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첫 번째 대항 (1)
[던전 입장을 시도합니다.] [입장 인원이 확인되었습니다.] [던전 에 입장을 완료하였습니다.]눈앞의 풍경을 인지하기 직전 발밑으로 드리운 서늘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질끈 감은 눈을 뜨기도 전에 살갗에 들러붙던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간신히 눈보라에 휩싸인 동료들의 모습을 시야에 담으면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의지와 관계없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드는 눈보라는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었다.
역방향으로 꽂혀 있던 백색 권총에 손가락을 걸면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진짜 D급 던전이라고? 실습은커녕 눈도 못 뜨고 돌아가게 생겼어!”
연이어 휘청거리다 간신히 주변 사람을 붙들고 선 김미솔이 눈발 사이로 외쳤다.
“필드에서 마지막으로 훈련했을 때 봤던 거랑 차원이 달라. 지금 날리는 눈도 다 마나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렇게 무자비하게 계속 맞고 있어도 되는 거야?”
홍원하의 염려스러운 말에 지레 겁을 먹은 강준희가 설연호의 팔을 쥐는 것이 보였다.
“회의실에서 해월이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던전 중심부에 S급 마석이 묻혀 있다는 거지! 그게 정말 사실이고, 우리가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 낼 거라면 대책부터 세워야 해!”
냉기가 머리끝까지 뒤덮은 탓인지 그나마 의연하던 김미솔이 이어서 간신히 외쳤다.
“김미솔 선배 말이 맞아. 간단한 조치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 선배는 방어막부터 먼저 내려 줘. 강준희는 그 위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흐름을 조종해 주면 돼!”
이전과 같이 얼음장처럼 딱딱하게 굳은 총신을 고쳐 잡던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머지않아 설연호가 구축한 방어막이 내려오더니 눈발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은 우리 주변의 눈발을 완전히 그치게 하는 건 불가능해. 이 정도가 최선이야.”
이어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의 흐름을 조절한 강준희가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맞, 맞아요……. 이 던전 내부의 마나 에너지 수치가 평균 이상으로 오른 상태라서 이대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두 사람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고 호흡을 안정적으로 가다듬던 이들을 돌아보았다.
유독 숨을 쉬기 버거워하던 공희찬까지 기운을 찾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던전은 물을 가득 담은 풍선 같은 상태야. 언제든 갑자기 터져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게 될지 몰라. 그리고 우리는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전에 오늘 여기서 던전을 공략한다.”
설명을 들으면서 주위를 살피던 이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업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미리 다 알고 마지막 훈련 때 냉기 속성 지형을 고른 거야? 그때도 얘기했지만 진짜 죽을 만큼 힘들었어.”
김미솔은 마른 입술을 몇 번이고 축이고 내게 물었다.
“아까 네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던전의 중심부에 S급 마석이 묻혀 있다는 거잖아……. 대체 그 위험한 걸 누가 묻어 둔 건데? 해월이 넌 그것도 알고 있는 거지?”
곁눈으로 공희찬을 흘기며 남몰래 혀를 찬 강준희가 눈을 감았다 뜨면서 물었다.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풍랑을 조종하느라 스킬을 지속시키는 중인 듯했다.
유일하게 꼿꼿한 자세로 버티고 서 있던 서애란이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우리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그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지.”
목적이라면 이미 회의실에서도 이야기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게이트를 닫아야 한다는 말에 전부 동의했기에 여기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서애란의 이야기까지 듣고 난 조원들은 그제야 현실 감각을 되찾은 건지 한층 차분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기 전에 얘기했던 건 전부 사실이야.”
나는 이윽고 걸음을 조금씩 옮겨 무리의 중앙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아까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무섭기는 하다. 우리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지.”
회의실은 물론 지난 현장 실습에서도 유난히 침착하던 홍원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서애란의 표정 또한 서서히 굳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굳은 표정으로 서애란은 입을 열었다.
“지난 학기 현장 실습에서 너희랑 선배들이 어땠는지는 들어서 알고 있어. 그때도 도해월 머릿속에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 아니야?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같은데.”
뒤이어 설연호가 말을 덧붙였다.
“다들 무섭고 두려운 심정인 건 이해해. 그건 해월이도 똑같을 거야. 다들 자세한 계획에 관한 건 여기 들어와서 듣는 데 동의했으니 얘기부터 마저 들어 보자.”
분위기를 살피며 차분하게 읊조렸으나 설연호 또한 주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반듯하게 서서 버티던 서애란도 마찬가지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눈앞의 동료들을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을까.
아마 이곳에서 벌어질 일을 우리가 막지 못하게 되더라도 안전이 보장되었으면 하겠지.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려는 생각으로 전날 정건후와 만나서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했다. 그보다 나를 믿어 주는 게 오히려 나랑 던전은 처음 들어오는 서애란이라니. 나도 모르는 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 *
“S급 마석이 D등급 던전에 방치되어 있다니.”
정건후는 스스로 말하고도 답답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때 네가 했던 말을 듣고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는 상담실에서 나눈 이야기가 새어 나갈 것을 우려한 건지 창문을 열어젖히려던 손을 떨어뜨렸다.
“자연적 재난의 일종인 던전 브레이크를 사람의 의지로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은 계속 거론되고 있었어. 수업에서도 말한 적 있으니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다. 그건 전국 각지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던 논제였다.
나와 부대원들이 던전 브레이크 현장을 수습한 뒤 대표로 공식 석상에 오를 때마다 언급되던 질문 중 하나였기도 했고.
“던전 브레이크를 직접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가설을 내세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만에 하나 이번 학기 현장 실습용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정건후는 끝내 말문을 맺지 못했다. 나는 그 머뭇거림에 담긴 저의를 모르지 않았다.
S급 헌터로서 재난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던 건 나 또한 마찬가지로, 정건후와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설령 네가 나한테 알려 준 것들이 거짓 정보에 불과하다고 해도 현장 실습 당일에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을 마련해 둘 거야.”
“헌터 아카데미 교사 중에 현장에 투입할 만한 인력은 없지 않나요.”
곧바로 질의하자 창문 너머를 내다보며 눈가를 찡그리던 정건후가 나를 돌아보았다.
“학교에서 내 처지가 이렇다고 해서 얕잡아 볼 것 없어. 내일 일이 생긴다면 취우 길드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손을 써 뒀으니까.”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창틀에 반쯤 기댄 정건후의 어깨로 한낮의 볕이 내려앉았다.
“S급 마석이 거기 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입장조차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성문 길드와 결탁한 거라면 막을 수도 없겠지. 취우 쪽에 연락을 취해 두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움직이면 분명 발각될 거다.”
며칠 전, 나를 찾아온 지선일은 정건후에 관한 학교에 입지에 대해 일러 주었다.
현장 실습 일자가 가까워지면서 학교는 정건후의 행방을 주시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도해월이라면 어떻게든 들어가서 막아 보겠다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무모한 건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내가 그쪽을 닮았다던데.
“모쪼록 이미 계산된 수라면 벗어날 여지는 모조리 막아 뒀을 거야. 그건 곧 너희가 원하지 않았어도 그 던전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불가항력이라는 뜻이고.”
* * *
“지난 학기 현장 실습에서 A급 몬스터가 나타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면서. 그때도 무사히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도해월의 전략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맞아?”
손바닥으로 날리는 눈송이를 막은 채 눈살을 찌푸리던 서애란이 말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잠시 두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번에도 난 우리가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미래를 찾아낼 거야. 우선 우리한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볼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크게 숨을 고르면서 눈을 감았다.
[사용자가 지정한 ‘천리안’ 스킬이 발동됩니다.]일순 오감이 열리면서 감은 눈꺼풀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는 감각 또한 극대화되었다.
한 차례 호흡하는 동안 손아귀를 관통하는 시간의 행렬을 가늠하고자 주먹을 움켰다.
이윽고 근미래에 벌어질 장면과 전투의 가능성과, 전법을 계산한 뒤 불현듯 눈을 떴다.
이 미친 새끼가. 당장 오늘 내로 브레이크가 터진다고?
“우리가 던전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리고 여기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것까지 전부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막아 낼 테니까.”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김미솔이 한층 단단해진 어조로 말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난 실습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만회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본다고 생각할래. 그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던전 공략에 실패한 건 내심 아쉬웠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홍원하도 한참 입술을 달싹이더니 주먹을 고쳐 쥐면서 입을 열었다.
“도해월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 솔직히 처음에는 도해월이 왜 저렇게 과장하는 건가 싶었거든.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마저 얘기해 줘.”
무어라 덧붙이려던 공희찬도 홍원하의 말에 동의한 건지 잠자코 나를 지켜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 열네 시간 내에 던전을 공략하는 거야.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돼서 게이트가 열려 버리면 성문 길드가 현장 실습용으로 개방한 다른 던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다른 애들이 들어간 던전에도 S급까지는 아니지만 마석이 묻혀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공희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공희찬 선배는 알 거야. 강효서 선배가 관리하는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 들어가려면 성문 길드가 관리하는 각기 다른 던전에 들어가서 마석을 얻고, 그걸 길드에 헌납해야 했거든.”
그 말을 듣던 공희찬이 곧장 기함하며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말로 해명했다.
그쪽으로 번지려던 소란을 진정시킨 김미솔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나도 짐작하고 있었어. 강효서랑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도 그때 일 때문이었거든. 성문 길드에 마석을 헌납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전제 자체가 너무 수상하잖아.”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총구를 고쳐 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열네 시간이야. 그 안에 공략을 마친다면 던전 브레이크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어. 그렇지만 지금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얘기해 줘.”