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6
6화. 현장 실습 (4)
쾅―! 쾅!
콰드득!
험한 파도를 가로질러 나아가던 배의 옆구리 쪽에 타격음이 울렸다.
“몬스터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거세게 부딪히는 소음에 묻혔다.
쿵!
쿵!
쿵!
마치 상어나 고래 따위의 것이 거침없이 부딪히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낡은 나무판자에도 금이 가면서 배가 계속해서 휘청였다.
목적지로 삼은 섬은 여전히 멀찍한 곳에 떨어진 상태였다.
재빨리 고개를 내밀어 보니 거대한 크기의 피라미 수십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뒤 조원들을 향해 고갯짓을 해 보였다. 서둘러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이윽고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선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탓에 난간에 한쪽 팔을 걸쳐 둔 공희찬이 피라미를 향해 둥글게 모은 불씨를 날렸다.
공희찬은 계속해서 동그랗게 굴린 불씨를 떨어뜨렸으나 해무에 잡아먹히며 피라미에게 닿기도 직전에 스러졌다.
그나마 불길에 닿은 피라미는 자극당한 건지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난간을 물어뜯었다.
악문 잇새에서 빠져나오는 숨소리처럼 괴이한 울음소리가 점점 짙어졌다.
범람하는 물살에서 창을 빚어낸 홍원하가 피라미를 향해 거칠게 내다 꽂았다.
기둥에 매달려 눈을 질끈 감은 채 울먹이던 강준희도 힘겹게 흔들리는 바닥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강준희가 그대로 눈을 감자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며 솟아난 물살이 피라미를 날카롭게 내려치는 것이 보였다. 머지않아 끅끅거리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핏물이 튀어 선체의 옆부분을 적셨다.
흉한 얼룩이 선체 곳곳에 번지는 사이, 허리에서 총을 끄집어내려는 손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중독의 징조였다.
“설연호 선배! 지금부터 계속 독 정화해 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바람까지 몰아쳤다. 선체를 두른 파도가 더욱 드세게 솟았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설연호의 스킬이 혈관을 타고 번지는 것을 느끼며 총을 고쳐 잡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만큼 매서운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길게 고민하지 말고 공격해! 방심했다가는 발목부터 물어뜯길 테니까! 확률은 내가 받쳐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던져!”
목울대에 힘을 주어 외친 나는 시스템 창을 끌어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확률’이 발동됩니다.] [‣ 확률 (D)시전자가 선택한 대상으로부터 발생하는 현상의 확률을 상승시킵니다.]
거세게 요동하는 선체가 무사히 전진할 수 있는 확률을 높였다.
“강준희 넌 풍랑 방향 조절하면서 뱃머리를 이끌어 주고!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곧바로 지시하자 강준희가 눈을 감으면서 스킬을 시전했다.
한동안 정지해 있던 선체가 서서히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거대한 크기의 피라미가 훌쩍 날아오르며 배의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꼬리 부분의 살점이 잘려 나간 피라미는 맹렬하게 몸을 뒤집으며 갑판을 헤집었다.
총을 거머쥔 채 선체의 방향을 조정하던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탕―!
탕―!
탄환에 강화와 버프의 스킬을 겹겹이 덧입혀 발사하자 피라미의 몸통이 꿰뚫렸다. 피라미는 삽시에 초록색 피를 흘리며 악을 질렀다.
죽어 가는 몬스터가 내지르는 비명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차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기 때문이었다.
생전 들어 본 적 없음에도 어떠한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상상하게 만드는 그 소리.
그건 마치 불길에 타올라 죽어 가는 사람이 고통 속에서 내는 단말마의 비명 같았다.
그 소리에 어쩌지도 못하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듯 멈춰 선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내 말이 맞지.”
[통곡을 품은 피라미 (D)를 처치했습니다.] [통곡을 품은 피라미 (D)를 처치했습니다.] [통곡을 품은 피라미 (D)를 처치했습니다.] [통곡을 품은 피라미 (D)를 처치했습니다.] [통곡을 품은 피라미 (D)를 처치했습니다.]* * *
비가 그쳤음에도 상공은 여전히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빗물에 불어난 파도가 높게 일렁이는 것을 가르며 선체가 천천히 전진하는 중이었다.
몬스터의 습격으로 반쯤 넝마가 된 선체의 난간 아래로 조원들이 몸을 옹송그렸다.
그들은 누구와도 가깝게 닿지 않으려는 듯 점점이 멀어져 있었다.
눈길조차 섞고 싶지 않은지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발밑을 내려다보는 채였다.
6학년 강준희는 구석에서 잔뜩 젖은 몸을 웅크린 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내려앉은 눈동자에 혼란과 절망, 고통과 설움 같은 것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있잖아, 귀환석 잘 가지고 있어?”
거센 풍랑 가운데 침묵을 깨뜨린 건 강준희였다.
강준희의 말에 불현듯 고개를 든 다른 이들이 일제히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멀쩡해. 돌아가고 싶어?”
나는 안주머니에 보관해 두었던 귀환석을 꺼내 보였다.
위험을 감지한 듯 불투명한 표면 내부로 붉은빛이 맴돌고 있었다.
“네가 말했던 시간 전부 계산해 봤어. 무서울 만큼 오차가 하나도 없더라. 네가 했던 말을 의식하면서 주의하려고 했는데도 기절한 건 마찬가지였고.”
고심하며 머뭇대던 강준희의 말을 가로챈 건 김미솔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워진 것도 있어. 이러다가 우리가 다 죽는다는 말을 듣게 되면 어떡해. 선생님도 계속 말씀하셨다시피 여기는 학교 7층 필드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던전이야.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곳이라고.”
여전히 숨을 쉴 때마다 눅진한 해무가 섞여 들어왔다.
폐부까지 물이 차오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견디면서 김미솔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김미솔은 내 대답을 듣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미 분노가 치솟은 듯하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싶은 건지 온몸에 힘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C급 던전에 들어온 건 너의 선택, 아니, 정확히는 과도한 욕심 때문이잖아. 던전 등급을 선택하는 건 조장의 고유 권한이니 막을 수 없었다지만 너 혼자 여기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건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김미솔의 말대로 무리해서까지 높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온 건 과한 처사였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도 제대로 이끌어 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반응인 터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침묵으로 응수하는 사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공희찬이 끼어들었다.
“그건 나도 아까부터 계속 묻고 싶었던 거였어. 마침 선배가 말 잘 꺼냈네. 대체 왜 여기 들어오겠다고 한 거야?”
공희찬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뒤이어 다른 조원들의 시선이 하나둘 나에게로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잠자코 눈을 감고 있던 설연호도 내게로 고개를 틀었다.
“아까도 얘기했잖아. 난 이번 현장 실습에 진심이라고. 이 중요한 기회를 허투루 쓰지 않는 건 당연한 거잖아? C급 던전에 들어오겠다고 한 건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우리한테 이만큼 좋은 기회는 또 없어.”
나의 대답을 듣자 조원들의 얼굴 위로 미묘한 기색이 떠올랐다.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는 듯했다.
“야, 너 설마 길드 마스터 눈에 띄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 여기서 나가면 자리 하나 꿰차려고?”
얼추 비슷한 대답이었다. 멍청해 보여도 감은 좋은가 보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눈도 하나 깜빡이지 않고 되물었다.
“야, 그냥 솔직히 말해. 네 새끼 속셈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뭘?”
“씨발. 이 자식 순진한 척 눈깔 맹하게 뜨는 것 봐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얘기해. 상스럽게 씩씩거리지 좀 말고.”
“근데 이게 진짜.”
공희찬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가뜩이나 적은 체력을 허투루 소비하지 않기 위해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 반응에 더욱 열이 받은 건지 공희찬은 앉아 있던 내 멱살을 쥐고 잡아 일으켰다.
분노로 이글대는 눈동자와 달리 속눈썹은 해무에 젖어 파들거렸다.
“여기 들어온 게 우리한테 좋은 기회라고? 지랄하지 마. 너, 내가 이번 실습에서 점수 제대로 못 따게 하려고 일부러 이 던전 고른 거잖아. 그 얄팍한 속내를 모를까 봐?”
말을 할수록 화가 치솟는지 멱살을 세게 죄어 오면서 난간 너머로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상체가 뒤로 젖혀지며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하게 매달린 꼴이 되었다.
“웃기네. 그런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이번 학기 현장 실습 C급 던전이 물 속성한테 유리하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고 있었으니까. 그거 알고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여기까지 끌고 들어온 거잖아.”
“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내는데. 던전 등급 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잖아. 나야말로 묻고 싶네. 선배야말로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건데?”
찰나 당황한 것인지 멱살을 쥔 공희찬의 손에 힘이 풀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역으로 공희찬의 옷깃을 쥐고서 자세를 뒤집었다.
그러자 공희찬의 상체가 난간 아래로 훌쩍 기울어졌다.
소금기 섞인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을 실감한 건지 공희찬이 악을 썼다.
“씨발! 이거 안 놔? 뒤지기 전에 놓으라고!”
과거의 나였다면 공희찬의 저항에 손쉽게 밀려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힘을 쓰는 대신 요령껏 젖힌 공희찬의 상체를 짓누르며 물었다.
공희찬이 스킬을 써서 반박할 수 없도록 먼저 스킬을 사용해 막는 건 덤이었다.
“조장으로서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당장 얘기해.”
공희찬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악을 썼다.
발을 어찌나 세게 구르는지 젖은 나무판자가 어긋나는 소음이 울렸다.
“이거 놔, 이 새끼야! 당장 놓으라고!”
공희찬의 몸부림으로 인해 선체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들 적당히 좀 해! 유치하게 싸우는 꼴 지켜보다가 우리까지 다 죽어 버리라는 거야? 도해월, 넌 실습에 진심이라며. 그런 애가 실습 도중에 다툼 생기면 그 조는 그대로 망해 버린다는 거 몰라? 너희 둘 다 정신 안 차릴래?”
사정없이 흔들리는 선체를 가로지르며 나와 공희찬에게 다가온 김미솔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저항을 멈춘 공희찬이 김미솔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같잖지도 않지. 나는 남은 손으로 공희찬의 이마를 툭 떠밀었다.
마침 높다랗게 쏟은 파도에 뒤로 기울어진 몸이 젖어 들었다.
“홍원하, 넌 또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와서 얘네 좀 떨어지게 해 봐!”
나와 공희찬에게서 몇 걸음 멀어져 주위를 둘러보던 김미솔이 외쳤다.
김미솔은 조원 중에서도 맏이인 7학년답게 사태를 능숙하게 정리했다.
“준희야, 연호 상태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잠시만 지켜봐 줘. 도해월, 너는 조장이라는 애가 왜 이렇게 강압적이야? 그리고 네가 이번 실습에서 제일 중요한 게 연호라며.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쟤가 어떻게 집중하겠어?”
나는 그제야 곁눈으로 감은 눈을 움찔거리는 설연호를 돌아보았다.
그에 힘주어 쥐고 있던 공희찬의 멱살을 끌어당기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선배가 말했던 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있어. 여기서 나가면 그 커뮤니티 정보를 나한테 넘겨.”
“미쳤냐? 내가 왜.”
공희찬을 핏줄이 도드라져 붉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목이 졸린 채로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자존심만 세우는 꼴이란.
“실습 결과는 조장의 채점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걸 모르지 않겠지. 그럼 내 말을 들어야 할 텐데.”
그 말을 들은 공희찬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이내 숨이 막힌다며 거세게 발을 굴렀다.
쿵. 쿵.
“동의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하면 놓아주고.”
쿵. 쿵. 쿵.
한참 목이 졸려 있던 공희찬은 새하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당장 그거 안 놔? 너희 진짜 미쳤니?”
김미솔의 호령이 이어지자 홍원하가 내 팔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순순히 홍원하의 손길을 따라 공희찬의 멱살을 놓고 멀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드득―!
쾅!
생전 들어 본 적 없던 굉음이 귓가를 두드렸다.
쾅!
쾅!
그 소리는 귓가를 관통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분명 가까이서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부터 시작된 파동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었다.
이윽고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자욱한 해무 너머로 작은 언덕 혹은 산을 연상시킬 만큼 거대한 몸집의 무언가가 보였다.
두툼하고 검붉은 무언가가 희붐해진 상공을 가로지르며 파도를 내리쳤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열 개의 다리와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스킬라.
어째서 저게 지금 나타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