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전면전 (1)
정건후가 지난 수업에서 전한 소식은 생각보다 더한 파장을 몰고 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어디에 있든 성문 길드의 이름이 들렸다.
그와 관련하여 암암리에 돌던 소문들 또한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전부터 떠돌던 소문들까지 한데 얽히더니 온갖 낭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들이 마석을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어느새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에 학부모를 비롯한 청소년 각성자 인권 관련 시민 단체에서 날마다 항의가 빗발쳤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차진명이 있을 것이다.
그는 바람이 거센 날 들불처럼 번지는 소란을 예견했을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이곳은 그가 쥐락펴락하던 이능청과 다른 공간이다.
다급하게 복귀한 만큼 학교라는 공간의 순리를 인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테지.
지금까지는 그저 강효서나 서애란의 눈으로 대신 들여다본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조종하는 것과 직접 부대끼며 흐름을 파악하는 건 천차만별이다.
마침 강효서가 공희찬을 내쳐 준 덕분에 일이 한층 수월하게 됐다.
그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싶다고 했던 공희찬은 날이 갈수록 얼굴빛이 좋아졌다.
“그래, 내가 가져오는 정보에는 거짓이 없다니까? 이번에도 봐. 성문 길드로 바뀐다는 소식 알려지고 나서부터 학교가 쑥대밭이 됐잖아.”
어깨를 한껏 으스대던 공희찬이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발목을 까딱거렸다.
근처에 앉아서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지선일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지금 학교에 떠도는 소문들이 다 차진명 선배랑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 선배는 그냥 이사장님 아들 아니었어?”
“나도 그게 궁금해. 강효서랑 어울리는 것만 아니면 평판 자체는 되게 좋았거든. 오히려 강효서가 차진명의 덕을 본다 싶었지. 걔 유학 가기 전에도 애들이 무진장 아쉬워하고 가기 직전까지 붙잡았던 것 같은데.”
회의용 테이블 근처에 놓인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던 홍원하와 김미솔이 말했다.
“차정주 이사장은 학교가 이 지경이 됐는데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이 정도로 난리가 났으면 뭐든 수습해야 하지 않나? 가만 보면 교장 선생님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손등으로 턱을 쓸던 지선일이 고심 끝에 말문을 열었다.
한층 심각해진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자 강준희가 이어서 말했다.
“이사장님은 저번 학기 실습 때도 대처가 늦었으니까……. 그나저나, 음, 현장 실습 담당 길드가 바뀐 게 저희 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라면 그때 바뀌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갑자기 이렇게…….”
작은 소리로 드문드문 얘기하던 강준희의 말에 모두가 설연호의 눈치를 보았다.
설연호는 그 모든 사태로부터 초연해진 것처럼 열린 창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낮은 창틀에 등허리를 기댄 채 팔짱을 끼우고 대화를 듣던 나는 자세를 바르게 세웠다.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서애란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임 시작할 때 말했던 것처럼 잠시 뒤에 서애란이 찾아올 거야. 내가 사이에서 말을 전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와서 우리랑 이야기 나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 *
회의용 테이블 앞에 놓인 칠판 근처에 선 서애란이 차분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둘러앉은 모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늘 의연하던 김미솔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김미솔도 이런 상황에서는 심기가 불편하겠지.
다소간 모질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분위기였으나 서애란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검은 눈동자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호흡도 언제나처럼 평온했다.
9층 필드의 통제실에서 나와 마주했을 때 서애란이 순순히 약점을 내보였던 건 그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듯한 몸가짐이었다.
“피차 시간 끄는 일은 서로 바라지 않을 테니 본론부터 얘기할게요.”
가볍게 화두를 던지는 서애란의 목소리는 단숨에 좌중을 압도했다.
시선을 떨어뜨린 채 테이블 밑으로 손장난을 치던 공희찬도 고개를 들었다.
“다들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요. 여기까지 와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저도 생각이라는 걸 했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했던 잘못들이 있으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절 의심하겠죠.”
서애란은 그즈음에서 말문을 맺고 반응을 살폈다.
예의 그 솔직한 어투 때문인지 다들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도해월한테 얘기 전해 들었어요. 만약 제가 강효서 선배랑 사이를 회복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그랬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봐 달라고 하면서 돌아갈 기미를 엿보고 있었겠죠.”
내내 올곧은 자세로 구성원 모두와 시선을 마주치던 서애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알다시피 소문 때문에 좀 힘들었거든요.”
강효서의 이름이 언급된 직후 김미솔이 자세를 고쳐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을 달싹이며 할 말을 고르는 듯하던 김미솔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네가 우리 동아리에 오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그렇게 하자고 하려고 했어. 그동안 학교에 퍼진 소문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 알고도 거절하면 사람 된 도리가 아닌 건 아닐까 싶었지.”
머리카락 사이에 손끝을 밀어 넣으면서 고개를 든 서애란이 가볍게 끄덕였다.
이윽고 귓가에 단정하게 넘기는 동안 김미솔이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네가 먼저 언급한 김에 그동안 궁금했던 걸 물어보고 싶은데. 왜 하필 강효서와 척지고 돌아서서 접근한 곳이 우리 동아리였어? 우리랑 강효서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렇게 묻는 말을 듣던 서애란의 눈길이 나에게로 기울어졌다.
회의용 테이블 뒤쪽에 서서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학기 현장 실습에서 도해월이 최우수 조장 자리를 석권했던 일이 강효서 선배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았어요. 방학한 뒤에도 계속 도해월의 행방을 주시하더라고요.”
순간 미간을 좁히는 것으로 의문을 표하던 지선일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그렇게 분하다고 느낄 만한 일인가? 강효서 선배는 지금까지 계속 최우수 조장 자리에 있었잖아요. 지난 학기에는 도해월 선배가 잘했으니까 최우수 조장이 됐겠죠.”
거기서 입을 다물었으나 지선일은 덧붙이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강효서 선배의 목표는 졸업할 때까지 최우수 조장 자리를 석권하는 거였거든. 그때부터 도해월이 거슬린다고 하더니 여름방학에 소모임이 결성된 이후에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뭐가 그렇게 어이없는데?”
서애란은 크게 고르는 숨결 사이로 말마디를 섞어 내뱉었다.
곧장 되묻던 홍원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강효서 선배의 조를 제외하고는 실습을 마친 뒤에도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잘 지내는 경우가 없었거든. 거기서부터 도해월이 자기 입지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못해 모임까지 결성했다고 하니 거슬렸나 봐.”
“그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강효서 선배 생각보다 유치한 사람이었네.”
평온한 어조로 투덜거리는 홍원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준희가 입을 열었다.
“그,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서로 모르는 게 많은 사람끼리 도와주고 하면 좋은 거잖아……. 나는 여기 있으면서 이런저런 도움도 받고 좋았는데…….”
“그 선배 기준에서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런 거겠지. 강효서 선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빌려 오자면 뭣도 안 되는 것들끼리 처박혀 있지 않고 모여서 나대는 꼴이 거슬린대.”
우리 모임의 본질을 이렇게나 쉽게 파악하다니. 제법이네, 강효서.
고작 스무 살짜리 도발에 사사롭게 반응하지 않는 나와 달리 장내는 금세 소란해졌다.
난데없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하는 김미솔을 시작으로 저마다 몇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강효서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부터 화를 억누르던 것이 느껴지던 공희찬은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진짜! 진심 도해월보다 더 짜증 나게 하는 새끼는 강효서밖에 없다니까.”
여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와이셔츠 옷깃을 쥐어 펄럭이던 공희찬이 불현듯 나를 노려보았다.
“선배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관심 없으니까 일단 자리에 좀 앉아 줄래?”
“저거 봐. 저거 싸가지 없는 거 보라고.”
그러면서도 공희찬은 순순히 내팽개친 의자를 일으켜 세운 뒤 자리에 앉았다.
이 정도 파문은 예상한 건지 입을 굳게 다문 서애란은 잠잠히 기다렸다.
“마저 얘기해. 서애란한테 궁금한 게 더 있는 사람은 물어봐도 좋고.”
공희찬이 의자를 당겨 앉는 동안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모두에게 전했다.
한참 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던 설연호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슬그머니 웃어 보였다.
이제는 설연호의 표정만 보고 있어도 그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잡혔다.
설연호는 지금 지난 여름방학에 젤라또를 먹으면서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의 난 체스의 폰과 같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한 계절이 지난 지금은 주변의 평가를 통해 목적을 향해 무사히 순항하고 있음을 입증하게 되었다.
막상 당사자들에게는 그 평가가 곱게 들린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여기까지 와서 이 많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솔직하게 얘기할 정도라면 진심이라고 생각해. 그런 김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강효서가 우리를 싫어한다고 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홍원하가 건넨 물을 마시고 차분해진 김미솔이 질의했다. 그러자 서애란은 고민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해월에 대한 건 저도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김미솔 선배도 강효서 선배랑 같은 조가 되어서 실습을 나가 봤으니 알고 있겠죠. 그 선배는 작정하고 따를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실습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붙어 있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고요.”
‘다른 이유’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의 서애란은 조심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익명 커뮤니티를 말하는 것일 테다. 최대한 우회하여 전하는 말을 듣던 김미솔은 금세 수긍했다.
“도해월, 쟤가 너 칭찬하는데? 미솔 누나가 괜찮다고 하면 나도 괜찮아.”
텀블러의 뚜껑을 닫으며 나에게 턱짓하던 홍원하가 이어서 말했다.
어느새 다른 이들도 반박하는 대신 서애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 강준희가 주춤거리며 일어나 서애란에게 남은 자리를 가리켜 안내했다.
가볍게 움킨 주먹을 테이블에 얹은 채 고심하던 김미솔이 고개를 들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 이런 식으로 사람 들이는 건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
짧은 간격으로 진동이 울리는 휴대 전화를 뒤집어 놓은 설연호가 말을 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여기서 인원이 더 많아지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두 사람의 의견이 설파하는 동안 따라서 시선을 옮기던 나는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다른 사람들을 살피던 설연호는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 동아리의 목적도 확실히 하는 게 좋겠어. 인원도 어느 정도 모였으니 이쯤에서 인원 모집은 끝내자. 아까 서애란이 얘기한 것처럼 강효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까 너무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게 좋을 듯해.”
앞선 서애란의 발언은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서애란까지 동아리에 합류한 걸 알면 우리랑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점점 늘어나겠지.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인가 싶은 애들도 있을 거고. 그러니 이쯤에서 모집은 끝내자는 의견에 동의해.”
비스듬하게 선 자세로 김미솔과 설연호를 차례로 돌아보던 내가 말했다. 그러자 김미솔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서둘러 덧붙였다.
“음, 우리는 던전 공략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정보 공유도 하고 있잖아. 처음에는 해월이가 가져온 던전 정보에 대해 일종의 대가를 치르는 의미에서 정보를 공유했지만 이제는 우리 동아리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숨을 고른 김미솔이 마저 말했다.
“인원 모집을 마감하는 대신 더 많은 곳에서 정보를 끌어올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어떨까? 홈페이지 운영이나 관리를 맡을 만한 사람은 내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애들까지만 받고 동아리 모집은 끝내는 걸로 하면 괜찮을 듯한데.”
이렇게 신중한 태도로 말하는 걸 보면 이미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건가 보네.
나 또한 설연호와 여름부터 계획하던 일이었으므로 그에 동의하면서 입을 열었다.
“난 동의해. 마침 선배가 얘기를 꺼내 줬으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떤지 정식으로 묻고 싶어. 앞으로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 정보들이 동아리 바깥에서도 순환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저마다 입술을 달싹거리거나 고개를 돌려 서로를 쳐다보는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침묵이 길어지려는 가운데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예상외로 강준희였다.
“나는 좋다고 생각해…….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 괴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거든. 커뮤니티를 만들면 나랑 같은 생각을 하던 다른 사람한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니까……. 좋을 것 같아.”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두가 동의의 뜻을 표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며 운을 뗀 홍원하를 시작으로 웅성거림이 불거졌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다들 동의했으니 김미솔 선배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더 데려오면 그때부터 제대로 이야기 나눠 보자. 이제 강준희가 얘기할 순서였지?”
손뼉을 맞부딪혀 이목을 모은 나는 칠판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호령하는 소리에 장내는 금세 잠잠해지면서 강준희를 기다렸다.
“그러면 내가 바로 얘기할게……. 다음 학기 현장 실습 담당 교사가 차민훈 선생님으로 바뀔 거라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