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오래된 예언 (3)
“우리 대체 얼마 만에 모이는 거지?”
귀에 익은 목소리를 필두로 익숙한 웅성거림이 문간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누나도 참. 겨우 한 달밖에 안 됐어.”
김미솔과 나란히 들어선 홍원하가 차례로 기척을 내자 뒤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매일같이 붙어 있다가 한 달이나 떨어져 있던 거면 오랜만인 거지.”
걸음을 잇던 설연호가 홍원하의 어깨에 손아귀를 걸치며 덧붙였다.
두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들던 김미솔이 슬그머니 웃더니 눈길을 틀었다.
“그래도 막상 얼굴 보니까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하다.”
나는 환기 삼아 열어 둔 창가에 기대어 선 채로 눈이 마주친 김미솔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월이도 안녕. 오늘 새로운 사람들 온다고 했었지? 세 명이었나?”
창가 근처에 멎어선 김미솔이 팔짱을 끼우면서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설연호가 대신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래. 그것 때문에 원래 있었던 우리만 조금 일찍 오라고 한 거였으니까. 그나저나 준희는 어디 있어?”
설연호의 말에 어깨를 들먹이며 문간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살폈다.
머지않아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헉, 제, 제가 조금 늦었어요……. 다들 오셨네요.”
서둘러 뛰어온 것인지 강준희의 짧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날려 있었다.
“십 분쯤 지나면 다른 사람들도 마저 올 테니까 바로 얘기할게. 이번에 공희찬 말고 새로 합류하는 사람까지 더해서 총 세 명이 새로 들어올 거야. 지선일은 이름만 들어도 알 테고. 이번 학기 중도 입학생이라고 하면 들어서 알겠지? 이름은 문제혁.”
그러자 저마다 이름을 곱씹어 보는 듯하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동아리원을 보충하는 건 전적으로 나의 의사에 따랐기에 염려되기도 했으나 이견 없이 받아들여진 듯했다.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진 기분이네.
나도 모르게 안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며 남몰래 헛웃음을 지었다. 이전 생이었다면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 사항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부대원들은 그저 엄선하여 데려온 장기 말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동아리원들 앞에서 지선일과 문제혁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던 순간에는 한층 조심스러웠다. 이때까지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무엇인가를 꺼내 보이는 심정이라고 하면 적합할 듯했다.
“안녕하세요.”
얼마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니 지선일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딱 정각에 도착했네.”
긴장하는 기색 없이 평소처럼 담담한 지선일을 가장 먼저 반긴 건 김미솔이었다.
“뒤에 누구 하나 더 오는데?”
홍원하는 지선일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문간에 나타난 문제혁을 반겼다.
“들어와. 네가 문제혁이지?”
“네, 안녕하세요.”
문제혁이 어색한 자세로 들어서면서 홍원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서 손끝을 살짝 흔들거렸다.
“뭐야? 나 말고 새로운 사람이 더 있었다고?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줬어?”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인상을 한가득 찌푸린 공희찬까지 나타났다.
“선배도 저 둘이랑 마찬가지로 동아리에 처음 합류한 거잖아. 아무쪼록 다들 들어왔으면 문 좀 닫아 줘.”
그즈음에서 말을 멈춘 나는 시간을 확인한 뒤 다시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잠깐 인사 나눌 것 나누고 십 분에 회의 시작하자.”
간결한 어조로 지시하자 끄덕거리던 설연호가 지선일과 문제혁에게 덧붙였다.
“처음 합류하는 두 사람한테는 오히려 회의가 더 편할 거야. 어려울 것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 보면서 편하게 얘기하면 돼.”
잠자코 경청하던 지선일과 문제혁은 이윽고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김미솔을 사이에 두고 홍원하와 지선일이 나란히 앉은 것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쟤네는 저렇게 앉혀도 되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 칠판 근처로 걸음을 옮기면서 내부를 크게 훑어보았다.
세 사람이 자리가 더해지자 넓은 공간이 모자람 없이 채워진 느낌이었다.
회의용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마다 노트를 펼쳐 메모하거나 잠자코 기다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전 생에서 임무를 나서기 직전 전략을 구상하던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차근히 옮겨 가던 눈길은 지선일에게서 멎었다.
지선일은 예상과 달리 꽤 얌전한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두 학년 선배들과도 곧잘 어울렸고 문제혁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럼에도 지선일 특유의 꼿꼿한 기세는 굽히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혁 또한 사람들과 곧잘 어우러지는 편이었다. 이따금 낯선 화두가 몰려들 때마다 도움을 청하듯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기는 했으나 정말 손을 뻗지는 않았다.
“지선일이 동아리에 합류한 시점이 중간고사 이 주 정도 전이었으니 이렇게 모여서 보는 건 처음일 거야. 공희찬 선배는 겨우 두 번째일 테고. 기간이 애매해서 훈련은 미루고 있었지만 이제 시험도 마쳤으니까 조만간 훈련 일정을 잡아 보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정건후 선생님께는 학기 중에도 가능한 선에서 던전 공략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 너희도 동의한다면 기말고사 전에 새로 합류한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한 번 더 공략해 볼까 하는데. 다들 이견 없지.”
던전 공략을 이미 진행했다는 뉘앙스로 말하자 공희찬이 잠시 움찔거렸다.
아마도 자신만 두고 이전 실습 조원들끼리 모인 것이 불쾌한 듯했다.
평소였다면 길길이 날뛰며 말을 가로막았을 테지만 오늘은 다행히 얌전했다.
이윽고 새로 들어온 세 사람의 고유 스킬과 전술을 간략하게 칠판에 적어 두었다.
“보면서 설명할게. 공희찬 선배는 불 속성의 C급 공격형 헌터야. 불꽃을 터뜨려서 원으로 빚은 걸 날리는 게 주요 스킬이라고 했어. 맞지?”
그렇게 물었으나 확인은 하지 않고 곧바로 지선일의 이름을 가리켰다.
“지선일은 정신계 스킬을 다루는 B급 헌터야. 마찬가지로 공격형. 내가 하는 것처럼 권총에 스킬을 중첩해서 사용하기도 하더라.”
칠판에 적어 둔 사항을 간단하게 짚어 가며 이야기하자 지선일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문제혁. 다들 알다시피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냉기 속성이고, 잘만 한다면 올라운더로 뛸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 중이야.”
나는 짧은 찰나 고심한 말을 골라 내뱉었다.
특히 지선일과 문제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한층 신중해져야 했다.
두 사람의 전술에 대해서라면 입이 닳도록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걸 드러낼 수 없는 노릇이므로 간결하게 끝을 맺었다.
두 번의 생을 사는 동안 천리안 스킬로 미래를 내다보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내다보는 미래를 타인에게 알려 주게 되면 내가 보았던 미래에 변동이 발생한다.
그런 식으로 발생한 변수는 대개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었으므로 함묵하는 것이 나았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괴로워하던 문제혁의 앞에서 말을 아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변동 가능성이 너무 많아서 사람에 관련한 미래를 잘 내다보지 않기도 했다. 보는 순간 기력이 순식간에 빨려 버리니까.
한차례 숨을 고르면서 앳된 얼굴의 부대원들을 돌아보던 나는 회의를 마저 진행했다.
“중간고사 시작하기 직전에 지난 학기 현장 실습 던전들도 모의 던전 테스트 목록에 업데이트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 훈련은 불 속성 지형에서 진행해 볼까 해. 지난 학기에 강효서 선배가 입장했던 던전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떡밥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공희찬의 반응을 기다리며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지형에 대해서라면 내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면 딴지 안 걸고 오래 참았지.
얌전하게 행동했으니 기특하다고 칭찬이라도 해 줘야 하나.
“알고 있는 만큼 설명해 줘. 뭐든 괜찮아.”
이어서 공희찬에게 발언을 허락하자 기다렸다는 듯 기세가 당당해졌다.
“이번에 강효서 그 개, 아니, 강효서가 들어갔던 던전 이름은 불씨의 요람이야. 이름만 봐도 대충 알겠지. 솔직히 모르면 학교 다시 다녀야 하는 거고.”
나는 칠판 근처에 놓여 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끌어 착석했다.
그러자 공희찬이 칠판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보드 마커를 쥐었다.
“지형 자체는 사막이랑 다를 게 없어. 사방에 모래가 깔린 넓은 들판이거든. 그 아래 불씨가 파묻혀 있어. 언제 거기서 싹을 틔우고 불길을 뿜어낼지 몰라.”
몸소 그림까지 그려 가며 설명을 마친 공희찬이 모여 앉은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던전은 우리가 들어갔던 것보다 한 단계 낮은 D등급이었어. 강효서네 조원 정도였으면 C등급도 노릴 만한데 아마도 일부러 거길 골랐을 거야. 던전 공략까지 마치고 나오면 얻을 수 있는 점수가 더 짭짤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공희찬이 나를 곁눈질로 살폈다. 아마도 눈치를 주려는 것 같았다.
어쩌라는 건가 싶은 심정으로 공희찬을 마주 보면서 팔짱을 끼우니 금세 몸을 틀었다.
이어서 그다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떠드는 동안 나는 김미솔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김미솔은 강효서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작년 1학기 현장 실습에서 김미솔은 강효서와 같은 조였다고 했다.
내 예측대로라면 당시 강효서는 김미솔에게 커뮤니티에 들어오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김미솔과 함께할수록 그녀가 얼마나 유능한 일원인지 납득했기에 강효서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천하의 강효서가 김미솔이 그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김미솔은 강효서처럼 뒤에서 술수를 꾸리는 놈들과 상성 자체가 맞지 않았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환경 운동가 부친의 밑에서 홀로 자란 김미솔의 배경 역시 강효서와 차진명이 유념하여 살필 만한 것도 아니었다.
김미솔을 포섭해 보겠다는 생각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까.
차진명의 의도였다고 잘라서 구분하기에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차진명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만한 이들에게 나서서 접근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강효서의 짓인가?
관점을 바꿔 묻기에는 강효서가 차진명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전생의 강효서는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차진명이 지정한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 더 많은 품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그 역할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으니 좀 더 주시해 보자.
이른 시일 내에 기회를 잡아서 김미솔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