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전면전 (2)
현장 실습 담당 교사가 된 차민훈의 통솔 방식은 정건후와 상반되었다.
민주적인 방식을 추구한 정건후와 달리 차민훈은 제 말이 법인 것처럼 굴었다.
차민훈은 자신의 주관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모든 감정을 드러냈다.
선별된 조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원 선발과 관련 공지를 안내하던 차민훈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외에도 다른 조장을 대할 때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천지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반응을 미루어 볼 때 내가 조장으로 선정된 건 차민훈의 의지가 아닌 듯했다.
나를 견제한다던 강효서까지 조장으로 선별된 것을 보면 차진명의 뜻도 아니었을 테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차정주 이사장뿐인데.
“이번에도 실습 나가서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면 어쩌나 싶어서 그렇게 뜯어말렸건만……. 됐다. 일개 교사가 무슨 힘이 있겠어.”
다 들으라는 듯 대놓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차정주의 짓이 분명했다.
방학식까지 굳이 행차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건가.
“그럼 마지막으로 너희가 고른 대로 만든 조원 명단을 불러 줄 테니까 겹치는 사람 없는지 잘 확인해 봐라.”
툴툴거리던 차민훈이 쥐고 있던 서류 뭉치를 몇 번 넘기더니 호명을 시작했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던 나는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조장 자격으로 앉은 이들은 강효서를 비롯하여 6, 7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우수하다고 일컫는 학생들이었다. 보나 마나 이런 구성 또한 차민훈의 솜씨일 것이다.
“4조 조장 도해월, 조원 이름 불러 줄 테니까 확인해라.”
그 소리에 다시금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은 나는 차민훈의 호명을 기다렸다.
“7학년 김미솔, 설연호, 공희찬. 그리고 6학년 홍원하, 서애란, 강준희까지. 뭐야, 여기는 일곱 명이나 나가는 거야? 보니까 지난 실습 때 나갔던 그 인원 그대로인 것 같은데?”
서애란의 이름을 언급할 무렵부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던 차민훈이 물었다.
“강효서 선배도 지난 실습 조원 그대로 데려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조원 선별은 조장의 자율이라고 하셨고, 최대 선발 인원은 여덟 명이라고 하셨으니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곧바로 받아치자 차민훈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어라 구시렁거리는 듯했으나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조원 호명은 여기까지. 다들 집중해라.”
이어서 마지막 조의 인원까지 호명한 차민훈이 다시 이목을 모았다.
“다들 자기가 맡은 조원 명단 제대로 확인했지? 겹치는 인원 없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지할 게 하나 더 있으니 잘 듣도록 해.”
새로운 공지가 있다고? 설마 현장 실습 날짜가 예정보다 앞당겨졌다는 건가.
“이번 학기 현장 실습 예정일은 12월 17일이었지만, 성문 길드 쪽의 사정으로 인해서 12월 10일에 진행하는 것으로 다시 합의 봤으니 그렇게 알고 준비해라.”
차민훈이 말문을 맺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유일하게 덤덤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건 나와 강효서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변동되었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차진명의 계획이 생각보다 일찍 완성되었거나, 혹은 무리해서까지 일정을 앞당겨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겼거나.
“다들 조용. 이럴 때일수록 불만 품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이만 흩어지도록 해. 다들 실습 당일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자리가 완전히 파할 때까지 강효서는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기를 쓰고 모르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비아냥거리면서 견제했다는 거지.
이번 학기 던전에 설마 ‘멸절의 설산’을 넣진 않겠지. 누가 들어가든 귀환석만 쓰면 별문제는 없을 거다. 우리를 집어넣을 예정이어도 문제없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 버리면 그만. 차진명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정복할 수 있을 테다.
교무실과 이어진 회의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느릿하게 복도를 가로지르며 동향을 파악해 보니 성문 길드와 관련한 오명과 항의는 대부분 잦아든 것이 느껴졌다.
반면 차진명에 관한 여론은 점점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전 생에서 무슨 일을 겪든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던 차진명은 대외적으로는 태연한 기색을 유지했다.
소문이 불거진 뒤 학생들과 교사들은 차진명이 헌터로서 자신의 능력을 내보인 기회가 달리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차민훈 또한 이번 실습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차진명이 유학을 떠난 것이 알려지지 않은 결격 사유 때문이라면 그는 이번 학기 현장 실습을 전환점 삼아 모두의 인식을 바꿔 놓을 것이다. 만약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의심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술수를 계획하는 중일 테고.
어느 쪽이 되었든 차진명이 침묵하는 틈을 노려 그의 계획을 망쳐 버리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직여야 그 새끼의 발목을 확실하게 붙들고 늘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차진명이 다른 던전에도 S급 마석을 묻어 두었을지 모른다는 의문이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다. 예측보다 일이 더 꼬여 있다면 대처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동아리 모임을 통해 습득하는 정보들은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아낼 수 없었기에 때로 답답하거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한숨 쉬다 땅 꺼지겠다.”
몇 걸음 남지 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정건후가 말했다.
고개를 들고 인사하자 출석부와 교과서를 안은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마침 잘 만났네. 안 그래도 동아리 운영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점심 먹고 상담실로 내려와라.”
* * *
“저 왔습니다, 선생님.”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건후는 창가 근처에 등을 지고 서 있었다.
이윽고 나를 돌아본 그가 손을 흔들어 반기고 맞은편 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그래, 거기 잠깐 앉아라. 물 금방 끓을 것 같으니까. 녹차면 되지?”
“네, 괜찮습니다.”
그의 물음에 간결히 응수하고 자리에 앉은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닫혀 있는 입구와 창문을 살피며 누군가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며칠 전에 설연호 통해서 동아리 얘기는 대강 전해 들었어. 인원 모집은 이쯤에서 그만할 거라며.”
머지않아 컵 두 개를 손에 쥐고 온 정건후가 남은 의자에 앉았다.
“훈련 목적으로 모인 동아리라 인원이 더 많아지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앞에 놓인 컵을 내려다보았다.
회색 컵에서 가느다랗고 흰 김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런 이유라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좋겠지. 내가 도와줄 건 없고?”
숨을 길게 쏟으면서 등받이에 기댄 정건후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본다.
특별히 내색하지 않았으나 근래의 그가 어떤 상황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왕 마주친 김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해야 하는데.
“동아리 존폐와 관련해서 생긴 일은 잘 해결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어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반쯤 기울이던 그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선선히 수긍했다.
“나한테 고맙다고 할 것 없어. 애초에 트집 잡힐 일이 아니었으니까.”
들고 있던 잔을 천천히 놓으면서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전후 과정이 궁금할 테니 간략하게만 얘기하자면 문제가 제기된 이후에 다시 진행한 회의에서 처리했다고 알고 있으면 돼.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기진 않을 거다.”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끄덕인 나는 정건후의 행색을 유의 깊게 살펴보았다. 여느 때처럼 말끔한 셔츠 차림의 그는 요동 없이 담담해 보였으나 수척해진 얼굴만큼은 숨기지 못했다.
현장 실습 담당 교사가 교체된 건을 계기로 교내에서의 정건후의 입지가 학생들 사이에도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누군가는 이때까지 차정주 세력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대가를 이런 식으로 치르게 되는 건가 싶다며 섣부르게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
이후로 정건후와 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찻물은 점점 식어 갔고 창문 너머로는 저들끼리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울렸다.
“요새 괜찮으신가요.”
먼저 말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질의한 건 나였다. 내 물음에 정건후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지 않을 것도 없지. 나야 그렇다고 쳐도 학생들이 걱정이야. 요새 이런저런 말이 많이 돌아서 불안해하는 애들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내 머릿속을 떠돌던 고민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졌다.
김미솔에게 나의 계획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긴 했으나 그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고여 있는 찻물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생각에 잠겨 있자 정건후가 덧붙였다.
“이번에도 도움이 필요한 얼굴인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얘기해 봐.”
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은 다들 아는 것부터 얘기해 보는 게 좋겠지.
“현장 실습용 던전을 제공하는 길드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까지 실시한 현장 실습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사전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은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야. 그 사안에 내 의견은 개입되지 않았거든.”
나는 대답할 말을 고를 시간을 확보하고자 놓여 있던 컵을 쥐고 녹차를 몇 모금 삼켰다.
“어쩌면 이번 현장 실습에서 지난 실습 때보다 훨씬 큰 규모의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동의하시나요.”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단순히 너의 직감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실제로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정건후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상체를 기울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후자예요. 여름방학에 성문 길드에서 관리하는 던전에 들어갈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던전의 중심부에 S급 마석이 묻혀 있는 걸 봤습니다.”
“뭐?”
반사적으로 답한 정건후가 연이어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재차 질문했다.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어야 할 거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지금 털어놓는 거지? 그걸 보고 나오자마자 나한테 연락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도 제가 본 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러웠으니까요. 하지만 학교와 관련이 없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그 사실을 알렸다가 제가 위험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걱정돼서 그랬던 거였습니다.”
물론 이건 정건후에게 적당히 둘러대기 위해 꾸며낸 말이다. 가능하다면 내 선에서 최대한 해결하려 했으나 현장 실습 담당 길드가 바뀐 이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네가 본 게 진짜 S급 마석이야? 확실해?”
“확실해요.”
“그 위험한 걸 다른 곳도 아닌 던전에 그대로 방치했다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심지어 S급 마석은 나 같은 S급 헌터도 살면서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건데.”
평소의 정건후답지 않게 중얼거리듯 읊조리는 목소리에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
이전 생의 내가 같은 걸 보았어도 정건후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제가 들어갔던 게 여름 끝 무렵의 일이었으니 지금쯤이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퍼졌을지 모르겠어요.”
“네 말이 정말 사실이고 거기에 학생들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이어 테이블에 놓여 있던 손을 주먹으로 말아 쥔 정건후가 눈을 감고 탄식했다.
S급 마석의 존재를 언급할 때부터 사색이 되었던 그가 겨우 입술을 열었다.
“늦은 건 사실이지만 이제라도 잘 얘기했어. 이건 학생들이 해결할 수준의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테니 더는 얘기하지 말고 기다려.”
거기까지 이야기한 정건후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나를 서둘러 내보냈다.
상담실을 빠져나온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지끈대는 이마를 문질렀다.
“도해월.”
그대로 걸음을 옮겨 교실로 향하는 층계참을 차근히 밟던 나를 누군가 불러세웠다.
어딘가 익숙한 음성이라고 생각하며 올려다본 곳에는 강효서가 서 있었다.
“수업 마치고 시간 좀 내. 진명이가 보자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