러 사람이 파티를 이루거나 한 조로 묶여서 가는 이상 그걸 이끌어 주는 게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김미솔의 말에 마저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해월이 넌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같이 훈련하자고 모였으면서 왜 너 혼자서 매번 쫓기듯이 훈련하는 건데? 네가 하도 급하게 행동하니까 나는 뭘 해 보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는 기분이었어. 돌아와서 생각할 때마다 아쉽고 답답하더라.”
오가는 의견을 듣고 있던 홍원하도 차분하게 말을 덧붙였다.
“누나 말이 맞아.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도해월이 그렇게 이끌어 준 덕분에 우리 조가 지난 실습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게 됐으니까.”
나는 홍원하의 의견까지 듣고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를 머릿속에 정리해 보았다.
나왔던 이야기들을 차분히 듣고 설연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에 전부 동의해. 하지만 모두의 체력과 컨디션을 생각해 가면서 던전을 클리어까지 이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모든 걸 고려하면서 쉽게 목표에 다다르기를 원하는 건 웃기기도 하고. 다만, 해월이도 팀원들을 좀 더 세세하게 살펴봐 줬으면 좋겠어.”
그 또한 인정하는 바였다. 설연호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하는 동안 나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해월이가 처음 모였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나도 우리의 모임이 일회성 소모임이나 파티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거기까지 말한 설연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듯 회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나는 이때까지 누구도 해 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함께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문제없이 잘 끝내려면 나부터 달라져야겠지. 전부 새겨들으면서 점점 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그러다가도 금세 마음을 다잡고 칠판 근처를 느릿하게 서성였다.
“그리고 설연호 선배가 말했다시피 난 우리 모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방학 동안 몇 번 더 합을 맞춰 본 이후에도 우리가 계속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동아리를 결성해서 학기 동안에도 모여 볼까 하는데.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내 말을 끝으로 회의실 내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동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미솔이 긍정적인 고갯짓을 보탰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지금 학교에 있는 동아리는 대부분 취미랑 관련되어 있거나 졸업하고 바로 연구소에 취업할 사람들을 위한 세미나처럼 꾸려진 경우가 더 많으니까.”
강준희는 김미솔의 말까지 듣고 나서야 새삼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를 꾸리고 던전을 공략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었지. 선생님들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 이런 소모임 같은 걸 동아리로 만들어 보라고 권하지 않았을 것 같아. 그래도 담당 선생님만 구하면 학교에서도 승인해 줄 테니까 그 부분만 해결해 보자.”
설연호의 말을 듣고 있던 이내 김미솔이 자세를 틀면서 모두를 한눈에 담았다.
“사실 다들 알고 있잖아? 소수 정예로 모여서 암암리에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우리 학년에 있는 강효서는 그걸 굳이 숨기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이 자리에 공희찬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태연하게 허점을 간파하는 김미솔의 말에 한쪽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솟아올랐다.
과거의 나는 둔해서 몰랐지만 일찍부터 교내에 떠도는 수상한 흐름을 간파한 이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듯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은연중에 그들의 존재를 인식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곳에 속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알게 모르게 자괴감을 느꼈던 이들도 함께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까.
“2학기에 동아리 등록을 한다면 동아리장은 누가 할 거야? 도해월, 네가 할 거지?”
물을 몇 모금 마시고 테이블 위에 텀블러를 내려놓던 홍원하가 말했다.
“그건 내가 할게. 담당 선생님은 정건후 선생님한테 부탁해 볼 생각이거든.”
홍원하의 말에 대답하면서 분위기를 살펴보니 모두가 자연스레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방학이니까 자주 모일 수 있다고 쳐도……. 개학한 이후에는 어떻게 할 거야? 동아리 활동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밖에 없잖아. 그때도 던전 공략까지 시도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며 묻는 강준희에게 나는 선선히 고갯짓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외부 활동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 이것도 담당 선생님이 확정되면 그 선생님한테 부탁하면 돼. 공식적으로 움직이면서 우리의 행보를 보일 수 있으니 더 좋겠지.”
방학은 생각보다 짧았다. 던전 공략을 몇 번 성공한다고 해도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 또한 산재했다.
언젠가 차진명이 움직일 것을 생각하면 기회가 닿는 대로 움직여야 해.
그 과정에서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면 정건후를 부르면 될 테고.
“동아리로 규모가 커지면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생길 것 같은데. 전체 인원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김미솔에게 대답했다.
“우선은 시작하는 단계니까 부담이 되지 않는 정도로만 수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많아도 열다섯 명 정도?”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물꼬를 틔웠다.
“우리 모임이 동아리로 확장된다면 새롭게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